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오르세이 미술관에 소장되 있는 ‘세상의 근원’ 은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의 작품으로 인간의 생명이 탄생하는 여성의 성기를 그린 그림이다. 지난 2014년 5월 29일 이 ‘세상의 근원’ 앞에서 한 미모의 여성이 작품 앞으로 다가와 갑자기 다리를 벌리고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는 일이 벌어졌다. 그녀는 데보라 드 로베르티스(Deborah de Robertis)로 룩셈부르크출신의 행위 예술가였다. 그녀는 쿠르베의 그림을 행위예술로 표현하여 관람객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현장에서 이 장면을 본 관람객들은 그녀의 행위예술에 박수를 보냈고 보안 담당자들은 그녀를 가리며 실갱이를 벌였다. 미술관 관계자는 “이러한 행동은 미술관의 규칙을 무시한 것이며 행위예술이건 아니건 다른 관람객을 놀라게 할 수 있다” 고 말했다. 하지만 로베르티스는 “몇몇 사람은 이 행위예술을 시선을 끌기 위한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에요.” “성기를 보여주는게 목적이 아닙니다. 사실주의 그림에서조차 보여줄 수 없었던 성기의 눈, 블랙홀같은 생명의 근원지를 보여주려 한 것입니다.”고 말했다.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조를 표현한 작품이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89)의 ‘토머스’다. 토머스는 남자 성기를 지칭한다. 벌거벗은 젊은 흑인 남자가 창틀을 붙잡고 있다. 그의 발기된 페니스는 벌어진 다리 중앙에 시계추처럼 매달려 있다. 쫙 벌린 양팔과 다리는 근육질을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자세는 도약하려는 것이고, 창틀은 사회를 나타낸다. 남자가 창틀을 붙잡은 것은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는 의미다. 조각처럼 다듬어진 근육질 육체는 젊은 남자임을 나타낸다. 남자가 커다랗게 발기된 페니스를 중심에 놓고 X자 형태로 팔과 다리를 벌린 모습은 사회가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시다. 어두운 배경과 창틀에 갇힌 모습을 통해 동성애가 처한 사회적 현실을 표현한다.
이 작품에서 잘 다듬어진 육체는 자의식을 의미하며, 얼굴을 드러내 보이지 않은 까닭은 동성애에 대한 고뇌와 죄의식 때문이다. 메이플소프의 작품은 대부분 이 작품처럼 흑인 남성의 완벽한 육체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남성의 아름다운 육체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를 위한 것임을 나타내려는 의도다. 메이플소프는 동성애를 강조하려고 흑인 누드모델을 하나의 사물처럼 표현해 개척자 반열에 올라섰다. 그가 흑인 모델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사회적 현상 때문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노동자 계층이 대부분인 흑인은 동성애와 거리가 먼 존재라 여겼다. 그 당시에는 동성애를 사회적 지위가 있는 엘리트들의 고급 취미로 간주했다. 메이플소프 역시 동성애자로 진짜 애인은 백인 큐레이터였으며, 흑인 누드모델과는 육체적 사랑만 나눴다.
조 퍼포먼스는 조가 세상을 평정한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의 전형적인 심리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전통적으로 남자 성기는 좁게는 노동력 확장, 넓게는 영토 확장을 의미했다. 남자의 페니스가 공식적으로 하는 일을 그린 작품이 생 오를랑(1945~)의 ‘전쟁의 기원’이다. 흰색 속옷을 걷어 올린 남자가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다. 다리 사이에 발기된 페니스가 산처럼 우뚝 솟아올라 있다. 흰색 속옷은 페니스를 드러낸 남성의 육체를 강조한다. 발기된 페니스가 액자 속에 있는 것은 남자의 갇힌 욕망을 나타낸다.
생 오를랑, <전쟁의 기원, 1989>
(왼쪽)‘전쟁의 기원’, 오를랑, 1989년, 캔버스에 유채, 작가 소장.
(오른쪽)‘세 소녀’, 폴케, 1979년, 종이에 혼합 재료, 런던 앤서니 도페 갤러리 소장.
이 작품은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을 패러디한 것으로, 쿠르베가 여성 음부를 인류의 기원으로 표현했다면 오를랑은 영토를 확장하려고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던 남자들의 욕망을 표현하고자 했다. 남자는 대부분 조가 남자의 자존심이자 최후의 보루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가 하는 일이라곤 달랑 한 가지다. 여자에게 만족을 주는 도구일 뿐이다. 그것도 잘나갈 때 이야기지만. 성적 능력이 떨어지는 순간 조는 비웃음거리가 된다. 성적 능력이 없는 남자를 비웃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 지그마어 폴케(1941~2010)의 ‘세 소녀’다. 부츠만 신은 세 명의 소녀가 남자 등을 짓밟으며 웃고 있고, 남자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새를 끌어안고 있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남자의 등을 짓밟고 서 있는 세 소녀의 도발적인 자세는 ‘코러스 라인’의 스트리퍼를 묘사한 것이다. 배경의 화려한 색상은 소녀들의 직업을 강조한다. 검은색 부츠는 성적 자극을 돕는 도구를 나타내며, 남자가 품에 안은 새는 남성을 상징한다. 새에 날개가 없는 것은 남자의 성적 무능함을 암시한다. 남자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 또한 성적 불능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자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남자를 짓밟으면서 웃는 세 명의 소녀는 전통적으로 악인을 물리친 기사를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는 소녀들을 스트리퍼로 묘사함으로써 전통적 상징을 포르노 이미지로 바꿨다. 폴케는 만화나 사진의 통속적 이미지를 차용해 고급 예술과 저급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시간은 하루 11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정도 시간을 가지고 여자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망상이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