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2. 21:06ㆍ산행기 & 국내여행
일주문에다 왜 보기 싫게 곁다리를 또 받쳤을까? 아름드리 다리 두 개면 충분한 것을.
나무 기둥 밑에는 왜 저리 큰 돌로다 뽀다구 안나게 받쳐놨을까?
잘 살펴보고 머리 굴려보믄 알게 되우다.
내가 이태 전인가 3년 전인가 왔었는데, 그때도 딱 이맘때 아니었나?
이 시답지 않은 절에 글쎄, 국보 두 개에다 보물이 네 개라니.
대웅전도 上대웅전 ·下대웅전으로 두 개.
上대웅전
맞배지붕이 뭔지, 팔작지붕이 뭔지, 우진각지붕이 뭔지,,
주심포가 뭔지, 다포식이란 건 또 뭔지를,,
아시우?
난 이번에 알았수.『사라진 건축의 그림자』읽고서.
이 사진을 가지고 말로 설명하긴 그렇고,
언제 절에 가거들랑 물어보슈.
실물을 보면서 들어야만 이해가 쉽소이다.
아니면 나처럼 책을 읽고 가서 실물을 보든가.
그런데 이 장곡사 上대웅전은 완전 짬뽕이우다.
신라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가 다 섞여있수.
* 주춧돌과 법당 바닥타일(연화문방전)은 신라시대(8장만),
기둥과 보(창방)는 고려시대,
기타등등은 조선시대,
애초에는 주심포로 지었었는데 고쳐 짓고 하다보니
다포식이 가미된 아주 특이한 건물이 되었소이다.
풍경이 왜 이 자리에 매달렸는지 아오?
한옥건축에서 가장 바람을 많이 받는 자리가 네 모서리라고 합디다.
들어 앉아서도 풍경소리만 들으면 ‘아 바람이 얼마 만큼 부는 구나!’
맞배지붕으로 지은 집의 측면, 이 가림막 널판지를 ‘방풍’이라고 합니다.
비가 들이치는 걸 막기 위해선 필요불가결하긴 합니다만,
이게 과연 건축 미학상 맞는 방식인지는 의문이오.
앞치마 두르고 외출한 여자 같소이다.
어??? 불상이 없어졌다????
오른쪽에는 국보인 철조약사여래좌상과 가운데는 보물인 비로자나불상이 있었는데,?????
어느 박물관에다 빼앗긴 모양이우다.
아닌게 아니라 국보를 맡겨두기엔 절이 너무 허술합디다.
바닥타일(연화문방전)을 일본놈들이 많이 뜯어갔답디다.
고려시대에 만든 것이라는데, 신라시대 것도 8장이 있다고 하고.
저것 보세요. 뽀개지고 부러지게 생겼습니다.
이 큰 대들보가 기둥에 얹혀진 것이 아니라 양 옆에 저 받침대에 겨우 의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위에서 눌리키는 거 보세요. 버티겠습니까?
지금 하중 받는 바로 그곳이 꺾인 겁니다. 위험한 상황이예요.
보기 싫더라도 한 가운데다 쇠기둥으로 받쳐야 되겠습니다.
주심포로 설계를 해놓고는 다포식으로 지은 꼴이라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기둥은 고려시대, 주춧돌은 신라시대. 나머진 조선시대.
下대웅전
이것이 바로 맞배지붕에 다포식입니다.
하체에 비해서 상체가 너무 크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균형미가 없지요?
요 정도의 건물은 주심포로 지어야 맞을 듯한데, 암튼,
고려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해서 보물로 지정됐을 겁니다.
기둥 사이 보(창방+평방) 위에도 받침대(공간포=공포)가 있지 않습니까? (대웅전 현판 좌우에 있는)
바로 이런 방식이 ‘다포식’이고,
기둥위에만 받침대가 있는 것을 ‘주심포’라고 하는 거외다.
설선당
기둥과 보(창방)를 잘 보세요. 기둥 위에만 받침대가 있지요.
주심포식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설선당은 下대웅전 지을 때 같이 지은 건물입니다.
집을 두번에 걸쳐서 늘인 겁니다. 왼편에 보면 보를 하나 덧 이었지요?
그런데 모양이 어떻습니까? 책에도 안 나오는 방식입니다. 야전식이라고나 할까.
국보 2개에 보물이 4개씩이나 되는 절집에다 이러면 어캅니까.
이것도 좀 아닌 것 같은데…… 새로 지은 건물이 두 개가 생겼더군요.
이것이 장곡사에 있는 국보 두 점 중의 하나인 괘불탱인데,
‘복원’ 작품이라기 보다 ‘복사본’이라고 해야겠지요.
진품은 역시 박물관에서 빼앗아가면서 대신 이걸 남겨주려고 한 모양입니다.
‘운학루’ - 헛간으로 사용합디다.
경허스님 글씨가 이 장곡사에 있다고 하는데, 절 주인은 모르는 소리라고 하고,,
설마 이건 아닐테고......
범종루 / 운학루
범종루는 팔작지붕입니다.
장곡사에는 골고루 다 있네요. 건축 공부하려면 여기로 와야겠습니다.
이 집도 늘렸군요. 늘리는데 재미 붙였습니다 그려.
이건 무슨 식이냐‥‥ 기양 기와집입니다.
신륵사 조사당 기둥의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놓아 입면상 하나의 공포대를 횡으로 구성하여 매우 화려한 모습을 가지는 형식이다. 위쪽의 무게가 기둥 뿐만 아니라 벽을 통하여도 전달되므로 기둥머리를 연결하는 횡부재인 창방만으로는 상부의 하중을 지탱하기 어려워 창방 위에 평방이라는 횡부재를 하나 더 올려 놓아 공포를 구성한다.
다포식 양식은 고려후기에 기둥위에만 짜여지지 않고 기둥사이 공간에도 창방위에 두꺼운 평방을 더 올려 놓은 양식이다.
- 특징 : 교두형 첨자를 사용하며 배흘림이 심하지 않고 부재가 규격화 투박화 되는 것을 내부 반자를 두어 은폐하였다. 건물을 장중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포작도 여러층 겹쳐 짜고 팔작지붕으로 하고 있다.
- 건축물 : 고려 후기: 심원사 보광전(1374), 석왕사 응도전(1386)
조선 초기 : 서울 남대문(1448), 봉정사 대웅전, 율곡사 대웅전
조선 중기 : 전등사 대웅전(1621) , 법주사 팔상전(1624), 내소사 대웅전
조선후기 : 불국사 극락전(1751) 대웅전(1765), 해인사 대적광전(1796)
다포식상세구조도
익공계
기둥 위의 밖으로는 쇠서의 형태로, 그리고 안으로는 보아지의 역할을 하는 하나의 부재를 기둥머리에 맞물리게 끼우고 그 위에 주두 두공과 쇠서를 짜서 공포를 꾸미는 형식이다. 따라서 외관상으로는 주심포 형식과 유사하게 보이나 주심포에서 보이는 헛첨차의 위치에 놓이는 쇠서 보아지가 하나의 판의 형태로 기둥과 주두를 함께 감싸고 있어 그 위로 주두 위에 놓이는 쇠서의 하단부와 서로 맞닿게 되는 형태를 가진다. 익공은 놓여지는 쇠서의 수에 따라 초익공과 이익공으로 대별되며 이익공은 그 상단에 주두와 같은 형태의 납작한 재주두를 놓아 대둘보 머리를 받치기도 한다. 익공 형식은 외관이 다포계의 건물처럼 화려하지 않으나 부재의 양이 훨씬 줄어들며 또한, 치목과 결구의 합리적인 방법 때문에 사찰의 부속건물이나 궁궐의 편전과 침전, 문루, 그리고 향고나 서원, 상류주택 등 조선시대의 각종 건물에 폭넓게 사용되었다.
조선초기에 주심포 양식을 간략화 한것으로 기둥위에 새 날개처럼 첨차식 장식을 장식효과와 주심도리를 높이는 양식이다.
- 특징 : 장식 부재가 하나인 초익공 또는 익공과 부재를 두개 장식한 이익공이 있어 관아, 항묘, 서원, 지방의 상류 주택 에 많이 사용되었다.
- 건축물 : - 조선 초기 : 옥산서원 독락동(1532,초익공), 강릉 오죽헌(이익공)
- 조선 중기 : 서울 동묘(초익공), 서울 문묘 명륜당(1606, 이익공)
- 조선 후기 : 경복궁 향원정, 수원 화서문 (1796)
하앙 양식
하앙 양식은 처마를 들어 올리고 처마를 깊게 돌출시키기 위해서 발단된 양식이다.
- 특징 :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지붕서까래와 도리 밑에서 건물 안으로부터 밖을 길게 뻗어 나와 처마 를 받쳐주는데 사용되었다.
- 건축물 : 완주 화암사 극락전, 금산사 미륵전
모든 구조에 대한 설명은 주심포계설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cafe.daum.net/kumdan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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