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에버렛 밀레이 Sir John Everett Millais (영국, 1829 ~1896), <버넘 협곡>
John Everett Millais
English Pre-Raphaelite painter & illustrator
(1829. 6. 8 ~1896. 8. 13)
영국의 화가, 삽화가, 라파엘 전파(Pre-Raphalite Brotherhood)의 창시자 밀레이가 예술가로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것은 1850년대였다. "노아의 방주로 돌아온 비둘기 (The Return of the Dove to the Ark)"는 영국의 수필가이자 평론가인 존 러스킨과 프랑스의 작가 테오필 고티에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다. 1863년에 밀레이는 왕립 아카데미의 정식회원이 되었다. 이무렵에는 그림의 양식이 폭이 넓어졌고 내용도 교훈적인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의도적으로 대중적인 쪽으로 바뀌었다.
Mrs. Bischoffsbeim, 1873
Sweetest eyes were ever seen
For the Squire (1882)
The Mistletoe getherer
Lucy Stern, 1882
The Bridemaid
Hurdy Gurdy Boy 1843
Clarissa
Mary Chamberlain
Message from the Sea
John Everett Millais - Pomona
Sweet Emma Morland
The Knight Errant
Miss Eveleen Tennant
The Black Brunswicker
Mariana in the Moated Grange
The Matyr of the Solway
The Return of the Dove to the Ark
Millais J E Ophelia
Meditation 1879
Portia (Kate Dolan)
Miss Anne Ryne
The Older release
The North-West Passage
Romance / Shostakovich
Rostropovich(Cello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등장한 라파엘전파(Pre-Raphaelites)는 라파엘전파 형제회라는 예술가 그룹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파를 일컫는다. 1848년 런던에서 결성된 라파엘전파 형제회는 당시 왕립 미술원에서 최고 존경의 대상이었던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이상화된 미술을 비판했다. 대신에 그 이전(pre) 시대의 미술, 즉 자연 관찰과 세부 묘사에 충실한 중세 고딕 및 초기 르네상스 미술로 돌아갈 것을 주창하며 그룹의 명칭에 그 뜻을 담았다. 한 마디로 라파엘전파 형제회는 영국의 아카데미 미술에 반기를 든 진보적인 예술가 단체였다. 이니셜 PRB, 라파엘전파의 시작
라파엘전파 형제회는 당시 시인으로도 활동한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28~1882)를 중심으로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 윌리엄 홀먼 헌트(1827~1910)와 같은 20대 중반의 젊은 왕립 미술원 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다. 로세티는 왕립 미술원 전시에서 헌트가 그린 [성 아그네스제 전야(The Eve of St. Agnes)(1847-57)]를 계기로 만나 친분을 유지했다. 헌트의 작품은 존 키츠(John Keats)의 동명의 시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었는데, 로세티는 낭만주의 시와 미술의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관심을 갖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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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세 명은 첫 모임을 갖고 난 얼마 후, 조각가였던 토머스 울너와 화가 제임스 콜린슨, 프레더릭 조지 스티븐스, 그리고 단테 가브리엘의 동생이자 비평가였던 윌리엄 마이클 로세티 등 4명을 추가로 영입하여 1848년 9월, 모두 7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라파엘전파 형제회를 조직했다. 형제회의 존재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이듬해인 1849년 런던의 하이드파크 코너에서 열린 ‘자유 전람회(The Free Exhibition)’에서였다. 공식 전람회에 첫 선을 보인 라파엘전파의 작품 [성처녀 마리아의 어린시절]에서 로세티는 의도적으로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의 회화적 양식을 구현하고 있었다. 프레스코를 연상시키는 희뿌연 색채와 어색한 구성, 그리고 상징을 내포한 전통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치밀하게 묘사된 사물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과거 양식으로의 복귀와 19세기 근대적 사실주의의 역설적으로 결합된 작품 왼쪽 하단에는 로세티의 이름과 함께 “PRB”라는 이니셜이 적혀 있었다. 한달 뒤 왕립 미술원에서 전시된 밀레이의 [이사벨라]와 헌트의 [리엔치] 역시 “PRB”라고 서명되어 있었는데, 당시 관람자와 비평가들은 이 이니셜의 의미를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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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성처녀 마리아의 어린시절] 1848~1849년 / 캔버스에 유채, 83.2x65.4cm, 테이트 갤러리, 런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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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작품들을 통해 라파엘전파가 전달하고자 했던 바는 분명했다. 그것은 수세기 동안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를 숭배하고 모방해 온 영국의 아카데미 미술 양식, 즉 왕립 미술원의 초대 원장 조슈아 레이놀즈의 기법과 양식을 거부한다는 뜻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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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렛 밀레이 [이사벨라] 1848~9년 캔버스에 유채, 1030 x 1430cm, 워커 아트 갤러리, 리버풀
존 키츠가 개작한 14세기 이탈리아의 문학가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의 [데카메론(The Decameron)]에 나오는 이사벨라와 로렌초의 이야기를 원근법에서 어긋난 얕은 공간 안에 묘사했다. 이사벨라가 하인이었던 로렌초와 사랑에 빠지자 여동생의 정략결혼 계획을 추진하던 오빠들이 화를 내고 있는 장면이다. 왼쪽에 와인 잔을 들고 있는 이는 프레더릭 조지 스티븐스, 이사벨라에게 오렌지를 건네고 있는 로렌초는 윌리엄 마이클 로세티를 모델로 했다.
사실주의와 복고주의의 역설적 결합
라파엘전파 화가들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미술 형식은 1849년 헌트와 로세티가 떠난 프랑스와 벨기에 순례 여행 이후 더욱 분명해졌다. 그들은 루브르 박물관과 브뤼헤에서 접한 15세기 작가들의 작품에 크게 감명받았다. 헌트가 ‘우리가 보기에는 가장 우아하고 달콤한 작품’이라고 표현한 프라 안젤리코의 [성처녀 마리아의 대관식]은 명확한 윤곽선과 밝은 색채가 강한 정신성과 잘 결합된 작품으로 여겨졌다. 또한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서 구입한 얀 반 아이크의 [조반니 아르놀피니의 결혼]은 자연의 세부를 극도로 충실하게 묘사함으로써, 라파엘로 이전 시대의 탁월한 사실주의를 접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처럼 로세티를 비롯한 라파엘전파가 추구한 것은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과 플랑드르 미술이 보여준 밝고 강렬한 색채와 풍부한 세부 묘사, 그리고 이로 인한 솔직하고 평면적인 화면이었다. 라파엘전파 특유의 사실주의와 복고주의적인 특성은 이러한 작품들을 참조함으로써 이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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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 안젤리코 [성처녀 마리아의 대관식] 1434~1435년 패널에 템페라, 중앙패널, 213 x 211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 얀 반 아이크 [조반니 아르놀피니의 결혼식] 1434년 오크판에 유채, 81.8x59.7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 |
1850년에 공개된 밀레이의 작품 [부모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는 사실주의와 복고주의의 역설적인 결합을 보여주며 세간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해 혹독하게 비난했는데, 그 가운데 찰스 디킨스의 악평은 유명한 것이었다. 디킨스는 밀레이가 성가족을 술주정뱅이와 빈민들로 묘사했다고 퍼부었다. 실제로 밀레이는 마리아를 자신의 친척을 모델로 해서 그림으로써 상징성과 사실성을 동시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디킨스를 비롯한 비평가들에게 라파엘전파 형제회의 중세주의는 과거 퇴보적인 것으로 공격받았고, 세부 묘사에 대한 극적인 현신은 보기에 추하고 조화롭지 않다고 비난 받았다. 논란 이후, 제임스 콜린슨은 형제회를 떠났다. 화가들은 형제회의 미학적 원칙을 지속하며 당분간 작업했지만 더 이상 “PRB”라는 서명은 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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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렛 밀레이 [부모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1849~1850년
캔버스에 유채, 86.7x139.7cm, 테이트 갤러리, 런던
라파엘전파 형제회의 작품이 모든 이들에게 외면당한 것은 아니었다. 영향력 있는 비평가 존 러스킨은 라파엘전파의 사실주의 미학을 지지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관습적인 방식에 저항하고 자연을 관찰하여 묘사하는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라파엘전파는 이미 1843년에 출간된 러스킨의 저서 [근대의 화가들]1권을 통해 ‘그림의 첫 번째 중요한 원칙은 눈과 마음으로 관찰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많은 영향을 받은 터였다. 과학적인 정밀함으로 자연의 형태를 기록함과 동시에 자연을 신의 경이로운 작품으로 바라보려는 러스킨의 의도는 라파엘전파의 미학과 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1851년 러스킨은 [타임스(The Times)]에 그들의 작품을 옹호하는 글을 쓴 이후부터 밀레이를 비롯한 라파엘전파 형제회 구성원들과 친분을 갖게 된다. 특히 밀레이와는 함께 여행 다니며 자연을 사생하기도 했는데, 이 때 밀레이는 셰익스피어의 [햄릿] 제 4막 오필리아의 죽음을 주제로 작품 [오필리아(Ophelia)]와 러스킨의 초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작품들에는 ‘자연에 대한 충실함’이라는 러스킨과 라파엘전파 공동의 이상이 담겨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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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1851~1852년
캔버스에 유채, 76.2x111.8cm, 테이트 갤러리, 런던
형제회의 와해, 그리고 새롭게 부활하는 라파엘전파의 이상
러스킨의 아내 에피가 밀레이와 스캔들을 일으키고 1854년 이혼 후 이듬해 밀레이와 결혼까지 하게 되자, 라파엘전파 형제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형제회의 와해는 콜린슨이 탈퇴하고 울너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간 즈음부터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애초 라파엘전파 형제회에서 원칙을 강요한 적은 없었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따라 헌트와 밀레이는 사실주의를 강조한 반면, 로세티와 그를 따르는 에드워드 번-존스와 윌리엄 모리스는 낭만적 복고주의와 중세주의를 부각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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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보라, 주의 종이여!] 1849~1850년 / 캔버스에 유채, 72.4x41.9cm, 테이트 갤러리, 런던 | 윌리엄 홀먼 헌트 [죽음의 그림자] 1870~1873년 캔버스에 유채, 92.7x73cm, 맨체스터 시립 미술관, 맨체스터 |
그러나 이후 헌트는 미술의 영적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을 여행하며 자신의 작품에 쓸 성서적 주제들을 찾아 종교와 과학의 화해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1860년 이후 밀레이는 기존의 명확하고 치밀한 스타일을 버리고 레이놀즈로부터 영향 받은 보다 광범위하고 느슨한 스타일로 색채와 분위기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후 밀레이는 1896년 왕립 미술원장으로 선출된다). 러스킨은 이러한 밀레이의 작품들을 맹렬히 비난했고, 윌리엄 모리스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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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렛 밀레이 [메리 챔벌레인] 1891년 캔버스에 유채, 132.1x99.1cm, 버밍엄 박물관 및 미술관, 버밍엄 | 존 에버렛 밀레이 [버넘 협곡] 1891년 캔버스에 유채, 145.2x101.1cm, 맨체스터 시립 미술관, 맨체스터 |
러스킨은 헌트와 로세티를 계속적으로 지지했는데, 사실상 로세티가 찬미해온 중세주의는 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강조하는 사실주의의 몇 가지 원칙들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파엘전파가 사실주의와 중세주의를 함께 지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개념 모두가 당시 산업화와 기계화로 인한 자연파괴와 물질주의에 반대하면서, 미술은 기본적으로 영적이고 창조적인 것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1856년 이후 로세티는 중세풍을 더욱 강조한 작품을 제작했고 이는 윌리엄 모리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로세티는 포드 브라운, 번-존스와 함께 모리스가 세운 ‘모리스, 마샬, 포크너 상사의 동업자로 일하기도 했다. 라파엘전파 형제회의 이상은 모리스의 회사를 통해 인테리어 디자이너들과 건축가들에게 이어졌고, 공예품들과 중세적 디자인에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모리스가 이끈 미술공예운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술공예운동이 이후 20세기 많은 영국 미술가들의 작품에서 부활했듯이, 라파엘전파에 대한 관심도 1970년대부터 제기되기 시작하여 그 열기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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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민수 / 미술칼럼니스트
-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인간, 사회 그리고 미술의 상호 관계와 이 세 가지가 조우하는 특정 순간을 탐구하고자 하며, 현재 문화센터와 대학부설교육원에서 대중들을 위한 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발행일 2010.08.28
이미지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테이트 갤러리, 맨체스터 시립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 루브르 박물관, 워커 아트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