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개업 곡입니다. "Scottish Fantasy"

2012. 7. 30. 20:43음악/classic

 

 

 

누굴 기다리는 중일까?

아니면, 저 먼 데로 나아갈 궁리를 하는 것일까? 

 

 

 

 

 

 

 

 

 

 

 

 

 

 

 


Bruch, Scottish Fantasy in E♭ major Op.46

브루흐 / '스코틀랜드 환상곡'

Max Bruch 1838-1920


 

 

1838년 쾰른에서 태어나 1920년 베를린에서 타계한 막스 브루흐는 살아생전에는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큰 명성을 누렸던 인물이다. 독일과 영국을 오가며 지휘자로 맹활약했고, 베를린 음대의 저명한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했다. 작곡가로서는 무엇보다 ‘합창음악의 대가’로 각광받았는데 특히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와 같은 오라토리오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또 스물다섯 살 때 발표한 출세작 <로렐라이> <헤르미오네>로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 분야에도 족적을 새겼으며 교향곡도 세 편을 남겼다.

 

 

하지만 오늘날 브루흐의 이름은 ‘협주곡 작곡가’로 기억된다. 특히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G단조는 그에게 최고의 성공작이자 영원한 족쇄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는 평생 동안 이 매력적인 작품을 능가하는(적어도 필적하는) 협주곡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심초사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그가 남긴 다양한 협주곡 작품 중에서 다음 두 곡은 명예의 전당에 추가될 만하다. 하나는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콜 니드라이>이고, 다른 하나는 어쩌면 G단조 바이올린 협주곡보다 한층 더 풍부한 선율과 리듬, 다채로운 상상력을 머금고 있는 <스코틀랜드 환상곡>이다.


스코틀랜드 민요 선율에 기초한 자유로운 환상곡

브루흐가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작곡한 것은 1879년에서 1880년에 걸친 겨울 동안, 베를린에서였다. 당시 그는 곧 영국 리버풀의 필하모니 협회의 음악감독(1880~83)으로 부임할 예정이었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브루흐는 이 곡을 영국, 그 중에서도 스코틀랜드의 민요에서 유래한 영감과 상상력으로 채웠다. 다만 보다 직접적인 작곡 동기는 그가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월터 스코트(Walter Scott)의 작품에서 감동을 받은 데 있다고 전해진다.


사실 민요는 브루흐에게 있어서 창작의 원천이었다. 그는 20대 중반부터 영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민요들을 꾸준히, 면밀히 연구했고 그 성과를 자신의 음악에 반영했다. ‘선율’이야말로 음악에서 절대적인 존재라고 믿었던 그는 특히 민요 선율의 소박한 단순성에 주목했다. 브루흐는 하나의 좋은 민요 선율이 2백 개의 다른 음악 선율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단언했고, 민요가 지닌 내면성, 잠재력, 독창성, 그리고 아름다움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스코틀랜드 환상곡>은 그런 브루흐의 신념과 주관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올린 독주와 하프가 포함된 2관 편성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위한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 민요 선율에 기초한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곡은 스코틀랜드 민요에 기초한 선율, 그리움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사진은 에든버러 성의 모습.

 



 

악보 상으로는 네 악장으로 나뉘어 있지만 실제로는 3악장 구성처럼 들리는데, 그것은 중간의 스케르초 악장과 완서 악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첫 악장 앞에는 느린 서주가 놓여 있으며, 첫 악장이 통상적인 빠른 템포가 아니라 느린 템포로 진행되는 것도 이채로운 점이라 하겠다.


서주 : 장중하게(Grave) Eb단조, 4/4박자

무겁게 탄식하는 듯한 관현악의 울림이 장송곡풍의 쓸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시작된다. 그 위로 바이올린 독주가 랩소디 풍의 선율을 얹어놓는데, 때로는 지그시 누르는 듯 흐르고 때로는 격하게 솟구쳐 몸부림치는 그 선율은 우수와 비감으로 가득하다. 말미의 페르마타에 이어 쉼 없이 제1악장으로 이행한다.


제1악장 : 매우 느리게 노래하듯이(Adagio cantabile) E♭장조, 3/4박자

관현악의 섬세한 울림이 다분히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운데 하프의 아름다운 탄주가 두드러지며 환상적인 아우라가 피어오른다. 그 속에서 바이올린이 스코틀랜드 민요 '늙은 롭 모리스(Auld Rob Morris)'에 기초한 선율을 그윽하게 노래한다. 풍부한 표정과 따뜻한 정감으로 가득한 그 흐름은 듣는 이의 가슴에 애잔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제2악장 : 빠르게(Allegro) E♭장조-G장조, 3/2박자

스케르초에 해당하는 악장. 목관의 울림이 스코틀랜드 민속악기인 백파이프를 연상시키는 관현악의 당당하고 힘찬 마르카토로 시작되어 이내 무곡풍의 리듬이 부각된다.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유쾌한 선율은 역시 스코틀랜드 민요인 '먼지투성이 방앗간 주인(Dusty Miller)'에 바탕을 두고 있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화려하고 다채로운 기교를 구사하는 변주가 한 동안 이어지다가, 종반부로 접어들면 템포가 아다지오로 느려지며 첫 악장을 회상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흐름 그대로 단락 없이 다음 악장으로 넘어간다.

 

제3악장 : 음 하나하나를 충실히 다루며 느리게(Andante sostenuto) A♭장조, 4/4박자

바이올린이 다시금 스코틀랜드 민요에 기초한 선율을 노래한다. 그 민요의 제목은 ‘조니가 없어 나는 적적하다네(I'm a-doun for Lack O'Johnnie)’. 처음에는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노래가 잔잔히 흐르다가 차츰 분위기가 고조되어 중간부에 이르면 바이올린은 절절하고 격정적인 어조로 드높이 날아오른다. 그리고 다시 차분한 어조로 가라앉아 조용히 마무리된다.


제4악장 : 빠르게 전투적으로(Allegro guerriero) E♭장조, 4/4박자

시작과 함께 바이올린의 힘찬 독주로 부각되는 이 악장의 주제선율은 중세 스코틀랜드의 전투가 ‘우리 스코트 사람들은 월레스의 피를 흘렸다(Scots Wha hae wi Wallace bled)’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 바이올린은 눈부신 기교를 뽐내며, 하프도 다시금 활약한다. 전반적으로 활기차고 현란하며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 악장이지만, 중간에 C장조의 ‘조금 고요하게(Un poco tranquillo)’ 부분이 삽입되어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종결부 직전에는 템포가 아다지오로 느려진 가운데 잠시 첫 악장의 주제를 회상하는 장면이 놓여 있다.

 

 


Jascha Heifetz violin

Sir Malcolm Sargent conductor

New Symphony Orchestra of London

Recorded in 1961

Gangwon Lee(이강원) violin

Sung Kwak(곽승) conductor

Daegu Symphony Orchestra(대구시립교향악단)

2011.12.02

 

가슴 속에 간직한 그리움을 노래하다

브루흐는 이 곡을 쓰면서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때 그랬던 것처럼 독일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나 정작 1881년 2월, 리버풀에서 요아힘과 이 곡을 협연했을 때 그는 요아힘이 작품을 망쳐버렸다며 불평했다고 한다.


사실 브루흐는 이 곡을 <치고이너바이젠>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바이올리니스트 파블로 사라사테를 위해서 썼고 그에게 헌정했으며, 함부르크에서의 초연(1880년 9월)도 그와 함께 치렀다. 이 곡의 바이올린 독주부가 바이올린 협주곡 1번에 비해 한층 더 적극적인 기교를 과시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곡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전편을 관류하는 주된 정조가 ‘그리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돌이켜보면 브루흐는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느린 악장에서도, <콜 니드라이>에서도 그리움의 정서를 노래했다. 그것은 무엇을 향한 그리움이었을까? 브루흐는 언젠가 자신의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바로 바덴바덴에 있는 독일 숲과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단다.”


브루흐의 고향은 쾰른 근교의 산지였다. 그는 친근한 지인들이 사는, 그리고 어린 시절 익숙했던 라인 지역의 환경이 있는 그곳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20대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고향을 떠나 독일 각지를 돌며 지휘자 생활을 해야 했고, 최종적으로 베를린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음악 속에서 그토록 사무치는 그리움을 노래한 이면에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더구나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쓸 무렵에는 독일도 아닌 머나먼 영국에서의 체류가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는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의 높은 산과 계곡

  

“아들아, 나는 작품에 대한 구상과 생각을 대부분 자연에서 얻는단다. 유감스럽게도 삶의 많은 시간을 대도시(베를린)에서 보내야만 했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너희들을 위해서 강단에 서야 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삶에 봄이 찾아오고, 그 푸르름이 만발할 때, 내 안에서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소리가 들려온단다. 그때 나는 사랑하는 고향에서 즐겁게 산 숲을 방랑하지. 그러면 내 안은 온갖 멜로디들로 가득 채워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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