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3. 18:36ㆍ미술/서양화
출 생 : 1884년 7월 12일 ~1920년 1월 24일 (36세)
국 적 : 이탈리아 ( 토스카나 지방의 리보르노 )
가 족 : 쟌느 에뷔테른과 사이에 딸 하나(쟌느 모딜리아니)
학 력 : 리보르노 미술학교 - 피렌체 미술학교 - 베니스 미술학교
생 애
그는 처절한 고독 속에서 가난과 술, 아편과 결핵에 시달리다가 1920년에 36세의 나이로 요절한 화가입니다.
그는 1908년 처음으로 앵데팡당전에 회화 6점을 출품함으로써 정식으로 화가로서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지만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에 허덕였습니다.
1909년 콘스탄틴 브랑쿠시를 만나 그의 영향으로 한동안 조각을 시도하기도 하고,
세잔느의 대전람회를 보고 깊이 감명을 받아 <거지> <첼로 연주> 같은 작품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1913년부터는 몽파르나스에 거처를 정하고 키슬링· 수틴· 피카소 등과 친교를 맺었으며
이 무렵부터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발하여 이색적인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지요.
1918년에는 라파이예트 거리의 베르트 베이유(Berthe Weill) 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연 뒤,
방종한 생활과 음주· 아편 등으로 악화된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니스로 갔습니다.
1919년 파리로 다시 돌아왔으나 이듬해인 1920년 1월 25일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모딜리아니의 재능은 데생과 조각과 유화의 세 부문에 걸쳐 빼어난 창조성을 보여준다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화가로서의 천재성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초상화 부문에서입니다.
1918년 남불 니스에서 요양할 때 여러 점의 풍경화를 그린 적이 있지만,
그의 회화 작업 과정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지는 않으며
정물화는 거의 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지중해의 뜨거운 햇빛과 고향의 어린시절을 그리워했던 그는 파리의 자선 병원에서 3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며
"카라 이탈리아(그리운 이탈리아) "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펌)
자화상
Jeanne Hebuterne with Necklace (1917 )
Anna Zborowska
Private collection (1919)
검은 드레스 (1918 )
(1918 )
( 1918 )
(1918 )
(1917)
유태여인 (1908 )
( 베아트리체 헤이스팅스)
Jeanne Hebuterne with Hat and Necklace (1917)
모자쓴청년 (1919)
(1915 )
(푸른 배경의 폴 알렉산드르 초상화)
모딜리아니의 첫 번째 후원자는 의사였던 폴 알렉산드르였습니다. 그는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25점이나 구입해 주었고 450개의 드로잉을 수집한 사람입니다.
(풍경 1919)
모딜리아니가 그린 풍경화는 3점이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물과 풍경을
그렸는데 나중에는 초상화와 누드로 확대되었고 특히 누드에서 그의 재능이 가장 잘 나타났다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
[작품속의 주인공 , 쟌느 에퓨테른느에대해 ]
모딜리아니 인물초상작품중에는 Jeanne Hebuterne의 작품들이 눈에띄는데..
쟌느 에퓨테른느는 모딜리아니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이다.
모딜리아니는 그녀를 18살때만났는데 독실한 카톨릭교구인 그녀의 집안에 유태인은 안될말이였다.
둘은 집안의 강한반대에도 무릎쓰고 서로 함게살게되었는데 1918년 둘사이에낳은딸이름도 쟌느라지었다.
그러나 2년뒤 모딜리아니가 결핵으로 요절하자 그녀의 집안에서는 그녀를 본가로 데려갔지만
그녀는 모딜라아니가 죽은지 이틀째되던날 5층건물에서 뛰어내려 비극적인자살을하게된다.
펌. 우리 미술관 갈까? http://cafe.daum.net/ad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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