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심우도 여행

2021. 6. 17. 18:59책 · 펌글 · 자료/종교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 2020.10.21. 페이지수288 |

 

 

책소개

이 책은 특정한 종교적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십우도에서 불교 ·그리스도교 · 베단타 철학 ·노장사상 등 다양한 종교와 고전들에서 말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주제, 곧 ‘본래의 나를 만나는 의식의 변화’를 읽어 낸다. 십우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신성(神性)을 찾으라고 가르치는 세계의 다양한 종교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다. 책에는 저자들이 다양한 종교 전통과 철학, 신화, 과학 등의 고전을 종횡무진하며 얻어낸 빛나는 인문학적 통찰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문득 삶이 불안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 참나를 찾아갈 용기를 가지라고 조언하는 이 책이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저자 :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한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에서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 등의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 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종교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저자 : 성소은
일본 릿쿄대학교 법학과,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정치학을 전공하고 이후 한일 양국 정부와 국제기구에서 일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는 성경 구절에 이끌려 20여 년 이어온 기독 신앙을 졸업하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하는 선불교의 법어에 이끌려 3년간 참선 출가수행을 했다. ‘나는 누구인가.’를 참구하면서 선물처럼 “아하!”를 체험하고 기쁨으로 환속했다.
사슴이 먹이를 찾으면 “유유” 하고 주변 사슴을 불러모아 함께 먹는다는 ‘녹명(鹿鳴)’을 필명으로 삼고,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학습하는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를 이끌고 있다. 인간사회와 종교 현상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위해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유튜브 채널 ‘녹명살롱’에서 모두의 자유로운 삶을 희구하며 ‘유유(遊遊)’하고 있다.
저서로는 『경전 7첩 반상』, 『선방에서 만난 하나님』, 『종교 너머, 아하!』(공저)가 있다.

그림 : 최진영
마음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그림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sns에 짧은 이야기가 있는 디지털 드로잉과 일상적인 낙서를 기록하며 다양한 형태의 웃음들을 모으는 중이다.

 

 

목차

 

여행을 떠나며 | 십우도의 의미
| 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곽암의 십우도와 구성



1 심우尋牛 | 소를 찾아 나섬

성찰시작 | 혼란, 헤매다


ㆍ 초심자의 행운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ㆍ 메타노이아 - 오강남 『예수는 없다』

 


2 견적見跡 | 자취를 봄

본성찾기 | 실마리를 찾다


ㆍ 목마름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ㆍ 그냥 해 - 유상강설 『수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ㆍ 오직 모를 뿐 - 숭산 『선의 나침반』



3 견우見牛 | 소를 봄

명상하기 | 알아차리다


ㆍ 신성한 무관심 - 윌리엄 하트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
ㆍ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MBSR) - 존 카밧진 『처음 만나는 마음챙김 명상』
ㆍ 앉아 있는 이유 - 스즈키 순류 『선심초심』



4 득우得牛 | 소를 얻음
의식이해 | 나와 하나 되다


ㆍ 낮은 의식, 높은 의식 - 데이비드 호킨스 『의식 혁명』
ㆍ 진짜 나, 가짜 나 - 에크하르트 톨레 『이 순간의 나』
ㆍ 세 가지 질문 - 켄 윌버 『무경계』



5 목우牧牛 | 소를 길들임
뇌와 마음 | 뇌로 마음을 보다


ㆍ 괴로운 뇌, 행복한 뇌 - 장현갑 『명상이 뇌를 바꾼다』
ㆍ 낭보(朗報), 기쁜 소식 - 페터 슈포르크 『인간은 유전자를 어떻게 조종할 수 있을까』



6 기우귀가騎牛歸家 |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옴
심리이해 | 걸림 없이 하다


ㆍ 자기 발견의 집 - 머리 스타인 『융의 영혼의 지도』
ㆍ 달라질 자유 - 토마스 해리스 『아임 오케이 유어 오케이』
ㆍ 다 괜찮아 - 타라 브랙 『자기 돌봄』



7 망우존인忘牛存人 | 소는 잊고 사람만 남음
서양사상이해 | 방편은 잊고 삶에 집중하다


ㆍ 사람의 일 - 김상봉 『호모 에티쿠스』
ㆍ 반성의 즐거움 - 김상환 『왜 칸트인가』
ㆍ 끝내 사랑하는 법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8 인우구망人牛俱妄 | 사람도 소도 다 잊음
과학이해 | 텅 비다


ㆍ 1인칭 과학 - 김성구 『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와 불교』
ㆍ 없음의 세계 - 김용호 『제3의 눈』
ㆍ 경계 너머, 아하! - 루퍼트 셸드레이크 『과학자인 나는 왜 영성을 말하는가』



9 반본환원 返本還源 | 근원으로 돌아옴
동양사상이해 |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다


ㆍ 쓸모없는 배움 - 류영모 『제나에서 얼나로』
ㆍ 마지막 말 - 석지현 『우파니샤드』



10 입전수수入?垂手 | 저잣거리로 들어가 도움의 손을 드리움
대안적 삶 | 회향하다


ㆍ 세속주의 - 필 주커먼 『종교 없는 삶』 ...
ㆍ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성소은 『경전 7첩 반상』
ㆍ 가능한 사랑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여행을 마치며 | 쉴 휴 休

 


참고문헌
그림과 함께하는 나의 십우도 여행

 

 

 

책 속으로

찾아야 할 보람되고 의미 있는 그 무엇을 십우도에서는 ‘소’로 상징한다.

그 소는, 앞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본래 내 안에 있었지만

나의 무명(無明)과 미망(迷妄)에 의해 지금껏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나의 무한한 가능성이다.

이 무명과 망상의 어둠을 뚫고 새로운 나를 찾으려 발돋움하는 것이 바로 심우(尋牛), 곧 ‘소를 찾아 나섬’이다.

물론 이 소는 사람에 따라, 혹은 그 사람의 사정이나 시기에 따라 다른 여러 가지를 상징할 수 있다.

각자 자기가 찾아 개발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소로 상정하고 그것을 찾아 나선다고 상상하면 좋을 것이다.

-p.35~36

행복과 불행은 수동적으로 내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다.

좋고 싫음, 옳고 틀림을 재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판단을 유보한 채 판단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판단하지 않는 것은

우둔한 행위가 아니라 진정으로 지성적인 행위”이며, “자신에 대한 친절함”이다.

나와 타자에게 젠틀하고 지성적인 존재가 되는 것. 마음챙김 명상이 주는 첫째 열매다.

-p.94~95

삶의 어느 지점이 ‘다 이룬’ 목적지가 될 수 있을까?

삶은 통째로 여정(旅程)일 뿐이다.

가면서 배우고, 배우며 기쁨을 맛보고, 나눔으로 배움의 가치가 더해 가는 변화의 과정이다.

내가 하는 나를 위한 공부에는 오직 하나, ‘믿음직한 나’ 하나 있으면 족하다.

든든한 나는 샘솟는 힘의 원천인 ‘얼나’다.

얼나와의 조우를 기대하며 각자 길을 찾고, 스승을 찾아, 자기 길을 가는 거다.

-p.237

 

 



 

 

심우

 

견적

 

견우

 

득우

 

목우

 

기우귀가

 

망우존인

 

인우구망

 

반본환원

 

입전수수

 

 

 

 

 

 

 

 

 

 

 

 

 

 

 

 

 

 

 

 

 

 

 

 

 

 

 

 

 

1

 

1천 겁(劫)의 선근(善根)을 심으면 한 나라에 태어나고,

2천 겁에 하루 동안 길을 동행하며,

3천 겁에 하룻밤을 한집에서 지낸다.

4천 겁에 한 민족으로 태어나고,

5천 겁에 한 동네에 태어나고,

6천 겁에 하룻밤을 같이 잔다.

7천 겁은 부부가 되고,

8천 겁은 부모와 자식이 되고,

9천 겁은 형제자매가 된다.

1만 겁은 스승과 제자가 된다.

 

--- 법망경(法網經)

 

 

 

2

목우도 ─ 6세기 중국 남조의 보명선사

십우도 ─ 12세기 송나라 곽암선사

 

 

 

 

3

심우(尋牛)

 

고집멸도(苦集滅道)에서 고(苦)를 감지하는 단계다.

질식할 것 같은 절망과 불안의 상태에서 보람돠고 의미 있는 것을 동경하고 그것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 무엇을 십우도에서는 '소'로 상징한다.

그 '소'는  본래 내 안에 있었지만 나의 無明과 未忘에 의해 지금껏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나의 무한한 가능성이다.

이 무명과 망상의 어둠을 떯고 새로운 나를 찾으려 발돋움하는 것이 바로 심우(尋牛) , 곧 소를 찾아 나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에, 욕망을 자극하는 감각의 세계에 빠져 있어 자신만의 보물을 잊고 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알아도 찾으려 들지 않으며, 찾으러 나섰다가도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아주 소수의 사람, 용기와 신념을 견지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보물을 찾아 이윽고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낸다.

 

 

 

 

4

『예수는 없다』

 

저자는 종교를 각 전통별로 갈래짓는 縱斷이 아닌 넓은 橫斷으로 구분한다.

이른바 '표층종교'와 '심층종교'論이다. 이 둘의 차이는 선명하다.

 

첫째, 目的의 차이다.

표층종교가 이기적인 욕망의 주체인 '나 중심적'으로 움직인다면,

심층조교는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는 '참나'를 찾고자 한다.

 

둘째, 神觀의 차이다.

표층은 신과 나를 분리해 보는 초월신관을,

심층은 나와 신이 서로 相卽하고 相入하는 '하나'라는 범재신론의 입장이다.

 

셋째, 믿음의 차이다.

표층은 무조건적인 믿음을, 심층은 이해와 깨달음을 강조한다.

 

넷째, 聖經관의 차이다.

표층은 문자에 매달리은데 반해, 심층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의미와 속내를 궁구한다.

 

다섯째, 종교관의 차이다.

표층은 자기 종교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심층은 종교의 다영성을 인정하고 진리의 독점을 주장하지 않는 다원주의적 자세를 취한다.

 

여섯째, 결과의 차이다.

표층은 집단 이기적 활동에 치우치는 반면,

심층은 세상을 향한 이타적 실천으로 구현된다.

 

 

 

 

 

5

『莊子』에 보면 득도(得道)의 7단계가 나온다.

 

첫째, 세상사를잊고,

둘째, 세상사를 잊자 외적 사물을 잊고,

셋째, 외적 사물을 잊자 삶을 잊고,

넷째, 삶을 잊자 아침햇살 같은 밝음을 얻고,

다섯째, 밝음을 얻자 '하나'를 보게 되고,

여섯째, 하나를 보게 되자 과거와 현재가 없어지고,

일곱째, 과거와 현재가 없어지자 죽음도 없고 삶도 없는 경지에 들어갔다.

 

 

 

 

 

6

중국 송나라 때 청원유신 스님이

"내가 30년 전 아직 禪 공부를 하지 않고 있을 때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어다'.

그 후 훌륭한 스님을 뵙고 어느 경지에 이르렀을 때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 후 이제 쉼의 경지에 이르게 되니 '산은 산이고, 물은 정말로 물이더라.'

했던 것처럼 나의 참된 나 됨을 체득한 것으로 수행 자체로는 이 단계가 최종 단계라 할 수 있다.

 

참나를 찾아 근본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주라는 큰 집으로 돌아와 나와 우주가,

그리고 나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7

"네덜란드에서는 신을 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언제나 하느님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종교의 모든 측면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으며, 

이곳에서는 거의 모두가 세속적이었다.

神은 사방에서 조롱당했으되 그런데도 아무도 벼락 맞지 않았다.

하느님에 기대지 않고도 사회가 잘 돌아가서 완벽하게 기능이 발휘되었다.

인간이 만든 이 정부가 하느님이 고안했다는 시스템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평화롭고, 행복했다."

............

우리는 모두 서로가 서로를 낳고 기르는 '사회적 창조물'이다.

종교 없는 삶, 神 없는 사회에서의 삶의 의미가 내면화될수록 세속적 삶의 미덕은 커져만 간다.

사람에게 공을 들이는 세속주의는 경외주의다.

내가 살아야 할 곳은 하늘이 아니라 땅이다.

천국이 임하는 곳은 하늘이 아니라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지금 여기의 땅이다.

"敬畏를 느끼고 경험하는데 神은 필요하지 않다. 生命이 필요할 뿐이다."

 

 

 

 

 

8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같이"

 - Sutta Nipāta, 經集 (기원전 (아소카왕 이전))

 

인간이 지닌 정신, 마음의 성숙은 집 안에 놓인 화초 같다. 저절로 자라지 않다. 방치해 두면 시들어 버린다.

키우고 가꾸겠다는 의지에 물을 주는 행위가 더해져야만 화초는 응답한다.

 

삶의 절정은 회향(回向)에 있다.

공들여 일군 무언가를 세상을 향해 나눈는 일, 내가 가진 1개를 100개 1000개 무한대로 확장하는 연금술 같은 행위다.

삶의 이치를 알아차렸다고 해서 화초에 물을 주고 삶에 공들이는 일이 끝날 수는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밥 먹듯이 마음도 간단없는 연습이 필요하다. ─ 참을 읽고 고요를 깊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