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소금강

2008. 10. 20. 16:01산행기 & 국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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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진고개'란 이름이 '진부령'을 가르키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진부령은 간성에서 인제로 넘어오는 걸텐데, 넘어보질 못했고,

진고개는 10 여년 전에 부모님 모시고 한번 넘어봤수.

부러 넘은게 아니라 주문진에서 이정표를 잘못 읽어서 우연찮게 그리 된 거였는데

(진부령으로 착각했다는 말이 그 말이우.) 

아무튼 그 덕분에 이 고개를 넘어봤습니다

 

여기서 주문진이 30km가 된답디다. 

 

아버지 얘길 들어보니 옛날엔  다들 진부령으로 넘어다녔다는데,

소금 가마니를 하나씩 짊어지구 인제 양구로 넘어왔다는 겁니다.

아닌게 아니라 내 어릴때 기억에도 버스 앞 유리창에 노선 표시해 논 걸 보면

고성 간성은 크게 쓰고 속초는 작은 글씨로 써놨었수.

그러니까 속초가 지금처럼 커진 건 불과 15년 안팎이란 얘깁니다.

 

근데 여길 오자믄 진부 I.C로 빠집디다.

한자로 진부를 진부령과 같이 쓰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수. 

 

 

 

 

 

 

 

 

 

 

 

   

 

첫머리 올라가는 길이 완만하니 좋습디다.

 

 

 

 

 

  

이 친구, 지금 고민이 많을겨.

한달 전에 금원산에 갔다가 쥐나서 고생 된통했거던. 

오늘은 아스피린 4 알이나 먹고 왔답디다.

쥐나는데 아스피린이 특효라는 걸 나도 그때 첨 알았수. 

 

 

 

 

 

 

  

햐-,  여기도 이 정돈데, 소금강 내려가면 기막히겠다 그쟈?

 

 

 

 

 

 

 

 

 

진짜 멧돼지 만날 일 있을까? 

나 어릴땐 산삼 캐러 다니는 사람중에 진짜 호랑이를 봤다는 이가 여럿 있었수. 

 

 

 

 

 

 

 

벌써 진고개서 0.9 km 왔다는 거 아녀?

씨적씨적 별로 걸은 것도 없는데 벌써 3분의 1 왔단겨.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계단이우.

땀도 안 나고, 물 한모금 안 먹고 단숨에 올라갔는데,

계단이 끝나고 나니까 그걸루 오르막이 끝입디다.

싱겁더군.  

 

 

 

 

 

 

능선 걷는거야  수월하지요. 여긴 아예 산책로 같습디다.

 

 

 

 

  

 

 

 

 

 

 

 

 

 

 

이 나무 참 이쁩디다.

꼭 페인트 칠해논 거 같습디다.

단단하고 좋은 나무랍디다. 방부제 기능도 있다나 그렇답디다.

나는  자작나무숲하고 미류나무 숲이 좋드만. 

 

여기가 해발 1400m라는 게 실감이 안납니다. 

 

 

 

 

 

 

 

  

 

 

 

지금 오르려는 봉우리가 노인봉인데,

노인네도 휘적휘적 올라올 수 있어서 이름을 그리 지은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산 밑에서 올려다 보면 여기가 수염이 허연 노인네처럼 보인대서 그렇게 지었답디다. 

바로 이런 나무들 때문이라우. 

  

 

 

 

   

 

 

 

 

  산 봉우리치고 참 볼품없이 생겼습디다.

 

 

 

 

 

 

  바다는 안 보이던데?

 

 

 

  

 

 

 

 

울 마누란 저렇게 안해가도 그냥 믿어주는데... 

  

 

 

 

 

 

  

  

 

 

 

 

 

맑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부연한 것이 시계(視界)가 별로 안 좋습디다.

보다시피 산 위에는 잎이 다 졌수. 

 

 

 

 

 

  

 

 

 

 

넘어온 길이 3.6km, 내려갈 길이 9.3km 라는데

내 느끼기엔  올라온 건 2km도 안되는 것 같고 내려가는 길은 10km도 훨씬 넘는 것 같습디다.

여기 하산길 정말 멉디다. 

 

 

 

 

 

 

 

대피소랍디다. 관리인도 없수.

들어가보진 않았는데  그래도 깨끗이 잘 쓰는 모양입디다.  

산행하는 사람들 보면, 양심불량한 사람은 별루 없습디다. 

 

여기서 점심 먹고 본격적으로 하산을 시작하는 건데

'오대산 소금강'이라고 하는 데가 바로 여깁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하산길이 더 힘드니 어쩌니 하면서도 막상 하산이다 싶으면 솔직히 고생 끝났구나 싶습디다. 

이번엔 무릎보호대를 가져갔는데 많이 도움이 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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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배운 국어 교과서 중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글이 두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박종홍의 '한국의 사상'인가고 또 하나는 정비석의 '산정무한'입니다.

아마 당시에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산정무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기행문으론 다시 없을 명문이지요. 

 

 

 

천하에 수목이 이렇게도 지천(至賤)으로 많던가!

박달나무, 엄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고로쇠나무 .

나무의 종족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고 한 어느 시의 구절을 연상하며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단풍 뿐,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다. 산 전체가 요원(燎原) 같은 화원(花園)이요,

벽공(碧空)에 외연(巍然)히 솟은 봉봉(峯峯)은 그대로가 활짝 피어 오른 한떨기의 꽃송이다.

산은 때 아닌 때에 다시 한 번 봄을 맞아 백화난만(百花爛漫)한 것일까?

아니면, 불의(不意)의 신화(神火)에 이 봉 저 봉이 송두리째 붉게 타고 있는 것일까?

 

- 정비석, 산정무한(山情無限) -

 

 

  

이쪽엔 숲이 울창한게 그런대로 단풍이 볼만 합디다.

일주일 전쯤에 왔어야 제대로 든 단풍을 볼 수 있는건데... 좀 늦었지요.

금년 단풍은 가물어서 그런지 어디고 간에 색이 곱게 들질 않았습디다. 

잎이 다 말라서 비틀어지고 떨어지고 합디다. 좀 김새지요.

  

 

 

  

 

 

 

  

 

 

 

 나 맹키로 혼자 다니는 거 좋아하는 사람인갑다.

 

 

 

  

 

 

 

 

 

 

진주홍(眞珠紅)을 함빡 빨아들인 해면(海綿)같이, 우러러 볼수록 찬란하다.

산은 언제 어디다 이렇게 많은 색소를 간직해 두었다가, 일시에 지천으로 내뿜는 것일까?

단풍이 이렇게 고운 줄은 몰랐다. 

 

 

저런 정도야 아니지만 그런대로 볼만 하지요?

다소 늦긴 했어도  아주 낙심할 만큼은 아니었다우.

 

 

 

 

 

 

 

이 친구 이번에 신났지.

오르막은 골골대도 하산길은 얼마든지 자신 있다니까. 

거기에 진통제 잔뜩 먹었겠다  펄펄 날았지.

산행중에는 거의 술 안 마시는데, 이번엔 친구가 가져온 소주 한병을 나눠마셨구만.  

 

 

 

 

 

  

 

  

 

 

 

 

  

  

 

 

 

  

 

 

  

 

 

 

 

 가물었다곤 해도 계곡에 물이 웬간한 걸 보니 여름엔 물이 많겠습디다.

 물이 맑아서 그냥 막 먹어도 되겠습디다.

 

  

 

 

 

  

 

  

 

  

 

 

 

 

   

 

 

 

 

 

  

  

 

  

김 형(金兄)은 몇번이고 탄복하면서,

흡사히 동양화의 화폭(畵幅) 속을 거니는 감흥을 그대로 맛본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도 한 떨기 단풍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리는줄기요, 팔은 가지인 채,

피부는 단풍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

옷을 훨훨 벗어 꽉 쥐어 짜면,

물에 헹궈 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다리 참 많이 만들어 놨습디다.

아마 20개도 넘게 건넌 것 같습니다. 

 

 

 

 

 

 

여기가 만물상이란 곳인데, 소나무 몇 그루 괜찮은 게 있습디다.

넓은 바위가 참 깨끗하지요. 

 

 

 

 

 

 

 

여기서 카메라 밧데리가 나갔습니다.

충전이 덜 됐는지 그렇게 많이 찍은 것도 아닌데...거~참.

해서, 아래 사진들은 폰카로 찍은 겁니다. 

 

 

 

 

 

 

 

 

 

 

 

  

  

 

 

 

 

 

 

  

 

첫눈에 비치는 만산(萬山)의 색소는 홍(紅)! 이른바 단풍이란 저런 것인가 보다 하였다.  

만학천봉(萬壑千峯)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웃는 듯, 산색(山色)은 붉은 대로 붉었다.

자세히 보니, 홍만도 아니었다.

청(靑)이 있고, 녹(錄)이 있고, 황(黃)이 있고, 등(登)이 있고,

이를테면 산 전체가 무지개와 같이 복잡한 색소로 구성되었으면서,

얼른 보기에 주홍(朱紅)만으로 보이는 것은 스펙트럼의 조화던가?

복잡한 것은 색(色)만이 아니었다.

 

 

 

이 양반, 혹시 가보지도 않고 쓴 건 아닐까?

 

 

 

 

 

 

 

 

 

 

 

 

 

 

   

 

 

 

 

절 이름이 <금강사>라던가? 신도들 많게 생겼습디다.

이 골짜기엔 암자 서너개 있을만 하던데 의외로 이거 하나 밖에 었습디다. 

저 소나무가 금강송이라던데 반듯반듯한게 보기도 좋고 아주 쓸모있게 생겼습디다.

요 주위에 유난히 많았는데 월정사에서 일부러 심은 모양입디다.

큰 절 둬채는 넉넉히 짓겠습디다. 

 

 

 저물 무렵에 마하연(摩詞衍)의 여사(旅舍)를 찾았다.

산중에 사람이 귀해서였던가.

어서 오십사는 상냥한 안주인의 환대도 은근하거니와,

문고리 잡고 말없이 맞아주는 여관집 아가씨의 정성은 무르익은 머루알같이 고왔다. 

 

 

 물 좀 먹을랬더니 밑에 가서 먹으라데.

 

 

 

 

 

 

 

다 온겨. 아-, 진짜 힘들데.

뭔 놈의 하산길이 그렇게 길대냐? 

밥 먹을때가 1시쯤이었는데 여기 오니 5시가 다 됐습디다.  

 

 

 

 

  

 

 

 

 

이번 가을엔 원래 설악산을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아무래도 거리 등등이 엄두가 안나서 여길 대신 온 거였수.

다소 늦게 오긴 했지만 그런대로 이 정도면 단풍산행 원 풀었수.  

이제 어디 한군데만 더 다녀오면 금년 가을도 끝이겠구랴.

 

 

 

고작 오십 생애(五十生涯)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角逐)하다가

한 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愁愁)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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