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4. 09:17ㆍ책 · 펌글 · 자료/역사
2015.09.10
21세기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 ‘조선총독부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면서 역사 공부 열풍이 더욱 거세졌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역사 교과서는 우리 역사를 얼마나 충실하게 서술하고 있을까? 『위험한 역사 시간』은 이러한 의문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현재 중고등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국·검정 역사 교과서를 일일이 비교 분석하였고, 그 결과 21세기 한국사 교과서에 스멀거리는 조선총독부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우리 역사 교과서는 서기전 15~30세기까지 올라가는 수많은 고고학 유물과 유적의 증언을 무시하고 청동기시대의 시작을 서기전 10세기 무렵이라고 서술하며 우리 민족의 시간을 참혹하게 잘라내는가 하면,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조선총독부의 ‘한사군 한반도설’을 따르고 있으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같은 우리 사서보다는 《삼국지》, 《일본서기》같은 중국과 일본사서에 따라 서술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이와 같이 현재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가 총체적으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한사군 한반도설, 임나일본부설 등, 그야말로 조선총독부가 날조한 내용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일본의 독도 도발과 중국의 동북공정이 위험 수위에 달한 지금, ‘알아서’ 자국의 역사를 축소·왜곡시키기에 급급한 우리 역사 교과사의 현실 속에서 이 책은 음험한 ‘유령’을 몰아내고 진정한 역사책으로 거듭나는 데 일조하는 책이 될 것이다.
저자 이주한은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간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자 역사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역사적 배경과 맥락, 근원을 입체적으로 파헤치는 예리한 역사비평을 추구하며, 사실과 사료비판에 엄밀한 역사,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공존하고 대중이 소외되지 않는 열린 역사를 지향한다.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 비틀어진 한국사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이 있다.
목차
들어가기에 앞서 - 어느 노학자의 마지막 소원
(전략) 역사 교과서를 편찬하는 사람들, 그 중에는 "일본 학자들이 어찌 역사의 기록을 날조하겠는가, 그 사실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생각들이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역사를 유지하는 위험한 손이 되어 우리 역사를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100년이 넘는 시간을 통해 비열한 역사를 주입당해왔고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인 학생들이 '위험한 역사 시간'에 처해져 이를 대물림하고 있다. (후략)
1장. 역사를 보는 눈이 위험하다
1.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사실인가
* 사라진 한국문명
* 선사시대는 역사시대가 아닌가
* 도구냐, 인간이냐
* 어느 곳이나 독창적인 역사가 있었다
* 문명과 국가는 청동기시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2. 우리 역사의 뿌리는 어디로 사라졌나
* 날아간 2,000년
* 우리 역사에 대한 선입관이 문제다
* 역사 교과서의 비극
* 고조선, 신화냐 역사냐
* 고조선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신화’인가
* 랑케도 울고 갈 일본사학계의 진실
3. 우리 역사는 언제 시작하는가
* ‘위만의 집권’이라는 제목의 비밀
* 평양 vs 요동, 위만국은 어디에
* 한국사에 한국이 없다
2장. 중국사로 둔갑한 한국사가 위험하다
1. 한국사는 중국사였다
* 한국사는 중국 변방사라는 국사편편위원회
* ‘크롬웰의 초상’과 ‘한의 알렉산드리아’
2. 주변부 반도사로 시작하는 역사 교과서
* 육교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다만 거쳐갈 뿐이다
3장. 한없이 작아지는 반도사관이 위험하다
1. 반도 안에 구겨 넣어진 민족의 공간
* 70만 년 전의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2. 뒷걸음질 치는 역사 교과서
* 검정, 국정보다 못하다
* 내동댕이쳐버린 구석기시대
*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역사 교과서
* 처음 만나는 역사 교과서는 괜찮을까
3. 고조선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 사료를 외면하는 역사 교과서
* 고조선, 세 가지 증거
* ‘정설’과 아집, 과학적 증거 위에 군림하다
4장. 불멸의 임나일본부설이 위험하다
1. 임나일본부설이 만든 한국사
* 임나일본부설 시나리오
* 저희 학계가 끝까지 고집하는 것
* 임나일본부설이 결정한 한국사의 맥락과 체계
2. 임나일본부설 최후의 보루
* 무조건적인 동조와 놀라울 정도의 침묵
* 『일본서기』를 보는 눈
3. 한국사의 비극을 함축한 말
4. 또 다른 복병, 『삼국사기』 초기 기록 수정론
5장. 역사 교과서 옆의 책도 위험하다
1. 국사편찬위원장의 『새한국사』
2.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의 『한국사』
3.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의 『아틀라스 한국사』
4.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외국인을 위한 한국사』
5. 동북아역사재단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1
구석기시대에 맞춰 구석기인이 살고 청동기시대에 맞춰 청동기인이 살지 않았다. 도구를 위해 인간이 살지 않았다. 주체와 객체가 바뀌었다. 선사고고학자의 선사 개념은 기록의 존재 여부이기 때문에 현대에도 기록이 없는 원주민은 선사시대를 살고 있다는 개념이다.
대제국 잉카는 뛰어난 관료체계와 교통망을 갖췄다. 마야제국도 선진적인 찬문학과 과학적인 그림문자가 잇었다. 국가가 청동기시대 이후에야 나오고, 청동기시대 이후에 역사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은 만들어진 개념에 역사를 꿔어맞춘 설명이다. 문자를 사용하지 않아도 역사는 있었고, 청동기를 사용해야 문자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청동기를 사용하지 않은 문명과 국가가 있었다.
세계 4대 문명지로 알려진 이집트도 고대 청동제품이 이집트 토착 제품이 아니라 북방으로부터 전래된 교역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되고, 인도문명도 청동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왕조가 성립됐거나 번성한 것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교과서와 대부분의 한국통사들은 '있었던 사실을 반영한 역사'가 아니라 '설정된 개념과 프레임에 맞춘 역사'를 쓴다. 일제강점기에 주입된 개념에 맞춰 역사를 서술하기 때문이다.
2
일제는 1910년부터 한국 고대사를 말살하기 위해 수십만 권의 사료를 수거하고 인멸했다. 조선사편수회는 1938년 전 35책 2만4000쪽에 이르는『조선사』를 발간했다.
일본의 조선사 편찬 목적은 일본에 없는 유구한 조선상고사의 고조선과 단군, 기자, 발해를 노골적으로 우리 역사에서 다 없애버리려 한 데 있다. 1923년부터 1935년까지 9차에 걸친 위원회의 회의 기록은 조선 학자들이 주장하는 단군과 상고사 부분을 일인들이 순차적으로 깔아뭉개는 과정이 칼자루를 쥔 일인들의 교활한 말과 소리 없는 공포 분위기로 버무려져 있다.
1923년 첫 번째 위원회에서 조선 학자의 견해에 따라 단군을 고조선 건국과 함께 망라하겠다고 발언한 일본인 위원 가시와라는 수개월 후 돌연사하고 이 발언을 의결한 중추원 서기장 오다는 위원회 직후 파면되었다.
조선 역사의 시작을 처음엔 상고, 삼한시대부터 다룰 것처럼 하더니 차츰 연대를 낮춰지며 삼국 이전이 됐다가 결국은 신라통일 이전부터 다루는 것으로 결판나버렸다.
『조선사』편찬은 구로이타 가쓰미, 이나바 이와키치, 이마니시 류가 주도했다. 정한론에 입각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한 이들이다. 편년체로 조선사를 편찬한다면서 자신들의 의도에 맞게 사료를 취사선택했다. 일본보다 앞서가는 한국사를 없애고 우리 역사가 신라의 건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최남선, 이능화는 편찬위원회 위원이고 이병도, 신석호는 이마니시와 함께 신라부터 고려 때까지의 편술자였다. 이병도는 이마니시의 눈에 들어 하라는 대로, 일본 정권의 뜻대로 '신라 건국부터 시작된' 조선사를 찬술한 책임자였다. 최남선과 이능화가 단군과 발해의 역사를 얘기하며 저항했으나 대담하게는 못 나서고 변죽만 울리는 정도였다.
한국사 왜곡에 앞장섰던 역사학계의 태두로 군림한 이병도는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서울대 대학원장, 문교부 장관, 학술원 원장을 거쳐 전두환 정권에서 국정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신석호는 고려대 교수를 비롯해 국사관(국사편찬위원회) 관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무국장, 한국사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 (2003)
조선총독부는 고조선이 국가로 성장하려다가 곧바로 망했고, 중국의 식민통치 기관인 한사군을 통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는 타율성의 역사를 만들었다. 따라서 낙랑군 연구는 한국사의 정체성과 전체 체계를 좌우하는 핵심 주제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는 유물을 조작해서 한사군의 핵심 군현인 낙랑군이 한반도 평양 일대에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북한 학계는 광복 후 일제의 역사 조작을 청산하는 과정을 거쳤으나 대한민국은 조선총독부의 자료와 발표에 의존해 오고 있다. 고조선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한국사의 전체적인 맥락과 체계가 완전히 달라진다. 고조선을 알지 못하면 한국사는 끝까지 방향을 찾지 못하게 된다.
3
해방과 더불어 일제는 수많은 자료와 경험을 그대로 갖고 일본으로 물러갔다. 이후 우리에게 닥친 분단과 전쟁의 와중에서 그나마 얼마 되지 않은 훈련된 인적 자원은 북조선을 조국으로 택했다. 북한의 고고학 연구는 전쟁 이후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구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존재를 밝히는 등 많은 성과를 내며 1960년대 초 절정에 다다라 『조선원시고고학』이라는 최초의 한국고고학 개설서가 도유호에 의해 출간되었다.
그러나 한국고고학의 제1세대는 해방 당시 아무 경험도 없는 20대 초반의 나이였다. 일제의 연구를 극복하기는 커녕 일제의 결론을 습득하기도 바쁜 형편이었다.
현재 북한에서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개시에 대해, 최초의 국가이자 노예소유주 국가인 고소선(단군조선)을 중심으로 하여 기원전 30세기에 시작돠었다고 보고 있다. 한편 남한에서는 대체로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하여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남한은 철기시대의 전기의 위만조선이 이제까지 문헌상의 최초의 국가로 보고 있다.
4
고고학 자료를 해석하는 데는 주의할 점이 잇다. 그것은 고대한국의 문화가 중국의 황하유역이나 시베리아 지역으로부터 전달되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근래의 고고 발굴과 그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조선의 신석기시대 시작 연대는 중국 황하유역보다 이르며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의 시작 연대는 중국이나 시베리아 지역보다 앞섰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조선의 철기 시작은 BC13세기이나 중국은 BC8세기경이다.)
''야금술의 중심지는 요하강과 청천강 사이 지역, 즉 고조선의 중심부 그리고 두만강 하류지역이었다. 북한의 고고학자들은 압록강 유역과 여기에 접속된 요동지방에 거주하던 마송리형 질그릇을 사용한 종족이 그 이웃 종족(중국)보다 먼저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에 발견된 고고학 자료로 확증되고 있다.''
- U M 부틴, 「고조선」(1990)
앞부분에서 몇 대목만 발췌했는데도 이렇게 양이 많습니다.
책에 줄을 쳐 두는 걸로 말아야지 이렇게 베낄 일이 아니로군요. ㅋㅎ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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