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月臺

2023. 3. 31. 17:41책 · 펌글 · 자료/예술.여행.문화...

 

 

 

 

 

월대가 있는 주지봉은 월출산 주 능선에서 한참 벗어난 서쪽 끝자락에 있다. 바위산인 월출산은 해발 800m 남짓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종주에만 예닐곱 시간이 족히 걸릴 정도로 험준하다. 월출산에서는 어디를 가든 적잖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정상인 천황봉은 물론이고 사자봉도, 구름다리도, 육형제봉도, 통천문도 고된 산행 끝에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여기 월대는 다르다. 월대는 산 아래 구림리 죽정마을에서 오르면 걸어서 20분쯤, 뒷짐 지고 유유자적한다 해도 30분이 채 안 걸린다.

월대는 문산재(文山齋) 위에 있는 바위다. 문산재는 산 아래 구림마을의 학동을 가르치는 서당이었다. 산 아래 있던 구림마을 서당을 문수암이란 산속의 암자 터로 옮기고 ‘문수서재’라 부르다가 ‘문산재’로 현판을 바꿔 달았다.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서당을 왜 마을 가운데 두지 않고 굳이 산속으로 옮겨갔을까. 그건 ‘터가 품고 있는 기(氣)’ 때문이었다. 월출산 주지봉 아래 문자향(文字香)의 기운이 단단하게 맺힌 자리로 서당을 옮긴 것이었다. 그 바람에 구림마을 학동들은 매일 문산재까지 오르내리느라 적잖이 힘들었겠다.

문산재 위에는 대암(大巖)이란 큰 바위가 있고, 그 위에 거대한 공깃돌처럼 올려진 바위가 월대다. 대암에서 바라다보이는 영암의 구림마을과 그 너머 영산강 일대의 경관도 빼어나지만, 바위를 딛고 월대 위에 올라서서 보는 경관에 비할 수는 없다. 월대에 앉으면 눈앞에 펼쳐지는 장쾌한 경관 덕분에 세상 부러울 게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월대나 문산재까지는 죽정마을에서 짧게 오를 수 있지만, 왕인박사유적지 쪽에서 동백 숲길을 걸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유적지 깊숙한 곳의 너럭바위에 조암(曺巖)이라 새겨진 빨래터가 있는데, 거기서 문산재까지 이어지는 상록림 숲길이 있다. 문산재까지 거리는 2㎞ 남짓. 마지막의 경사구간만 빼면 내내 오르내림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길이 부드러워 걷는 맛이 좋다. 이 길을 일찌감치 알아본 건 산 아래 구림마을 주민들이다. 이 좋은 길을, 주민들만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