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이 신사임당네 집안 뭐시기인 줄로 알았더니, 웬걸????
우리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자손네 집입디다.
바로 앞에가 경포호수입니다.
300년 전에 풍광이 어떠했을꼬?
300여년 동안 원형이 보존된 사대부가의 전통가옥은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번에 의해 처음 지어졌으며 10대에 걸쳐 증축됐다. 선교장은 123칸 규모의 살림집을 보존하고 있는데 민가의 법도인 99칸을 넘어서 국내 최대 규모 한옥이 됐다. 집안 곳곳 대문만 12개다. 꿈속 족제비가 점지해준 명당에 집을 지은 전설을 쫓아 아직도 이 일대의 족제비들은 영물로 대접받는다.
선교장은 가장 오래된 안채, 사랑채인 열화당, 서재로 활용하던 서별당의 건축양식이 각각 다르다. 마루가 높고 마당이 널찍한 열화당은 개화기때 서양문물의 영향을 받은 차양을 고스란히 남겨뒀다. 열화당에는 외부 손님이 끊이지 않았으며 동으로 된 차양은 구한말 이곳에 머물렀던 러시아 공사가 1815년 선물로 지어준 것이다. 열화당에는 ‘기쁘게 이야기하는 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선교장 사랑채로 들어서는 대문은 꽤 높은 솟을대문이다. 가마에서 내리지 않고 대문을 드나들수 있도록 만든 구조다. 솟을대문 위에는 ‘선교유거(仙橋幽居)’라고 적혀있는데 ‘신선이 머무는 그윽한 곳’이라는 의미로 조선말 서예가인 소남 이희수의 작품이다. 솟을대문 옆의 평대문은 여인과 아이들이 드나들도록 지었다.
선교장의 사랑채와 안채는 출입문이 분리돼 있다. 열화당, 활래정 등 손님맞이에는 넉넉하면서도 안채는 꼭꼭 숨겨 두었다. 안이 보이지 않도록 안채의 내벽, 외벽을 겹겹이 싼 구조는 문화재로 지정된 주된 이유였다.
선교장의 연못 옆 정자인 활래정은 경포호의 정자이자 선교장의 수려한 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추사 김정희, 흥선대원군 등 시인과 묵객들은 이곳에서 경포호를 바라보며 차 한잔 마시는 여유를 마다하지 않았다. 예전 선비들은 배로 만든 다리인 ‘선교’를 넘어 경포호에서 활래정을 드나들었다. 활래정의 기둥은 절반은 연못에, 절반은 마당에 걸쳐 있는 모양새다. 흡사 서울 창덕궁 후원의 부용정을 닮았다. 선교장에서는 요즘도 차 한잔 기울이며 하룻밤 묵어가는 풍류가 가능하다. 언덕위 노송숲 산책 역시 수백년 고택 나들이의 호사스러움을 더한다.
중사랑
열화당
행랑채
123칸 저택이라고 했나?
이 정도 살림을 유지한 걸 보면, 고창 김성수 집안 못지 않았겠는 걸?
⊂∠
점심을 교동짬뽕에서 줄 섰다가 먹었는데,, 헐!
아니, 이런 짬뽕을 먹으려고 줄을 섰단 말인가?
헐! 헐! 헐!
이런 변이 있나? 도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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