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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미술 이야기 (책)

'세잔 패러독스'

 

 

 

 

세잔을 얘기할 때 나는 곧잘 '세잔 패러독스'라는 단어를 쓴다.

미술계에 그런 말이 통용되지는 않는다. 내 스스로 지어낸 용어이기 때문이다.

세잔 작품의 특징은 쉽게 그린 듯하다는 점과 좀 못 그린 듯한 치졸함에 있다.

그러면서 대단히 역설적이게 서양미술사는 피카소에 대해 가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세잔만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세잔을 비판한다는 것은 서양미술인들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금기사항이다.

좀 못 그린 듯한 그림이 비판조차 초월할 정도의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역설,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절망감이 나와 같은 문외한에게 '세잔 콤플렉스'를 안겨주는 것이다.

『서양미술사』를 쓴 곰브리치의 말도 떠올려보았다.

"세잔은 이루어냈다. 그는 분명히 불가능한 일을 성취해낸 것이다.

왜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갑자기 이루어졌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가서 원화를 보라는 것이다."

파리의 인상파 미술관에서 나는 곰브리치의 조언에 따라 여러 차례 세잔의 원화를 보았다.

하지만 '세잔 패러독스'를 이해할 수 없어 그때마다 괴로웠고,

또 '세잔 콤플렉스'에서 헤어날 수 없어 외로웠다.

의 엑상 프로방스 행은 그 역설과 열패감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좋다, 그렇다면 그가 평생 동안 묻혀 살며 작업헤온 프로방스로 가리라.

가서 100여장의 연작을 그린 생 빅토와르 산을 직접 보리라.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다면 내 미래에서 세잔을 지우리라."

그런 모진 결심을 하고 엑상 프로방스로 갔다.

 

- 박인식, 『그리움은 그림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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