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짤트와 천재 음악가들

2009. 9. 11. 12:44음악/음악 이야기

 

 

 


 

 

 

 

                                                        모짜르트 생가 (짤츠부르그)

 
 


                                             모짜르트가 유년기에 살던 집. (짤츠부르그)

 

 

 

오폴트 모짜르트는 빈에서 그의 친구이며 자금 출자인이었던 로렌츠 하제나우어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들의 왕과 조국의 영광을 위해서 神이 잘츠부르크에 태어나게 한 기적을 알리려는

정직한 사람들이라네.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이 기적을 입증하려면, 지금 그것을 할 수 밖에 없네.

모든 사람들이 기적같은 일을 조롱하고 부인하고 있으니 말이네."  

다섯살 때부터 유럽을 두루 돌아다닌 어린 연주가로서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지만,

작곡가로서의 조숙성은 사람들로부터 의혹을 샀고 때로는 적대감까지 불러일으켰다. 

자신들의 재능을 과시하려던 다른 음악가들의 의욕을 꺾었기 때문에 위험한 경쟁자로 평가받았다.

 

"내딸은 열두 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유럽에서 가장 능숙한 피아니스트 축에 든다네.

그리고 내 아들은 마흔 살 먹은 사람과 그 지적 수준이 비슷하지.

그가하는 연주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라도 믿을 수 없을 정도라네."

 

"이 소나타들이 세상을 시끄럽게 할 소란을 생각해보십시요.

 제목 위에 이것이 일곱살 짜리 아이가 작곡한 것이라고 써 있는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직접 와서 확인해보시라고 초대했을때  일어날 소동 말입니다."

 

 

 

 

 

                                               모짜르트가 연주하던 극장 (짤츠부르그)

 

 

 

                                        모짜르트 어머니와 누나가 살던 집 (짤츠감머굿)

 

 

 

랑스 궁정에는 빈에서 온 아홉살 난 천재적인 클라비어 연주가가 머물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프랑수아 조셉 다르시스였는데,  모짜르트의 작품을 연상케하는 여섯 개의 소나타를 발표하였다.

공연 첫날 평가는 이러했다. ;

 "이 음악은 열두살 난 다르시스라는 개구쟁이의 것이다.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형편 없었다.

작품 내내 재능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창의성의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 그의 부모들은 모짜르트의 속편을 만들기 위해 2~4년 전에 파리로 데려왔다.

이 모자란 아이를 젊고 매력적인 모짜르트와 비교함으로써 모짜르트를 모욕주진 않았다."

다르시스는 1778년 프랑스를 떠났고, 몇년 뒤에 러시아로 사라졌는데, 이후의 근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시 독일 사람들은 15년 전 모짜르트 가족이 거두었던 승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요한 베토벤도 자신의 아들을 그런 식으로 과시하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중략...

네페는 <음악 잡지>에서

"열한 살의 어린 베토벤은 결코 흔하지 않은 소질을 타고났다.

 이 어린 천재는 후원을 받으며 여행을 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아이다.

이대로 계속한다면, 확실히 제2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가 될 것이다."

이 글에서도 베토벤의 나이 (당시 대략 열두살을 넘긴)를 계속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모짜르트의 경쟁자들이 사로잡혀 있는 조숙성의 강박 관념에 대한 증거다.

  

 

마리아 폰 베버아버지는 아들을 "놀라운 어린이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세 살때부터 음악을 가르쳐 열한 살에 미하엘 하이든에게 제자로 맡겼다.

그 무렵에 베버는 첫 작품 <여섯 개의 작은 푸가>를 작곡했다.  

 

프란츠 슈베르트 스물 한 살이 되기 전에 모든 장르에 걸쳐 600곡 이상을 작곡했다.

  

 

 


                                  슈베르트「보리수」의 그 보리수 나무 (짤츠부르그 城)
 
 
 

스페인의 모짜르트라는 후앙 크리소스토모 아리아가 열네 살때,

자신의 유일한 오페라 작품인 <행복한 노예들>을 무대에 올렸다. 

 

펠릭스 멘델스존 틀림없이 낭만주의 시대 천재 음악가의 원형이 될 것이다.

그는 열한 살부터 작곡을 시작해서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 이미 130 여 편의 작곡을 했다. 

 

어린 리스트의 연주회에 대한 격찬 일변도의 비평들 가운데, 마르탱빌이 <흰색 깃발>에 연재한 평론을 보자.

 "일은 일어나고 말았다. 나는 어제 저녁부터 윤회설을 믿기 시작했다.

  나는 모짜르트의 영혼과 재능이  어린 리스트의 육체 속으로 옮겨진 거라 확신한다.

  그는 모짜르트 그 자체였다."

  

짜르트가 이 시기에 천재적인 음악가의 상징이 되었고,

그때부터 모든 조숙한 재능을 재는 척도가 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카라얀이 살던 집 (짤츠부르그)

 

 

 

 

 

- 『천재의 역사 』중에서  p 112~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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