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서 한 작품을 제빨리 해치우기보다 두고두고 고쳐가며 그렸다"
전시장 매표소에서 시작된 줄은 호암 갤러리 밖 서소문 거리에까지 한참 이어졌다. 15년 만에 열리는 천경자 개인전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였다. 그런데 이같은 현상은 1978년 현대화랑 개인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도 관람객의 줄이 맞은편 인도까지 장장 150m나 이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내가 1992년 호암미술관에 입사하여 처음 맡은 전시회가 마르크 샤갈전이었는데 그때도 반응이 뜨거웠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천경자처럼 생전에 뜨거운 사랑을 받은 작가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듯하다. 전시회가 열리는 한 달 동안 8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고, 마지막 주말에는 하루 5천 명까지 입장하며 호암미술관의 입장기록을 갈아치웠다.
"작업이 잘 될 때는 고독이라는 해방감과 바다물결 같은 자유가 고맙지만,
일이 잘 안 될 때는 일상생활이 서툴러 부작용의 가닥가닥이
흡사 성황당 고목에 한 서린 낡은 천 조각들이 날아오는 듯 심난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혼자 운다."
책을 내며
프롤로그: 천경자 예술의 마력
천경자 신드롬 | 황후의 카리스마 | 불행한 생애, 행복한 예술가
1. 정한의 뿌리
고향의 봄 | 사춘기의 방황 | 꿈에 부푼 일본 유학 | 빗나간 사랑 | 여동생의 죽음 | 뱀으로 승화된 한恨 | 부산 갈매기
2. 행복의 그림자
장밋빛 서울 | 보랏빛 환상: 채색화의 신경지 | 회색빛 우울
3. 꿈과 낭만을 찾아서
뉴욕에서 사모아로 | 타히티, 고갱의 발자취 | 파리, 화려한 고독 | 이탈리아, 보티첼리에 취해 | 베트남, 전쟁터의 시정 | 아프리카, 사막의 여왕이 되어 | 인도, 신비와 침묵의 땅 | 중남미, 탱고를 찾아서
4. 문학기행
폭풍의 언덕 | 헤밍웨이의 집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모뉴먼트 밸리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5. 환상 속의 자아상
비련의 여주인공 | 길례 언니 | 우주 소녀 | 프리다 칼로와 천경자
에필로그
자신의 한을 승화시킨 실존적 낭만주의자
부록: 희대의 진위논란, 《미인도》의 진실
사건의 발단 | 진품 판정이 나온 경위 | 《미인도》의 원본 | 문제의 본질과 해법
천경자 연보
도판 목록
ㄷ
최씨는 19일 전화 인터뷰에서 “평론가로서 작가의 작품세계를 미학적으로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평전을 소개했다. 그는 “천경자의 대표작을 ‘미인도’라고 아는 사람도 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천경자를 대중 작가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번 책에서는 한과 신명이라는 한국인의 정서가 회화적으로 풀어져 나온 게 천경자 예술의 핵심이라는 점을 조명한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책에서 샤갈이나 고갱, 루소, 프리다 칼로 같은 서양 작가들과 비교하면서 천경자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추출해낸다. “미학적으로 샤갈의 환상적인 화풍이나 고갱과 루소의 원시주의적 작품에는 삶에서 비롯된 자신이 실존적 불안과 고독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는 불행한 자신의 실존적 고통이 절절하게 반영되어 있지만, 그것을 초월하고자 하는 환상과 낭만이 부재한다.” 이들과 달리 천경자는 “자신의 고통스런 실존과 환상적인 낭만을 공존”시켰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위작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미인도’와 관련해서는 책 끝에 따로 60여 페이지 분량의 ‘부록’을 수록해 ‘미학적 감정’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미학적 감정이란 작가의 미학과 작품세계를 기준으로 그림의 진위를 따져보는 것이다. 최씨는 “천경자라는 작가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자신의 혼을 실어 그린다는 것”이라면서 이런 특이성을 바탕으로 ‘미인도’를 분석할 때 눈(강렬하다/힘이 없다), 색채(다채롭고 선명하다/단순하고 지저분하다), 꽃(경쾌하다/투박하다), 안료(굵은 암채/고운 분채), 제작기간(3∼4개월/3∼4일) 등 11가지 부분에서 차이가 발견된다며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자신이 ‘미인도’를 그렸다고 주장하는 권춘식씨는 실제 위작자가 아닐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가 권씨에게 두 차례 ‘미인도’의 그림 크기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권씨가 두 번 다 ‘8호’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미인도’의 실제 크기는 ‘4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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