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동아일보 광고면
1974년인가 75년에 동아일보가 박정희 유신정권으로 부터 광고 탄압을 받은 적이 있었다. 광고면이 하얗게 공란으로 나왔었다. 툭하면 고정간첩이니 빨갱이니 하여 서슬이 하 시퍼래서 어느 누구도 입 한번 벙끗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당시 고등학생에 불과했던 우리가 이심전심으로 돈을 모아서 반 이름으로 광고를 냈다. '2학년 3반 일동', '3학년 7반 일동'... 이런 식이었다. 아마 전교의 모든 학생이 참여했던 것으로 안다. 학년당 10개반이었으니 30개다. 명찰 크기만한 사이즈로 나왔는데 가격이 얼마였었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경복고던가 용산고가 스타트를 끊었었고 다음이 우리였는데, 곧바로 전국의 세칭 명문고가 다 참여를 했다. 나는 그것이 민주화를 갈망하던 국민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을 거라고 지금도 확신한다. 우리 동창들은 지금도 그 추억을 떠올릴 때면 다함께 우쭐해진다. 물론 교장선생님은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혹독한 문초를 당하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학생은 물론이고 선생님들에게도 이렇다 저렇다 할 일언반구가 없으셨었다. 그저 늘 묵묵히 운동장 주변에서 돌멩이나 쓰레기 줍는 게 그 교장선생님의 일과였다. 말씀도 어눌하신데다가 말수까지도 없으셔서 조회시간의 교장선생님 훈화래봐야 3분 남짓이었다. 우리가 그랬으니 교무실 분위기도 살벌했을 것이다. 당시에 선생님들간에도 서로 통 말씀들이 없으셨단다. 그런데 아침에 출근해 보면 선생님들 책상마다 신문이 한장씩 놓여있었는데,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모르셨지만 알려고도 하지 않으셨단다. 비겁함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초를 당할 경우를 예상하면 그럴만 했다는 생각도 든다. 다들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신문을 읽고는 각자가 알아서 '처리'하셨다고 한다. 졸업후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반정부신문을 돌린 건 한문 선생님이셨단다. 학생들마다 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존경하는 선생님 목록엔 그 선생님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한문 선생님이 참 유머러스했다. 이 분도 교장선생님처럼 말수가 없으셨는데 어떻게 하시는 말씀마다 웃음이 난다. 그렇다고 금방 박장대소를 하게 웃기는게 아니라 뒤늦게 말뜻을 알아듣고는 책상에 머리 쳐박고 소리 삼키며 웃어야 되는 그런 웃음, 그런 고품격의 유머를 잘 하셨다. 세월이 지나 10년 20년 되니까 엉뚱하게(?) 그 선생님이 그립다는 동창들이 부쩍 많아졌다. 특히 선생질을 하는 친구들일수록 더 그렇다. 엊그제 같던 일이 어느덧 30년 세월도 더 지난 일이 돼버렸는데, 아무리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어쩌다가 동아일보가 이런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도 안 되거니와 속상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록 지난 세월 독재권력의 앞잽이로 민주화의 크나큰 장애물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오만방자한 언론권력으로 국민과 정부 위에 군림하며 온갖 모략과 왜곡을 일삼는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아일보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려 한다. 이 심정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나와 함께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은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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