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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미술 이야기 (책)

『그림 같은 여자 그림 보는 남자』

 

 

 

 

 

그림 같은 여자 그림 보는 남자   2016.07.10

 

저자 유경희

저서(총 5권)
허영심은 관능이고 호기심은 매혹이며 감동은 지나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에 미쳐 있는 것만이 열정적이며 역동적인 삶이라고 느끼며 살고 있다. 걸작의 조건을 ‘심플(simple), 스트롱(strong), 뷰티(beauty)’라고 생각한다. 사람 역시 이 세 가지 관점에서 본다. 그림에 중독되고 물건에 중독되고 사람에게도 중독되고 싶다. 중독은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나만의 아주 인간적인 접근 방식이다. 사물 중독자, 그림 중독자, 아름다움 중독자, 스토리 중독자이다.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를 만들어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아주 은밀히 소통하는 강의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각자 ‘자기 안의 예술가를 발굴해내는 작업’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그 성취 속에서 살고 있다는 자긍심이 나를 활력 있게 만든다. 감히 타인의 행복을 돕는다는 의식은 없지만, 예술과 예술가에 관해 들려주는 아트 스토리텔러 혹은 예술 테라피스트로 산다는 것 자체가 예술이다. 앞으로도 예술이 꾸는 꿈을 살고 싶다. 한양대학교에서 국문학,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했으며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시각예술과 정신분석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술잡지 기자와 큐레이터로 일하던 중 뉴욕대학교에서 예술행정 전문가과정을 수료했다. 지은 책으로 《그림 같은 여자 그림 보는 여자》《치유의 미술관》《창작의 힘》《예술가의 탄생》《아트 살롱》 등이 있다.

 

 

 

 

프롤로그

1. 그래도 결국은 사랑이다 LOVE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자신이 만든 세계 안에서만 사랑을 찾는 사람들
사랑과 우정의 기로에 서서 사랑했을 때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일들
눈 감은 그녀를 사랑하다 사랑과 욕망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녀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여성들이 차마 말하지 못한 판타지
양로원 로맨스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원하는 것을 선택한 대가 당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우리 사랑 의심해도 괜찮을까 의혹을 통과한 사랑만이 살아남는다
질투는 나의 힘 질투와 욕망을 숨기지 않는 사람들

2. 좋은 일과 나쁜 일, 그 중간쯤에 인생이 존재한다 LIFE

아름다운 시절에 술을 마시다 술 한 잔에 담긴 사랑과 인생
고단한 당신에게 그림 한 점 당신의 오늘을 토닥입니다
부족한 삶 속에서 채우며 살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
파산에 대처하는 당신의 자세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법
살면서 가져야 할 단 하나의 자존심 성공 이전에 신념이 먼저다

3. 당신의 지원군 또는 당신의 적군 FAMILY

언제나 당신을 응원하던 가장 큰 존재 아버지와 딸, 그 어렵고도 오묘한 관계
큰 나무 아래서 다른 나무는 자라지 못한다 나는 내 아이가 힘들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애정결핍의 주범 어머니
사랑하는 사람이 적으로 변하는 순간 아내와의 사랑, 그리고 전쟁과 사랑
그때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아버지와 아들, 그 멀고도 가까운 사이
당신의 마음에도 내가 있기를 모든 반대에도 사랑을 이룬 이들에게

4.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순간 SUCCESS

끔찍한 위기를 드라마틱한 기회로 전화위복 그리고 회복탄력성을 기억하라
제2의 인생을 살다 다른 인생을 꿈꾸는 이들에게 부치는 편지
미래를 강조하는 삶은 가짜다 꽃 한 송이가 가르쳐준 인생의 진리
성공한 사람들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 연인이자 라이벌,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
적들에게 창의적으로 욕하는 법 복수도 재치 넘치면 용서된다
져줄 수도 없고 이길 수도 없고 나보다 뛰어난 후배를 만났을 때

5. 자신만의 취향 안에서 생기는 새로운 세계 STYLE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요리 잘하는 남자가 사랑받는 이유
그림 볼 줄 아는 사람, 그림 살 줄 아는 센스 취향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
내 안의 낯선 나 아니마를 긍정해야 진짜 행복을 알 수 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 꿈을 꾸는 여성들

 

 

 

 

 

 

 

 

 

위로부터 수록된 예시 작품

 

 

1

장 레옹 제롬 - <피그말리온과 갈리테이아>

에드워드 번 존스 - 〃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 <석류를 들고 있는 페르세포네>

존 에버렛 밀레이 - 1<746년의 방면령>, <브라운 슈바이크의 기병대>

조르조네 - <잠자는 비너스>

알렉상드르 카바넬 - <비너스의 탄생>

프란시스코 고야 - <옷을 입고 벗은 마하>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 - <장미를 들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 <폴리냐크 백작부인>, <자화상> <마리 앙투아네트와 세 자녀>

티치아노 베첼리오 - <우르비노의 비너스>

페테르 파울 루벤스 - <모피를 두른 헬레나 푸르망>

알베르토 자코메티 - <눈물을 흘리는 카롤린>

쉬잔 발라동 - <그물을 던지는 사람들>

르누아르, 루벤스 등 - <파리스의 심판>

피코, 제라르, 루벤스 등 - <에로스와 프시케>

프레더릭 샌더스 - <사랑의 그림자>

 

 

프레더릭 샌디스<메데이아>1866 목판에 유채 62.2×46.3 버밍엄 시립미술관

 


Dante Gabriel Rossetti(1828-1882), Beloved

 

에두바르 뭉크 - <질투 1, 2, 3>

 

 

 

 

 

2

에드가르 드가 - <압생트를 마시는 여인>

빈센트 반 고흐 - <밤의 카페>, <밤의 카페 테라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디너 테이블에 앉은 매춘부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 <목욕하는 여인들>, <<에터 바데의 초상> ,<데이지 꽃을 든 여인>

 

 

말년의 르누아르는 자신의 두 아들을 제1차 세게대전에 보내놓고도 주로 여성의 나체와 꽃을 그렸다. 사회문제나 인간 내면의 고통보다는 풀성한 몸매의 나체 여성들과 화사한 분위기를 화폭에 담았다. 이를 두고 훗날 영화감독이 된 아들 장 르누아르는 아버지에게 대들며 비난한다. 도덕이 무너지고 인간성이 황폐해가는 시기에 속물적인 그림만 그린다고. 르누아르는 두 아들의 팔과 다리를 잃은 것으로 자기 역할은 다한 것이라고 했다. "인생 자체가 우울한데 그림이라도 밝아야지, 그림은 기쁨에 넘치고 활기차야 돼. 비극은 다른 누군가가 그리겠지."라고 응답한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 <거울을 보는 루벤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살라이의 초상>

에두아르 마네 - <배 위의 모네> , <올랭피아>

클로드 모네 - <아르장퇴유 부근의 개양귀비꽃>

 

 

자네(에두아르 마네)에게 가능한 빨리 도와달라는 급한 청을 하느라 몇 줄 적고 있네. 내가 불행을 운명으로 안고 태어났다는 건 부정할 수 없네. 나는 알거지 신세로 여인숙에서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졌어. 아내 카미유와 불쌍한 어린 것은 시골로 보냈다네. 나도 얼마라도 보태줄 후원자를 찾아보려고 오늘 저녁에 떠난다네. 내 가족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태도라 내일은 어디서 잠을 청해야 할지 모르겠네.

 

- 고통 속에서 모네가

 

추신 : 어제는 너무 절망스러운 기분에 바보같이 강물에 몸을 던지려 했다네. 다행히 다친 데는 없네.

 

 

 

 

 렘브란트 판 레인 - <가죽을 벗긴 황소>, <돌아온 탕자의 옷을 입고서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 <돌아온 탕자>

귀스타브 쿠르베 - <세상의 근원>, <안녕하십니까 쿠르베씨>, <화가의 아틀리에 - 내 예술 인생 7년을 종합하는 실제 우화>

드가 - <댄서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 <누워있는 나부>

프리다 칼로 - <나의 아버지>

구스타프 클림트 - <희망2> <희망1>

오구ㅏㅣ스트 로댕 - <젊은 여인의 초상>

파블로 피카소 -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는 마야>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성 안나와 성 모자>

조반니 벨리니 - <성 모자와 예수>

에드바르 뭉크 - <마돈나>, <벰파이어-사랑과 고통>

폴 고갱 - <야회복을 입은 메테 고갱>

피에르 보나르 - <붉은 블라우스> <욕조 안의 누드>

빈센트 반 고흐 - <협죽도가 있는 정물>

살바도르 달리 - <아버지의 초상>

폴 세잔 - <빨간 소파에 앉은 마담 세잔>

클로드 모네 - <일본 의상을 입은 카미유>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 <배를 탄 르누아르와 샤리고>, <화가의 가족>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 - <자화상>, <경향성의 우화>,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막달라마리아>,<류트를 켜는 자화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성 히에로니무스>

폴 고갱 - <브루타뉴 풍경>, 지켜보고 있는 망자의 혼>

앙리 마티스 - <춤1.

앙리 루소 - <꿈>, <자화상>

오귀스트 로댕 - <지옥의 문>, <다나이드>, <영원한 우상>,

카미유 클로델 - <사쿤탈라>, <중년>

메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최후의 심판>

티치아노 베첼리오 - <아레티노의 초상>

안톤 라파엘 멩스 - <지아코모 카사노바의 초상>(1760)

얀 하빅스 스텐 - <굴 먹는 소녀>

제프 쿤스 - <풍선 강아지><성스런 심장>

루카스 - <세례 요한의 목을 들고 온 살로메>(1530)

장 베네 - <살로메>(1899)

프랑수아 부셰 - <마담 퐁파두르>

프란츠 아이블 - <독서하는 소녀>

데오도르 루셀 - <책 읽는 여성(나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 <책 읽는 여인>

 

 

 

 

 

 

 

 

 

 

 

 

 

 

 

 

1

 

 

 

         장 레옹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캔버스에 유채, 68.6 x 89  (1892).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옛날 키프로스에 피그말리온이라는 한 조각가가 살았다. 그는 여자의 결점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여성을 혐오하게 어 한평생 독신을 지내기로 결심하였다. 그렇지만 여자가 아주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훌륭한 솜씨로 상아로 된 여인상을 만들었다. 마치 살아 있는 현실의 여인과 똑같았다. 피그말리온 자신도 작품에 감탄한 나머지 작품과사랑에 빠졌다. 매일 키스하고 껴안기도 하고  소녀가 좋아할 만한 조개껍대기라든가, 보석, 갖가지 꽃 등을 선물로주었다. 심지어 옷을 입히고 손가락에 보석을 끼우고 목에는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그는 그녀를 튀로스 지방에서 나는 염료로 물들인 클로드를 깐 소파 위에 뉘고, 그녀를 자기의 아내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그녀의 머리를 가장 보들보들한 깃털을 넣어 만든 베개 위에 뉘었다.

아프로디테의 제전이 가까워졌다. 이 제전은 키프로스 섬에서 굉장히 호화롭게 거행되었다. 희생의 연기가 오르고 향내는 공중에 가득했다. 피그말리온은 이 제전에서 자기의 임무를 끝내고 난 뒤에, 제단 앞에 서서 머뭇거리며 말했다. "신들이여, 원컨대 나에게 나의 상아 처녀와 같은 여인을 아내로 점지하여 주십시오."   제전에 참석했던 아프로디테는 그의 말을 듣고 그가 말하려고 한 참뜻을 알았다. 그리고 그의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표시로 제단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을 세 번 공중에 세차게 오르게 했다. 집으로 돌아가자 피그말리온은 그의 조각을 보러 갔다. 그는 소파에 기대어 조각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그 입술에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조각의 입술에 키스하고 그 팔다리에 자기의 손을 대어 보았다. 그러자 그 상아는 그의 손에 부드럽게 느껴졌다. 손가락으로 눌러 보니 히메토스산(산)의 밀초처럼 들어갔다. 그것은 정말 살아 있는 것이었다. 

아프로디테는 자기가 맺어준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 주었다. 이 결합으로부터 딸 파포스가 탄생했는데, 아프로디테에게 바쳐진 파포스라는 마을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피그말리온 효과 : 칭찬하면 칭찬할수록 더욱 더 잘 하는 동기를 제공하는 게 심리학서는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19세기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인 장 레옹 제롬과 영국 라파엘前派의 에드워드 번 존스는 여러 차례에 걸쳐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를 그렸다. 특히 제롬은 장 오구ㅏㅣ스트 앵그르의 영향을 받아 관능적인 여성과 드라마틱한 장면을 아주 잘 그렸다. 

 

 

 

 

 

 

 

 

 

 

 

조반니 벨리니, 성모자상, 목판에 유화, 1487년, Giovanni Bellini, Madonna with the Child, 1487, Oil on panel, 75 x 59 cm, Museu de Arte, São Paulo, 브라질 상파울루.jpg

조반니 벨리니, 성모자상, 목판에 유화, 1487년, Giovanni Bellini, Madonna with the Child, 1487, Oil on panel, 75 x 59 cm, Museu de Arte, São Paulo, 브라질 상파울루

 

서구 미술관에 가면 성모자상이 넘쳐난다. 그래서인지 모자관계의 가장 이상적인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이 도상은 더 이상 눈길을 사로잡지 못한다. 성스러운 모자관계,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헌신적인 사랑 등등의 레토릭이 일종의 클리셰(Cliche·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로 전락한 것이다. 그런데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모자상에 흥미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어머니·아이 관계의 이면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어떤 사람에겐 엄마가 불안한 존재이고, 알 수 없는 여자이며, 자식을 돌보지 않는 파렴치한 인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베네치아 르네상스 최성기의 화가 조반니 벨리니는 성모자상을 많이 그린 화가 중 하나다. 그는 왜 그렇게 성모자상에 집착했던 것일까?
먼저 벨리니의 성모자상은 피렌체 르네상스의 날카로운 감수성과 딱딱한 형태감과는 달리 베네치아화파만이 가진 빛에 대한 부드럽고 섬세한 색채 감각이 돋보인다. 마돈나는 더욱 유려하고 아름다워진 느낌인데, 그게 다가 아니다. 어딘지 베일에 가려진 듯 훨씬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분위기다.

벨리니의 전기를 보면, 그는 가족과 떨어져 지냈으며 어머니의 유언에도 자기 이름이 빠져 있었다고 한다. 이는 정신분석학자들로 하여금 벨리니의 어머니가 생모가 아닌 계모였을 가능성을 추측하게 한다. 그래서 벨리니가 그린 성모자상에서는 아기 중심의 어머니가 아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주이상스(Jouissance·열락)를 즐기는 어머니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 이 그림 속 예수는 처연한 표정으로 자기에게 관심 없는 마리아에게 간청하고 있다. 자기를 좀 봐달라고, 사랑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