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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명 :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활동년도 : 1864~1901
작가소개 : 로트렉(Toulouse Lautrec)은 프랑스의 화가.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소년 시절 두 다리의 골절로 평생 불구로 지냈다. 날카로운 관찰력과 뛰어난 뎃생으로 무희와 가수 등의 모습을 신랄하고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특히 착색석판을 사용한 포스터로 유명하다. '물랭루즈에서'와 더불어 널리 알려진 로트렉은 프랑스 세기말을 장식한 화가로 몽마르트의 분위기와 대기 그 자체를 아무런 허식없이 생명과 생활의 리듬 그대로 그린 화가이다. 속필과 생명의 눈깜박임 같은 생생한 색채, 그리고 인간 관찰의 산뜻함이 그의 작품을 특징지운다.
"앙리의 뼈는 선천적으로 부러지기 쉬운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 결과 1년 사이에 일어난 가벼운 추락사고로 왼쪽과 오른쪽 대퇴골이 차례로 골절되었다." 라고 로트렉의 아버지 알퐁스백작은 기록한다.
프로방스 귀족사회의 일원으로 태어난 행운을 맛보기도 전에,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은 어린 시절 두 다리의 성장이 멈추어 버리는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온전하지 못한 신체와 추한 외모로 좌절감을 떨칠 수 없었지만, 파리의 밤세계는 그에게 새로운 삶을 안겨 주었다. 카바레의 무용수와 가수, 매춘부와 서커스 단원의 천한 웃음 뒤에 가려진 인간의 비애를 그린 그의 그림은, 인간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로트렉은 초기 근대 판화부분을 개척한 거장 중의 하나이다. 프랑스 무도회장과 무희들의 모습을 소재로 한 여러 인상적인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전세계의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1890년대 당시로서는 새로운 기술인 칼라 석판 인쇄술 분야를 개척함으로써, 풍자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거리 광고의 표현형식을 발전시킬수 있었다. 그의 친구가 지적한 것처럼,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대담한 구성과 눈부시게 화려한 색상은 마치 뭔가에 얻어맞은 듯한 강렬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가 제작한 포스터는 매일 광고를 바꾸는 파리의 여러 댄스홀의 광고에 쓰였기 때문에 고작 하루씩 정도밖에 벽에 걸리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몇몇 작품들은 매우 소중한 세기말의 작품들로 여겨지고 있다. 순수 석판화들은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인데, 개인 수집가들을 대상으로 한정된 개수만을 제작했다. 비록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만 판화작가로써 활동했지만, 350점이나 되는 많은 작품을 남겼고, 이중에서 많은 작품들이 판화 예술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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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프랑스 화류계-무랑루즈의 전설과도 같던 자그마한 체구의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화가이다.
잘 알려진대로 그는 프로방스 귀족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났지만 어릴때 겪은 두 차례의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로 성장이 멈추어버리는 가혹한 형벌을 받았는데, 후사가가 말하기를 그의 키가 난쟁이같은 152센티 정도로 멈추게 된 것은 프랑스 귀족가문의 사촌이었던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인 알퐁스 백작간의 근친 결혼으로 인한 나쁜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로트렉 가문은 프랑스의 왕가와도 관계가 있는 고위직을 지낸 선조들로 넘치는 대단한 혈통 이었고, 그의 어머니 역시 이에 못지 않다 하며 당시 화가들 중에 로트렉 이상의 혈통을 가진이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대부분의 천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또한 성장이 멈추어지는 사고를 계기로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졌을것이다. 또한 이미 조숙해져 버린 감성과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내면의 열정을 표출할 대상으로 평탄한 귀족적인 삶을 포기하고 험난한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것은 아닐까 추정해 본다.
어쨌든 성장기의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화가가 되어 자신의 색감을 표현하게된 로트렉은 자신이 가장 좋아한 거리 몽마르뜨에 정착해서 회화와 일러스트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의 독특한 그림과 데생이 당시 공연홍보를 위한 잡지에 자주 실리게 된다.
로트렉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1891년 파리에 게재된 카바레 '무랭루즈' 포스트였는 바, 그에게 있어 카바레의 장식과 연예인들은 작품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었으며, 그는 상젤리에 거리의 소극장 카페인 '앙비싸되르'를 비롯 그가 카바레 스타를 주인공으로 만든 '폴리베르제르'등 많은 카바레를 자기집처럼 드나들었다. 무랑루즈 또한 달리 말하면 고급 창녀촌과 다를바가 없다. 그러한 창녀촌의 분위기에 대단한 애착을 보인 로트렉은 창녀와 그 일상생활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19세기 세기말을 맞은 유럽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기존의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부정과 거부가 주를 이루었는데 회화에서도 화가들은 이전의 숭고하고 고귀한 이미지 보다는 일상의 현실, 더 나아가 그 현실속에 녹아있는 삶의 진정성을 찾아 화폭에 옮기려했다. 로트렉은 카페와 대중 무도회 그리고 카바레등 속세에 대한 호기심을 즐겨 표현했는데 매춘부나 서커스 단원등 밑바닥 삶들의 천한 웃음뒤에 가려진 인간의 비애를 그리려했다.
밤마다 몽마르트의 환락가를 배회하는 작달막한 로트렉의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밤의 산책자'라는 수식을 그에게 붙이게 하였는데 고독과 우수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의 별명과는 다르게 사실 그에게는 거의 같은 세대에 활동했던 고호나 고갱에게서 느낄 수 있는 인생의 갈등이나 비극적인 좌절감 같은것은 없었다 한다. 그러나 살아가며 항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긴장과 더불어 긴장을 이완시키는 꿀같은 휴식 그리고 절제라는 덕목일 것이다.
밤의 산책자 생활에 젖어버린 로트렉은 알코올 중독과 무절제한 생활의 여파로 인해 마침내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할정도의 성격파탄에 이르러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로트렉은 '비오제독'이란 제목을 붙인 미완의 초상화를 남기고 결국 37세에 숨을 거두게 되는데 그해는 피카소가 파리로 처음 왔던 해였으며, 당시 약관의 20세인 피카소는 '파리에 와서보니 로트렉이 얼마나 위대한 화가인지 알았다." 라고 그의 친구에게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로트렉의 그림을 후기인상주의와 나비파와의 경계인 신조형주의의 일종으로 구분하는 미술사적인 해석은 논외로 치더라도, 그의 양식상의 특징인 강렬한 색채, 명확하고 강한 선, 장식적인 구도와 특히 그의 묘사적이고 표현적인 선의 섬세한 사용은 경이롭다.
또 화면의 절개및 흐르는 상관의 조화기법을 사용한 곡선으로 된 구성의 운동 개념은 회화의 장식성과 관련되어 추상적인 효과를 주고 있고 이는 후에 마티스나 그 밖의 20세기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로트렉의 회화사에서의 위치를 결정짓지 못하는 것은 작품 중에 많은 양식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 배후에는 그가 하나의 회화적 양식을 완성하기 위하여 전력하지 않았고, 그의 현실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으로써 그에 적합한 표현 양식을 개발해
내려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대 미술에있어 세잔느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또 다른 의미에서 그가 미술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 연유가 되며, 그는 몇개의 사조를 자유로이 오가며 그 사이를 연결시키고 소통하게 하는 일종의 교량이자 메신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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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렉이 죽자 그의 어머니는 파리의 미술관들을 찾아다니면서 아들의 작품을 받아달라고 간청하였다 하는데, 생전에 그저 그런 풍속화가로 치부된 그였기에 어느 미술관도 로트렉의 작품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비탄에 잠긴 어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와 알비 시청에 아들의 작품을 모두 기증해 버린다. 그러한 연유로 그의 작품이 망라된 알비의 로트렉 미술관의 컬렉션은 볼 만하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잘 알려진 로트렉의 일대기인데 지금부터 몇가지 그의 작품들을 감상해 보도록 한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여행은 미술의 문외한임을 처음부터 밝혔으니 작품의 해석은 하나의 독자의 입장에서 아주 주관적으로 기술하였는 바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하고 해석은 언제나 독자의 몫이 아니던가..
고흐의 초상화
로트렉의 그림중 고흐를 그린 초상화이다. 18세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수업을 받은 로트렉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코르몽의 아틀리에에서 그림수업을 받았는데, 30명정도의 수강생중 고흐가 있었고 로트렉보다 11세 위인 구도적이고 이상주의자적인 고흐는 도시적이고 사교적인 로트렉과는 서로 반대의 성향이었지만 그들은 보기드문 우정의 관계였다. 이그림은 어느 바 아니면 카페의 한 구석에 앉아 어딘가를 응시하는 고흐의 옆모습이다. 우리가 예전에 봐왔던 고흐 자신의 초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파스텔의 산뜻함이 간결히 스며있는 깨끗한 그림이다.
세탁부
일하기 편하게 차려입은 옷매무새와 뒤로 묶은 붉은색의 머리를 지닌 그녀는 다림판에 손을 올려놓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담겨있는듯한 그녀의 옆모습에서 인생의 쓸쓸함이 배어져 나온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이그림이야말로 로트렉의 작품들중 최고가에 거래된걸로 아는데 작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이천만달러가 넘는 가격에 어느 익명의 응찰자에게 팔렸던 그림이다.
화장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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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미에서
로트렉의 그림들중 유난히 짙은 원색의 질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인데 술잔을 따라놓고 두사람의 시선은 다른곳을 향하고 있다. 어느 평론가는 로트렉의 인물화가 대부분 정면이 아닌 옆모습이나 뒷모습이라는 것에 착안하여 그가 심리적으로 사람과의 교제에 문제가 있던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었다.
권태 / 휴식
키스
두여자의 왈츠
이러한 류의 그림이 사실 로트렉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특징적인 작품들이다. 무랑루즈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초록옷을 입은 두여인의 뒤로는 당시의 풍속적인 외모를 갖춘 남녀들이 밀담을 나누고 있다. 머리의 장식을 보라
신체검사
작품명이 medical inspection 인데 이것을 직접 보고 그렸다면 로트렉이야 말로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림속의 여인들은 물론 몸을 파는 창녀임에 틀림 없을테고 그녀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치마를 들추고 서있다. 지금도 윤락업소의 여인들에게 행해지는 이른바 보건검사이며 여자들의 성병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매우 사실적인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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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의 평론가들은 로트렉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정신을 소유한 그리하여 초자연적인 존재로 표현한다. 그의 정신에는 어떠한 편견도 존재하지 않았고 기존에 존재하는 사상이나 이념 또한 경멸하지 않았다. 단지 인간의 정신을 구속하는모든 종류의 권위를 거부할 뿐이었다. 정신적으로 업악된 귀족의 삶에서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택한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완벽하게 자유로운 삶을 누리다 37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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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댄스홀의 한구석
제작년도 : 1892
작품재료 : 나무판에 붙인 판지에 유채
작품크기 : 99x88cm
소장위치 : 워싱턴, 국립미술관,체스터 데일 소장품
작품설명 : 이 그림에서 로트렉은 물랭 루즈보다 덜 유명한 몇몇 뮤직홀이나 카바레의 대기장으로 다시한번 우리를 데리고 간다. 이 그림은 물랭드 라 칼레트를 그린 것이라고 말해지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무희와 매춘부들이 손님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사이를 서성거리고 있으며 길고 검은 코트를 입은 여자가 중산모를 쓴 남자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다. 단편소설 같은 모든 요소가 들어 있긴하지만 이 그림은어느 면에서든 문학적인 그림이 아니다. 로트렉은 평소대로 많은사람들에게 시선을 두기보다 몇몇 인물들에게만 집중하고 있는데 제각기 다른 유형의 세 여인들간의 대조를 통해 그림이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서 인물들을 아래로부터 위로 올려다봄으로서 배경을 차단하여, 공간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새로운 해결방식을 채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전경에 앉은 여인의 침울하면서도 몽상적인 표정으로 인해 로트렉의 다른 그림에 비해 독특하게 슬픈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한편
이것은 드가의 <압생트 L'Absinthe>,나아가 마네의<서양자두 La Prune>(1877년,뉴욕의 아더 삭크스 소장)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로트렉은 효과를 높이기 위해 쉽게 과장하거나 캐리커처 수법에 의존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서 그가 근본적으로 인간애와 감정적으로 초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을 절실히 느끼게한다.이 그림에서 로트렉은 최상의 품위와 재능을 보여준다.

작품명 : 자르댕 드 파리에서의 들라포르트씨
제작년도 : 1893
작품재료 : 판지에 유채
작품크기 : 75x69cm
소장위치 : 코펜하겐, 니 카를 스베르그 글립토텍
작품설명 : 이 그림에서 몽마르트의 광고회사 지배인 레옹 들라포르트씨는 자르댕 드 파리의 한
관객으로 묘사되어 있다.이곳은 1893년 여름에 물랭루즈의 치들러 (Zidler)와 올레(Older)가 샹젤리제에서 새로 개업한 음악 카페였다.사람들은 물랭루즈가 문을 닫은 뒤에라도 쟌 아브릴의 춤을 보기위해 한 밤중에 그곳을 찾아오곤 했다.이 그림에서 우아한 검은색 모자를 쓴 그 무녀는 뒷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들라포르트씨 뒤 테이블에 앉은 수염난 사내에게 다가가고 있는모습이다. 로트렉이 초상화를 그리는 전형적인 방법은 모델에게만 확실하게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이다.전경 전체를 채우고 있는 인물은 옆모습으로 마치 배경으로부터 두더러져 보이는 저부조식으로 묘사되어다.배경의 모든 인물들은 넓은 붓터치로 희미하게 묘사되어 마치 거울에 비친 상처럼 보인다. 로트렉은 이런 유형의 초상화를 통해 형식적인 초상화에 대한 훌륭한 대안을 개발해 냈다.뤽상부르크 미술관 동우회는 1905년에 이 그림을 구입하여 프랑스에 기증했다.그러나 프랑스 국립미술관 위원회는 바로 로트렉이 1882년에 그밑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레옹 본나 의장의 권고로 기증을 거절했다.

작품명 : 여성용 모자점 주인
제작년도 : 1900
작품재료 : 목판에 유채
작품크기 : 60x48cm
소장위치 : 알비 툴루즈 로트렉 미술관
작품설명 : 로트렉의 친구들이 그의 정신질환을 예방하고 음주를 막기위해 생각해낸 것 중의 하나는 라 페 가에 자리잡은 유명한 양장점들의 진열에 로트렉이 흥미를 갖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로트렉은 그 전반적인 분위기가 인위적이고 마네킹의 자세가 너무 도식화 되어 있어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그러나 그는 몽마르트의 포부르 56번지에서 여성용모자점을 경영하던 친구인 르네 베르(Renee Vert) 여사(르 마르구앵 부인)는 그의 관심을 끌었다.
로트렉은 르네 베르를 수년간 알고 지내오던 터였다. 그는 1893년에 그녀가 자신의 가게에서 모자를 정돈하고 있는 모습을 소묘로 그렸고, 그 뒤에 이 소재를 메뉴판의 장식으로 사용했다.
그녀는 친구인 화가 조셉 알베르의 연인이었던 것이다. 알베르는로트렉의 작품을 1889년의 독립미술가 전에 소개 시키기도 했고 1893년에는 프랑스 화가-판화가전 Salon des Peintres-Graveurs Francais에 로트렉의 포스터 두 점을 포함시킬 것을 권하기도 했다.
로트렉은 이러한 배려에 대한 답례로 <훌륭한 판화가 Le Bon Graveurs>(1898년)란 제목이 붙은 알베르를 그린 석판 초상화와 1899-1900년 사이에 르네 베르를 그린 몇 장의 소묘를 남겼다. 여러면에서 이것과 닮은 <세탁부>와 이 그림을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이 작품에서는 채색법이 보다 자유롭고 빛의 효과 또한 보다 훌륭하다.

작품명 : 물랭가의 살롱
제작년도 : 1894
작품재료 : 종이에 파스텔
작품크기 : 110x130cm
소장위치 : 알비 툴루즈 로트렉 미술관
작품설명 : 사창가 생활을 그린 로트렉의 무수한습작들-1892년과 1895년 사이에 그는 50여점의 유화와 수백점의 소묘를 그렸다. -은 1894-1895년에 제작한 <물랭가의 살롱>(알비 미술관) 이라는 대형 그림에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소개된 그림은 최종작은 아니고 그 직전에 제작된 정교한 파스텔 스케치이다. 이 그림은 대략적으로 그려져 있고, 상당 부분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으며, 색조에 활기가 없는 편이다. 반면에 그 다음에 제작된 유화는 매우 공을 들여 신중하게 그려졌고, 유곽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핑크, 연자주 그리고 빨강색이 녹색 및 검정색조와 독특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장소에서는 이국적인 정서의 장식이 상당히 인기를 끌었는데 그 한 예로 이 그림의 장면은 동양적 스타일의 살롱으로 설정되어 있다.여자들이 둘러앉거나 서서,각양각색으로 피부를 드러낸체 손님들이 찾아올 때까지 맥없이 기다리고 있다.오른쪽에는 점잖게 등을 펴고,머리를 말아 올려 이마 위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마담이 앉아있다. 이 마담은 손님들을 위해 순서를 결정하고 몸치장을 감독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이 그림은 로트렉이 기억력과 상상력에 의해 제작한 두세 점의 중요 작품 중의 한 점이다. 왜냐하면 작업실에서 몇 개월 동안이나 각각의 인물들 뿐 아니라 건물의 특징적인 부분들과 가구에 대한 습작을 그려가면서 구체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왼쪽의 뒷 배경에 자리잡은 두 명의 여성에 대한 습작이 있으며 오른편에 패티코트를 걷어올린 반쪽인물은 1893년에 제작된 소묘에 기초한 것이다.
이것과 동일한 살롱이 <르 디방>(1893년 상파울로 미술관)이라는 좀 더 일찍 그린 그림에도 나온다.
또한 로트렉이 그의 석판화 연작인 <여인들 Elles>(1896년)을 위한 소묘의 대부분을 제작한 것도 이 물랭가에서였다. 로트렉이 이 그림에서 쇠라나 고갱의 표현 방식과 유사하게 모델링을 피하고 인물들의 옆모습과 정면을 향한 모습을 조합함으로서 야기된 공간적 문제들을 어떻게 벗어나고
있는가를 주목해 보라. 아마도 로트렉은 1895년 말까지도 그의 대형 작품을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의 완성은 사창가에 대한 로트렉의 예술적 관심의 종언을 나타낸다.

작품명 : 물랭루즈에서의 춤
제작년도 : 1890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113x148
소장위치 : 필라델피아, 앙리 p.맥길레니 소장
작품설명 : 이것은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보다 약 일년뒤에 그린 로트렉의 세 번째이자 가장 성공적인 대형 작품으로 3개의 평행면을 기초로해서 한층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인물들이 정적이고 보다 개별적으로 그려져 있긴 하지만 이전처럼 그 형상을 선으로 처리한 배경 평면, 라 굴뤼와 그녀의 파트너 발랑 텡-르-데소쎄가 격렬한 춤을 추고 있는 중앙평면 그리고 이러한 장면에 무관심 한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남자 관람자가 가로지르고 있는 전경 평면이다.이 그림에서도 무용수들을 에워싸고 있는 전경 인물들의 배치, 앞으로 나오는 듯한 배경 인물들의 선, 틀린 원근법으로 그려진 바닥의 선들 따위에 의해 회화공간의 깊이가 한정되어 있다.<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처럼 화면의 깊이는 오른쪽 전경의 두 여인에서 왼쪽배경의 높은 모자를 쓴 남자와 적색코트를 입은 급사에 이르는 급한 대각선에 의해 얻어지고 있다.그러나 이 경우 그것은 감지될 뿐이지 묘사되고 있지는 않다.구성은 바닥위에 드리워진 구불거리는 그림자의 선들에 의해 한층 더 짜임새있다. 오른쪽의 배경에 있는 4명의 남자는 로트렉의 친구인 바르네이, 귀베르, 세스코와 가우치이다. 검은 망토를 걸친 여인은 쟌 아브릴이다.
이 그림은 1890년 물랑루즈의 지배인 조셉 올레르가 구입하여 그곳 현관에 걸었다. 클리쉬 대로에 있는 음악 홀,물랭루즈는 1889년 10월에 개장했다. 이 홀은 개점 후 곧바로 선풍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사교계 인사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중앙의 무도장 양측 아래로는 대기장소가 있었고 위쪽에는 관객을 위한 회장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또 그곳과는 별도로 뒤켠에 큰 정원이 있어서 손님들은 그곳에서 앉아있거나 산보를
즐길 수 있었다. 야간공연은 희극적이거나 감상적인 노래의 콘스트로 시작했다.-이베르 길베르는 1890년 그 곳에서 데뷔했다.그러나 인기프로는 (10시와 12시 사이에 마련되는)춤이었는데 특히 유명한 몽마르트르의 댄서들인 라 굴뤼,발랑텡,그리유데구,몸므 프로마쥬 그리고 쟌 아브릴이 추는 카드릴 춤(네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추는 춤)이 큰 인기를 모았다.1890년과 1896년 사이에 로트렉은 물랭루즈를 소재로 적어도 30점 이상의 작품들을 제작했지만 그 그림의 장면들은 그 곳에 자주 드나들던 몇몇 사람들에 대해서는 대단히 많은 것을 얘기해주고 있는 데 반해 그곳 건물의 구조나 외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명 : 물랭루즈에서
제작년도 : 1892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121x138cm
소장위치 : 시카고 미술 연구소,헬렌 버치 바틀렛
작품설명 : 물랭 루즈는 1889년 10월 5일에 개장했는데, 이 날은 파리의 벨 에포크(황금기) 중 가장 중요한 날의 하나로 기록된다. 흥행주이자 기업가인 샤를 지들러가 소박한 대중무도장인 렌블랑슈 자리에 거대한 종합 유흥지를 건설한 것이다. 넓은 댄스 플로어에서 당시 인기댄서들을 볼 수 있었으며 갖가지 독특한 공연으로 유럽 전역의 청중을 끌어들였다. 로트렉은 곧 이 유희의 공간을 즐겨 찾게 되었다. 그림의 뒤쪽에 작달막한 키의 로트렉이 보인다. 옆에 있는 사람이 사촌인 가브리엘 타피에 드 셀레이랑이다. '샤위' 즉 1840년경 유행한 난잡한 춤의 대가였언 라 굴뤼는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작품명 :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제작년도 : 1887
작품재료 : 파스텔
작품크기 : 56x46cm
소장위치 :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국립 미술관
작품설명 : 빈센트 반 고흐는 1886년 3월 파리에 도착해 곧 코르몽의 화실로 찾아갔어나 그해 가을까지는 로트렉을 모르고 지냈다.그러나 빈센트가 로트렉을 만나게 된 뒤부터 1888년 2월에 아를르로 갈 때까지 두 사람은 매우 절친하게 지냈다. 아마 1887년 말경에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 이 초상화는 파스텔을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이 작품외에 로트렉이 파스텔로 그린 그림은 <물랭가의 살롱>을 위한 습작과 두세 점의 작은 스케치 등이 있을 따름이다.이 작품은 분명히 대상에 대한 면밀한 관찰의 소산이지만 포즈를 단 한번만 취하게 하여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던 이 작품은 모델과 너무 닮았으면서도 매우 자유롭고 쉽게 그려진 그림이다.
색채의 선택에 있어서나 일련의 사선을 써서 작업하는 독특한 방법에 있어서 로트렉은 반 고흐의 회화 양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로트렉의 양식적 발전에 끼친 반 고흐의 영향은 이 무렵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 이상으로 큰 것이다. 그 점은 그의 훌륭한 다른 그림들
특히<쥐스틴 드욀의 초상>(1891년)과 같은 작품에서 쉽게 엿 볼 수 있다.아울러 로트렉의 특징적인 붓터치 -길고 넓은 터치로 약간 마른 듯하게 그리는 - 는 1887년 고흐가 그린 <이탈리아 여인>이나 <탕귀 아저씨의 초상>과 같은 그림에 의해 상당히 자극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기질적으로 로트렉과 반 고흐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기 때문에 서로 친밀한 친구가 되지 못했다.또한 우리로서는 로트렉이 반 고흐의 회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지 못한다.그러나 고흐는 언제나 로트렉의 작품에 대해 상당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부소와 발라동 화랑의 지배인이었던 그의 동생 테오에게 로트렉의 작품을 몇점 구입하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반 고흐의 그림 <피아노를 치고 있는 가쉐양>은 아마도 로트렉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작품명 : 세탁부
제작년도 : 1889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92x74cm
소장위치 : 프랑스, 르 베시네,도르튀 여사 소장
작품설명 : 아마도 이 그림은 로트렉 자신이 기법 수련의 과제에서 그린 습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도 이 그림은 앞의 그림과 동일하게 견고한 수법으로 그려졌으며 또한 같은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그림의 주제는 드가에게서 빌어온 것이지만 로트렉은 그것을 매우 다른 수법으로 다루고 있다. 드가는 세탁부를 다룬 그림에서 다림질을 하거나 무거운 바구니를 운반하는 여인들의 딱딱한 동작과 복잡한 명암대비 효과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로트렉의 그림은 일을 쉬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는 슬픈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그렇지만 로트렉은 우리에게 육체적 피로와 우울을 알려주기 위해 <뚱뚱한 마리아>에서처럼
모델의 얼굴에 초점을 맞출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강인하고 튼튼한 팔과 물결치듯이 휘어져있는 등의 윤곽선이 서로 대조를 이루는 육체 자체에 그러한 표현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200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24억원 낙찰된 작품

작품명 : 에밀 베르나르
제작년도 : 1892
작품재료 : 나무판에 붙인 판지에 유채
작품크기 : 99x88cm
소장위치 : 워싱턴, 국립미술관,체스터 데일 소장품
작품설명 : 이 그림은 로트렉이 1883 페르낭 코르몽의 화실에 들어가서 만난 에밀 베르나르를
그린것이다.

작품명 : 카페에서의 브왈로씨
제작년도 : 1893
작품재료 : 판지에 과슈
작품크기 : 79x64cm
소장위치 : 클리블랜드 미술관, 힌먼B, 헐버트 소장품
작품설명 : 이 초상화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그림의 맨 위쪽 왼편 구성에 '헌정'dedicace라고 쓰여 있는것으로 보아 그가 로트렉의 친구였다는 사실이외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확실한 것은 그가 부유했고 왕성한 식도락가여서 파리 상류사회의 카페들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이 모드것이 로트렉에 의해서 지극히 간략한 수단으로 훌륭하게 암시되어 있다. 로트렉은 경사진 그의 중절모, 담배와 지팡이를 쥐는 그의 방식,또한 테이블위에 놓인 압생트 술잔과 도미노 패 등을 통해 인물의 본질적인 성격을 표출해 내고 있다. 이 그림은 <댄스홀의 한 구석>처럼 군상 인물화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타입의 대조가 없고 다른 인물들을 이 모델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단지 배경적인 분위기를 제공할 따름이다.그렇지만 이 두사람간에 존재하는 양식과 구상의 유사성은 명백하다.
이 그림에서는 마네와 드가의 그리고 심지어 쿠루베의 <구레구아르 어머니>(1885년 시카고 미술연구소)와 같은 그림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로트렉이 이 인물을 두 개의 날카로운 사선 -하나는 왼편의 바닥선이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른편 두 테이블 사이의 간격선- 사이에 고정시킴으로서 깊이의 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었던 방식을 주목해 보라 그 결과 모델은 평면적인 배경과 대조적으로 부조처럼 두드러져 보인다. 오른쪽에 있는 실크 햇을 쓴 인물은 작가의 부친이다.

작품명 : 화장하는 여인
제작년도 : 1896
작품재료 : 판지에 유채
작품크기 : 66x53cm
소장위치 : 파리, 루브르 미술관
작품설명 : 1896년 초에 로트렉은 색채 석판화 연작을 제작했고 그 해 5월에는 그것들을 <여자들>
이란 판화집으로 출간했다. 한 장의 예외-샤 위 카오의 초상-가 있기는 하나 석판화들은 석판화들은 모두가 침대위에 있다든가 목욕하는 여자들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사창가'에서 이미 제작했던 소묘들에 기초한 것들로 보여지며 드가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음이 거의 확실하다.
이러한 석판화 작업은 로트렉으로 하여금 잠시나마 의상과 잠면 효과 따위를 잊어 버리게끔 하였고 그 대신에 인체의 해부학적인 구조에 관심을 쏟을 수 있게 했으리라 여겨진다. 어쨌든 1896년에 그는 이 작품을 포함한 여러장의 습작을 제작했는데, 이것들은 그를 위해 작업실 안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던 여인들을 그린 것이다.이 시기에 그린 다른 그림 -<쉬고 있는 모델> (베르넹 소장)-에서도 같은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동일한 실내가구를 확인할 수 있다.
기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그림은 로트렉의 '습작'화 중 가장 완결 된 것 중의 하나이다.
또한 얼굴 표현에 관심을 두지 않은 드문 작품들 중의 하나란 사실도 특이하다.
로트렉이 대단히 존경해마지 않았던 드가식의 기법으로 그린 습작이라고 추측된다.

작품명 : 화장하는 여자-푸풀르 부인
제작년도 : 1900
작품재료 : 목판에 유채
작품크기 : 59x39cm
소장위치 : 알비, 툴루즈 로트렉 미술관
작품설명 : 이 그림에서 로트렉은 10여 년 전에 자신이 다루었던 주제를 다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두 작품간에는 처리 방식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 초기작에서는 로트렉이 여자의 성격과 화장도구의 표현에 중점을 두었던 반면에 이 그림에서는 머리와 드레스 가운의 묘사에 적합한 색조를 발견하는데 흥미를 갖고 있다. 이 그림에서 로트렉은 드가 뿐 아니라 마네의 영향을 받고 있다.그렇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마네와 같은 거장의 면모나 드가와 같은 눈부신 장인 정신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 그림은 색채가 억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평면적이고 생동감이 부족하다. 그의 그림이 색채 사용에 있어 얼마나 단조롭고 또 얼마나 억제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석판화의 경우는 정확히 그 반대이다. 이 그림은 대체로 1898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같은 여성을 모델로 양식과 채색 방식에 있어 매우 비슷하게 시점만 약간 달리 하여 그린 똑같은 주제의 또 다른 그림에는 서명이 되어 있고 '1900'이란 연도가 기입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연대를 수정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여겨진다.

작품명 : 니스-꽃들의 전쟁
제작년도 : 1881
작품재료 : 먹물
작품크기 : 32*49cm
소장위치 : 알비미술관
작품설명 :

작품명 : 랑데르와 오궤즈
제작년도 : 1895
작품재료 : 석판
작품크기 : 36*19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작품명 : 르 보스크의 노동자
제작년도 : 1882
작품재료 : 목탄
작품크기 : 62*48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작품명 : 물랭루즈에서-촌뜨기 정말 촌뜨기
제작년도 : 1893
작품재료 : 석판
작품크기 : 45*24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작품명 : 숙취
제작년도 : 1889
작품재료 : 먹물과 청색분필
작품크기 : 47*62cm
소장위치 : 알비미술관
작품설명 :
▶ 물랑루즈~ 익숙한 이름이죠? 물랑루즈는 몽마르뜨에 있는 술집으로,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쇼도 하고..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해요. 이 그림에서 로트렉을 찾아보세요. 뒷부분에 모자쓴 옆모습..그 옆에 키 큰 사람은 로트렉의 사촌입니다. 그리고 앞쪽에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은, 당시 이름을 알만한 연예인들이고요. 이 그림만으로도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의 여자 오른쪽에 신체가 짤려있는 사람을 주목해보세요. 이 인물은 그림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결정해주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듯이, 조명을 받아 파랑+노랑+빨강의 색으로 얼굴이 뒤덮여 있지요. 굉장히 타락한 듯, 데카당한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을 보세요. 아주 구불거리는 곡선으로 싸매고^^;; 있습니다. 곡선은 움직임의 연속(나풀나풀)을 표현하고 있지요. 그들의 그림은 당시 건축의 특징적인 양식의 영향을 받고 있었지요. 혹시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나시나요? 아르누보입니다. 로트렉도 마찬가지로, 아르누보 양식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선을 최대한 많이 사용하면서 파도물결처럼 구불거리는 머리라든지.. 선의 생동감을 강조하고 있지요. 그리고 이 그림의 시점은 어떠한 것 같으세요? 물론 안에 로트렉이 그려져있긴 하지만^^;; 그걸 무시하면, 화가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 같나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고, 뒷부분이 치켜 올라가 있는 구성이지요. 이것은 당시 일본판화(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림에서 입체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고 평면적 느낌이 강한 것도 같은 이유고요.
▶ 로트렉의 그림에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잔느 아브릴이라는 이름의, 당시 가수였다고 합니다.
▶ 그럼 이제 627번 게시물로 가서 좀 더 긴 이야기를~아까 툴루즈 로트렉 작품의 저널리즘적 성격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포착.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포스터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로트렉의 채색 석판화는 350여점 정도 있다고 하고요. 주로 음식점, 술집, 책 등을 광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30여점의 포스터 작업을 했는데, 여기서 그의 굉장한 드로잉과 대담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럼 4번째 그림을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디방 자포네]라는 제목의 1893년 그림입니다. 디방 자포네는 가게 이름이었는데, 어떤 가게였을까요? 짐작이 가시는지요?^^일본 물건을 팔지는 않았지만, 일본 풍의 데코레이션을 했다고 합니다. ^^ 카페 겸 술짐 겸 콘서트 홀..이었지요. [디방 자포네]의 가운데 부분에 악기 형상들이 보이지요? 이 그림 역시 오케스트라의 무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공간은 완전히 평면화되어 있고, 압축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명암, 원근법.. 이런 것은 찾아보기 어렵죠. 그리고 가운데에 있는 저 여성은 누구일까요? 잔느아브릴입니다. 저 뒤를 보시면 어떤 여자가 또 서 있죠? 그런데 얼굴이..?드가의 오케스트라 그림에도 얼굴짤린 무용수들이 등장했지요. 스냅사진을 찍듯 순간을 포착. 이런 포스터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광고포스터는 뭔가를 알리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먼 거리에서도 눈에 잘 띄어야 겠지요? 색상의 대비가 강렬합니다. 눈에 띄려면 대담하게 색채를 사용해야 하니까요. 예술성과 상업성을 조화시키는 것, 그것이 포스터 작업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참, [디방 자포네]에도 자포니즘(Japonism), 즉 일본풍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입니다. 구불거리는 선과 꽉 짜인 색채, 특이한 구도 등..19세기에는 사양회화에서 일본 우키요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마네, 드가, 반 고흐, 고갱, 툴루즈 로트렉 등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지요.
▶ 그럼 마지막으로 미술감상[국외작가] 631번 게시물을~이 그림들은 1894년에 그려진 것들인데요. 로트렉은 1890년대에 거리 창녀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자신이 자주 다니던 살롱 등에서 말이지요. 그런데 여기 보이는 여성들의 모습은 어떤 느낌이신지요? 라파엘, 앵그르.. 등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신체는 아니지요. 나이를 먹고 둔하고 뚱뚱한 신체들이죠. 인상주의 화가들과도 많이 다릅니다. 르누아르의 천진하고 밝은 누드가 아니지요. 자기가 본 그대로를 화면에 담아내고 있지요. 미화하거나, 이상화하려는 의도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고요.
▶ 로트렉은 처음에는 드가를 모방하며 출발했지만 제스처에 대한 과장되고 해학적인 표현으로 전환시키면서 움직임에 대한 리듬감에 긴장과 유동성을 포착한 19세기 말의 화가입니다~^^
※ 전부 퍼온 자료인데 출처를 챙겨놓지 않아서 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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