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유홍준 / 출판 창비 2018.8.30.
한국의 산사,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다
지난 6월 말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은 우리나라의 13번째 세계유산이 되었다.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의 7개 사찰이 그 주인공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7~9세기 창건 이후 현재까지의 지속성, 한국 불교의 깊은 역사성’이 세계유산 등재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비단 그 7곳의 사찰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 산이라면 어디에나 산사가 있다고 봐야 하고, 산의 수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산사가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만큼 우리에겐 친숙한 산사와 사찰 문화를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더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 산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산사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번에 출간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이하 『답사기: 산사 순례』)는 7개 사찰 중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4곳과, 목록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그에 못지않은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닌 남한의 사찰 15여 곳, 그리고 북한 땅 사찰 2곳을 소개한다.
가람배치부터 자리앉음새까지, 산사의 가치와 미학
『답사기: 산사 순례』에서는 산사의 역사뿐 아니라 각 산사의 가람배치, 그리고 산을 끼고 들어앉은 산사의 자리앉음새, 산사와 ...자연의 조화가 만들어낸 ‘산사의 미학’을 전국의 대표적인 산사들을 들어 예찬하고 있다. 소백산맥의 능선과 조화를 이룬 영주 부석사는 비탈진 진입로와 사과밭부터 산사의 그윽함을 더하며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그 자체로 한 폭의 풍경화이다. 양반 고을 안동의 봉정사는 본 절의 정연한 가람배치도 일품이지만 한옥과 마당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영산암까지 꼭 들러야 하는 절이다. 순천 선암사는 진입로부터 산사의 디테일이 빠짐없이 살아 있는 태고종의 대표적인 사찰이며, 땅끝마을 해남의 대흥사는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가 쓴 명품 현판들이 즐비하여 그것만으로도 즐길 만한 절집이다.
세계유산에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답사기: 산사 순례』에는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보고, 가보았을 전국 각지의 명찰들이 소개되어 있다. 전라도를 대표하는 고창 선운사와 부안 내소사는 서해의 낙조와 함께 즐길 만한 절이며, 예산 수덕사와 부여 무량사는 하루 답사 코스로도 가능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저마다의 사연과 역사가 깊은 절이다. 문경의 봉암사는 일반의 출입이 통제된 청정도량으로 그 풍경을 담은 글조차 많지 않으니 『답사기: 산사 순례』에 실린 내력과 그 안의 문화유산에 대한 소개는 귀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절집의 풍경 못지않게 은은한 새벽 예불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비구니 도량 청도 운문사, 비화가야의 유물과 억새밭으로 유명한 화왕산에 자리잡은 창녕 관룡사, 멀리서도 눈에 띄는 수마노탑으로 유명한 정선 정암사 등은 자연과 하나 되고, 산 중의 그윽함을 풍기는 빼어난 산사들이다.
여기에 『답사기: 산사 순례』는 북한의 사찰 2곳을 함께 소개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북한편’에 수록된 묘향산의 보현사와 금강산의 표훈사이다. 남한과는 다른 불교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북한이기에 산사의 풍경도 남한과는 다소 다르지만,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절집으로 뽑아서 함께 실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당장 금강산 관광이 재개된다면 머지않아 답사처로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우리만의 전통, 산사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중국의 절들은 대개 석굴사원이며, 일본의 교토는 정원이 아름다운 14개의 절이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어딜 가나 산과 계곡이 있는 그 독특한 자연환경 덕에 ‘산사’라는 유산을 낳을 수 있었다. 같은 불교 전통 아래의 사찰들이지만 나라마다 다른 모양새인 셈이다. 그 독특함을 바탕으로 내력, 구조, 가치를 모아서 풀어놓은 『답사기: 산사 순례』는 일찍이 우리 산사에 주목하고 그를 예찬하고 알리는 데에 앞장선 저자 유홍준의 산사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책이다. 어쩌면 ‘답사기’의 가장 절정인 대목들이라 할 수 있다.
종교가 무엇이든, 종교가 있든 없든, 그저 그 산사의 아름다움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가을의 답삿길에 충실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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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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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 산사의 미학
1) 우리나라는 산사의 나라다
우리나라에는 수없이 많은 절이 있고, 절이라고 하면 무의식 중에 산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산에 가면 응당 절이 있다고 여기며 살아오고 있다. '산사'라는 말이 보통명사가 되어도 낯설지도 않다. 그러나 유네스코가 인정하듯이 '산사'는 세계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독특한 자연환경이 낳은 문화유산이다.
같은 불교이지만, 인도와 중국엔사암지대가 많아 석굴사원이 발달하여 인도의 아잔타 석굴 · 엘로라 석굴과 중국의 운강석굴 · 용문석굴 · 돈황 막고굴 · 천수 맥적산 석굴 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일본의 교토는 정원이 발달하여 용안사 · 천룡사 등 독특한 정원을 갖고 있는 14개 사찰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2) 산사의 유래
3) 산사의 자리 앉음새 : 문경 봉암사의 예
4) 산사의 건물 배치 : 군위 인각사 무무당의 예
5) 산사의 구조 : 일주문과 진입로
6) 산사의 구조 : 가람배치
7) 산사의 서정
8) 세계유산 등재 후의 과제
영주 부석사
─ 사무치는 마음으로 가고 또 가고
1) 이미지와 오브제
2) 남한 땅의 5대 명찰
3) 질서의 미덕과 정서적 해방의 기쁨
4) 비탈길의 미학과 사과나무의 조형성
5) 9품 만다라의 가람배치
6) 안양루에 올라
7) 부석과 선묘각
8) 선묘 아씨를 찾아서
9) 조사당과 답사의 여운
10) 부석사의 수수께끼
11) 최순우의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 양반의 고장에서 고찰의 품격을 말한다
1) 팔도 성주의 본향, 제비원
2) 안동 언어생활의 전통성
3) 모시밭에서 봉정사 가는 길
4) 最古의 건물, 봉정사 극락전
5) 봉정사 극락전의 아름다움
6) 봉정사의 정연한 가람배치
7) 마당을 알아야 한옥이 보인다
순천 선암사
─ 산사의 미학, 혹은 깊은 산중의 깊은 절
1) 산사의 모범답안
2) 가을 들판의 논
3) 깊은 산
4) 선암사 진입로
5) 승선교와 강선루
6) 삼인당이라는 연못
7) 묵은 동네 같은 절
8) 선암사의 사계절
9) 선암사 승탑밭
10) 태고종 사찰 선암사
11) 대한불교조계종과 한국불교태고종
12) 종조의 문제
13) 선암사 석주
14) 석등 없는 사찰
15) 만세루의 '六朝古寺' 현판
16) 선암사 경내 순례
17) 칠전선원 돌아 해천당까지
18) 선암사 뒤깐
19) 선암사 무우전매
해남 대흥사와 미황사
─ 아늑함과 호방함이 한데 어우러질 때
고창 선운사
─ 동백꽃과 백파스님, 그리고 낙조대의 일몰
부안 내소사와 개암사
─ 소중한 아름다움들 끝끝내 지켜온 절집들
예산 수덕사와 서산 개심사
─ 그리움에 지친 듯한 대웅전과 아담한 거울 못
부여 무량사와 보령 성주사터
─ 바람도 돌도 나무도 산수문전 같단다
문경 봉암사
─ 별들은 하늘나라로 되돌아가고
청도 운문사
─ 청아한 새벽 예불이 은은히 울려 퍼질 때
창녕 관룡사
─ 비화가야 옛 고을의 유서 깊은 산사
구례 연곡사
─ 섬진강과 보성강의 서정이 깃든 천 년 고찰
영암 도갑사와 강진 무위사, 백련사
─ 남도의 봄이 어서 오라 부르는 고즈넉한 절집들
정선 정암사
─ 세 겹 하늘 밑의 이끼 낀 선종 고찰
묘향산 보현사
─ 그리하여 산은 묘향, 절은 보현이라 했다
금강산 표훈사
─ 금강의 맥박은 지금도 울리는데
1
그러고 보니 봉정사에 와서 우리는 서로 다른 성격의 세 개의 마당을 보았다. 대웅전 앞의 엄숙한 마당, 극락전 앞의 정겨운 마당, 영산암의 감정 표현이 강하게 나타난 복잡한 마당. 마당을 눈여겨볼 줄 알 때 비로소 한옥을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건축의 에센스는 마당에 있다. 이 점에 대해서 건축가 승효상이 「내 마음 속의 문화유산 셋」이라는 글에서 아주 핵심을 잡아 논한 부분이 있다.
우리의 전통음악에서는 음과 음 사이, 전통회화에서는 여백을 더욱 소중히 여겼던 것처럼 건축에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가 더욱 중요한 공간이었다. 즉 단일 건물보다는 집합으로서의 건축적 조화가 우선이었던 까닭에 그 집합의 중심에 놓이는 비워진 공간인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며 개념이 된다.
이 마당은, 서양인들이 집과 대립적 요소로 사용하는 정원과도 다르며 관상의 대상으로 이용되는 일본의 정원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냥 남겨진 이 비움의 공간은 집의 생명을 길게 하여 가족공동체를 확인시키고 사회공동체를 공고히 하여 우리의 주체를 이루게 하는 우리의 고유한 건축 언어이며 귀중한 정신적 문화유산인 것이다.
2
결국 조계종은 1994년 9월 29일자로 종헌을 개정하여 '본 종은 신라 도의국사가 창수한 가지산문에서 기원하여 고려 보조국사의 중천(重闡열천)을 거쳐 태고 보우국사의 제종(諸宗)포섭으로 조계종이라 공칭하여 이후 그 종맥이 綿綿不絶한 것이다. 이것이 조계종의 宗祖 是非에 관한 始末書다.
3
이럭저럭 '굴묵이' 넘어온 피곤을 잊어버리고, 무엇인지 코가 에어나가는 듯한 향기를 맡으면서 청량한 꿈을 찾아들었다. 이튿날. 일뜨며 창을 밀치니 맑고도 진한 향기가 와짝을 들이밀어 코로부터 온몸, 온 방안을 둘러싸버린다. 새빨간 꽃을 퍼다 부은 春梅가 바로 地臺 밑에 있는 것을 몰랐었다. (......) 이러한 미인이 窓前에 대령한 줄을 모르고 아무 맛 없이 곱송그려 새우잠을 자고 났거니 하매, 아침나절에 입맛이 쩍쩍 다시어진다.
* 굴묵이 : 송광사에서 송광굴목재 너머 선암사로 넘어오는 산길
청수하여 高士에 비할 것이 梅花의 好品일지는 모르되, 화사하면서도 농염한 것이 탐스러운 부잣집 새색시가 곱게 차려입은 화려한 복장에 고급향수를 기구껏 차린 듯한 매화도 결코 못쓸 것이 아님을 알았다. 매화다운 매화도 좋지마는, 桃花 같은 매화도 또한 일종의 정취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桃花일 성불러도 매화의 기품이 있을 것이 다 있음에랴. 매화인 체 아니하는 매화, 매화티를 벗어난 매화가 어느 의미로 말하면 진짜 매화라 할 매화일지도 모른다.
─ 육당 최남선,《심춘순례》
아무도 말은 안해도 내남이 매화에서 그런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특히 무우전의 홍매를 보면 육당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4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늘상 시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대상이기에 별다른 설명 없이도 간취할 수 있다. 그러나 '藝術美'라는 인공적 아름다움과 '文化美'라는 정신적 가치는 그 나름의 훈련과 지식 없이 쉽게 잡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아는 만큼 느낀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나와 함께 대흥사에 가서 내가 천불전 분합문짝의 창살무늬를 잘 보라고 했으면 아마도 수많은 사진을 찍었을 것이고, 대웅보전으로 오르는 돌계단 양쪽 머릿돌의 야무지게 생긴 도깨비像을 눈여겨보라고 했으면 그냥 예사롭게 지나쳐버렸을 리가 없다.
대흥사 여러 堂宇들에 걸려있는 현판 글씨는 대단한 명푼으로 조선후기 서예의 집약이기도 하다.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며, 표충사(表忠祠)는 정조대왕의 친필이고, 가허루는 창암 이삼만,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인 것이다. 그러나 서예에 대한 예비지식과 안목 없이는 느껴질 그 무엇이 없을것 이다.
더욱이 유형의 예술미가 아닌 무형의 문화미에 이르면 "아는 만큼 느낀다"는 말이 더더욱 실감난다. '두륜산 대흥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천왕문을 지나면 길 오른쪽으로 고승의 사리탑과 비석이 즐비하게 늘어선 승탑밭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서산대사 이래 13대종사와 13대강사의 납골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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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붓을 놓은 서산대사는 결가부좌한 채로 입멸하였다. 향년 85세, 법랍67년이었다. 그리하여 사명당은 서산대사의 시신을 다비하여 사리는 묘향산 보현사에 안치하고, 영골(靈骨)은 수습하여 금강산 유점사 북쪽 바위에 봉안하고, 스님의 금란가사와 발우는 대흥사에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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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교의 글씨체는 획이 가늘고 빳빳하여 화강암의 骨氣를 느끼게 하는데, 추사의 글씨는 획이 살지고 윤기가 나는 상반된 미감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서 원교체는 손칼국수의 국숫발 같고, 추사체는 탕수육이나 난자완스를 연상케 하는 그런 맛과 멋이 있다. 그러나 귀양살이 이후의 글씨인「茗禪」차싹 명에 와서는 불필요한 기름기를 제거하고 자신의 氣와 韻을 세우게 되니 그런 경지란 원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높은 차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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