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창비
서문
시간을 박제하다 / 사진가 구본창
건축적 혁명, 혁명적 건축 / 건축가 승효상
끊임없이 싸우는 배우 / 배우 문성근
예술과 정치를 사유하는 공공미술 / 미술가 임옥상
기인의 삶, 소설이 되다 / 소설가 이외수
전복과 반전의 대중음악 /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글자로 세상을 멋짓다 / 시각디자이너 안상수
비판적 예술가와 타자들 / 미디어아티스트 박찬경
○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이론은 현실에서 일이 벌어진 황혼녘에야 비로소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를 펴기 마련이다. 미학의 이론들은 제아무리 동시대적이라 하더라도 예술사에서 이미 벌어진 사건들을 뒤늦게 철학의 레토르트로 증류해 얻어낸 것이다.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과거에 속하는 죽은 지식일 뿐이다. 예술을 살아있는 상태로 접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지금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는 것이리라.’
- 서문 중에서
○ 구본창 사진가
진중권 : 파울 클레가 그런 말을 했죠. '예술은 가시적인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는 것'이라고.
구본창 : (백자 연작 그림 (2004년)에 대해서) 일본의 어떤 평론가는 정적 가운데 느껴지는 약간의 떨림이 우주의 자궁 같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야, 아무 설명도 안했는데 일본사람이 그렇게 태초적인 걸 이해해내다니'. 굉장히 감동을 했어요.
진중권 : 일번사람들이 참 미학적이예요. 문화 자체도 미학적으로 구축했고, 반면에 우리는 문화를 너무 도덕적으로...... 다른 건 몰라도 그 디테일이나 섬세함은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 승효상 건축가
유네스코에서 내놓은 역사마을 보존에 관한 권고사항의 핵심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필지를 보존하라, 즉 작은 필지들을 통폐합하지 말라는 것이고요.
둘째는 모든 길을 보존하라.
셋째는 지형을 보존하라.
넷째는 삶의 형태를 보존하라는 것입니다.
모로코의 페스는 집 10채 정도가 한 단위에예요. 빵집 하나, 우물 하나 등 최소의 공동체 시설을 중심으로 열 채가 모인 겁니다. 그래서 페스는 한 부분이 없어지거나 덧대어져도 존속합니다.
○
진중권 : 한국의 고건축 중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승효상 : 역시 종묘입니다. 종묘는 기념비적이지요. 몇 년 전 프랭크 게리가 서울에 왔을 때 종묘를 혼자 가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청을 했답니다. 시건방진 청이지만 저는 충분히 이해가 가요. 종묘는 혼자 가면 대단한 에너지를 얻습니다. 특히 비가 부슬부슬 오는 오후 네시쯤 가면 아무도 없거든요.
종묘 자체가 엄청나게 장중한 건축이지만, 종묘가 아름다운 까닭은 그 건물 자체가 아니라 월대月臺라는 곳에 있습니다. 월대는 신위를 모신 곳에서부터 1.5미터 내려와 있고, 우리네 일상의 삶을 사는 곳에서 1미터 올라가 있는 매개적 공간,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홀로 서면 대단한 힘을 느끼게 됩니다.
독락당은 희재 이언적이 정쟁에서 패해서 낙향해 지은 집입니다. 그의 관심은 들보나 담장이 아니라 공간과 공간 사이의 관계에 있습니다. 희재가 그 공간을 홀로 됨을 즐기는 집, 독락당이라고 이름 지은 이유가 거기에 잇습니다. 우리의 옛 건축은 대부분 그런 관점에서 지어졌습니다. 미학이냐 윤리냐 이것이 서양건축과 동양건축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산서원은 정말 기가 막힌 건축입니다. 서원과 사찰이 다른 점은, 사찰이 바깥에서 보는 건축이라면 서원은 안에서 바깥을 보는 건축이라는 것입니다. 유교를 철저히 적용한 건축이 병산서원입니다. 자연과 건축의 관계, 즉 자연을 건축 속에 어떻게 끌어들이고 어떻게 절제하면서 만드느냐 하는 문제, 땅과 건축, 건축과 건축, 거주하는 사람과 건축, 이 모든 관계들을 살펴보면 엄청난 비밀들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에서 보면 병산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요. 산이 가운데 프레임 안에 들어와서 하나의 풍경처럼 보이는데, 이걸 우리가 借景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병산서원은 사시사철 아침 저녁으로 풍경이 변합니다. 몇 년 전에 뉴용 현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를 데리고 가서는 아무 설명을 안했어요. 이 사람이 미학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사람인데, 한동안 앉아서 움직이지를 않는 겁니다. 한참 후에야 "이제 당신의 건축을 이해하겠다"라고 하더군요.
○
예컨대 마당을 보면, 일본에도 중국에도 마당이 있는데 처리하는 방법이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중국의 마당은 계급질서 때문에 만든 마당입니다. 가운데로는 높은 사람만 다니고 하인은 가장자리로만 다닙니다. 구분이 명확하죠.
일본 마당은 교토 龍安寺를 예로 들면 아침에 스님이 한 번 쓸고 나면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모든 게 정지되어 있고 그저 바라만 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마당은 뭘해도 괜찮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고 그 일이 끝나면 다시 고요로 남아서 우리를 사유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당을 가진 건축이 세게에 없습니다.
중동 지방의 마당은 햇빛을 직접 받으면 뜨겁기 때문에 빛을 반사시켜서 실내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입니다.
○
진중권 : 선생님 책을 보면 기념 문화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치들이 훔볼트 대학도서관에서 마르크스나 토마스 만 등의 이른바 불온서적들을 끄잡아내어 광장에서 불태운 사건을 기억하는 기념물, 그리고 하르부르크에 세워진 홀로코스트 기념비인데요.
승효상 : 베를린 베벨 광장에 홀로코스트 기념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봤는데 빈 광장만 있고 아무 것도 없어요. 가만 보니 광장 한 가운데에 사방 1미터의 구멍이 뚫려 있고 유리로 덮여 있어요. 안에는 아무 책도 없는 백색의 빈 서가만 있고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글귀가 적혀 있죠. "책을 불태우는 자는 결국 사람을 불태우게 된다." 우람한 기념탑보다 감동적이지요.
그보다 더한 것이 하르부르크에 세워진 홀로코스트 기념탑입니다. 12미터짜리 기념탑인데 매년 2미터씩 땅으로 꺼집니다. 작가인 에스터 샬레브 게르츠와 요한 게르츠가 하르부르크 시민들에게 그 탑에 나치들에게 당했던 기억들을 써달라고 했고, 시민들은 지나갈 때마다 슬픔, 분노, 원망, 고통의 기억을 탑의 표면에 써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매년 마치 시민들의 고통이 땅으로 꺼지듯 탑이 땅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6년 후인 1993년에 완벽하게 지면 아래로 사라졌죠. 작가는 '불의에 대항하는 것은 탑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나라 전쟁기념관은 어마어마해서 전쟁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알 수가 없는데, 베를린의 <노이에 바헤> 전쟁기념관을 보세요. 빈 공간 가운데에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像 하나만 갖다놓았는데, 그 어떤 반전 구호보다 더 절절하게 호소하잖아요.
(진중권): 그곳은 원래 병사들의 초소로 사용되던 곳인데, 위의 천장에 구멍이 동그랗게 뚫려 있지요. 독일에 비가 자주 오잖습니까? 피에타상 주위가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게 더 처량하더라고요. 우리는 역사를 기념하는 방식에 대한 철학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케테 콜비츠(1867~1945) / 출처 : www.kanonenbahnmuseum.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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