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야율초재] 미국엔 ‘야율초재’가 없는가[오귀환의 디지털 사기 열전]

2015. 11. 3. 09:31책 · 펌글 · 자료/역사

[야율초재] 미국엔 ‘야율초재’가 없는가[오귀환의 디지털 사기 열전]

 

몽고제국의 대제상,

세계를 피로 물들이던 몽고군의 대학살에서 개봉 백성 140만명을 구하다

 

800년 전, 세계 최강의 군대 몽고군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 햇빛을 가릴 정도의 무수한 화살로, 성벽을 무섭게 때려부수는 공성무기로 유라시아 모든 민족을 얼어붙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저항하는 군대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노인 부녀자를 가리지 않고 무수히 죽이고 또 죽였다. 그들의 이 학살은 ‘도성’(屠城)이라고 불렸다. 몽고군의 악명을 전 세계에 처음 알린 징기즈칸의 코라즘제국 침략(1219~1225년) 때 벌어진 끔찍한 대학살에 대해 역사가들은 이렇게 적고 있다.

 

 

 

» 야율초재 상상도(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이보다 더 잔인한 약탈은 없었다

“헤라트가 함락되자 160만명이 도시 밖으로 붙잡혀 나왔다. 그리고 학살이 시작됐다. 한때 코라즘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모두 120만명이 학살됐다. 몽고군 한명이 24명꼴로 죽인 것이다. 기독교 성서번역 도시로 유명한 메르브를 점령한 뒤 몽고군은 130만명의 인구를 남자, 여자, 어린애로 갈라 서라고 명령했다. 몽고군이 살려주곤 하던 기술자는 400명에 지나지 않았다. 몽고군은 사람들을 땅 위에 누우라고 명령한 뒤 난도질을 시작했다. 또 다른 도시 니샤푸르에는 174만7천명이 살고 있었는데 역시 대부분 학살됐다. 몽고군 대장 툴루이는 자기 매제가 화살에 맞아 전사한 것을 복수한다며 그렇게 한 것이다. 잘린 목은 아이는 아이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쌓아져 3개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이뤘다.”


징기즈칸은 손자 무투겐이 마미얀 공략 때 전사하자 철저한 도성을 명령했다. “사람은 모두 죽여라. 나아가 모든 동물, 식물까지 죽여라.” 몽고군은 모든 나무란 나무까지 모조리 뽑아버렸다. 도시마다 살육 다음에는 방화가 이어졌다. 사마르칸트, 부하라, 메르브, 바그다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들에서 수많은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들이 살해됐다. 한 역사가는 “인류 역사상 이처럼 인구를 격감시킨 적은 없다”고 탄식했다.

몽고군의 이런 잔혹행위는 약탈이 일상화된 유목사회에서 길러졌다고 할 수 있다. <몽골비사>에선 몽고군의 잔학성을 다음과 같이 조장하고 칭송하고 있다.

“많은 적에게 달려들어 전리품들을 노획하면 노획하는 대로 가져라!
도망 잘 하는 사냥감을 죽이면 죽이는 대로 가져라!”

징기즈칸의 4맹견이라 불리는 무장들에 대해선 이렇게 묘사하고 있기까지 하다.

“전투의 날 사람의 고기를 먹는다.
교전의 날 사람의 고기를 양식으로 하는 자들이다.”

1차 코라즘제국 침략전쟁을 끝내고 서하마저 정복한 뒤 몽고군의 다음 목표는 중국의 중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1232년 3월 몽고군이 중원에서 가장 큰 도시 개봉(開封)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원래 송나라의 수도인 이 도시는 여진족의 금나라에 함락돼 금의 수도가 돼 있었다. 개봉에는 한인을 비롯해 여진인, 거란인 등 147만명이 살고 있었다. 몽고군의 대장은 징기즈칸의 4맹견 가운데 한명인 수부데이였다.

 

 

 

» 몽고군의 잔혹한 전투 장면. 중국 중원의 백성들이 그들에게 살을 발라 죽이는 참극을 당하지 않은 것은 야율초재의 덕택이었다

 

개봉 백성들은 처절하게 저항했으나…

몽고군은 코라즘제국에서 노획한 이슬람권의 가장 우수한 무기까지 총동원했다. 발석차로 거대한 돌을 성 안에 퍼붓는가 하면, 화통 등이 날아갔다. 불화살이 3층으로 된 개봉성의 4개 방어누각으로 날아갔다. 몽고군은 연자방아 맷돌 덩어리는 물론 대들보 덩어리까지 발사했다.

 

그러나 방어군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의 총공격을 결사적으로 막아냈다. 금의 황제 애종이 성 밖으로 탈출하고, 전염병이 창궐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함락되지 않았다. 마침내 모든 보급품이 바닥나고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금나라의 서면원수였던 최립이 쿠데타를 일으켜 성문을 열고 몽고군에 항복했다. 개봉 백성들은 그렇게 14개월 동안 몽고군에게 처절하게 저항했던 것이다.

 

이제 이 백성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군사령관 최립의 반란에 이은 항복 형식으로 종결됐지만, 그 백성들은 몽고군에 끝까지 격렬하게 저항한 것이다. 코라즘제국과 서하를 휩쓸었던 대학살의 악몽이 중원에서 가장 문명이 발달한 이 도시에서도 되풀이되는 것인가?

 

 

 

» 야율초재가 남긴 글씨

 

이미 몽고 공격군 대장인 수부데이는 대칸 오고타이에게 도성을 진언해놓고 있었다. 그는 항복을 권하러 개봉에 갔던 몽고의 국신사 일행 30명 가운데 29명이 무참히 살해됐다는 보고를 듣자 땅바닥에 칼을 꽂으며 ‘개봉성 전멸’을 다짐한 바 있다. 그렇게 개봉 백성 140만명의 목숨이 대학살의 처참한 운명 앞에 가물거리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오고타이 칸의 막사로 찾아가고 있었다. 거란인 출신인 그는 개봉의 도성을 완화해달라고 칸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몇년씩이나 전쟁을 벌이는 노고도 모두 땅과 백성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땅을 얻어도 백성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재물이나 공예품은 풍족함을 얻는 근원이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유라시아대륙 인민의 생사에 관한 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상 최강의 권력자 몽고의 칸에게 호소하는 그는 재상직인 중서령을 맡고 있는 아율초재(耶律楚材)였다. 전쟁으로 일어선 나라 몽고에서, 군국주의가 한창 맹위를 떨치는 전쟁판에서 초원의 법도에 따른 야만적인 살육을 막으려는 한 인간의 치열한 노력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르츠사하리, 이번에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오고타이 칸은 잘라 말했다. 우르츠사하리는 몽고말로 ‘긴 수염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징기스칸이 야율초재를 아껴 붙여준 이름이다. 국신사 일행을 죽인 것은 몽고군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태였다. 천산산맥 서쪽의 모든 유라시아 땅을 피와 공포로 물들인 코라즘 침략전쟁은 바로 징기즈칸의 국서를 가진 대상단을 코라즘 오트랄 성주가 살해하면서 벌어지지 않았는가? 수부데이에게는 이미 개봉 함락 뒤 ‘최후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맡기겠다는 약속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게다가 개봉 공방전이 예상보다 훨씬 더 길어지는 영향으로 오고타이 칸과 그 동생 툴루이가 잇따라 병에 걸리는 사태까지 벌어졌기에 몽고 지도부에서는 모두들 도성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야만으로부터 문명을 지키다

“풍성한 것을 만드는 기술자들과, 재화를 늘려주는 부자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모조리 죽여버리면 얻는 바가 없습니다.”

 

초재는 이마의 땀을 씻으며 간언하고 간언했다. 대칸은 충신의 호소로 고민에 빠졌다. 오고타이는 이튿날 개봉 백성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발표한다.

 

“죄는 금나라 황족의 성인 완안씨를 가진 자들에게만 묻고 나머지는 목숨을 구해준다.” 중원 백성 140만명이 목숨을 구하는 일대 기적은 이렇게 해서 일어난 것이다.

 

대만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약하는 역사소설가 진순신은 <중국걸물전>에서 야율초재가 살육으로 점철된 초원의 법도를 ‘야만’이자 ‘문명의 파괴’로 보고 그 야만으로부터 문명을 지키려 했다고 평가한다. 확실히 그런 관점은 설득력이 있다.

 

초재는 이전에 사마르칸트 함락 때도 징기즈칸에게 “이제는 도성을 그만해야 합니다”라고 진언했다. 또한 징기즈칸의 4준마 가운데 한명인 무칼리가 “금나라 모든 땅으로부터 백성을 내쫓고 그 전답을 모두 초원으로 만든다”며 시도한 무모하고 파괴적인 정책에 대해서도 반대해 끝내 중단시켰다.

 

그는 그 뒤에도 긴급과거를 실시해 속전금이 없어 노예로 전락한 중원의 지식인 수천명을 구제하기도 했으며, 몽고에 학교도 세웠다. 나아가 과도한 징세를 목숨을 걸고 막는 등 군국주의적 무단 통치를 절차에 따른 법치로 바꾸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다. “제국은 말을 타고 건설할 수는 있지만, 말을 탄 채 통치할 수는 없다”는 믿음을 실천한 것이다.

 

야율초재가 죽은 뒤 몽고제국의 재상을 15년 동안 지낸 그의 집에선 거문고와 완함 같은 악기 10여개, 고금 서화 몇점, 서적 수십권 정도가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역사가들은 나중에 그에 대해 <신원사>에 이렇게 적었다. “중원의 백성들이 오랑캐에게 살을 발라 죽이는 참극을 당하지 않은 것은 모두 그의 덕택이었다.”

 

2003년 이라크는 21세기형 첨단무기로 무장한 미군의 두 번째 공격을 받았다. 제1차 걸프전쟁 때처럼 미국의 언론은 이라크의 공화국 수비대가 엄청난 화력을 가진 것처럼 위기의식을 조장했다. 그러나 이라크군은 800년 전 코라즘제국의 도시들보다 훨씬 맥없이 미제 첨단무기의 제물이 돼버렸을 뿐이다. 이라크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열화우라늄탄이 떨어졌는지, 그 방사능 오염은 앞으로 어떤 비극을 가져올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어찌 열화우라늄탄뿐이겠는가.

 

유일 강대국 미국의 무력만이 판치는 이 비극의 시대, 과연 미국에는 야율초재와 같은 ‘생명의 수호자’ ‘문명의 수호자’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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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년대 몽고군 vs 2004년 미군

 

1200년대 당시 몽고군과 2004년 현재 미군은 우선 세계 최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의 몽고군과 현재의 미군은 각각 거의 유일하게 전지구적 차원에서 작전을 벌이는 게 가능한 군대다. 몽고군은 일본으로부터 폴란드까지 거의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작전권으로 놓고 있었다.

2004년 현재 대륙간탄도탄 같은 발사체 무기를 뺀 상태에서 전지구적 차원의 작전이 가능한 군대는 미군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군이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해협에 대한 미국-서유럽 연합군의 봉쇄를 뚫고 지중해로 진출하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남반구 대양에서 효율적으로 작전 수행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나아가 중국군의 해상작전 능력도 현재로선 러시아군보다 훨씬 제한적이다.

 

 

둘째, 두 군대 모두 가장 기동성이 뛰어나고 우수한 무기체계를 갖추고 있다. 몽고군의 기동성은 일반 병사들까지도 말을 1~4마리 갖춘 채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이동해 상대편 군대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태에서 기습하는 특유의 전격작전에서도 증명된다. 몽고군은 분유가루와 쿠미즈라는 말젖술, 수수가루 그리고 보르츠라는 육포를 말안장 밑에 넣은 채 이동하면서 그대로 말 위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삼국지> 같은 데 나오는 것처럼 취사를 위해 행군을 멈추는 일이 없이 보통 10일을 그런 스피드로 이동할 수 있었다. “1221년 징기즈칸 군대는 이틀 동안에 130마일을 이동했다. 1241년에는 수부데이 군대가 엄청나게 눈이 쌓인 대초원에서 사흘 만에 180마일을 이동했다.”

 

 

 

 

» 당시의 몽고군과 현재의 미군은 거의 유일하게 전지구적 차원에서 작전을 벌이는 게 가능한 군대다.(GAMMA)

 

무기도 당시로선 가장 경쟁력이 뛰어났다. 주무기는 약 166파운드의 장력에 유효사거리 200~300야드에 이르는 활이다. 이 활은 <로빈후드>에 나오는 영국의 장궁보다 사정거리나 파괴력에서 크게 앞선다. 게다가 상대보다 훨씬 먼 사정거리를 가진 이 무기를 말을 탄 채 발사해 훨씬 정확하게 표적에 맞힐 수 있었다. 근거리 파괴용인 큰 활과 장거리 저격용인 작은 활 두 가지를 가지고 다녔고, 30개 정도의 화살이 든 전통을 2~3개씩 보유했다.

 

당시 유럽의 기사단이 철갑통 모양으로 된 갑옷과 긴 창 등 1인당 70kg에 이르는 무겁고 둔한 장비를 채용한 데 비해 몽고군은 가볍고 기능성이 뛰어난 장비로 무장했다. 갑옷은 가로 약 2cm, 세로 약 10cm 크기의 가벼운 금속판에 8개의 구멍을 뚫은 뒤 가죽끈으로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엮었다.

 

금속판도 신체의 앞쪽에만 달아 무게를 줄였다. 몽고군은 초기에 성을 공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나, 나중에 금나라·송나라와의 전쟁에서 충원한 공성전문가를 활용해 충차·발석차 등의 신무기체계를 강화했다. 나중에 더욱 발달한 이슬람권 공성무기까지 보강해 파괴력이 훨씬 높아졌다.

 

미군의 기동성은 “지구 어느 곳에든 번갯불 같은 속도로 군대를 배치할 수 있다”는 표현 하나로도 충분할 정도다. 2001년 미군은 세계 어느 곳에서 분쟁이 발생해도 1)1개 여단은 96시간(4일) 안에 2)1개 사단은 120시간(5일) 안에 배치할 수 있었다. 무기체계의 급격한 발전은 군사예산 하나만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2003년 미국의 군사예산은 3827억달러로 미국 다음으로 군사비가 많은 9개 나라의 군사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이 가운데 첨단무기의 개발에 투입하는 연구개발비는 568억달러로 중국의 연간 군사비 총액보다도 많다.

 

 

[출처]: 오귀환/ <한겨레21>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okh1234@empal.com   [2004.01.29 제493호]

 

 

출처 : 솔바람소리
글쓴이 : 구름에 달가듯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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