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성소(丹城疏)

2015. 3. 5. 18:11책 · 펌글 · 자료/역사

 

  

 

 

 

남명(南冥) 조식(曺植), 단성현감직소(丹城縣監辭職疏)

 

 

 

 

선무랑(宣務郞)으로 새로 단성현감에 제수된 조식은 진실로 황공하여 머리 조아려 주상전하께 소를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건데, 돌아가신 임금님(중종)께서 신이 보잘것 없는 줄 알지 못하시고 처음에 신을 참봉에 제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전하(명종)께서 왕위를 계승하셔서는 신을 주부(主簿)에 제수한 것이 두 번이었거니, 이번에 또 현감에 제수하시니 신은 떨리고 두려워 미쳐 큰 산을 짊어진 것 같아 감히 인재등용에 정성을 쏟고 계시는 임금님 앞에 나아가 하늘의 해와 같은 그 은혜에 감사드릴 수 없습니다.

 

 

신이 생각하건데, 임금이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마치 대목(大匠)이 목재를 취해 쓰는 것과 같습니다. 깊은 산 큰 골짜기에 버려지는 재목이 없도록 모든 좋은 재목을 다 구해다가 훌룽한 집을 이루는 것은 대목에게 달렸지 나무가 스스로 참여할 일은 아닙니다.

 

 

전하께서 인재를 등용함은 한 나라를 알아 다스리는 책임입니다. 전하의 인재를 등용하려는 큰 은혜를 감히 사사로운 일로 생각할수 없습니다. 신은 혼자서 걱정되어 견딜 수 없는 지경이므로 신이 머뭇거리며 벼슬길에 나가기를 어려워하는 뜻을 전하께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이 벼슬길에 나가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두가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신은 나이가 예순에 가깝고 또 학문이 엉성하면서도 어둡습니다. 신은 문장실력은 전날에 과거의 끝자리에도 끼지 못했고, 신의 행실은 물 뿌리고 비질하는 예절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합격하려고 10년 동안 노력했지만 세번 실패하고서 그만 두었으니 애초부터 지조 있게 과거를 일 삼는 사람도 아닙니다. 가령 과거 합격을 탐탁찮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조그마한 절개나 지키는 선량한 사람에 불과할 뿐 크게 나라를 위해 무슨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인재가 아닙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훌륭한가 형평없는가 하는 것은 결코 과거에 합격하기를 바라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이 과거를 통해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고 해서 신을 대단하게 보실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보잘 것 없는 신이 명예를 도둑질해서 담당관리의 눈을 속였고, 담당관리는 저의  이름을 잘못 듣고서 전하를 그르쳤습니다.

 

 

전하께서는 신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십니까?

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장에 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장에 능한 사람이라고 꼭 도가 있는 것은 아니고, 또한 도가 있는 사람은 신처럼 이렇치 않습니다. 전하께서 신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승도 또한 신을 알지 못합니다. 그 사람됨도 모르면서 저를 등용한다면 훗날 국가의 수치가 될 것이니 그 죄가 어찌 이 보잘것없는 신에게만 있겠습니까?

 

 

신이 거짓된 이름을 바쳐 몸을 팔아 벼슬에 나가는 것이 진짜 곡식을 바쳐 벼슬을 사는 것 보다 어찌 나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차라리 이 한 몸을 저버릴 수는 있어도 전하를 져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신이 벼슬길에 나가기 어려워하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전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없어졌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미 이반되었습니다. 비유컨대, 큰 고목나무가 100년 동안 벌레에 속이 패어 그 진이 다 말라버려 언제 폭풍우가 닥쳐와 쓰로질지 모르는 지경에 이른 지 이미 오래입니다.

 

 

조정에서 벼슬을 하는 사람들 치고 충성스런 뜻을 가지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하지 않는 이 없지만, 나라의 형세가 아주 위태로워 사방을 둘러보아도 손 쓸 곳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낮은 벼슬아치들은 아랫자리에서 히히덕거리며 술과 여색에만 빠져있고, 높은 벼슬아치들은 윗자리에서 빈둥빈둥 거리며 뇌물을 받아들여 재산 긁어모으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오장육부가 썩어 뭉크러져 배가 아픈 것처럼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식의 벼슬아치들은 자기들의 당파를 심어 권세를 독차지하려 들기를, 마치 온 연못 속을 용이 독차지하고 있듯이 합니다. 외직에 있는 벼슬아치들은 백성 벗겨 먹기를, 마치 여우가 들판에서 날뛰는것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죽이 다 없어지고 나면 털이 붙어있을데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백성을 가죽에 비유한다면 백성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세금은 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신이 자주 낮이면 하늘을 우러러 깊이 탄식하고 밤이면 천장을 바라보고 답답해하며 흐느끼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비(문정왕후)께서는 신실하고 뜻이 깊다 하나 실은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는 아직 어리니 다만 돌아가신 임금님의 한 고아에 불과합니다. 백 가지 천 가지로 내리는 하늘의 재앙을 어떻게 감당하며 억만 갈래로 흩어진 민심을 어떻게 수습하시겠습니까?

 

 

냇물이 마르고 하늘에서 곡식이 비처럼 떨어지니 하늘의 재앙은 이미 그 징조를 보였습니다. 백성들의 울음소리는 구슬퍼 상복을 입은 듯하니 민심이 흩어진 형상이 이미 나타났습니다. 이런 시절에는 비록 주공같은 분의 재주를 겸하여 가진 사람이 대신의 자리에 있다 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풀잎이나 지푸라기 처럼 보잘것 없는 신 같은 사람이겠습니까?

 

 

신은 위로는 만에 하나라도 나라의 위태로운 사태를 붙들 수 없고 아래로는 털끝만큼도 백성들을 보호할 수 없으니 전하의 신하되기는 또한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조그마한 헛된 이름을 팔아서 전하께 벼슬을 얻는다 해도 그 녹을 먹기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신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이점이 신이 벼슬하러 나가기 어려워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또 신이 요사이 보니 변경에 일이 있어(왜구의 침략으로 전라도 일대가 함락된 음묘사변을 말함) 여러 높은 벼슬아치들이 제때 밥도 못먹을 정도로 바쁜 보양입니다만, 신은 놀라지 않습니다. 이 일이 벌써 20년전에 일어날 일인데도 전하의 신성한 힘 때문에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발발한 것이지 하루아침에 갑자기 발발한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조정에서는 뇌물을 받고 사람을 쓰기 때문에 재물은 쌓이지만 민심은 흩어졌던 것입니다. 결국 장수 가운데 자격을 갖춘 자가 없고 성에는 수성할 군졸이 없으므로 왜적이 무인지경에 들어온 것입니다. 어찌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이번 사변도 대마도 왜놈들이 몰래 결탁하여 앞잡이가 되었으니 만고에 씻지 못할 큰 치욕입니다. 전하께서 영묘함을 떨치시지 못하고서 그 머리를 재빨리 숙였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 대해서 신하로 복종하던 대마도 왜놈들을 대접하는 의례가 천자의 나라인 주나라를 대접하는 의례보다 더 융숭합니다.

 

 

윈수인 오랑캐를 사랑하는 은혜는 춘추시대 송나라보다 한술 더 뜨십니다. 세종대왕 때 대마도를 정벌하고 성종대왕 때 북쪽 오랑캐를 정벌하던 일과 비교하여 오늘날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런 일은 겉으로 드러난 병에 불과하지, 가슴속이나 뱃속의 병은 아닙니다. 가슴속이나 뱃속 병은 덩어리지고 막혀서 아래위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랏일을 맡은 공경대부들이 이 문제점을 해결해보려고 목이 마르고 입술이 타 들어갈 정도로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아, 백성들 가운데 수레가 있는 이들은 수레를 타고 피난 가고 수레가 없는 이들은 달려서 피난가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에게 호소하여 군사를 불러 모아 전하를 위해 부지런히 일하게 하고 나랏일을 정리하는 것은 자질구레한 형벌제도 따위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오직 전하의 마음 하나에 달려있습니다. 마음을 극진히 하면 그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 있는바, 그 틀은 전하에게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무슨 일에 종사하시는지요?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풍악이나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활쏘기나 말타기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어디 있느냐에 나라의 존망이 달려있습니다. 만약 하루라도 능히 새로운 정신으로 께달아 분연히 떨쳐 일어나 학문에 힘을 쏟으신다면, 하늘이 부여한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날로 새롭게만드는 일에 얻으시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하늘이 부여한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만드는 일 안에 모든 착한 것이 다 포함되어 있고, 모든 교화도 거기로부터 나옵니다.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을 거행한다면 나라는 고루 잘 다스려질 것이고 백성을 화합하게 될 것이며 나라의 위기도 안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을 요약해서 잘 간직한다면 사람을 알아보거나 일을 판단함에 거울처럼 맑고 거울처럼 공평하지 않을 수 없을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어질것입니다. 

 

 

불교에서 이른바 '眞定(참된 경지의 선)'이라 하는 것도 단지 이 마음을 간직하는 것에 있을 따름입니다. 위로 하늘의 이치를 통달함에 있어서는 유교나 불교가 한가지입니다만, 일에 적용할 때 불교는 그 발 디딜 곳이 없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 유가에서는 불교를 배우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불교를 좋아하고 계신데 그 불교를 좋아하시는 마음을 학문에 옮기신다면 공부하는 것이 우리 유가의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은 마치 어려서 집을 잃은 아이가 그 집을 다시 찾아 부모, 친척, 형제나 옛 친구 등을 만나보게 되는것과 같을 것입니다.

 

 

더욱이 정치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전하 자신의 경험으로 인재를 선발해 쓰시고 道로써 몸을 닦으십시오. 전하께서 사람을 취해 쓰실 때 솔선수범 하신다면 전하를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들이 모두 사직을 지킬 만한 사람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람을 취해 쓰실 때 눈으로 본것만 가지고 하신다면 곁에서 모시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하를 속이거나 져버릴 무리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런 때가 되면 굳게 자기 지조라도 지키는 고견 좁은 신하인들 어찌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뒷날 전하께서 정치를 잘하셔서 왕도정치의 경지에까지 이르신다면, 신은 그런 때에 가서 미천한 말단직에 종사하며 심력을 다해서 직분에 충실하면 될 것이니 어찌 임금님 섬길 날이 없기야 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마음을 바로 잡는것으로서 백성을 새롭게 하는 바탕을 삼으시고, 몸을 닦는 것으로서 인재를 취해 쓰는 근본을 삼으셔서, 임금으로서의 원칙을 세우십시오. 임금이 원칙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게 못하게 됩니다.

 

 

엎드려 생각건데, 전하께 신의 상소를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신은 두려워 어쩔 줄 몰라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나이다.

 

 

 

 

 

선조실록 6권, 5년( 1572 년 2월 8일 ) 

 

 

 

 

 

 

 

남명이 1555년 단성 현감을 사직하며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인 <을묘사직소>,

소위 <단성소>에는 당시의 정치제도나 군신관계로 볼 때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극언들이 포함돼 있다.

이 <단성소>는 명종 임금과 대비인 문정왕후를 진노하게 하고 조정 중신들을 놀라게 함은 물론,

온 지식인들도 겁에 질려 손에 땀을 쥐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