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13. 17:03ㆍ미술/한국화 옛그림
총석정(叢石亭)이라는 말은 이들 가운데 세워진 정자를 뜻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바위기둥들과 절벽을 일컫는다.
관동팔경 중 1위에 속해 있다.
사진출처 http://cafe.daum.net/dkfmaekdnstptkddptj4/5tqm/234
1.
김홍도의 총석정과 이인문의 총석정 차이를 아시나요?
강원도(북한) 통천군 통천읍에는 총석정(叢石亭)이 있습니다.
총석정은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주위에 현무암으로 된 여러 개의 돌기둥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 있어 절경을 이루지요.
그래서 이를 그림으로 그린 화가가 많습니다.
특히 정선은 여러 점의 작품이 남아 있고, 김홍도, 이인문, 이재관, 허필, 김하종 등이 즐겨 그렸습니다.
똑같이 총석정을 보고 그린 그림이지만 가장 많이 그린 정선의 작품을 보면
일절 색을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수묵만으로 물결치는 파도를 그렸으며
김홍도는 파도소리에 새소리까지 들릴 듯 섬세하고 정감있게 그렸지요.
그런가 하면 초상화를 잘 그린 이재관은 얌전하고 꼼꼼한 모습으로 총석정을 그립니다.
하지만 이인문(1745-1821) 은 김홍도만큼은 알려지지 않은 동시대 화가로
주눅 들지 않은 자신만의 색채를 표현해 수채화처럼 총석정을 그렸다는 평을 받습니다.
이처럼 유명한 화가이든 무명화가이든 나름대로 특징을 살려 그린 총석정은 그래서 더 흥미로운지 모릅니다.
그림에서도 정선이나 김홍도 같은 당대 최고의 화가들만 있다면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장미꽃이나 백합 같은 한두 종의 꽃만 피어있는 정원과 같겠지요.
다양한 개성과 자신만의 색깔로 그린 총석정을 지금은 갈 수 없지만
언젠가 찾아가 파도치는 정자에 서면 붓으로서 자연을 노래하고 인생을 노래한 화가들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참조 : <조정육의 행복한 그림읽기>
이 게시물은 http://blog.daum.net/wboss/6045119 에서 가져왔습니다.
2.
檀園 金弘道 叢石亭圖 유추 복원 by Hansa
이 그림은 18C말 檀園 金弘道의 叢石亭圖란 작품이라네.
그림 왼쪽에 쓰여 있는 것처럼 금강산행에서 가이드역할을 하던 김경림이란 선비에게 선물한 그림이지.
사람 만남에도 인연이 개재되듯이 그림 만나는 데도 그런 기미가 있는 것만 같네.
개원 2-3년 지나 개원 시 대출했던 빚을 좀 갚고, 책 좀 보자 하던 시기에 손에 주로 들었던 책들이
한국문화, 한국역사, 유학계열의 책들이었어. 벌써 한 10여년 됐네. 최순우, 이동주, 한영우, 윤재순 등등.
그런 과정 중에 이동주의 ‘우리나라의 옛 그림’이란 우리나라 그림 해설서를 구입했는데,
표지의 그림이 심상칠 않았어. 당체 그림에서 눈을 떼질 못하겠는 거야.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글 또한 얼마나 쫀득쫀득 하든지 표지그림 못질 않아.
내 표현으로 보물 건진 거지.
그 동안 학교에서 배운 거, 나름대로 주어들은 것이 모두 무효, 그동안 헛것 알고 지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이동주 선생은 원래 하시는 일은 의사라네.
이 양반이 그림에 미쳐서 그중에서도 한국 옛 그림에 푸욱 빠져서 이 방면에 본업보다 널리 알려지신 분이드만.
이 양반 얘기를 듣자하니 책표지의 그림인 총석정도의 화가, 단원이 최고라는 거야.
화가에게는 그린 그림이 그가 가진 재능의 총화라 할 수 있겠지.
책에 많은 그림들이 소개되었지만 처음 보고 감동했던 이 그림만한 그림은 찾을 수가 없더군.
그런 인연이 있었다네.
동양화는 서양화랑 다른 점이 있다네. 여백이야.
Draper의 Icarus 그림을 보면 전혀 빈틈이 없네. 반면 이 그림은 대략 절반이 비어 있네.
또 한 가지, 서양그림은 주어진 캔바스를 작자의 의도대로 분할하고 분할된 면을 채워나간다네. 그걸 구도라 하지.
동양화는 백지에 대상을 가져다 놓는다네. 그것을 포치라 하네.
구도와 포치, 그런 차이가 있다네.
결국 여백이 라는 것이 포치의 개념과 무관하지 않겠지.
전통적인 동양 산수화는 작자의 정신속의 이상향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에 그림의 목표가 있다네.
그런데 영정조 시대, 실학의 융성과 ‘조선이 문화적으로는 세계의 중심이여’라는 소중화연하던 시대를 맞이하면서
이상적, 정형화된 화제에 머물 것이 아니라 진경, 실경이라 하여 아름다운 우리 산하를 보이는 대로 표현하자는,
실질적이면서도 국가적 자부심에 기인한 새로운 사고가 싹트기 시작했지.
바로 그 시절의 그림의 대표작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라네. 단원보다는 한 50년 앞선 세대이지.
단원은 겸재의 영향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한편으로는 더욱 심화, 발전시켰다네.
기존의 중국화풍의 관념적 산수화에서 벗어나 국가적 자부심에 기초하여 우리나라의 실제 경치,
즉 실경을 산수화에 도입한 것은 우리 그림의 역사에서 실로 혁신적인 발전이라 할 수 있지.
자 그림 보세.
총석정은 북한의 해금강에 있는 화성암 중 심성암 재질의 암석기둥들이지.
그림 아니라도 스스로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어.
그림에서도 중앙의 길쭉한 석주들이 눈에 띄네.
오른쪽의 석주위에 오롯이 날아갈듯 서있는 소나무 한 그루에 시선이 끌리네. 저놈이 왜 저기 사나.
소나무의 실루엣의 미묘함이 인상적이지.
다시 그림의 주제인 우측 절벽의 정자, 이게 총석정인가 봐.
우하변의 키 큰 소나무 숲으로 시선이 이동, 석주의 아랫부분을 거쳐 좌중간의 물새 두 마리에 시선이 멈추네.
세필로 정교하게 그려진 두 마리 물새가 이 그림의 Hot Point이지.
해석은 그림 보는 사람 맘이라. 단원과 김선비, 두 양반의 회동을 상징한다할 수도 있고...
여백이 적은 그림의 우반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좌반부를 보완하여 그림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하여간 두 마리 물새가 정적인 풍경화에 생동감과 이야기꺼리를 제공한다네.
좋은 그림은 항상 보는 이에게 뭔가 이야기를 한다네.
그렇게 잠시 완상하다가 물새를 지나치면 좌변의 부드럽게 굽이치는 아름다운 물결능선에서 종결.
각이 선 석주의 완강함과 휘날리는 소나무, 굽이치는 물결, 날아가는 물새 등의 부드러움이 서로 맞서지 않고
조화를 이룬, 실경산수의 白眉라 할만한 아름다운 그림이라네.
- 閑士 -
출처. http://cafe.daum.net/golstarroom/4MlP/1
3.
이인문 '총석정' 사진http://cafe.daum.net/songpacandle/D5jN/1575
4.
겸재 정선 <총석정> 사진 'http://cafe.daum.net/songpacandle/D5jN/1575
정선(1676년~1759년)은 여러 점의 총석정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중 왼편 그림은 그의 나이 서른여섯에, 오른편 그림은 여든 에 그린 것입니다.
왼쪽 그림은 젊은 시절 그림답게 비교적 꼼꼼하게 사실적으로 그렸습니다.
절벽을 때리는 파도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집니다.
벼랑 끝의 정자와 비석, 앞바다의 섬은 그 이름까지 친절하게 써 놓았습니다.
네 개의 바위 기둥은 원래 비슷하지만 조금씩 그 높이를 달리하였습니다.
답답하지 않게 변화를 준 것이지요.
이와 달리 오른쪽 그림은 과감한 생략이 돋보입니다.
복잡한 바위 기둥들을 다 그리지 않고 딱 세 개만 그렸습니다.
크고 작고, 굵고 가는 변화가 분명합니다.
여기저기 늘어선 섬들도 보이지 않고, 기울어진 돌기둥들 대신에 솔숲을 그려 넣었습니다.
한 화가가 그린 똑같은 풍경 그림인데,
그 바위 기둥이 하나는 넷이고, 하나는 셋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이는 그대로,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린다고 해서 좋은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화가가 어떤 대상을 본 순간, 그 느낌을 소중히 살려 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그림 속 대상의 갯수나 크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에서, 바위 기둥을 다 그리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그림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출처. http://cafe.daum.net/hanuri-dok-academy/Fl1N/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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