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견문

2010. 4. 1. 11:08책 · 펌글 · 자료/ 인물

 

 

 

                                                          한겨레신문 자료사진

 

 

 

 

1895년, 유길준 ‘서유견문’ 일본서 출간 

                                                

 


“외국 모습을 칭찬하는 나머지 자기 나라를 업신여기는 폐단까지 있다. 이들을 개화당이라고 하지만

 … 사실은 개화의 죄인이다.

  자기 자신만이 천하 제일이라고 여기며 심지어는 피해 사는 자까지도 있다. 이들을 수구당이라고 하지만

 … 사실은 개화의 원수다.

입에는 외국 담배를 물고, 가슴에는 외국 시계를 차며

… 외국말을 얼마쯤 지껄이는 자가 어찌 개화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개화라는 헛바람에 날려서 마음 속에 주견도 없는 한낱 개화의 병신이다.”



유길준(1856~1914)이 <서유견문> 14편 ‘개화의 등급’에서 밝힌 개화론의 일부다.

조선 말 지식사회에서 유행한 ‘개화’ 담론에서 중요한 문구로 여겨진다.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에다, 유럽까지 처음으로 둘러본 유길준은

개화에 있어 지나친 것의 폐해가 모자라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보았다.

“지나친 자는 자기 나라를 빨리 위태롭게 하고, 모자라는 자는 자기 나라를 더디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유길준은 온건 개화파로 분류된다.

유길준은 1881년 어윤중을 따라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서 접한 서양문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1883년엔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한 외교사절 보빙사(報聘使)의 일원으로 미국에 갔다.

보빙사는 2개월간 미 대륙을 횡단한 뒤 귀국했지만 민영익의 권고로 유길준 혼자 미국에 남아 1년 반 동안 고교 과정을 밟았다.

조선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귀국길에 올랐지만 도중에 유럽에 들러 1년을 더 보냈다.

<서유견문>은 그 결과물이다.

<서유견문>은 1895년 4월1일 일본 고쥰샤에서 국한문혼용체로 나왔다.

고쥰샤는 일본의 개화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세운 출판사다.

유길준은 <서유견문>을 쓰면서 후쿠자와의 <서양사정>(1866)을 참고했다.

다만 <서양사정>이 일본에서 수십만부 팔렸다면, 자비로 1000부만 찍은 <서유견문>은 조선에서 많이 팔리지 못했다.

유길준 스스로 ‘개화의 죄인’을 경계하긴 했지만 <서유견문>에 나온 歐美 체험은

일부 지식인들에게 서양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1995년 한양출판에서 국문 번역. 

 

(경향신문 손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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