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애긴 통 안 듣는데, 이런 글이 있었구만?

2017. 3. 24. 09:06책 · 펌글 · 자료/정치·경제·사회·인류·

 

 

 

 

 

 

 









2007년의 일이다. 참여정부 임기 마지막 해에 참여정부평가포럼이 발족됐다. 참평포럼 주도자가 바로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다. 이병완 실장이 안 지사 후원자로 이름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나도 참평포럼 홍보분과에 이름을 올렸다.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해당 분과 위원장이었고 나는 그 위원으로 참여했다.

어느 날 이병완 실장, 안희정 지사,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조승래 의원 등과 함께 공덕동 사무실 인근에서 저녁식사를 가졌다. 그날 나와 안 지사 간에 약간의 논쟁이 있었다. 안 지사는 내게 “노무현 지지자들이 왜 안희정이 아닌 유시민을 지지하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내가 유시민 지지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유시민은 2002년 김민석의 탈당과 후단협 사태로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에서 물러나게 하려 했을 때 MBC 백분토론 사회자를 내던지고 화을 들고 바리케이트 앞에 서는 심정으로 최전선으로 뛰쳐나왔고, 이후 ‘노무현의 경호실장’으로 임기 내내 헌신한 인물이다.

반면 안희정은 대선 직후 불법대선자금 사건으로 인해 정치활동은 물론이고 노무현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신세였다. 즉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참평포럼은 안희정 정치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 보면 스스로 유시민과 동급으로 비교하는 안 지사가 같잖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는 그랬다.)

이후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이 넘어간 뒤에 각자의 길을 갔다. 참평포럼을 만든 세력은 두 갈래로 나눠졌다. 이병완 비서실장과 이백만 수석 등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의 국민참여당으로 갔고, 안희정과 일부의 사람은 통합민주당에 잔류했다.(이병완 실장이 이번 더민주당 전대 결과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이 과거 민주당에 대한 판단이 지속되어 그런 것인지, 아니면 호남에 오래 머물면서 생긴 정서적인 측면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든 당시 통합민주당은 노무현과는 상관없는 정당이었다. 이미 2007년에 노무현은 온갖 압력을 받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그 열린우리당은 김한길, 정동영, 김두관 등이 순차로 탈당하면서 해체위기에 몰렸고, 결국 이름도 무지 헷갈리는 중도개혁신당이니 중도통합민주당이니를 거쳐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퇴임 후 노무현은 열린우리당 해체에 대해 자신의 정치적 좌절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만든 정당이 통합민주당이다.(노무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가 또다시 해체에도 앞장 선 정동영과 천정배는 도대체 어떻게 까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다른 길을 갔다. 노무현 퇴임 후 통합민주당은 노무현과 무관한 정당이었다. 이종걸 송영길 등은 구속수사 운운하기도 했다. 안희정은 그런 정당에서 최고위원으로 출마하며 “나의 정당”을 외쳤다. 당연히 나 같은 노빠는 그런 안희정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왜냐하면 통합민주당은 역사를 배신한 정당이었고, 노무현의 좌절을 가져온 정당이었고, 정당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온 정당이었다. 그런 정당에 ‘나의 정당’ 외치는 안희정이 좋게 보이겠나?

하여 2008년 9월 민주주의2.0이 오픈된 이후 ‘쇠뿌리’라는 필명으로 통합민주당 중심의 야권재편을 호소하는 안희정과 밤새 대판 싸웠다. 돌아보면 미안한 부분이다. 내 표현이 굉장히 거칠었기 때문이다.(용서하시라. 나는 아직도 열린우리당을 깨부수고 노무현을 배신한 그 때의 원한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 이후 노무현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떻든 유시민은 국민참여당으로, 안희정은 통합민주당으로 그렇게 각자의 길을 갔다.

그 이후 안희정은 2008년 총선에서 논산계룡금산 지역구에 출마하려 했으나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깨끗하게 승복했다. 이 자산을 바탕으로 정세균 대표 체제였던 2010년 충남도지사 후보로 공천받아 3자대결에서 승리하고, 2014년 재선에 성공해 오늘에 이르렀다.

반면 유시민은 2007년 대선 경선에서 탈락하고 대선이 끝난 후 통합민주당을 탈당했다. 이어 2008년 총선에서 마지막 세리모리를 하듯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그리고 2009년 국민참여당 대표로 복귀해 2010년 경남 김해 보궐선거에 친노들의 반발과 저항을 뚫고 이봉수를 내세웠으나 김태호에게 패배했다. 유시민 욕 많이 먹었다. 그 이후는 민노당과 합당해 통합진보당 만들었다가 폭망하고, 지금의 존재감없는 정의당 당원으로 남아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안희정의 길은 성공했고, 유시민의 길은 실패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안희정이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이면에는 문재인과 문성근, 한명숙, 이해찬 등의 희생이 뒤따랐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유시민 같은 원심력도 자극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리멸렬하고 형편없는 정당 꼴을 조금이라도 벗어난 것은 이 사람들이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 돌탑 쌓듯이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을 만드는 데 있어서 안희정은 사실 기여한 바가 없다. 다른 정치인들이 온갖 총질에 상처를 입는 동안 충남도지사로 큰 상처도 없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쌓아 올렸을 뿐이다. 안희정 정도의 그릇이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유시민이 걸어갔던 길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2008년 안희정이 통합민주당을 향해 “나의 정당”이라고 표현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80년대부터 그 정당 당원으로 살아왔으니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2002년 노무현을 통해, 2003년 열린우리당을 통해 유입된 새로운 당원과 지지자들은 안희정의 ‘나의 정당’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내가 그렇다. 비록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고는 있지만 ‘나의 정당’은 아니다. 2008년 내가 안희정과 밤새 댓글로 다툰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정당’ 운운은 정당 내부에서만 하는 게 좋다. 당에 대한 애정 표현은 집안에서만 하기 바란다. 지난번 충남 대의원대회에서처럼.

어떻든 시대는 안희정에게 기회를 주었고, 유시민에게는 실패를 줬다. 유시민과 한때 같은 길을걸었던 내 입장에서는 야속하기도 하지만 안희정이 길도 이해하며 받아들인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좋은 결과를 맺었으면 좋겠다.

다만 출사표가 너무 원대한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마치 내가 다 해결할 수 있다는듯이 말하고 있다. 출사표가 메시아 같아서 드리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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