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송성영, 김남희 外

2016. 8. 30. 13:04내 그림/(유화 소재)

 

 

 

 

 

 

대충 됐겠다 싶어서 액자 만들어 넣으려고 가져왔는데, 아니네 아니야,,

좀 더 손을 봐야겠구만. 영~' 의도완 다르네.

 

 

 

 

 

이건 일부러 천천히 그리는 중인데, 속도를 내서 마무리져버려야겠구만.

너무 오래 걸어놨더니 식상하네.

 

 

 

 

 

 

 

 

 

 

네팔 안나푸르나에 산다는 것

란드룩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에게 안나푸르나는 생활이다
16.06.20 10:29l최종 업데이트 16.06.20 10:29l
눈빛 초롱초롱한 네팔 아이가 받아내는 물줄기가 성수처럼 느껴져 '생수를 사서 먹어라'는 여행 안내서를 어기고 벌컥벌컥 그 물을 마셨다.ⓒ 송성영
란드룩에서 둘째 날, 늦잠을 자고 일어나 평소처럼 아침 겸 점심을 간단하게 마치고 게스트하우스를 빠져 나왔다. 한 아이가 란드룩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한 수돗가에서 작은 청동 항아리를 씻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나마스테' 인사를 건네자 빙그레 웃는다.

아이는 청결하게 씻은 청동 항아리에 물을 담는다. 마치 성수라도 담아내듯 정성스럽다. 작은 항아리로 쏟아져 내리는 맑은 물이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빛을 닮았다.

"이 물 먹어도 되니?"

내가 물 마시는 시늉을 하며 아이에게 물었더니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항아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힐긋힐긋 쳐다본다. 내가 함박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자 부끄러운지 히죽 웃는다. 아이가 저만치 골목길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대 본다. 차갑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줄기에 입을 댄다. '자칫하면 배탈이 날 수 있다'는 생각을 접어 두고 벌컥벌컥 마신다. 란드룩에 오기 전 톨카에서 마신 물 때문에 배가 살살 아파왔지만 반나절 만에 잠잠해졌다. 인도나 네팔의 도심에서 석회질 성분이 많은 물을 잘못 마셨다가는 큰일을 치룰 수도 있지만 여기는 청정한 히말라야 기슭이 아니던가.

반드시 생수를 사서 마시라는 여행 경고장을 어기고 내 몸을 믿고 싶어졌다. 북인도 코사니의 시골 의사가 수술대에 올라야 될지도 모른다 했던 다친 무릎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 처음에는 도무지 걷지 못할 것만 같았지만 1개월도 채 안돼서 어제 톨카에서부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1시간 거리를 걷지 않았던가. 거기다가 인도를 거쳐 이곳 네팔에 오기까지 3개월 동안 낯선 사람들이 친절하게 건네는 음식을 입에 대지 말라는 경고장을 수없이 어겨왔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두려움은 내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형체 없는 귀신과 다름없다. 두려움은 몸과 마음을 망가뜨린다. 여행길도 마찬가지다. 낯선 것에 대한 경이로움을 만끽하기 보다는 두려움에 휩쓸려 여행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홀로 떠나는 여행길은 익숙한 것들로부터 결별하고 낯선 것들과의 끊임없는 만남이다.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면 병든 몸과 마음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그것이 내 오랜 믿음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전 성수처럼 다가왔던 물을 마시기 전에 망설였다. 두려움으로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었다. 낯선 나라를 홀로 떠돌아다니는 것은 내 오랜 믿음에 대한 시험이기도 하다.

두려움에 휩쓸려 여행을 망치지 않기를...
물을 긷던 한 네팔 여인이 넋을 놓고 안나푸르나를 바라보고 있다.ⓒ 송성영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인. 북인도 시골 마을 코사니에서처럼 이곳 란드룩에서도 밭일은 여자들 몫인가 보다.ⓒ 송성영
이른 아침부터 수돗가에서 아낙네가 양동이에 물을 긷다 말고 안나푸르나를 넋놓고 바라보고 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안나푸르나를 평생 동안 바라보고 살아왔을 아낙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 같은 배낭객들은 평생 한두 번 볼까말까 하는 저 안나푸르나에서 벗어나 화려한 도시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어젯밤 남편과 대판 싸우고 신세 한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가슴이 아파온다.

아니다. 나는 불경한 생각들을 접어둔다. 저 아낙네는 신처럼 변함없는 저 안나푸르나를 향해 마음속으로 행복한 뭔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온갖 상상을 해가며 좀 더 마을 아래로 내려섰다.

밭일을 마치고 빈 대바구니를 가볍게 이고 걸어가는 아낙네를 뒤따라가 본다. 북인도 시골 마을 코사니에서처럼 이곳 란드룩에서도 밭일은 여자들 몫인가 보다. 아낙네가 들어선 낡은 집은 란드룩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지붕들을 전시해 놓은 듯 초가지붕과 함께 납작한 돌과 양철을 얹힌 지붕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아낙네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본다. 나는 아낙네에게 '나마스테' 인사를 건네며 몸짓으로 말을 건네 볼까 하다가 그만두고 돌아서 나왔다.
안나푸르나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 저 계곡 반대편 마을을 향해 걸었다. ⓒ 송성영
계곡 반대편에 자리한 주변에 다랭이밭이 널려 있는 작고 아담한 마을에서 한 세월을 보내고 싶었다.ⓒ 송성영
란드룩 마을 저 아래로 안나푸르나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계곡이 있다. 저 안나푸르나를 향해 모든 잡생각을 버리고 걷고 또 걷고 싶었지만 무릎 통증 때문에 트레킹은 접어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 계곡 건너 마을까지라도 가볼 작정이다. 거기에 안나푸르나를 조망할 수 있는 적당한 민가를 찾아 사나흘 보낼 생각으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계곡으로 내려서는 돌길이 급경사다. 30분도 채 내려서지 못했는데 고장난 무릎에서 불편한 신호를 보내왔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발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무릎이 욱신거린다. 무릎 관절이 기름칠하지 않은 기계처럼 뻑뻑하다. 어제는 적당한 경사의 산길과 평지를 걸었기에 한 시간을 족히 걸었지만 이 길은 다르다. 한 걸음 한 걸음 급경사를 내려설 때마다 고통이 밀려온다.

마을을 건너는 다리가 눈앞에 보인다. 안나푸르나에서 내려오는 계곡물 사이에 놓여진 저 다리를 건너면 올망졸망 들어서 있는 작은 마을을 만날 수 있다. 멀리서 본 것과 달리 마을은 평화로움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마을 주변 산비탈에는 온통 다랑이밭이 널려 있다. 열 가구가 채 안 돼 보이는 저 작고 아담한 마을에 머물면서 어떤 작물을 심고 또 어떤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지 알고 싶다.

하지만 고지를 코앞에 두고 무릎 통증과 함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갑자기 무릎이 뚝 꺾이는 느낌이다. 숙소로 향해 다시 비탈길을 올라갈 일이 까마득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저 다리를 건너 마을로 내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아 나가기 위해 돌계단에 앉아 명상을 하듯 눈을 감았다. 애초에 사나흘을 머물고 싶다는 생각의 날개는 점점 더 창공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여권이고 비자고 다 팽개쳐 버리고 저 아담한 마을에서 농사를 지어가며 한 세월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데 이슬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처음 히말라야 설산을 만나 그 아래 까마득한 암자를 바라보면서 고민 했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도 내 고민을 말끔히 씻어 주는 비가 내렸다. 나를 보호해 주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이 비를 통해 내게 메신저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현실적인 상상을 접고 얼른 돌아가라. 어제는 돌아갈 곳이 없어 막막했는데 오늘은 분명 돌아갈 곳이 있지 않느냐.'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고지를 코앞에 두고 몰려온 무릎 통증
토마토를 저울에 달아 주는 란드룩의 네팔 사내. ⓒ 송성영
등줄기로 흐르는 식은땀에 절어 숨을 헉헉 몰아쉬며 다시 비탈진 돌길을 올라설 무렵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저만치 산비탈에 돌집을 짓고 살아가는 한 사내가 대바구니에 토마토와 자두를 챙기고 있다.

하루에 한 끼 정도를 과일로 때우고 있던 나는 사내에게 다가가 손짓 발짓으로 토마토 1킬로를 달라고 했다. 내가 돈을 내밀자 사내 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서 있던 아낙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사내는 대바구니에 실려 있는 저울을 꺼내 꼼꼼하게 달아 준다.

"아이들은 없나요?"

그는 영어를 할 줄 모른다. 손짓으로 요만한 아이가 없냐고 했더니 무표정한 사내의 얼굴이 그제서 씨익 웃는 표정이 된다. 사내는 아내의 불룩한 배를 손짓한다. 아내가 임신 중이라는 것이다. 사내가 대바니구를 챙겨 어깨에 걸쳐 메고 집을 나선다. 아내는 집 나서는 남편의 뒤에서 팔짱을 끼고 배웅을 한다.

사내는 게스트하우스 주변을 돌며 과일 행상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트레킹족들이 뜸한 비수기라서 장사가 시원치 않을 것이다. 조만간 세상에 태어날 아기를 위해 사내는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아야 할 것이다.
과일 장사 나서는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송성영
충남 공주 산골에 살 때 시를 쓰는 한 후배가 '문학소녀'를 꿈꾸는 한 무리의 아줌마들을 몰고 온 적이 있었다. 그들은 사진기를 앞장세워 우리 집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이며 대나무 숲을 둘러보면서 참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다며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다 쓰러져가는 사랑채며 비가 오면 질퍽거리는 흙 마당,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고 여름이면 감질나게 흐르는 산기슭의 식수, 거기다가 장마철이 돌아오면 똥물이 튀기는 재례식 화장실이며 온갖 생활의 불편함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떠난 뒤 아이들 엄마의 눈치를 살펴가며 '그렇게 아름답다면 여기서 한번 살아봐라 그 소리가 나오는지...' 참 진상들이라고 비난했는데 지금 내가 그 꼴이었다.

멀고 먼 길 따라 안나푸르나를 찾아와 감탄을 자아내며 사진을 찍어대고 있는 내게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 위해 삶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과일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행상을 나서는 저 사내는 뭐라 말할까.

누군가를 비난하는 손가락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가게 되어 있다. 저들 앞에서 히말라야 설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성수니 뭐니 해가며 그 물을 받아 농사를 지어가며 한 세월을 보내고 싶다는 내 생각은 사치였다. 삶은 행복한 순간보다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더 많다.

때로는 행복한 순간들이 찾아오겠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그렇듯이 히말라야 설산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저들 또한 대부분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신은, 저 안나푸르나는 나의 사치스런 생각을 질타하며 비를 통해 내 자신을 직시하라 일렀던 것이다. 어리석은 내 마음을 되돌아 보자 무거웠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문득 고행길은 내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나푸르나는 왜 푸르나

그곳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성을 보라

16.07.14 20:37l최종 업데이트 16.07.14 20:3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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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유일한 객손인 숙소를 홀로 지키고 있는 젊은 엄마의 딸아이와 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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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드룩에서 사흘째, 아침나절 오락가락하던 비가 그치고 방문 앞에 납작 엎드려 있던 멍멍이가 어디론가 떠났다. 어제 오후 길에서 만난 녀석인데 이층에 있는 숙소 방문 앞까지 따라왔었다. 먹을거리를 요구하지 않고 비가 오는 내내 내 방문 앞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네팔에서도 인도처럼 끈 풀린 개들이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다가 인연 닿는 사람을 만나면 잠시 따라나서곤 한다. 먹을거리와 상관없이 따라나서면서 그 인연에 구속되지도 않는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뭔가를 먹어야 할 시간이다. 방문 앞에 있던 멍멍이 녀석 역시 어디론가 먹을거리를 찾아 나선 모양이다. 아래층으로 내려서자 꼬마 아이 둘이 사진기를 들고 있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내가 합장을 하며 '나마스테' 인사를 건네자 녀석들이 부끄러운지 몸을 비틀며 머뭇거린다. 손님이라곤 내가 전부인 텅 빈 숙소를 외롭게 지키고 있는 젊은 여자가 그 뒤에서 빙그레 웃으며 아이들에게 답례 하라는 손짓을 보낸다. 아이들이 말없이 합장을 한다.

"이 아이들은 누구입니까?"
"내 딸입니다. 남자아이는 조카입니다."
"예? 결혼 했습니까?"

나는 그때서야 그녀가 아가씨가 아니라 젊은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에게 이곳 란드룩에 오기 전에 톨카에서 먹었던 사과 케이크를 요청하자 메뉴판을 건네며 다른 음식을 시키라고 말한다. 비수기라서 요리사가 휴가를 갔다며 자신이 요리할 수 있는 몇 가지 음식만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단맛 나는 빵 종류를 먹고 싶습니다. 이 근처에 케이크를 파는 상점이 없습니까?"
"뒤편에 있는 상점에 가보세요. 그곳에서 팔 것입니다."

날줄과 씨줄이 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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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감 재료인 삼실을 길게 늘어놓고 있는 란드룩 아낙네. 뒷편에 구름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안나푸르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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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의 속소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 내게 구김살 없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녀가 알려준 대로 돌계단을 밟고 숙소 뒤편으로 오르자 저 만치 안나푸르나 주변으로 흰 구름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식당을 겸하고 있는 상점 앞마당에서 한 아낙네가 대마(삼베)에서 뽑은 것으로 보이는 실을 길게 늘어놓고 옷감을 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케이크 있습니까?"
"아니요."
"빵은 있습니까?"
"아니요."

그녀가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빙그레 웃으며 무조건 "노"라고 대답한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자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그녀는 아무도 없다는 손짓을 한다.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짜고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대화를 할 수 없어 사진기를 꺼내 들고 저만치 쪼그려 앉아 그녀의 일손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옷감은 날줄과 씨줄로 짜여 진다. 날줄은 세로로 놓인 실이고 씨줄은 가로로 놓은 실이다. 어느 한 줄이라도 없으면 옷감을 짤 수 없다. 사람살이도 마찬가지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안나푸르나 기슭에 살아가고 있는 네팔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애시 당초 이곳에 올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언어든 몸짓이든 이들과 소통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날줄과 씨줄을 조화롭게 짜지 않으면 뒤 엉키듯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제 욕심만 챙긴다면 사람살이는 엉망진창이 된다. 날줄과 씨줄의 조화로움 속에서 아름다운 비단이 짜지듯 성인들의 지혜로운 가르침에 따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 조화롭게 살다보면 사람살이 또한 비단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경천위지'(經天緯地)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보통 하늘과 땅을 다스려 온 천하를 다스린다(얻는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경천위지의 경(經)은 날줄, 위(緯)는 씨줄을 뜻한다. 날줄과 씨줄은 조화다. 하늘과 땅은 누군가가 다스릴 대상이 아니다. 다스리는 게 아니라 조화 그 자체다. 하늘과 땅은 상생한다. 지혜로운 성인들이 그랬듯이 그 이치를 깨달을 때 비로소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천하를 얻는 것은 다스리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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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푸르나와 빨래. 그동안 사진기 렌즈를 통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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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푸르나와 전기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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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뗀둑(수제비 종류)으로 요기를 하고 있는데 창문 사이로 안나푸르나 앞에 걸려 있는 빨래 줄과 저만치 전기 줄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그동안 눈에 거슬리는 것을 거부하고 순백의 안나푸르나를 찍으려 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들, 안나푸르나와 함께 잡혀 오는 저 빨래와 전기 줄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겠는가. 저 사람살이의 흔적인 빨래줄과 전기줄이 없었다면, 거기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저 안나푸르나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동안 거부해왔던 빨래줄과 전기줄이 걸려 있는 안나푸르나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이곳 사람들에게 안나푸르나는 단지 생활의 일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레킹을 즐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산이거나 또 어떤 등반가들에게는 그 어떤 산보다 높은 산봉우리, 안나푸르나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히말라야 기슭에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그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이 거처하는 다가갈 수 없는 산, 생명수를 내려주는 산이거나 늘 곁에 있는 눈 덮인 높다란 뒷산이나 앞산일 것이다.

밤길 떠나는 청춘남녀를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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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의 젊은 엄마와 그녀의 동생이 손가락만한 굵기의 삶은 고사리를 말리기 위해 반으로 쪼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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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벗어나 전기 줄이 걸려 있는 안나푸르나 사진을 찍고 돌아올 무렵 숙소를 지키는 젊은 아줌마가 동생과 함께 고사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이곳 고산지대의 고사리는 한국의 고사리와는 달리 손가락 굵기 만하다. 그 삶은 고사리를 쉽게 말리기 위해 반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나는 고사리라는 영어 단어를 알지 못해 손짓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북인도 코사니라는 마을에서는 저걸 먹지 않던데 여기 사람들은 먹나요?"
"예, 끓는 물에 삶아 요리합니다."
"한국 사람들도 즐겨 먹습니다."

북인도 코사니 사람들은 독성이 강해 먹으면 큰일 난다고 했지만 이곳 란드룩 사람들은 한국에서처럼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 끓는 물에 삶는다. 그 삶은 고사리를 바싹 말려 보관해놨다가 물에 부풀려 요리한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한국에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요리해 먹는다고 했더니 먹거리가 같다는 것에 동질감을 느꼈는지 반겨 웃는다. 내친김에 그녀에게 내가 알고 있는 영어를 총동원해 이것저것 캐물었다.

"실례지만 몇 살입니까?"
"스물 넷입니다."
"네팔 여자들은 보통 몇 살에 결혼 합니까?"
"보통 열여덟이면 결혼하는데 저는 열아홉에 결혼했습니다."

인도의 시골에서처럼 네팔 시골에서도 대부분 중매결혼을 한다고 하는데 그녀는 란드룩 마을 청년과 연애결혼을 했다고 한다.

"네팔 시골에서도 연애결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까?"
"아니요. 대부분 부모가 짝을 맺어 줍니다."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데 집안에서 반대하면 어떻게 합니다."
"우리 부모 세대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이 도시로 나가 살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눈 맞은 청춘남녀들이 도시로 야반도주해 살림을 차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부모의 눈을 피해 짐 가방을 챙겨 동구 밖 어딘가에서 만나 두 손 꼬옥 잡고 밤길을 떠나는 애뜻한 청춘 남녀를 상상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오래전 한국에서도 그런 일들이 종종 있었다고 말했더니 그녀가 환하게 웃는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다가 어쩌면 저 젊은 엄마도 열아홉, 아리따운 나이에 죽고 못 사는 동네 청년과 야반도주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크나큰 불행이다. 사랑을 쫓아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일이다.

"남편이 보이지 않던데... 어디에 있습니까?"
"포카라에서 일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옵니다."

인도 시골과는 달리 네팔 시골에서는 보통 부부가 함께 농사일을 하는데 이곳 남자들은 대부분 포카라와 같은 대도시에 나가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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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철 지붕 위에 손질한 고사리를 펼쳐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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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동생이 손질한 고사리를 양철 지붕 위에 펼쳐 놓는 것을 보면서 내가 '나마스테' 합장을 하며 일어서자 그녀의 딸아이가 엉겁결에 합장을 한다. 내가 부끄러워하는 딸아이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자 녀석이 배시시 웃는다. 젊은 엄마도 흡족한 표정으로 따라 웃는다. 우리 모두가 기분 좋게 웃는다.

숙소 2층으로 올라가면서 딸아이의 순박한 미소를 떠올리다가 문득 내가 그토록 저 순백의 안나푸르나를 만나고자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란드룩에서의 사흘 내내 나는 이곳 어린 아이처럼 순박한 미소를 닮은 란드룩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 내가 안나푸르나를 만나러 온 것은 그 순박한 사람들을 만나러 온 것이었다. 안나푸르나가 아름다운 것은 거기에 깃들어 살아가고 있는 순박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빼어난 경관의 명당자리라 한들 거기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심성이 고약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청와대라는 좋은 명당자리를 꿰차고 앉아 온갖 색동옷으로 패션쇼나 벌여가며 제 나라 국민들의 아픔을 나 몰라라 하고 다른 나라의 비위나 맞춰 가며 제 민족과 벽을 쌓아 가고 있다면? 청와대의 명당자리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이곳 란드룩 사람들처럼 순박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깃들어 살아간다면 혼잡한 서울 또한 아름다운 도시가 될 것이다. 안나푸르나 기슭에 사람이 없거나 자본에 찌들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안나푸르나는 그저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삭막한 불모의 산, 단지 눈 덮인 높은 산봉우리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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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란드룩 마을의 옥수수 밭과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가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람살이가 있기 때문이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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