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26. 20:51ㆍ미술/한국화 옛그림
037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 색, 1420x615mm,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일반적인 수월관음도가 암좌에 반가좌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이 수월관음도는 물방울 형태의 광배 안에 서 있는 자세로 표현되어 있다. 관음보살이 딛고 선 연화좌는 물 속에서 솟아나 있으며, 물결무늬는 먹선으로 구불구불하게 그어 잔잔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결의 움직임을 나타냈다. 발치 앞에는 꽃묶음이 솟아올라 있고, 그 앞에는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향해 손을 모으고 있다.
관음보살이 양손을 가슴 앞까지 올려 한 손에는 정병을, 한 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있는 자세는 게간지, 조쿄지, 도쿠가와미술관 소장 아미타팔대보살도의 관음보살에서도 볼 수 있는 자세이다. 그러나 필선이 매우 가늘고 섬세하며 채색을 강하게 하기보다는 차분하면서도 단계적인 하이라이트 효과를 주려고 노력하는 점 등 표현상으로는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인다. 시대가 내려갈수록 표현기법과 형태가 단순, 경직, 공예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참고한다면, 필선이 세밀하고 존상의 형태가 늘씬하고 부드러우며 색채의 단계적인 변화를 살린 이 수월관음도의 제작 시기는 여타의 작품들보다 상당히 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연대는 없으나 이 수월관음도는 작품의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해동치납혜허필(海東癡衲慧虛筆)'이라는 명문을 통해 분명한 한국 작품임을 알 수 있고, 승려 화가인 혜허가 그렸다는 사실도 알 수 있는 고려불화의 기준작이다. 또한 기존 불화들의 화기에서 '筆'의 의미가 '그림을 그렸다'는 의미인지 혹은 단순히 '화기를 기록했다'는 의미인지 다소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 그림의 화기는 비록 기존의 의문을 분명하게 판가름해 줄 정도는 아니지만, '筆'이 '그림을 그렸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예이다.(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박혜원 글)
이 불화와 관련된 글들을 고등학교 동기들의 홈페이지에서 퍼왔다. 지난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한 고려불화전과 관련된 글도 있다.
1.유홍준 교수가 본 소감 옮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려불화대전-700년 만의 해후'(11월 21일까지)에는 내 평생에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포기하고 있던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사진>, 일명 물방울관음이 출품되어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일본에 고려불화가 많이 있다는 사실은 1967년 구마가이(熊谷宣夫)가 '조선불화징(朝鮮佛畵徵)'에서 그동안 막연히 송나라 불화라고 알려진 70여점이 고려와 조선 초기 불화라는 사실을 고증하고부터이지만
혜허(慧虛) 스님이 그린 이 수월관음도만은 일찍부터 알려진 고려불화 명작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1978년 야마토분카간(大和文華館)에서 열린 '고려불화 특별전'에 52점이 선보인 것은 한국미술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전시회에 물방울관음은 출품되지 않았다. 그리고 1981년 아사히신문사에서 발간한 '고려불화'라는 초호화판 화집에서도 물방울관음은 촬영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이번 특별전에서도 처음에는 센소지가 출품을 거부했다. 다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물의 존재 여부만이라도 확인시켜 달라는 요청에 간신히 응했는데 이 불화를 꺼내 왔을 때 관장과 학예원이 작품에 큰절을 올리는 것을 보고 감복하여 마음을 바꾼 것이라고 한다.
물방울관음은 과연 천하의 명작이다. 법을 구하기 위하여 찾아온 선재동자(善財童子)를 수월관음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는 그림으로 오른손엔 버들가지, 왼손엔 정병을 들고 서 있는 자세가 고아하기 그지없고 관음은 신비롭게도 물방울(혹은 버들잎)에 감싸여 있다.
본래 명작들은 사진 도판으로 익혀온 탓에 작품을 직접 보면 무덤덤하기 일쑤다. 그러나 이 물방울관음은 달랐다. 작품 앞에 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숭고하고도 아름다워라 고려불화여!" 는 찬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싶어 다시 들어가 하염없이 바라보다 마지못해 박물관을 나왔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미술사]
(참고 : 이 전시물은 복사본으로 진품은 전시장 안에 있었다. 이 복사본은 입구에 사진촬영용으로 전시했다)
2. 정진홍의 소프트파워에서 소감
<해동 승려 혜허(慧虛) 작품>
혜허란 법명은 빈 지혜, 지혜의 비움,앎의 허허로움을 가리킨다 그 작품 앞에 선 나 스스로가 물방울 모양의 광배 안에 담겨진 느낌이었다. 아니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가히 ‘진품의 위력’이었다.
그것은 그림 이상이었고 종교마저 뛰어넘은 그 무엇이었다.
머리로 헤아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앎과 삶의 허허로움 속에서 그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700여 년 전 승려화가 혜허가 스스로를 비워내며 그린 수월관음도는 현재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 센소지(淺草寺)에 소장돼 있다.
전문연구자들마저 도록(圖錄)으로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을 만큼 진품이 공개된 적이 거의 없는 혜허의 수월관음도가 700여 년 만에 모국의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작은 기적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최광식 관장이 전시대여 교섭차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만 해도 일본 센소지에 소장된 혜허의 수월관음도 자체를 실제 볼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전설처럼 회자되기만 하던 ‘물방울 관음’을 마주하게 된 최 관장은 자신도 모르게 그 불화 앞에 엎드려 삼배를 했다. 마음 같아선 108배를 할 요량이었지만 공식적인 자리라 그러진 못했다.
센소지 주지는 말없이 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최 관장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 얼마 안 있어 ‘물방울 관음’을 한국의 고려불화대전 전시에 내놓겠다는 믿기지 않는 연락이 왔다. 아마도 불화를 보자마자 전시대여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세상 셈법을 다 접고 허허로이 삼배부터 한 최 관장의 마음모양새에 센소지 주지의 마음도 움직였으리라.
그렇다. 세상만사 마음문제다.
욕심내지 말고 앎을 자랑하지 말며
그저 허허로운 마음으로 대하면
만사가 스스로 풀리는 법!
3. 주요 일간지 기사중에서
전시장 한복판,
감실처럼 조성된 어두운 공간에 그림 한 점에만 조명이 떨어진다.
온 세상 중생의 고난을 보살핀다는 자비(慈悲)의 관세음보살이
비단 화폭 속에서 고고한 자태로 빛나고 있다.
슬픈 듯 우수에 젖은 눈빛,
팔에 걸쳐진 채 발아래까지 내려오는 투명한 베일,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다.
일반적인 수월관음도가 바위에 걸터앉은 모습인 것과 달리,
이 수월관음도는 물방울 모양 광배(光背) 안에 서 있는 자세여서
'물방울 관음'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관음보살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물 위를 스치는 옷자락 끝까지
흐르는 선(線)의 아름다움,
차분하면서도 단계적인 농담(濃淡)으로 효과를 준 색채감이
환상미의 극치를 이룬다.
화면 오른쪽에는 '해동(海東) 승려 혜허(慧虛)가 그렸다'는 글씨가 남아있다.
교과서 등에서 고려불화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일본 현지에서도 한 번도 전시되지 않았던 이 그림이
처음으로 현해탄을 건너 고국 땅을 밟았다.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최광식 )이 용산 이전 개관 5주년을 기념해
2010년 10월 12일 개막하는
고려불화대전(大展)-700년 만의 해후》를 위해서이다.
11월 2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회에는
일본· 미국 ·유럽·한국 등에 소장된 고려불화 61점,
이들과 비교, 감상을 위한 중국 ·일본 불화 20점,
고려불화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전기 불화 5점,
고려불상과 공예품 22점 등 108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고려불화는 일본의 사찰과 박물관을 비롯한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
이번 전시는 출품기관만 44곳에 이른다.
이번 특별전을 기획하고 2년 동안 준비한 민병찬 전시팀장은
"출품작 대부분이 한국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으로,
소장한 사찰에서 '그림도 한 번쯤은 자기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겠나'
라면서 대여를 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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