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26. 09:50ㆍ음악/음악 이야기
18세기 중후반의 런던으로 가보자.
산업혁명이 발 빠르게 진행되던 당시의 런던은 유럽에서 가장 번잡한 도시였다.
산업화에 등 떼밀린 농민들은 속속 런던으로 올라와 공장이나 부두의 노동자로 일했다.
당연히 도시 빈민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1750년 런던 인구는 약 65만명. 영국 전체 인구의 11%였다.
프랑스 전체 인구의 2.5%가 파리에 거주했던 사실에 견준다면,
당시 런던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얼마나 급속히 진행됐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런던 상인’으로 대변됐던 신흥 부르주아들은 도심에 3, 4층짜리 ‘우아한’ 집을 짓고 살았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노동자들은 외곽의 지저분한 거주지로 모여들었다.
아직 찰스 디킨스(1812~1870)가 등장하기 전이었다.
디킨스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 템스강 인근에 다닥다닥 붙은 더럽기 짝이 없는 집들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극빈을 묘사했던 것은 1830년대의 일이었다.
하지만 런던의 ‘빈부 풍속도’는 이미 18세기 후반에 자리잡은 풍경화였다.
템스강의 하역 인부와 나이 어린 굴뚝 청소부들은 당시 런던의 가난한 계층을 상징하는 존재들이었다.
특히 ‘런던 상인’의 집에서 굴뚝을 닦던 청소부는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었다.
그래야 굴뚝을 드나들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들이 굴뚝에서 그을음을 닦아내다가 화상을 입었고,
어떤 아이들은 연기에 질식해 죽었다.
그래서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굴뚝 청소부’(The Chimney Sweeper)라는 시는
얼핏 낭만적 풍경화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참상’의 기록이다.
바로 그 18세기 후반, 런던에서 공연예술이 하나의 ‘산업’으로서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런던 상인들을 중심으로 한 신흥 부르주아지가 공연예술의 새로운 수요층으로 떠올랐고,
음악회를 비롯해 인형극과 서커스 등이 도심 곳곳에서 공연됐다.
당연히 이 흐름을 주도했던 흥행업자들이 등장했을 터.
오늘날로 치자면 ‘공연기획사’ 혹은 ‘매니지먼트사’로 불리는 직종이 바로 이 무렵에 출현했던 셈이다.
이 공연예술의 산업화는 파리를 비롯한 다른 도시에서도 진행됐지만 런던만큼 발 빠르게 시장을 키워간 도시는 없었다.
그런 흥행업자 가운데 요한 페터 잘로몬(1746~1815)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독일인이었다.
애초에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작곡도 가끔 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연주나 작곡보다 장사 쪽에 한층 수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1781년에 ‘물 좋은’ 런던으로 건너와 연주회를 기획해 표를 팔기 시작했고, 단숨에 흥행업자로 성공했다.
작곡가 하이든을 런던으로 불러들인 사람이 바로 그였다.
당시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하인 음악가’로 30년을 봉직하다 1790년 후작이 사망하자 겨우 족쇄에서 풀려났던 상태.
그런 하이든을 잘로몬이 손짓했다. 하이든의 입장에서 그것은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
하지만 음악사는 하이든의 ‘욕망’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보다 규모가 크고 훈련이 잘 된 영국 오케스트라와 연주하기를 원했던 것으로 기록한다.
어쨌든 하이든은 1791년 새해 첫날 런던에 발을 내디뎠고, 흥행업자 잘로몬의 요청에 따라 12곡의 교향곡을 작곡해 초연했다.
교향곡 93번부터 104번까지. 이른바 ‘잘로몬 교향곡’ 혹은 ‘런던 교향곡’으로 불리는 일련의 작품들이다.
그것은 모차르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6개의 교향곡과 함께 ‘고전주의 교향곡의 완성’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오늘날 빈번히 연주되는 곡은 94번 ‘놀람’과 96번 ‘기적’, 100번 ‘군대’, 101번 ‘시계’, 103번 ‘큰북 연타’, 104번 ‘런던’ 등.
하이든이 이전에 작곡한 교향곡에 비해 규모가 한층 커졌고,
불특정 다수의 청중을 염두에 둔 듯 대중적 선율이 자주 등장한다.
아울러 당시 런던에서 부와 인기를 얻었던 하이든의 고조된 마음을 대변하듯 경쾌하고 활발한 에너지감도 넘친다.
하지만 하이든의 런던 교향곡을 들으면서 어린 굴뚝 청소부의 퀭한 두 눈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신흥 부르주아지들이 연주회장에서 음악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그 순간,
런던의 또 다른 곳에서는 키 작은 아이가 굴뚝을 닦고 있었다.
그것이 18세기 후반, 런던의 두 얼굴이었다.
<문학수 선임기자>
String Quartet in D Major, Op.64 No.5
Hob.111:63 "The Lark"
현악 4중주곡 D장조 작품 64의 5 종달새
Kodaly Quar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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