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에른스트(1891-1976)

2017. 12. 18. 20:18미술/서양화

 

 

 

Max Ernst 막스 에른스트| ◈ 유화갤러리

민영 | 조회 34 |추천 0 | 2017.06.01. 11:35



초현실주의 자동기술법의 창시자 ─
막스 에른스트 (Max Ernst1891~1976)


미술에서 불합리성을 주창한 주요인물로서 초현실주의 운동의 자동기술법을 창시했다.

젊은시절에는 정신의학과 철학에 관심을 가졌었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본대학교를 그만두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군으로 복무한 뒤

허무주의적 미술운동인 다다이즘으로 전향하여 쾰른에서 다다 예술가 그룹을 결성했으며,

미술가이자 시인인 한스 아르프와 함께 잡지들을 편집했고 공중변소에서 다다 전람회를 열어 스캔들을 일으켰다.

다다 콜라주들과 포토몽타주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1922년 파리로 이주했으며, 거기에서 2년 뒤 초현실주의 그룹의 발기인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1934년 이후로 그의 활동은 점점 조각에 집중되었으며,

조각에서도 회화에서와 같은 즉흥적인 기법들을 사용했다.

1949년 이후에는 실험적인 작품보다는 전통적인 조각 재료를 이용하여 양감 표현법을 숙련하는 데 주로 힘썼다.

다다 콜라주들과 포토몽타주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면〈여기 아직도 모든 것이 표류하고 있다〉(1920, 뉴욕 현대미술관)라는 작품은

곤충이나 물고기의 사진들과 해부도들을 오려내어 교묘하게 배열함으로써

묘사된 이것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한 매우 비논리적인 구성작품이다.


1922년 파리로 이주했으며, 거기에서 2년 뒤 무의식에서 비롯되는 환상을 통해

작품을 창조한 미술가 · 문인들이 모인 초현실주의 그룹의 발기인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에른스트는 무의식에서 생겨나는 심상을 자극하기 위하여

1925년 프로타주 기법(나뭇결이나 직물 또는 잎사귀와 같은 것들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문지르는 기법)과

데칼코마니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러한 기법들에서 나온 우연한 무늬들과 질감들을 관찰하면서

자유로운 연상을 통해 여러 이미지들을 떠올린 뒤,

그것들을 〈Histoire naturelle〉(1926)와 같은 소묘 연작이나

〈대삼림 The Great Forest〉(1927, 스위스 바젤 미술관)과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The Temptation of St.Anthony〉(1945, 독일 뒤스부르크, 빌헬름-렘부르크 미술관) 같은

많은 회화 작품들에 이용했다.

이 그림들에 나오는 늪지대와도 같은 광대한 풍경들은

궁극적으로 자연신비주의적인 독일 낭만주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미국으로 가서

수집가이자 화랑 주인인 3번째 아내 페기 구겐하임과 화가인 아들 지미 에른스트와 함께 살았다.

뉴욕 주의 롱아일랜드에 살다가

1946년 이후로는 미국 화가인 4번째 아내 도로시 태닝과 함께 애리조나 주 세도나에 살았는데,

그동안에는 아프리카 조각의 영향을 받은

〈왕비와 놀고 있는 왕 The King Playing with the Queen〉(1944, 뉴욕 현대미술관)과 같은 조각들에 전념했다.

 1949년 프랑스로 되돌아간 뒤로는 실험적인 작품보다는 전통적인 조각 재료를 이용하여

양감 표현법을 숙련하는 데 주로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