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리 성당', 어쩜 그리 예쁘냐?

2014. 11. 5. 21:30산행기 & 국내여행

 

 

 

아산 《공세리 성당》 참 예쁩니다. 꼭 한번 가보세요.

봄은 어떨까 모르겠는데, 지금이 딱 좋은 계절일 듯합니다.

《현충사 느티나무 가로수길》 보고 와서, 여기 《공세리 성당》보고, 《삽교 방조제》에서 점심먹고

그리고 《도고온천》들려서 목욕하고 가면 ........

 

 

 

 

 

 

 

  

 

 

 

 

 

 

 

 

 

 

 

 

 

 

  

 

 

 

 

 

 

 

 

 

 

 

 

 

 

 

 

 

 

 

 

 

  

 

 

 

 

 

 

 

 

 

 

 

 

 

 

 

 

   

 

 

 

 

여길 보니까 강경 《나바위 성당》이 생각나는데,

《나바위 성당》도 건물이라든가, 조망이라든가, 배치라든가, 여건이 여기 못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외려 더 낫습니다.

입구가 비좁은 동네 골목길에다, 주차장도 없어서 그런데,

 

앞에 있는 마을 전부를 사들여서 주차장 만들고, 조경을 잘해서 꾸미면

얼마든지 여기보다 더 멋질 수 있는 성당입니다. 역사도 의미도 깊은 곳이잖아요.

땅값도 싸더구만.... 여길 보니 아까운 생각이 자꾸 듭니다.

50억원~100억원 정도만 들이면 될 듯한데.....

 

 



 

Ernesto Cortazar / In My Heart

 
 
 
 

 

 

(( 펌글 ))

 

원래 이곳 공세리는 세곡을 운반하던 조창이 있던 곳이었다. 삽교천을 통해 바다로 빠져나가 서울로 가는 길이 오백리였으며, 해상교통의 요충지였기에 각지에서 모인 세곡을 보관하는 조창이 있어 마을 이름도 공세리가 된 것이란다. 시기마다 다르지만 전국 9개 조창중의 하나로 나라의 세곡을 담당한 중요한 지역이었다. 공세리가 담당했던 천안과 청주 인근 지역과 충청도 대부분의 세곡을 책임지게 되었으니 전라도 다음가는 충청의 세곡을 총괄하는 조창으로 그 규모가 대단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러다 조창제도가 폐지되어 창고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자 가톨릭의 드비즈 신부가 이곳을 매입하여 지금의 공세리 성당을 이루게 된것이다. 말하자면 육신을 채웠던 곡식 창고가 정신을 채워주는 신앙의 창고가 된셈이다. / 한편 창고를 헐고 새로 한옥풍 성당을 지었다가 늘어나는 신자들을 감당할 수 없어 지금의 자리에 고딕풍의 현 성당을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불러 1922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충남에서는 최초이고 전국에서도 9번째의 근대 건축 성당이다. 공세리 성당은 합덕성당에서 갈라져 나온 성당인데 건립 시기는 오히려 앞선다고 한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단아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성당은 100여 년의 시간을 보내온 역사의 장소라 하겠다. / 이곳 공세리 성당이 이명래 고약의 발상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이명래 고약에 대해 들어본적이 있을것이고 이명래 고약을 직접 사용도 해보았을 것이다. 70년대 TV광고에도 나왔던 '이명래 고약'이 이곳 신부님이셨던 드비즈 신부님이 만든것이다. 처음에는 드비즈 신부의 한국명을 따서 '성일론 고약'이라 불렸는데 효과가 좋아 인기가 많아짐으로써 이 고약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명동성당의 가톨릭 신자였던 이명래 요한에게 전수하였고 이후 이명래 고약으로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것이란다.

 

베껴온 곳. blog.daum.net/kis3535/7833510   두레박

 

 

 

 

 

 

삽교방조제가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