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6. 18:40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1. 장 포트리에(1898-1964)의 물질회화
그는 '인질'이라는 시리즈 작품에서 사람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인간을 고기점에 걸려 있는 살덩이로 표현했다.
20세기 후반 서양미술에서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인간의 몸'이었다. 정신이나 영혼을 담는 그릇이 아닌, 순수한 물질로서 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미술가들에게 새로운 주제로 다가왔다. 제2차세계대전으로 유대인 등 대학살을 경험한 결과다. 패전 징후가 짙어진 1944년부터 나치는 가스실에서 대량학살한 유대인 등의 시체를 소각하거나 매장하는 과정에서 쓰레기처럼 다루었다.
이런 끔찍한 광경은 유럽 지성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실존철학의 진화를 가져왔다. 즉 인간의 본질을 물질로 보는 태도였다. 그 파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 회화였다. 장 포트리에가 보여주는 <인질>시리즈는 인간을 물질로 해석하는 실존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석고나 시멘트를 두껍게 발라 무슨 형상인지 알 수 없는 화면을 만들어냈다. 한데 엉겨붙은 시체의 끔찍한 충격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는 2차대전 중에 대독 항전단체에 가담하여 독일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고 투옥생활 중 유대인 학살현장을 목격하면서, 그는 인간이 물질로 취급되는 극한의 현장에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이 발표되자 '물질회화'라고 불렀고 미술사에서는 앵포르멜의 등장으로 평가했다. 앵포르멜은 정해진 형태가 없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액션페인팅과 더불어 戰後 국제미술로 자리매김한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기법이다.
2. 루시안 프로이드(1922-2012)의 몸
유대인으로 독일에서 태어난 루시안 프로이드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아드의 손자로, 나치 정권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가서 영국화가로 평생을 살았다. 그는 화실에만 틀어박혀 작업에 몰두했기 때문에 은둔의 화가로 불리우다 70세가 되어서야 그의 명성이 만개해 현대 미술시장에서 최고의 화가가 됐다.
루시안은 오브제로서 인간의 몸을 그렸다. 정신의 지배를 받는 육신이 아니라 독립적 물질로서 몸을 표현했다. 그래서 살덩어리의 피부감, 피부와 어우러지는 핏줄, 근육, 뼈 등 구조적 조합의 묘사에 신경을 쓴다, 여인은 죽은 것일까 잠든 것일까. 화가는 생사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루시안은 수술대 위의 환자를 수술하는 외과의사의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3. 프랜시스 베이컨(1902-1992)의 고기
베이컨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우선은 그의 삶 자체가 이처럼 비참했기 때문이다. 그는 16세에 가출한 후 사회의 바닥에서 마약과 동성애에 묻혀 사춘기를 보냈고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간의 동물적 본성과 폭력, 공포를 경험했다.
베이컨의 뒤틀린 인물상은 피카소의 영향이 컸다고 하는데,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닌 이런 형상은 그가 경험한 세계의 모습이었으며 전쟁 후 유럽사회가 겪은 비이성적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다. 머리 없는 사람은 이성이 마비된 인간상을 나타낸다. 검정 우산은 이러한 동물적 사회를 가르킨다.
충격의 미학이 새롭고 진보적으로 보이는 세상이 과연 건강한 것일까.
글 출처 : 전준엽 지음,《미술의 생각, 인문의 마음》(201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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