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조성관 지음)

2010. 12. 17. 16:05책 · 펌글 · 자료/예술.여행.문화...

 

 

 

 

프라하 시가지와 보헤미아 평원을 거니는 동안 줄곧 한가지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이곳이 정녕 20년 전 공산통치에 신음하던 땅이란 말인가.

프라하에서 공산통치라는 그 무시무시한 시대를 아무리 기억해 내려 해도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왜 그럴까?

그 해답을 얻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문화예술의 힘이었다.

수세기에 걸쳐 눈과 비로 대지를 적시며 땅 속 깊이 스며든 문화예술의 자양분은 어둠의 심연에서도 체코인을 보양했다.

그랬다. 41년간 체코를 억누른 공산주의 이념은 한줄기 손기를 뿌리고 지나가는 여름철의 먹장구름에 지나지 않았다.

 

모짜르트는 비엔나를 사랑했지만 비엔나는 모짜르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모짜르트에게 희망의 빛은 프라하에서 비쳤다.

그의 걸작 <돈 지오반니>는 프라하市의 요청을 받아 쓰여져 1787년 10월 29일 스타포프스케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마술피리> 역시 프라하에서 더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다.

프라하가 없었다면 모짜르트는 비엔나에서 절망할 기력조차 없었을 것이다.

모짜르트는 최후의 걸작 교향곡 38~41번 중 38번 곡을 '프라하'라고 명명했고 프라하에서 초연되었다.

모짜르트는 잘츠부르그에서 태어나 비엔나에서 성장했지만 정녕 그의 음악을 이해하고 사랑한 곳은 프라하였다.

모짜르트가 숨졌을때 비엔나 사람들은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지만

프라하 시민들은 성 미쿨라셰 성당에 모여 장례미사를 올렸다.

그곳이 프라하다.

 

 

 

 

 

 

1. 카프카

    - 경계인의 운명 (1883~1924)

 

 

"카프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실하지만 세상에 낙담한 채 자신의 길만을 외롭게 걸었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무방비 상태의 인간을 전멸시키는, 보이지 않는 악마로 가득찬 세계를 보았다.

카프카는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예민했고, 아름답고 고결한 존재가 그렇듯 투쟁하기에는 너무 허약했다.

아름답고 고결한 존재들은 몰이해와 두려움, 지적인 거짓말에서 느끼는 두려움으로 인해 싸움에 참여할 수가 없다.

카프카는 타인을 알 수 있는 위대한 감식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유별나고도 심오한 방법으로 세계를 파악했던 카프카는 그 자체로도 유별나고도 심오한 하나의 세계였다.

이 책들은 건조한 아이러니와 감각적인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세계를 투명하게 파악하기 때문에 카프카는 이 세계를 감당할 수 없으며, 이성적 사고가 아니라면 카프카에겐

죽음만이 남는 것이다."

 

- 삶의 긴 여로는 고독하고 고통스러웠지만 원점으로 회항하는 길은 행복했다.

이승에서 마지막 사랑을 불태운 도라 디아만트가 병상에서 그의 손을 잡아주었고,밀레나 예젠스카가 그를 위해

불후의 추도사를 썼으니.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을 눈에 담고 눈을 감는 것처럼 아름다운 여행길이 또 있을까.

나치에 의해 비참하게 죽어간 여동생들을 생각하면 카프카의 요절은 차라리 축복이었다.

 

(p 65~66)

 

 

 

 

 

2. 포먼

     - 은유와 풍자의 거장 (1932~ )

 

 

밀로스 포먼은 1932년 2월 18일 프라하 서쪽 교외의 작은 마을 차슬라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1932년에 유대인으로 체코에 태어났다.' 이 문장 속에는 개인은 도저히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가공할 비극적 운명이 도사리고 있었다.

1932년이면 히틀러가 권력을 향해 질주하던 시점이다.

1938년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체코는 히틀러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포먼이 여섯 살때였다.

포먼의 일가는 당시 중유럽과 동유럽에 살던 유대인이 겪어야 했던 비극의 역사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밟았다.

포먼 부모는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부모의 비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어떤 개인도 없다. 부모의 비극은 어떤 형태로든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유대인 구역(요제호프)에 있는 핀카스 유대교회는 유대인 구역의 쇼케이스 같은 곳이다.

프라하에 와서 이곳을 와보지 않고 카를교와 구시가광장과 프라하성만 보고 간다면 프라하를 제대로 본 것이 아니다.

수많은 체코 유대인들이 프라하 북쪽에 있는 테레진 강제수용소에 보내졌다가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나치 처형장으로 간 유대인 중 돌아오지 못한 77,297명의 명단이 핀카스 유대교회 벽에 새겨져 있다.

벽면에는 바닥부터 천정까지 이름 알파벳이 빼곡하게 쓰여 있다. 어림짐작으로 가로 세로 1.5센티미터 정도의 크기.

노란색은 지명, 붉은색은 가문의 이름, 즉 성이고 검정색은 이름이다.

사망자 이름은 노랑 빨강 검정으로 반복되다가 어느 지점부터는 더 이상 노란색이 나오지 않는다.

프라하는 중유럽과 동유럽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이 거주한 곳이다.

(p72~73)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 <소방수의 무도회> <래리 플린트> <헤어> <래그타임>

 

 

왜 체코는 영화가 발전했을까?

 

1) 문학이 일상생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 국민 개개인이 시집 소설 희곡을 끼고 사는 나라,

1년에 17,000종의 책이 출간되는 나라가 체코다.

2) FAMU에서 매년 우수한 영화 인재들을 배출한다.

3) 체코는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까지 보유하고 있는 유럽에서 유일한 나라다.

영화제작의 하드웨어는 바츨라프 하벨의 아버지가 1931년 세운 바란도프 스튜디오다.

<나니아 연대기> <본 아이덴티티> <닥터 지바고> <블레이드 2> <시베리아 이발사> <레미제라블>

<잔 다르크> <미녀와 야수> <미션 임파서블> 등이 바란도프를 거쳤다.

4) 도시 전체가 중세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때문이다.

프라하는 말할 것도 없고 카를로비 바리, 체스키 크롬로프, 리토미슬 등은 최고의 로케이션 장소로 유명하다.

 

 

 

 

 

 

3. 스메타나

    - 체코 국민음악의 아버지 (1824~1884)

 

 

5년 사이에 아내와   세 딸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서른다섯의 남자,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비극 중에 이보다 더한 비극이 또 있을까.

그해 여름 스메타나는 체코의 럼베르크라는 마을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피폐한 육신을 추스리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열아홉 살의 베티나 페르디난디를 만난다.

스메타나는 예테보리에서 수많은 연서를 베티나에게 보냈고,

두 사람은 1860년 7월에 결혼식을 올린다.

 

스메타나가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 것은 1884년 4월초,

매독균이 혈관을 타고 뇌까지 침범했다. 한번 발작을 일으키면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스메타나 박물관에는 죽음과 관련한 여러 자료가 있다.

공식 문건인 사망확인서에는 사망 원인과 관련해 '부끄러운 이유(shameful reason)'f라고 표기해 놓았다.

스메타나의 장례식은 그가 콜라로바와 결혼식을 올렸던 성 슈테판 교회에서 치러졌다.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곳이 같다는 점은 모짜르트를 떠올리게 한다.

 

 

 

 

 

 

4,. 드보르자크

    - 코스모폴리탄적 예술혼 (1841~1904)

 

 

 

 

 

5. 쿤데라

   - 베일에 싸인 보헤미안 (1929~ )

 

 

"인간 실존의 탐구로서의 소설.

나는 소설을 고해성사의 형태로 결단코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 여기에 담겨 있다.

인생에서든 문학에서든 고백하는 것에 나는 저항감을 느낀다.

나의 삶은 나의 비밀이며 그 누구와도 상관 없다." (《밀란 쿤테라의 문학》) 

 

쿤데라는 너무나 많은 오늘날의 소설들이 가면을 쓴 고백록이나 자서전에 불과하다면서

그런 식의 소설관과는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우리 자신의 삶과 관련이 있지요.

소설은 개인적인 정념들에서 태어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실질적으로 탄력을 갖는 것은 자신의 삶과 이어진 탯줄을 끊어버리는 순간,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이 아니라 그냥 삶 그 자체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입니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들을 상상하고

내겐 실험적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인물들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권의 소설은 전혀 자전적인 것이 아니라 극도로 개인적인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자신이 그려낸 인물들 속에서 우리 자신의 가능성을 보게 되고,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는 존재,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존재를 만나게 되죠."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소설가 밀란 쿤데라.

세르반테스의 정신을 이어가는, 소설을 소설이게 하는 진정한 작가.

그에게 노벨 문학상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주 사소한 문제로 보였다.

 

 

 

 

 

 

6. 하벨

   - 진정한 체코의 지성 (1936~ )

 

 

벨벳혁명은 전세계가 감도안 한 편의 드라마였다.

벨벳혁명의 중심에는 진리와 도덕의 원칙을 지켜온 하벨이 있었다.

불과 2개월 전만해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국회의원이나 장관은 커녕 단 하루도 공직에 있어본 적이 없던 하벨.

그러나 체코인 어느 누구도 극작가 출신의 대통령 하벨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벨의 집권 이후 집권당 지도부, 의회, 행정부에 들어온 인물들은 대부분 철학자, 시인, 작가, 음악가였다.

 

"나는 우리 모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전체주의에 익숙해 있었으며 그 체제를 바꿀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 오래 지탱할 수 있도록 협력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정도는 다르다 하더라도 당연히, 전체주의가 어느 정도 작동하도록 한 데 대하여 우리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전체주의의 희생자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공범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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