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베네치아 - 2

2016. 8. 6. 09:57여행/이태리

 

 

 

 

 

 

 

 

 

 

 

 

 

 

 

 

 

 

 

 

 

 

 

 

 

 

 

 

 

 

 

 

 

 

 

 

 

 

 

 

 

 

 

 

 

 

 

 

 

 

 

 

 

 

 

 

 

 

 

 

 

 

 

 

 

 

 

 

 

탄식의 다리

 

 

베네치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 다리는 작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이어 주는 다리이다. 궁전에서 재판을 받고 감옥으로 가던 죄수들이 한숨을 쉬는 곳이라고 해서 탄식의 다리로 불리는 곳이다. 베네치아는 홍수가 많이 나는데, 지하 감옥은 홍수가 날때 물에 잠겨 버리기 때문에 이 다리를 건너 감옥에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 전해졌다. 그래서 이 다리를 지날 때 세상과 하직 인사를 하는 것이다.

카사노바가 탈옥한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카사노바는 베네치아 출신인데, 워낙 잘생기고 언변이 뛰어나 여러 여성들과 두루 사귀었다고 한다. 결국 풍기문란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가 사귀던 여성들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하게 된다. 그는 가면무도회 때 돈으로 매수당한 간수로부터 가면을 받아서 가면을 쓰고 자연스럽게 감옥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그는 탈출하고 난 후, 산 마르코 광장의 플로리안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갔다고 하는데, 그 카페는 아직도 영업 중이다. 오늘날 탄식의 다리는 베네치아 여행 중 멋진 사진을 담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산 마르코 대성당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San Marco)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San Marco)

 

 

이집트 지역에서 가져온 여러 유물과 산 마르코(*마가복음의 마가)의 유골을 안치할 납골당의 목적으로 9세기에 세웠다. 11세기에 롬바르디아 양식이 가미되어 리모델링되었고 전체적으로 비잔틴 양식을 지니고 있다. 돔은 총 5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 마르코의 업적을 기리는 12~13세기의 그림들이 있다. 하지만 베네치아가 오스트리아로 넘어갈 때 나폴레옹과 오스트리아에서 유물을 모두 가져갔다. 그 뒤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쟁의 패배로 그때의 전리품들을 돌려주게 되었는데 다 돌려받지는 못했다.

산 마르코 성당 입구 위의 4마리의 청동 말들은 베네치아가 1204년 콘스탄티노플 에서 가져온 것이다. 현재의 것은 복제품이며 진품은 성당 2층의 박물관에 있다. 이 말들은 현재 여러 유럽의 장식물로 많이 쓰이는데 로마에 있는 법원 건물에서라든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의 카루젤 개선문 등지에서 볼 수 있다.

 

 

 

 

 

 

 

 

 

 

 

 

 

 

 

 

 

 

 

 

 

 

  

 

 

 

 

 

 

 

 

 

 

산 마르코의 행적과 교회 건립의 유래를 모자이크로 그린 것임.

 

 

 

 

 

 

 

 

 

 

 


 

 

 

 

 

 

 

 

 

 

 

 

 

 

 

산마르코 광장

 

산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은 베네치아에 위치한 광장으로, 베네치아의 가장 유명한 광장이며 베네치아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하던 광장이다. 베네치아에서는 산 마르코 광장을 단순히 '광장' (la Piazza)라고 지칭한다. 산마르코 광장과, 피아제타, 그리고 로마 광장을 제외한 다른 모든 공공 공간들은 광장이라고 불리는 대신에, 들판들이라는 뜻을 가진 캄피 (Campi - Campo의 복수)라고 불렸다. 작은 광장이라는 뜻을 가진 피아제타 (la Piazzetta)는 베네치아 석호 방향 남동쪽으로 산 마르코 광장이 연장된 것이다. 산마르코 광장은 피아제타와 함께 베네치아의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를 형성했고, 보통 하나처럼 여겨졌다.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

 

 

 

동쪽 끝은 산마르코대성당이 차지하고 있다. 산마르코 광장을 답사는 주로 광장을 면하고 있는 이 성당의 서쪽 끝에서 시작해서 우측으로 진행된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산마르코 대성당의 서쪽 파사드는, 거대한 아치들과 대리석 장식들로 만들어져있는데, 로마네스크 양식의 조각품들이 중앙 정문을 감싸고 있다. 이 아치의 위쪽에는 베네치아의 자부심과 힘을 상징하는 청동으로 된 네 마리의 말이 광장 쪽을 향해 있는데, 베네치아와 함께 지중해 무역을 지배하며 경쟁관계를 형성했던 제노바는 1379년 이 말들에 재갈이 물려지지 않는 이상 두 도시 간의 평화는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4백년 뒤, 베네치아를 정복한 나폴레옹은 이 말들을 끌어내려 파리로 가져가기도 했다.

레온치니 소광장은 성당의 북쪽에 위치한 광장으로, 1722년에 도제였단 알비세 모체니고가 제막한 광장 입구 양쪽에 위치한 두 마리의 대리석 사자들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데, 현재는 공식적으로 요한 23세 소광장으로 불리고 있다. 성당의 동쪽에 접해있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은 파트리아르칼레 궁전으로 베네치아의 총대주교좌 건물이다.

그 다음 건물은 1499년에 완공된 시계탑으로, 메르체리아라고 불리는 이 시계탑 건물의 아치로 된 길은 베네치아의 상업적 정치적 중심지인 리알토 지구의 상점가로 연결된다. 이 시계탑의 우측에는 발다사레 론게나 1675년에 설계한 산 바소 성당이 있는데, 이 건물은 가끔 전시회를 위해 개방될 때를 제외하고는 개방되지 않는다.

 

좌측에는 광장의 북쪽을 따라 지어진 긴 아케이드가 나오는데, 이 아케이드의 이름은 프로쿠라티에 베키에라 불리는데, 그 연원은 이 건물이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도제 다음의 영예를 지녔던 산마르코의 프로쿠라티에의 집과 집무실로 쓰였던 곳이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아케이드를 구성하는 건물들은 16세기 초에 지어졌는데, 1층은 상점과 식당들이 차지하고 있고, 2층은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이 1층의 상점과 식당 중에는 맞은 편에 있는 카페 플로리안과 함께 유명한 카페로 쌍벽을 이루는 카페 콰드리가 있는데, 이 카페는 19세기 오스트리아 통치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이 애용했던 플로리안과 반대로 오스트리아인이 애용한 것으로 유명했다.

 

이 아케이드의 끝에서 다시 왼쪽으로 돌면 아케이드가 광장의 서쪽끝을 따라 이어지는데, 이 아케이드는 1810년 나폴레옹이 재건축한 것으로 나폴레옹 동(棟)[이라는 뜻의 알라 나폴레오니카라고 불린다. 이 곳의 상점가 뒤쪽에는 과거에는 왕궁으로 이어지는 예식용 계단이 존재했는데, 현재는 코레르 박물관의 입구로 쓰이고 있다.

 

왼쪽으로 다시 돌면 아케이드가 광장의 남쪽으로 계속 이어지는데, 이 쪽의 아케이드는 프로쿠라티에 누오베라고 불린다. 이 프로쿠라티에 누오베는 자코포 산소비노가 16세기 중엽에 설계한 것이지만 그의 사후 1582년부터 1586년까지 빈첸조 스카모치에 의해 프로쿠라티에들이 요청한 바에 따라 변경된 형태로 일부가 건축되었고, 1640년 발다사레 론게나가 최종적으로 이 건물을 완성했다. 이 건물은 다른 아케이드처럼 상점가로 꾸며져 있는데, 이 중에는 현존하는 카페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카페 플로리안이 있다. 1720년 플로리아노 프란체스코니가 개업한 카페 플로리안은 카페 콰드리와 대조적으로 베네치아 사람들이 애용하던 카페였다. 이 아케이드의 위층은 나폴레옹이 그가 베네치아 총독으로 임명한 의붓아들 외젠 보아르네의 관저로 쓰였고, 현재는 코레르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 프로쿠라티에 누오베의 가장 끝에는 16세기 중엽에 건설된 국립 마르차나 도서관의 북쪽 끝과 만나는데 이 도서관의 정면은 피아제타를 면하고 있다. 이 아케이드는 모퉁이를 돌아 피아제타로 이어진다.

 

이 반대편으로 산 마르코 성당의 종탑이 광장에 독립적인 형태로 교회와 연결되지 않고 세워져 있는데, 종탑은 1912년에 새로 건축된 종탑이다. 원래의 종탑은 1156년부터 1173년까지 건설되었고, 1514년 복원된 건물이었는데,1902년 7월 탑의 북쪽에 심각한 균열이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1912년 7월 14일 오전 9시 45분 경 완전히 무너졌고, 그 이후에 현재의 종탑을 새로 건축하였다. 이 종탑의 부근에 성당을 바라보고 있는 로제타)라는 우아한 모습의 작은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은 산소비노에 의해서 1537년부터 1546년에 걸쳐 지어졌다. 이 건물 또한 종탑이 1902년에 무너지면서 같이 붕괴되었다가 복원되었다. 로제타 도제 궁에서 열리는 시의회에 참석하기 위한 귀족들과 시의회가 개회되었을 때 경비원들이 쓰는 로비로 사용되었다.

 

광장 건너편 성당 앞에는 세 개의 거대한 돛과 같은 모습의 1505년 알레산드로 레오파르디가 만든 양각으로 장식된 청동 받침대에 세워진 깃대가 있다.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에는 베네치아의 산마르코기가 이 깃대에 게양되었는데, 현재는 이탈리아 국기와 함께 게양되고 있다.

 

 

 

 

 

 

두칼레궁전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은 베네치아 도제(국가원수)의 공식적인 주거지로 9세기에 건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1309년부터 1424년의 기간에 걸쳐 지어진 것이다. 고딕양식의 건물로, 조형미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뛰어나다. 산마르코 대성당에 면한 쪽에 '문서의 문(Porta della Carta)'이 있는데 옛날에는 여기에 정부의 포고문이나 법령 등을 붙였다. 문 위에 보이는 날개가 있는 사자는 베네치아의 상징이다. 두칼레 궁전의 '10인 평의회의 방'에는 베네치아의 주요 역사를 그린 그림, 원수 76인의 초상화 등이 있다. 두칼레 궁전에서는 산 마르코 광장과 베네치아 석호를 동시에 바라보며 즐길 수 있다.

두칼레 궁전의 원형이 세워진 것은 샤를마뉴 대제가 죽은 해인 813년으로 베네치아인들이 정부의 소재지와 시의 중심지로 리알토섬을 택하면서 당시 도제였던 안젤로 혹은 아그넬로 파르티치파치오에 의해 도제의 거처로서 당시 다른 서유럽의 통치자들의 거주지들과 마찬가지로 요새화된 관저로 산 마르코 성당과 함께 세워졌다. 다만 그 형태나 위치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으며 대략적인 위치에 대해서도 온갖 가설이 대립하다시피 하고 있으나 건물의 대략적인 형태에 대해서 피에르로 오르셀로 2세가 도제로 있던 당시에 오토 대제가 베네치아를 방문했을때 그광경을 목격한 사고르니노란 인물의 기록에 의하면 폰다코 데 투르키와 같은 도시의 비잔틴 양식의 건축과 닮았으며 조각이라든지 황금과 찬란한 색체로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다고 적어 놓았다.

 

이후 이 궁전은 칸디아노 4세에 대한 반란으로 인한 화재와 1106년에 있는 화재로 두차레나 훼손되는 것과 동시에 재건을 반복됨과 동시에 확장되어 이후 1173년과 12세기말 사이에 도제 세바스티안 치아니에 의해 다시 보수 공사를 거치면서 확장되어 이후 14세기 초의 고딕화 작업이 시작되기전까지 백년 이상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1297년경 피에르트 그라데니고가 도제로서 집권하면서 베네치아의 정부에 중대한 변화와 함께 귀족들의 권력이 한층 더 공고해졌다. 이 와중에 두칼레 궁전은 한차레 변화를 겪게 된다. 1309년 두칼레 궁전은 증축 공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외·내부를 보수·증축을 해 1442년에 완공된다.

 

궁전의 평면은 U자 형으로 산 마르코 대성당과 붙어 있으며, 탄식의 다리가 있는 동쪽 면을 제외한 피아체타와 리바 드 스키아보니를 면한 부분들은 1·2층이 한 가운데의 작은 방을 두고 좌·우로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의 경우 첨두아치로 된 볼트로 처리되었지만 중정쪽은 평범한 아치로 구성되었다. 2층의 경우 외벽쪽은 오선아치로 되어 있었지만 중정쪽은 그냥 첨두 아치로 되어 있었다. 3층은 큰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피아체타와 리바 드 스키아보니의 면한 외벽쪽은 붉은색, 흰색, 검은색 벽돌로 쌓아놓였으며, 마름꼴 형태로 붉은색, 다음으로 안쪽으로 같은 방식으로 흰색, 당시 안쪽으로 붉은색, 흰색을 샇아두다가 마지막으로 검은색 벽돌을 심자 형태로 마무리했다.

궁전 안 인테리어는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혼재하고 있다

 

 

 

 

 

 

 

 

 

 

 

 

 

 

 

 

 

 

 

 

 

 

 

 

 

 

 

 

 

 

 

 

 

 

 

 

 

 

 

 

 

 

 

 

 

 

 

 

 

 

 

 

뒷골목 들어갔더니 길도 좁고 복잡합디다. 길 잃어버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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