2010. 10. 28. 14:07ㆍ미술/한국화 옛그림
펌1)
영조 30년에 태어나 순조 22년까지 살다간 긍재 김득신은
도화서의 화원으로 초도첨사를 지낼 정도로 그림 솜씨를 인정받은 사람이다.
현재 심사정, 겸재 정선과 더불어 영조 때 3재(三齋)라 불릴 정도로 인물화로도 유명한 화가로,
그가 그린 풍속화는 당대를 풍미하던 천재화가 김홍도의 그림과 매우 유사한 화풍을 보이긴 하지만
김홍도의 그림에 비해 인물 중심에서 주변 배경을 더 그려 넣어 또 다른 흥을 만들어 내는 점이 특징이다.
김득신의 그림은 다른 이들에 비해 참으로 익살스럽다.
백성들의 일상생활을 그려낸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이 그 일이 일어난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 흥취 등을
정확히 그려내고 있다면 김득신의 그림은 거기에다 주변배경과 익살이 더해져
볼 때마다 피식 웃음이 저절로 나오게 만든다.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 그림마다 우와 감탄을 내지르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김득신의 그림에서는 먼저 웃음이 나오고 그 뒤에 감탄이 나온다. 그 점이 다르다.
신윤복의 그림에서는 ‘아! 이 시절,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구나!’내지는
‘이 시절 사람들도 사용하는 도구나 의복만 달랐을 뿐이지 우리들이 현대를 사는 것처럼 똑같았구나!’하는
감동과 흥취를 같이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김득신의 그림에서는 거기에다 캐리커처를 보는 듯한 날카로운 느낌과 만화를 보는 듯한 익살스러움에
웃음이 먼저 나오게 만든다.
익살스러운 면에서 보면 언뜻 윤두서의 그림에서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윤두서 보다는 훨씬 더 소박하고 털털하다.
<야묘도추> 만큼이나 <밀희투전>도 볼 때마다 먼저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다른 유명하다는 이들이 그린 그림들 못지 않을 정도로 감탄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먼저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네 명의 남자가 말없이 패를 들고 앉아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있지만
그것마저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투전판에서 자신의 처한 입장이 온 몸에서 풍겨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감탄에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이유는
인물들의 배치와 그 주위를 둘러싼 배경에서 그 상황의 미묘한 심리가 더 세밀하게 살아나기 때문이다.
우리 옛그림은 우상부에서 좌하부 방향으로 보아야한다.이 순서를 지켜 그림을 읽어 보면,
오른쪽에 맨 먼저 보이는 것이 술상이다.
그 바로 앞에 술에 얼큰히 취해 얼굴이 불콰해진 남자가 있다.
구레나룻까지 털북숭이인 이 남자의 표정은 영 좋지 않다. 아마도 돈을 잃은 듯하다.
그것도 애써 태연한척 감추려 하고 있다.
손을 왼쪽으로 모아 패를 감추고 몸을 오른쪽 앞으로 약간 기울인 채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이번에 자신이 가진 패가 그리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그의 왼쪽에 앉아 있는 안경을 쓴 남자는 왼손으로 패를 움켜쥐고 가슴 앞으로 가져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패를 숨기려고 하고 있다.
오른손으로 패를 바닥에 내려놓는데도 뭔가 조심스러운 걸 보면 그의 패가 제법 좋은 듯하다.
표정이 무덤덤하게 보이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생각 이상으로 패가 좋은데
애써 그것을 감추려하는 느낌이 역력하다.
술에 취해 얼굴이 불콰해진 구레나룻의 남자가 그것을 눈치 챈 것이다.
그래서 그의 몸과 눈길이 은근히 오른쪽으로 향해 있는 것이리라.
그림 앞에 있는 두 남자는 영 패가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수염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패를 쥐고 들여다보고 있는 태도도 그렇다.
그 중 안경 쓴 남자 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오른손에 패를 쥐고 있는 것을 보니 왼손잡이이다.
<야묘도추>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참으로 절묘한 구성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먼저 웃고 그 다음에 감탄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림 속에 있는 사람들이 마치 그림 안에서 살아 움직이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그림에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먼저 그림 속의 인물들의 크기를 달리함으로써
주인공과 그 상대자와 엑스트라가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는 점이다.
그 다음으로는 왼쪽에 있는 창호 문의 왼쪽은 약간 거무스레한데
오른쪽으로 갈수록 그 색이 점점 옅어져 이것으로 새벽이 희뿌옇게 다가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선을 세 개로 그어 이 투전판이 벌어진 곳이 방 안이라는 것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점이 그렇다.
뿐만 아니라 술병 또한 붉은 색으로 처리해 술이 몇 병이 오간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부제를 ‘입체파 화가 김득신, 밤새는 것도 모른 채 투전에 빠져 있는 네 남자를 그려내다.’로
한 것이다.
(某 카페에서 퍼옴. 글쓴이 모름.)
펌2)
‘밀희투전(密戱鬪)’ (간송미술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함께 조선 3대 풍속화가로 통하는 긍재는 도화서 화원으로 초도첨사까지 지낸 스타급 화가다. 단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긍재의 풍속화는 단원과 차이가 있다. 주변 경관이나 분위기 설정으로 내용에 활력을 불어넣거나 일상의 단면을 익살스럽게 포착하여 자신만의 화풍을 구사했다.
이들은 흥미롭게도 주연과 조연으로 나눌 수 있다.
조선 후기, 중국에서 들어온 투전은 길고 두꺼운 종이쪽지 80장 내지 60장으로 하는 도박이다.
'밀희투전'은 투전판의 미묘한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여기서 상대방이란 안경잡이 사내다.
일반적으로 등장 인물의 시선이 집중된 곳이 그림의 중심이 된다.
조선이 시장 경제의 초기 단계에 접어든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풍속화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김득신(1754∼1822)은 단원이나 혜원이 워낙 뚜렷한 개성을 발휘한 탓에 상대적으로 후대의 평가가
긍재(兢齋)라는 호는 전전긍긍(戰戰兢兢)이라는 '시경'의 구절에서 따왔다고 하지요.
그런 점에서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밀희투전(密戱鬪)'은 그의 작품으로는 소재부터가 파격적입니다.
이 그림은 주연과 조연이 명확합니다.
방안에서는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적지 않은 판돈이 걸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른쪽의 개다리소반에는 술병이 놓여있는데, 잔이 하나뿐인 것을 보면 술보다는 물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밀희투전'은 돈이 본격적으로 인격을 좌우해가기 시작하는 시대의 사회상을 어떤 풍속화보다도 리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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