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 여행』

2018. 4. 5. 16:37책 · 펌글 · 자료/문학

 

 

 

 

 

(함께 떠나는) 문학관 여행 2018. 1.1

 

 

 

 

38곳 문학관에서 44명의 작가를 만나다!


젊어서는 직장일 때문에, 결혼하면서는 아이를 낳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때문에 잠시 자신을 뒷전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주부이며 아줌마다. 이 책은 보통의 아줌마 작가가 꿈꾸어 오던 ‘전국 여행’과 ‘문학관 탐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일 년 동안 문학관을 탐방하며 기록한 문학관 여행기다. 작가는 오래 전부터 꿈꾸어 온 전국을 여행하고 싶은 바람을 쉬이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선 가까운 문학관들을 중심으로 여행해보리라 계획을 세우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문학관 주소와 지도를 들여다보며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곳부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부터 스마트폰 지도 앱을 이용하여 뚜벅이로 다니다 보니 대중교통으로는 불편한 곳이 많았고, 외진 곳은 엄두도 못 냈다. 어느 날, 남편에게 넌지시 운을 띄웠더니 흔쾌히 응해주었다. 남편과 함께 강원도 일대를 누비고 다녔고, 또 하루해가 긴 봄에는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를 돌았다. 우리나라 산야가 가장 아름다운 때, 근·현대작가들의 숨결을 따라 여행하며 무척 행복했다. 틈날 때마다 열차나 고속버스로도 문학관을 찾았다. 매달 고향 가는 길에 들렀던 곳들과 일 년 동안 모두 38곳의 문학관에서 44명의 작가를 만났다.

1897년생 한용운 시인에서부터 1947년생 최명희 작가에 이르기까지, 작고한 작가들의 고향에 마련된 문학관을 중심으로 탐방하며 작가의 삶과 문학을 담았고, 걸출한 문인이 배출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강산도 담았다. 근·현대문학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서울, 경기, 충청, 강원, 전라, 경상까지 지역별, 작가출생 연도순으로 정리하였다. 작가 연대표와 함께 관련된 일화도 조금씩 넣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이 책이 문학의 향기를 찾아 언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되어주고, 누군가에게 문학의 싹을 틔워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는 보람이 될 것이다.

 

 

 

 

 

머리말


하나, 산향을 돌아 시향이 자리하다

01 . 청운동 자하문 고개 <윤동주 문학관>
02 . 향기가 가득한 혜화동 <한무숙 문학관>

 

한무숙 문학관(香庭軒)은 작가가 작고할 때까지 40년 살았던 한옥을 부군 김진홍 선생이 19093년 작각 별세 후 문학관으로 개조하여 개방하고 있다. 전통한옥과 3층 양옥이 혼합된 전시관은 가정집처럼 편안하다. 집 안 구석구석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그림과 책, 유품 등 값진 보물들로 가득하다. 예약제로 방문객을 받는다.

월요일~토요일 10시~17시(12시~13시 점심시간 제외)

온라인 및 전화예약(02-762-3093)

 


03 . 도봉산 아래 자리한 <김수영 문학관>

 

전철 4호선을 타고 쌍문역에서 하차하여 2번 출구로 나가, 마을버스 06번을 타고 종점에 내린다.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둘레길과 더불어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지는 문화공간을 제공하고자 2013년 11월 27일에 개관했다.

 


04 . 화성 반석산 노작공원 <노작 홍사용 문학관>
05 . 양평의 소나기마을 <황순원 문학촌>

 

황순원 작가가 경희대학교에서 23년 동안 재직한 인연으로 경희데학교와 양평군이 124억원들 들여 3년 공사로 국내 최대 규모의 문학관이 탄생하였다. 작가의 고향이 평안남도인데 왜 하필 양평에 '소나기마을'이 들어섰을까?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내용에 착안하여  이름을 '소나기마을'로 했다는 건립취지 배경이다.

 


06. 안성시립보개도서관 <박두진 자료실>

 

 

정직한 미움을 말하되
거짓된 사랑을 말하지 않게 하소서.
정직한 분노를 말하되
거짓된 인내를 말하지 않게 하소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이기보다는
만년을 그냥 있는 의연한 바위로,
고여서 오래 썩는 못물보다는
광란의 밀어치는 노도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되게
당신의 피흘림이 우리의 피흘림되게
당신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
당신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되게 하소서.

일체 잠든 우리의 양심에
활 활 불을 당기소서.
일체 죽은 우리의 영에
사랑을 뜨거이 불지르소서.

 

 

 

청록파 시인들이 탄생하게 된 애기가 재밌다. 을유문화사에서 발행하던 《주간 소학생》잡지사에서 근무하던 박두진의 전보를 받고 경주에 사는 박목월이 상경했고, 그 자리서 박두진이 말한다. "조풍연 선생이 시집을 내라는데, 우리 몇이 어울려 봅시다." 그때 《문장》지의 기자였던 조풍연 선생은 을유문화사의 편집책으로 있었다. 박목월은 조지훈을 떠올렸고, 의견일치를 본 두 시인은 곧바로 성북동 사는 조지훈의 집으로 찾아가 뜻을 전한다.

1946년 6월, 세상에 나온 《청록집》은 시단을 온통 청록파 물결로 뒤덮게 한다. 당시 주류를 이루었던 프로 문학권의 시보다 전통적이고 서정적인 그들의 시를 평론가들은 '한국문학의 전개 방향을 설정한 것'이라고 극찬한다. 평론가나 문인, 지식인들은 그들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청록파'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문학권 이외에서도 동일시하여 함께 초청하는 경우가 많았다니 얼마나 신났겠는가.

 

 


07 . 다시 찾은 안성 난실리 <조병화 문학관>
08. 안양 토박이 시인 <문향 김대규>



둘, 너른 들판에 여유로움을 묻히다

09 .《상록수》의 산실 당진 <심훈 기념관>

 

 

그날이 오면

                                        심훈(1901~1936)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1930년, 시집 '그날이 오면'>

 


10.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옥천 <정지용 문학관>
11. 보은에서 만난 <오장환 문학관>

 

 

The Last Train

 

- 오장환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병든 역사(歷史)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굴 기다려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 놓아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12 . 백제의 도읍지 부여 <신동엽 문학관>



셋, 골짜기마다 꽃 향기가 어리다

13. 내설악에 둘러싸인 한용운 <만해마을>

 

"自由는 萬有의 生命이요, 平和는 人類의 幸福이라."

 


14 . 소박하고 아담한 강릉 <김동명 문학관>
15. 메밀꽃 필 무렵 봉평 <이효석 문학관>
16 . 춘천의 실레마을 <김유정 문학촌>

 

 

김유정은 죽기 열흘 전 고등학교 단짝이었던 안회남(필승)에게 편지를 보낸다.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렬히 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달리 도리를 채리지 않으면 이 몸을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 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하여 보고 싶다.

그 외에는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한둬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번역해서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허거든 네가 적극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엎집어 무리를 하지 아ㅣㄶ으면 안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다우.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우.

 

 

닭 30마리만 고아먹고 싶다던 작가는 1937년 3월 29일 29세로 생을 마감한다. 안회남은 친구 김유정에 대한 글을 많이 발표하여 작가가 어떤 생활을 하였는지 생생하게 증언했다. 하지만 안회남이 1948년 월북, 그에게 맡겼던 작가의 유품들이 6. 25 때 분실되었다고 한다.

 

 


17. 화천 산골에서 만난 이태극 <월하 문학관>
18. 명동신사의 활동무대 인제 <박인환 문학관>



넷, 예향의 고을마다 문학이 둥지 틀다

19 . 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김현 4인 <목포 문학관>
20. 금강을 바라보며 군산 <채만식 문학관>
21 . 부안의 자랑 신석정 <석정 문학관>
22 . 반딧골전통공예문화촌 무주 <김환태 문학관>
23 . 고창 폐교에 들어선 서정주 <미당 시 문학관>

 

 

서정주 시인이 홀로 상경하여 일자리를 찾으며 고생할 때 일정한 거주지가 없어 편지나 기별들을 이봉구 소설가 집으로 해서 받았단다. 서정주 시인의 부인에게서 온 편지를 이봉구 시인이 허락도 없이 뜯어보고 "필치와 편지 내용이 하도 사랑스러워 내가 보관해야겠다"며 내용만 그대로 베껴서 주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소식이 적적하와 아례압

그곳에 게실 줄 믿습니다.

이곳 淑은 부모님 모시고 무고하옵니다.

그동안 몸이나 건강하시온지

淑은 주야 그게 걱정이오며 멀리 비나이다.

이곳은 오랫동안 비가 아니 와 모들도 못 심고,

흉년들까봐 먹을 것 걱정들이나 하고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우리들의 생활인가 봅니다.

정주씨,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옵는지

시골의 달밤이라 어찌 이얼게도 맑고 맑은 달인지

깨끗한 저 달을 바라보니 저의 마음도

저 달과 같이 지고 싶습니다.

저 달이 내 앞에 오면 淑도 잠이 듭니다.

우리들의 살기가 이렇게 괴로울 줄,

꿈과도 같습니다. 운명인가 봅니다. (중략)

 

 


24. 곡성 태안사 <조태일 시문학 기념관>
25. 갈대숲의 김승옥 정채봉 <순천 문학관>

 

2010년에 개관했다는 '순천 문학관'은 넓은 대지에 황토 초가 9개 동이 자리 잡았고, 두 작가의 전시관은 ㄱ 자 모양과 별채로 각각 3개 동이 한 집으로 이웃하고 있다. 낮은 담장을 에워싸고 탐스럽게 핀 장미와 황금빛 초가지붕들이 마치 한 폭의 민화를 보는 듯하다.

 


26. 한옥마을에서 만난 전주 <최명희문학관>



다섯, 물길 따라 뱃길 따라 한길로 흐른다

27. 통영 망일봉 언덕의 유치환 <청마 문학관>
28. 고향의봄도서관 창원 <이원수 문학관>
29. 하동 이명산 자락 나림 <이병주 문학관>
30.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김춘수 유품전시관>
31. 통영이 낳은 대작가 <박경리 기념관>
32. 사천 노산공원 <박재삼 문학관>



여섯, 마을을 싸고 물이 돈다, 정신이 스며든다

33. 정신문화의 고장 안동 <이육사 문학관>
34 . 부산 금정산 자락 김정한 <요산 문학관>
35 . 울진 언양 화장산 기슭 <오영수 문학관>
36 . 천년고도 경주의 쌍두마차 <동리목월문학관>
37 . 낙동강이 보이는 왜관 <구상 문학관>
38 . 영양 주실마을 <지훈 문학관>
39 . 안동 폐교에 핀 꿈동산 <권정생 동화나라>

(안동=연합뉴스)  권정생 동화나라는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를 쓴 아동문학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오롯이 품은 곳이다. 권정생(1937~2007)은 20대 전후로 얻은 폐결핵과 가슴막염, 신장결핵으로 고통받으며 글을 썼다.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인세 10억 원이 든 통장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인세를 모두 어린이에게 돌려주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설립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은 2014년 폐고였던 일직남부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어린이문학관인 ‘권정생 동화나라’로 꾸몄다.

사진은 동화나라와 앞마당에 설치된 몽실언니 조형물. 2017.10.7

 


참고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