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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미술 이야기 (책)

이인상《長白山》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道不遠人 人遠道),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는데 세속이 산을 떠나는구나(山非離俗 俗離山)”       

 

 

 

                                                                                           <장백산도> 종이에 수묵, 26.5*122.0  풍서헌소장 

 

 

 

(전략)

 

18세기 문인화가 이인상은 오직 '去俗'이란 한마음으로 붓 방망이질을 한 사람이다.

오백 년 조선사를 거슬러도 겸재 정선을 넘는 산수화가가 없고

단원 김홍도를 제칠 풍속화가가 없다는데,

이인상은 그 둘과 겨루지 않고 문인화의 최고봉에 버티고 앉은 화가다.

그의 우뚝한 좌정에 관해서는 미술사가들 사이에 다툼이 없다.

 

(중략)

 

이인상이 남긴 가로 1미터가 넘는 장폭의 그림 <장백산>을 보자.

한눈에 봐도 정치한 기색이 없어 무성의한 느낌이 든다.

퀭하고 휑하니 핍진하다기보다 소루하고, 채웠다기보다 비운 그림이다.

가까이 보이는 두 산봉우리에 몇 그루 나무를 그려넣었으나 울창하지 않다.

오른쪽 중턱에 반쯤 정자가 보이지만, 저 뒤편에 물러나 있는 산들은 무심할 정도로 어렴풋하다.

인적이라곤 찾을 수 없고, 켜켜이 내려앉은 시간이 적막과 공소가 지배하는 공간을 쓰다듬고 있다.

화가는 무슨 심회로 외마디 소식조차 없는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 왼쪽 아래에 어련무던한 글씨가 보인다.

번역해 보면 그린 까닭이 읽힌다.

"가을 비 내리는 날, 계윤의 집에 갔다. 그가 종이를 내놓으며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다.

언뜻 곽충서가 종이연을 그린 일이 생각났다.

계윤이 내가 너무 나태하다고 말한다.

장백산을 그리고 붓을 놓은 뒤 함께 웃었다."

(* 계윤은 이인상의 친구로 당대의 명필인 김상숙의 字다.)

 

(중략)

 

곽충서(郭忠恕)는 宋나라 화가다.

곽충서는 국자감 주부를 제수 받았지만 술에 취해 조정에서 쟁론을 벌이다

말이 방자하다는 이유로 등주로 유배되었고 풀려나서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성품이 매이기를 싫어했지만 세속을 등지지도 않았다. 술을 좋아하고 교유가 활달했다.

흥이 일면 예의범절에 구애받지 않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돌아가기를 잊었다.

 

그는 그림 주문을 자주 받았다.

어느 날 부자가 향응을 베푼 뒤 비단꾸러미를 펼치며 그림을 그려달라고 떼를 썼다.

그는 마지못해 붓을 들었다.

어린아이가 연을 날리는 그림인데 왼쪽 아래에 아이를, 오른쪽 위에 종이연 하나를 달랑 그렸을 뿐이었다.

텅 빈 곳에는 아이와 연을 연결하는 가느다란 실만 그려넣었다.

 

(중략)

 

이인상도  <장백산>을 완성해 놓고 보니 여백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곽충서의 일화를 떠올렸다.

장백산은 백두산의 다른 이름이지만 제발(題拔)의 행간을 따져보면 '빈(白) 곳이 너무 많다(長)'는 뜻이겠다.

이인상이 나태하다는 지적은 그림을 다 채우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다시 한번 ,장백산>을 보자.

후세 역사가들은 말했다. "능호관의 그림을 대하면 이마에 일진광풍이 스쳐지나가고,

맑고 스산한 문기가 서려 마음이 조촐해진다."

이인상의 올곧은 심상과 군더더기 없는 처신을 떠올릴 수 있다면 이 그림의 겉이 아닌 속을 본 사람이라 하겠다.

그렇다 해도 저 비어 있는 속수무책의 공간은 어쩔 셈인가.

유정함이라곤 한 치도 없는 외진 막막함. 여백은 격절이다.

한 소식조차 들을 수 없는 저 여백에서 나는 목마른 정적과 맹렬한 적멸을 느낀다.

 

(후략)

 

 

글 손철주. '꽃 피는 삶에 홀리다'서 발췌함.

 

 

 

 

 

 

필자미상의 <이인상 초상>,

종이에 채색,51.0*33.0  국립중앙박물관

 

 

 

.

.

 

 

 

 

 

근데 이 양반, 문자 디게 쓰네? 

‘붓 방망이질’, , 소루’, 적막과 공소’, 여백은 격절’, 맹렬한 적멸’,  . . . ,  아,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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