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독립문 자리는 중국으로 가는 사신과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배웅하고 맞이하는 영은문과 모화관이 있던 곳이다. 영은문과 모화관은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독립협회는 영은문과 모화관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독립문과 독립관을 지었다. 주종관계의 상징적 공간인 두 곳을 허물어 대한제국이 독립된 나라임을 천명하는 외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게다가 허무는 데 그치지 않고 ‘독립’의 상징인 두 건물을 지은 것은 의미를 더 한다. 화강암으로 지어진 독립문은 높이가 약 50m다. 성산대교 공사로 종전의 위치에서 70m 정도 옮겨졌지만 독립문 바로 앞 영은문의 지주와 대비되면서 극적 효과는 배가된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일제가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문을 헐지 않은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다. 이곳을 지나치는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이 독립문을 보며 독립에 대한 열망을 잊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 글출처jgg223.tistory.com/190 작은 두 눈에 하늘을 .. )
내 여태 본 중에 이렇게 조잡하게 얼렁뚱땅 만든 조형물은 첨 봅니다.
서재필 동상과 독립신문 발간사
우리가 독립신문을 오늘 처음으로 출판하는데 조선 속에 있는 내외국 인민에게 우리 주의를 미리 말씀하여 아시게 하노라 우리는 첫째 편벽 되지 아니한 고로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 귀천을 달리 대접 아니하고 모두 조선 사람으로만 알고 조선만 위하며공평이 인민에게 말 할 터인데 우리가 서울 백성만 위할 게 아니라 조선 전국 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대언하여 주려 함 정부에서 하시는 일을 백성에게 전할 터이요 백성의 정세를 정부에 전할 터이니 만일 백성이 정부 일을 자세히 알고 정부에서 백성에 일을 자세히 아시면 피차에 유익한 일 많이 있을 터이요 불평한 마음과 의심하는 생각이 없어질 터이옴 우리가 이 신문 출판 하기는 취리하려는 게 아닌 고로 값을 헐하도록 하였고 모두 언문 으로 쓰기는 남녀 상하 귀천이 모두 보게 함이요 또 귀절을 떼어 쓰기는 알아 보기 쉽도록 함이라 우리는 바른 대로만 신문을 할 터인 고로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요 탐관오리 들을 알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폐일 터이요 사사 백성이라도 무법한 일하는 사람은 우리가 찾아 신문에 설명할 터이옴 우리는 조선 대군주폐하와 조선 정부와 조선 인민을 위하는 사람들인 고로 편당 있는 의논이든지 한 쪽만 생각하고 하는 말은 우리 신문상에 없을 터이옴 또 한 쪽에 영문으로 기록하기는 외국 인민이 조선 사정을 자세히 모른즉 혹 편벽 된 말만 듣고 조선을 잘못 생각할까 보아 실상 사정을 알게 하고자 하여 영문으로 조금 기록함 그리한즉 이 신문은 똑 조선만 위함을 가히 알 터이요 이 신문을 인연하여 내외 남녀 상하 귀천이 모두 조선 일을 서로 알 터이옴 우리가 또 외국 사정도 조선 인민을 위하여 간간이 기록할 터이니 그걸 인연하여 외국은 가지 못하더라도 조선 인민이 외국 사정도 알 터이옴 오늘은 처음인 고로 대강 우리 주의만 세상에 고하고 우리 신문을 보면 조선 인민이 소견과 지혜가 진보함을 믿노라 논설 끝치기전에 우리가 대군주 폐하께 송덕하고 만세를 부르나이다 우리 신문이 한문은 아니 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는 것은 상하 귀천이 다 보게 함이라 또 국문을 이렇게 귀절을 떼어 쓴즉 아무라도 이 신문 보기가 쉽고 신문 속에 있는 말을 자세히 알아 보게 함이라 각국에서는 사람들이 남녀 무론하고 본국 국문을 먼저 배워 능통한 후에야 외국 글을 배오는 법인데 조선서는 조선 국문은 아니 배우더라도 한문만 공부 하는 까닭에 국문을 자라는 사람이 드묾이라 조선 국문하고 한문하고 비교하여 보면 조선 국문이 한문 보다 얼마가 낳은 것이 무엇인고 하니 첫째는 배우기가 쉬우니 좋은 글이요 둘째는 이 글이 조선글이니 조선 인민 들이 알아서 백사을 한문 대신 국문으로 써야 상하 귀천이 모두 보고 알어보기가 쉬울 터이라 한문만 늘 써 버릇하고 국문은 폐한 까닭에 국문으로 쓴건 조선 인민이 도로 잘 알아 보지 못하고 한문을 잘 알아보니 그게 어찌 한심하지 아니하리요 또 국문을 알아보기가 어려운 건 다름이 아니라 첫째는 말마디를 떼이지 아니하고 그저 줄줄 내려 쓰는 까닭에 글자가 위에 붙었는지 아래 붙었는지 몰라서 몇 번 일거 본 후에야 글자가 어디 붙었는지 비로소 알고 읽으니 국문으로 쓴 편지 한 장을 보자 하면 한문으로 쓴 것 보다 더디 보고 또 그나마 국문을 자주 아니 쓰는 고로 서툴러서 잘못 봄이라 그런고로 정부에서 내리는 명령과 국가 문적을 한문으로만 쓴즉 한문 못하는 인민은 나모 말만 듣고 무슨 명령인 줄 알고 이 편이 친이 그 글을 못 보니 그 사람은 무단이 병신이 됨이라 한문 못 한다고 그 사람이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국문만 잘하고 다른 물정과 학문이 있으면 그 사람은 한문만 하고 다른 물정과 학문이 없는 사람 보다 유식하고 높은 사람이 되는 법이라 조선 부인네도 국문을 잘하고 각색 물정과 학문을 배워 소견이 높고 행실이 정직하면 물론 빈부 귀천 간에 그 부인이 한문은 잘하고도 다른 것 모르는 귀족 남자 보다 높은 사람이 되는 법이라 우리 신문은 빈부 귀천을 다름없이 이 신문을 보고 외국 물정과 내지 사정을 알게 하려는 뜻이니 남녀 노소 상하 귀천 간에 우리 신문을 하루 걸러 몇 달간 보면 새 지각과 새 학문이 생길 걸 미리 아노라
높은 층의 아파트 단지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분위기가 좀 그렇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서대문형무소를 옮겨갔으면 할 것 같군요.
“우리가 할 일은 민족의 역량을 기르는 일이지, 남과 연결하여 남의 힘을 불러들이는 일이 아니다.”
시구문, 시체 들고 나가는 문이지요?
눕지 못하게 세워두는 고문실입니다.
이건 한술 더 뜨는군요.
독방입니다.
↑ ‘女獄舍 부속 창고부지 유적 발굴 조사’
↓ 여옥사(‘女獄舍)
‘경쟁률이 높았다고 한다.’
왜 스피커(브라운관) 모양으로 만들었을까요?
사형 집행하고 나서는 마루 밑 지하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교수대 뒷편입니다.
도르래가 있군요.
시신은 이곳 통로로 해서
사형장 지을 때 심었던 미루나무랍니다.
민주화운동하다 투옥된 인사들 수감되었던 방입니다.
생존해 있는 인사들도‥‥고은 시인의 방도 있더군요.
저 솥에다 동전 던져넣으랍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해서 모금을 한다나 뭬라나.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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