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2010. 7. 26. 09:58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언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그리움(Sehnsucht)’을 꼽곤 한다.

영어로는 ‘갈망’ ‘열망’을 뜻하는 ‘longing’으로 번역되나, 정확한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

‘그리움’은 한국어로도 참 아름다운 단어다.

‘그리움’은 ‘그림’, 혹은 ‘글’과 그 어원이 같다고 한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듯, 마음에 무언가를 그린다는 뜻이다.

 

  

 

 

 


괴테의 시에 차이코프스키가 곡을 붙인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라는 가곡을 듣고 있으면

가슴 한구석이 아주 깊이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도 이 노래만큼이나 구구절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화가가 있다. 이중섭이다.

얼마 전, 제주도에 워크숍을 갔다.

비는 시간을 이용해 서귀포의 이중섭미술관을 찾았다.

장맛비를 뚫고 찾아간 미술관에 전시된 이중섭의 작품은 대부분 사진이었다. 진품은 채 몇 점 되지 않았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돌아 나오는데, 한쪽 벽에 이중섭의 편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아, 이렇게 가슴 저리는 그리움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

 


피난 온 서귀포에서의 2년이 채 못되는 시간이 이중섭에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꿈 같은 나날이 된다.

어쩌지 못하는 가난 때문에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서귀포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중섭의 편지는 그의 일본인 아내에게 보낸 것이다.

네 장을 빽빽하게 쓴 편지에는 입국허가와 관련된 단 한 문장을 빼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에 대한 그리움뿐이다.

특히 아내에 대한 그의 애틋함은 그녀의 발가락에까지 닿아 있다.

이중섭은 아내의 발가락을 ‘아스파라가스군’이라 부르며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아스파라가스군에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살뜰한 뽀뽀를 보내오.’

또는 ‘나만의 소중한 감격, 나만의 아스파라가스군은 아고리(이중섭의 별명)를 잊지나 않았는지요?’,

‘아스파라가스군이 춥지 않도록 두텁고 따뜻한 옷을 입혀주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아고리가 화를 낼 거요.’

이 따뜻하고 유머스러운 발가락의 에로티시즘과

행려병자로 홀로 죽어간 이중섭의 초췌한 모습이 오버랩되며 가슴 끝이 꽉 조여든다.

네 장을 가득 채우고도 못내 아쉬운 이중섭의 그리움은 편지지의 귀퉁이마다 작은 삽화로 다시 그려진다.

떨어져 있는 세 식구를 향해 팔을 벌린 자신의 모습, 네 식구가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

아내의 얼굴 등을 구석구석에 채워 넣었다.

특히 발가락을 따뜻하게 안 하면 화낸다는 문장 뒤에는 화를 내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귀엽게 그려넣었다.

그의 아내는 이 편지를 받고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또 보고 싶은 마음에 얼마나 울었을까?

쓸쓸한 이중섭은 가족과의 행복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평생 그렇게 그리워하다 죽어갔다.

벌거벗은 아들이 게, 물고기와 노는 장면을 수없이 반복해서 그린 이중섭의 그림들은 그래서 더 처연하다.

 


(중략)

 

 



-  '정동 에세이' 김정운 (ⓒ 경향신문) -

 

 

 

 

 

 

 

 

 

 

 

 

 
Tchaikovsky(1840~ 1893)
None But the Lonely Heart (03'24)
Goethe for Voice, Op.6
Ian Partridge(1938~ )English tenor 

Jennifer Partridge, piano



     
None but the lonely heart
Can know my sadness
Alone and parted
Far from joy and gladness
Heaven's boundless arch I see
Spread about above me
O what a distance dear to one
Who loves me
None but the lonely heart
Can know my sadness
Alone and parted
Far from joy and gladness
Alone and parted far
From joy and gladness
My senses fail
A burning fire
Devours me
None but the lonely heart
Can know my sadness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내 아픔을 알리라! 

홀로  
모든 기쁨을 저리하고  
저 멀리 창공을 바라보누나  

아! 나를 사랑하고 아는 님은  
저 먼 곳에 있다. 

몸이 어지럽고 
애간장이 타구나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내 아픔을 알리라! 



Isaac Stern, violin

괴테의 시에 바탕을 두고 작곡한, 차이코프스키의 가곡 중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곡으로, 관현악곡 기악곡으로 편곡되어 연주되기도 합니다


이 곡은 정열적인 가락이 아름답게 흐르며,
풍부한 화성에 의해 시적 향기를 내뿜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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