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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미술 이야기 (책)

손철주,『인생이 그림 같다』

 

 

 

탁 까놓고 말씀드리죠. 저 아직 그림에 어둡습니다.

괜히 대중 미술서 하나 낸 죄로 얼결에 전문가然하고 있습니다만,

눈 밝고 귀 밝은 이들이 어쩌다 까탈스런 질문이라도 던질 양이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답니다.

그런 사람 앞에서 지지 않으려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도 이제 밑천이 떨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정유위 조무위(靜有威 躁無威)라 한다지요. 조용한 가운데 위신이 서고 나대면 그것마저 날아 간다는 것.

그림 보면서 말 많이 하다 보면 일쑤 들통난다는 거, 저도 압니다.

짐짓 묵상에 들어간 표정이라도 지어야 전시장에서 대접받기도 하니까요.

 

전문가들 말 어렵게 하는 건 큰 병폡니다. 그거 다 믿지 마세요. 누가 뭐라든 제 눈에 꽃이면 다죠 뭐.

재밌는 건 말이죠, 특히 난해한 그림을 두고 제가 씹어대면 듣는 이들이 그렇게들 좋아하데요.

아, 그런데, 평소 저처럼 떠들면 될 걸 왜 사람들은 울화증을 삼키고 있었던 거죠? 맘에 안 들면 안 든다, 좋으면 좋다.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왜 떠드는 걸 주저할까요?

저는 작가의 의도와 감상자의 그림 읽기가 서로 다를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상자는 너와 내가 그림을 본 느낌이 일치했으면 하는 희망,

그리하여 공감이 주는 안도감을 누리고 싶은 욕구, 이런 동일시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일시는 절대로 불가능한 허욕입니다.

차라리 차이를 인식하는 게 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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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강산이 그림 같구려!”

“이보시오, 강산이 그림 같다니,, 강산이 그림에서 나왔소, 그림이 강산에서 나왔소?” (연암)

 

 

 

“아니 산수화를 그려달랬는데, 어찌 산은 있고 물은 없소?”

“야 이눔아, 그림 밖이 다 물이다.”  (최북)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도 못 읽는다더니. 오호 애재라, 이밥으로 개밥차린 꼴이로다.”  (≒김종직)

 

 

 

“처마 끝의 빗소리는 번뇌를 멈추게 하고, 산자락의 폭포는 속기를 씼어준다.”  (明 예윤창)

 

 

 

“뼈빠지는 수고를 감당하는 나의 삶도 남이 보면 풍경이다.”  (손철주)

 

 

 

눈 똑바로 뜨고 못 볼 것이 두 가지 있으니, 하나가 추태요, 하나가 미태이다.

 

 

 

문장의 뜻은 읽히면서 그려진다. 회화의 뜻은 보이면서 읽혀진다.

글을 읽으매 그림을 보고, 그림을 보매 글을 읽는다.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고 소동파는 말했다.

 

 

 

 

 

조속, <숙조도(宿鳥圖)> 조선 17세기. 78 x 50

 

 

 

추사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를 예전에 재미삼아 평했던 기억이 나는데,,  아, 그게 아닙니다.

보면 볼수록 명품입니다. 세한도는 여기에 비할 바가 못 되네요.  작품제작 연대도 세한도 한참 뒤더군요. 어쩐지.....

 

 

 

 

낮술이 약해졌나 봅니다. 천천히 드십시다. 까짓것 오늘 하루 제끼죠.

제가 그림 이야기 묶어서 책 한 권 냈잖아요. 그래선지 여기저기서 그림쟁이들 얘기 좀 해달라고 주문을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거 뭐 부를 노래 다 부른 놈이 앵콜 받는 기분입니다.

요새 젊은 독자들 성미가 참 까탈스럽대요. 먼지 묻은 얘기는 딱 싫어합니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괜히 한 수 뒤지는 느낌, 그거 고약합니다.

왕년에 놀아본 사람일수록 그 느낌은 더욱 강한 법이지요.

밑천 다 털어 실컷 지껄이고 나면 돌아서서 “저 늙다리, 뽕짝이네.”하는 게 젊은 치들입니다.

그래도 전 일부러 버팅깁니다. 깐놈들이 신곡 읊어봤자 그게 그거지, 논다니 골에 들병이만 하겠습니까.

새 것 들고 자랑하는 사람을 기 죽이는데 가장 약발 잘 받는 게 뭔 줄 아십니까? 바로 헌 것의 푸근함입니다.

연암 박지원, 조선 땅에 전무후무 공전절후입니다. 이 사람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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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인이 쓴 글 중에 읽는 이의 마음을 사람잡는 저자 둘을 꼽으라면,

단연코 혜곡 최순우와 근원 김용준이다.

혜곡의 문장은 사근사근 씹히는 배 맛이다.

근원의 글에서는 누긋한 저녁놀이 떠오른다. 근원의 에세이『근원수필』은 그 중 백미다.

 

 

 

센노 리큐 선사가 강조한 것은 ‘와비’와 ‘사비’의 정신이다.

‘와비’는 결손의 정서에 가깝다. 그러나 모자라되 아쉽지 않고, 헐벗되 비루하지 않은 경지다.

그래서 와비는 가난의 미학과 통한다.

‘사비’는 한적한 정서에 가깝다. 스산하되 외롭지 않고, 고요하되 무료하지 않은 경지다.

유적(그을할幽 고요할寂)의 미학이다.

 

 

 

때가 되면 해마다 피는 벚꽃 / 벚꽃나무 쪼개 봐라 벚꽃이 있는가”  (잇큐선사)

 

 

 

떨어지는 꽃은 뜻이 있어 흐르는 물을 따르건만 / 흐르는 물은 무정타, 떨어진 꽃 흘려보내네

(落花有意 隨流水 / 流水無情 送落花)

 

 

물이 흐르니 마음이 초조해지지 않고, 구름이 있으니 뜻이 모두 느려진다.

 

 

경(景)은 정(情)이 없으면 드러나지 않고, 정(情)은 경(景)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음을 알겠다.

 

 

 

 

앞섶을 끄르고
프롤로그 - 마음껏 떠듭시다

에필로그 - 사라지고 싶구나
앞섶을 여미고

 

 

 

손철주 이 양반, 글을 재밌게 잘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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