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산 개암사

2019. 6. 12. 19:45산행기 & 국내여행






개암사(開巖寺),

오래 전에 와본 듯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




 







능가산(楞伽山)의 '능'字는 불교용어라서 한자검색이 안되는군요.

가(伽)字는 절 가입니다.




능업경(楞嚴經)


원명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이다. 10권으로 되어 있는데, 1권은 칠처징심을 다루며, 2권은 깨달음의 본성과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 3권은 마음의 영원불멸성, 4권은 업을 짓게 되는 근원과 수행의 마음가짐을 설한다. 5권은 수행 시 풀어야 할 업의 근원을 밝히고, 6권은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이 관음수행문임을 설한다. 7권은 능엄다라니를 설명하고, 8권은 수행하는 단계로 57위와 7가지 중생의 생존양상을 설한다. 9권은 수행 중인 중생에게 나타나는 50가지 마를 밝히고, 10권은 오음의 근본을 설한다.

중국에서 유래되었으며 한국 불교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는 1235년 이승광 등이 간행한 목판이 해인사에 있다. 송광사·용장사에는 경판이 소장되어 있다.




 




 

 


어이구???? 갑자기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졌나????

주지스님이 라스베가스엘 댕겨 오셨나?








절 안에 주차장이 있어서 진입은 가능한데, 그렇게하면 절 구경을 제대로 못합니다.

일주문 밖에다 주차하고서 걸어들어가야 좋습니다. 그래봐야 100~200미터 정도?

우리도 들어갔다가 도로 나와서 주차하고 다시 들어갔습니다.^^:: 







황칠이 옷칠보다 비싸다매요?





 


전나무 수령이 오래되진 않았으나, 그런대로 숲길이......


 


 

 


그보다도 좌우로 넓게 심어놓은 차밭이 좋습디다.




 

 





 

0.9키로면 딱 적당한 거리이긴한데, 오늘은 다녀야 할 곳이 많아서 ─





 



 




 




대웅전 빼고는 전부다 새로 짓고, 새로 만드는 중입니다.

주지스님이 아주 크게 시주를 거시기해 왔네벼.




 




 





 



저 울금바위 아래로 산이 동그랗게 둘러싸인 것이 (見山 하나도 없이,)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입디다. 아, 혹시, 땅속에서 금덩이가 나왔나?

문경 회양산의 봉암사도 이런 식의 바위 뒷산이었던 것 같은데..... .

미황사는 좀 다르고.....




 




 



모든 건물을 새로 짓고 있는데도, 눈에 거슬림이 없습디다.

오야지가 절집 일머리를 잘 아네벼요.

 






이처럼 지붕선과 산마루를 같은 선상에 보이게 하려면

관람자의 위치를 고려한 마당 설계를 잘해야 해요.




 




 




 



대웅전 밖은 단청을 했는데, 내부는 고색창연함 그대로 두었더군요.




 






 







 




이건 도사견이나 하이에나 같구만. 혼자 새벽예불 나오려면 무섭겠다.

아쉽지만 내부도 단청을 해야겠습니다. 훼손이 심합니다.




 

 





석류



 



보리똥




.


.

 




 




 




  ‘봉은마을과 울금바위’라고 해야 운률이 맞지, 이 멍챙아!!!  '우금암'이라 하면 좀 들어뵈냐?

암튼, 이곳은 풍수지리적로 유명한 답사터랍니다.


 









유래 및 연혁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4년(무왕 35) 백제의 왕사(王師) 묘련(妙蓮)이 창건한 백제의 고찰이다.

사찰의 이름을 ‘개암(開巖)’이라 부르게 된 배경은 뒷산 정상의 웅장한 ‘우금바위(또는 우금암)’의 전설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즉 마한의 효왕(孝王) 28년에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禹)와 진(陳)의 두 장사를 보내어 감독하게 하고 좌우 계곡에 왕궁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妙巖), 서쪽을 개암(開巖)이라 부르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 즉

우금바위에 천연석굴이 있어 그 바위를 개암이라 불렀는데,

바위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크게 둘로 이루어진 듯하여 ‘바위가 열린 상태’라는 의미에서 ‘開巖’이라 칭했다는 구전도 있다.


 백제 멸망 직후 묘련의 제자 도침(道琛)이 무왕의 조카 복신(福信)과 더불어 이 지역에서 백제부흥운동을 펼쳤고,

개암사는 원효방(元曉房)의 본사로서 백제부흥운동 당시 구심축을 이룬 장소이다.

즉 634년 묘련이 처음 설립한 후 676년에 원효ㆍ의상 스님이 우금암(禹金巖) 아래에 있는 우금굴에 머물면서 암자를 중수했는데,

이 우금굴은 이후 원효방이라 불리면서 조선시대 후기까지 개암사의 산내암자로 자리잡고 있었다.

효스님의 자취를 지닌 원효방은 이후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에도 등장하였으며,

7세기 중엽에 존재했다면 당시부터 개암사의 부속암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개암사의 부속암자인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에서 참선 득도한 기록이 있다.

황금전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에는 청련각, 남쪽에는 청허루, 북쪽에는 팔상전, 서쪽에는 응진당과 명부전을 지었으며,

총 30여 동의 건물을 세워 ≪능가경 楞伽經≫을 강의하면서 많은 사람을 교화하였다.

이 때문에 산의 이름을 ‘능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1414년(태종 14) 폐허가 된 것을 선탄(禪坦)이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황금전을 제외한 전 당우가 소실되었다.

.

 

당우 및 문화재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인등전· 응향각· 응진전· 일주문과 월성대 및 요사가 있다.

이 가운데 대웅보전은 보물 제292호로 지정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대표적인 조선 중기 건물이다.

예전의 황금전이 바로 지금의 대웅보전이다.

이 절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울금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고, 이 바위에는 모두 3개의 동굴이 있다.

그 가운데 원효방이라는 굴 밑에는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 물이 괸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물이 없었으나 원효가 이곳에 수도하기 위해 오면서부터 샘이 솟아났다고 한다.


원효성사와 의상 대사 진표율사 원감국사등의 고승대덕이 인연을 맺었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찰로  절이 자리 잡고 있는 변산은

우리나라의 8승지로 손꼽일 정도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개암사는 특히 절의 배경이 되는 우금암이 백제부흥 운동의 근원지로 삼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는 전설을 지니고 있으며

백제무왕 16년(676)년에 원효와 의상대사가 이곳에 와 머물면서

다시 고려시대에 송광사 출신의 원감국사가 절을 중창하여 황금전 청련각 백옥교 청혀루 금지등 화려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고려 말 조선 초를 거치면서 서해안에 왜구들로 인하여 다시 폐허가 되었던 개암사는

조선태종14년 1414년에 주지 선탄스님에 인하여 다시 중수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개암사는 다시 폐허가 되었으며

인조 15년 1636년 계호대사가 대법당을 중건한 후 약 370년에 걸쳐 절 안의 많은 건물과 주변암자를 이어서 대 가람이었다.

그러나 이때 중창된 전각 중 현존하는 것은 대웅보전뿐이다. 

근래에 와서는 1990년부터 현재 회주이신 혜오스님의 원력으로 전각의 중건으로 현재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현 주지 재안스님은 개암사와 불교문화의 부흥을 소원하시며 기도 정진 중이시다.





그러니께, 혜오스님이 라스베가스엘 가신 거구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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