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근영 지음 2011. 03
한국 미술을 움직이는 젊은 실세들, 예술과 창작의 비밀을 밝히다!
중앙일보와 미술전문가 50인이 한국미술을 대표할만한 30~40대 젊은 미술가 10인을 선정했다. 김주현, 노순택, 데비한, 박병춘, 박윤영, 박현수, 서도호, 양혜규, 이불, 정연두 등 선정된 작가들을 살펴보면 회화, 조각 같은 전통 장르는 물론 사진, 미디어아트, 설치미술 등을 아우르고 있어 동시대 미술의 지형도롤 정확하게 보여준다.『나는 예술가다』는 저자 권근영 기자가 이들 미술가 10인의 작업실을 찾아가 그들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창작을 고집하는가?’ 등과 같은 질문에 대해 작가들은 자신들의 창작 노트, 스케치, 과거의 작업을 꺼내 보이며 자신만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우리 곁에서 호흡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저자 권근영
- 저서(총 1권)
중앙일보 기자로, 문화부에서 미술을 담당했다. 어릴 땐 사람 이야기가 좋아 소설책을 끼고 살았다.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읽는 것만큼 보는 것이 좋아 서울대 미대 대학원에 진학,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서울대 미술경영 협동과정 박사과정을 마치고 강의한다. 비전공 학생들에겐 ‘그림 보는 법’을, 대중과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하는 미술가들에겐 ‘소통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미술과 대중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이 즐겁다. 보고, 읽고, 쓰고 나누는 일을 오래오래 하는 게 꿈이다.
서문-차가운 예술, 뜨거운 예술가
1부 예술가, 밖을 보다
박병춘
-발품 팔아 채집한 산수풍경, 생생한 날것으로 살아나다
한국화가 박병춘은 전통적인 화법의 구름 같은 격조보다는 현실, 현장의 날것을 선택했다. 그냥 날것이 아니라 그의 손과 눈을 통해 채집되고 재현되고, 다시 구성된 자연으로서의 살내, 땀내가 담긴 산수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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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in Red Lips, 70x48cm, Chinese ink on korean paper, 2005
Landscape in Yellow Banana, 190x136, Chinese ink on korean paper, 2005
Landscape in Yellow Postbox, 48x70cm, Chinese ink and acrylic on korean paper, 2005
Landscape with Love,190x136cm, Mixed media on korean paper, 2005
Some Landscape, 70x48cm, Chinese ink on korean paper, 2005
박병춘작가(좌)
노순택
-예술과 다큐의 경계에서 렌즈로 세상을 재조직하다
데비한
-너도, 나도, 모두, 비너스를 그리는 사회를 꼬집다
데비한(40·사진)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역주행’한 작가다. 11세 때 이민가 34세에 돌아왔다.
1년 뒤 아예 미국의 교수직을 정리하고 한국에 눌러앉았다.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너도나도 미국·유럽으로 나가는 형편이라 ‘미쳤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정작 그는 확고했다. “의식 구조의 서구화, 전통과 현실의 조화를 이뤄야 하는 아시아의 숙제에 관심이 있어서”였다.
계기는 비너스상이었다. 2004년, ‘미대 입시의 메카’라 불리던 서울 홍익대 앞에서 지내던 그는
학원 창문마다 똑같이 그린 석고상이 가득 붙어 있는 광경에 큰 충격을 받았다.
19세기에 일본이 프랑스로부터 수입한 아카데미즘의 잔재가 21세기 서울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미술대학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꼭 통과해야 할 높은 장벽으로.
그래서 1년여의 한국 생활을 마치면서 연 국내 첫 개인전(2004년)에는
미대 입시생들이 저마다 수백 개쯤은 사용할 지우개 가루를 일일이 종이에 붙여 비너스상, 아그리파상을 만든
‘지우개 드로잉’ 연작을 내놓았다.
한 남학교의 졸업사진 얼굴을 전부 아그리파의 얼굴로 바꿔 놓은 디지털 사진 ‘아그리파의 교실’도 미술계에 충격을 줬다.
◆한국 비판의 상징 ‘비너스’=
획일적 미술 교육을 고발하며 시작된 그의 비너스 탐구는 ‘미의 척도’에 대한 의심으로 확장됐다.
대표작 ‘여신들’ 시리즈는 평범한 한국 여성의 몸을 찍은 뒤 서구미의 대표 주자인 비너스의 얼굴과 합쳐
디지털 작업을 통해 고대 그리스 조각상처럼 바꾼 것이다.
8등신이 안 되는 그의 여신들은 서로 팔짱끼고 활보하고, 수줍게 입을 가리고 웃는다.
한국 여성들 고유 행동의 관찰기이자 실체와 이상, 과거와 현재, 동서양이 교감하는 현시대의 모습이다.
데비한이 2008년 발표한 디지털 사진 ‘비밀스러운 삼미신’(120×185㎝)은 우리나라 일반 여성들의 누드를 촬영한 뒤 비너스·아리아스 등 고대 그리스 조각의 두상을 결합한 뒤 조각 이미지로 바꿨다. 여자끼리 팔짱 끼고 소곤소곤 비밀을 털어놓는 듯한 포즈는 한국적이다. [데비한 제공] | |
비너스 비틀기는 사진에서 공예와 조각으로,
젊은 한국 여성들의 몸에서 중장년 여성과 임산부, 신체 절제 수술을 한 여성들로 확장 중이다.
데비한은 일주일의 반은 이 같은 사진 작업을 하고, 나머지 반은 경기도 이천의 도예 가마에서 보낸다.
째진 눈의 동양인 비너스상, 두툼한 입술의 아랍인 비너스상을 빚는다.
3년간 붙잡은 청자 비너스 ‘미의 조건’에 이어 백자 비너스, 나전칠기 비너스도 내놓고 있다.
◆“나를 개념미술가로 불러달라”=
이 때문에 데비한은 ‘사진가’라는 분류를 거부한다.
매체를 가리지 않는 만큼 ‘개념미술가’로 불러달라고 한다.
이 같은 성격을 잘 드러내는 작업은 ‘식(食)과 색(色)’ 연작이다.
한국·일본·독일 등지에서 일반 여성을 섭외, 그 나라 음식으로 치장하고 사진을 찍었다.
고춧가루 바른 입술을 육감적으로 내민 한국인 교사, 벗은 몸에 어묵을 목걸이처럼 두른 일본인 바이올리니스트 등이 등장한다.
“여성의 관능미가 음식처럼 소비되는 광고 사진을 패러디해 평범한 여성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프로젝트”라는 설명이다.
전시장의 호평과 달리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해서 2007년에야 비로소 제 평가를 받았다.
현재 데비한의 ‘여신들’ 사진은 1300만∼1500만원 선이다.
같은 해에 그는 ‘청자 비너스’ 시리즈로 뉴욕의 국제 미술재단인 ‘폴록 크래스너 재단’의 기금을 따냈다.
올해는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미술관에서 열리는 사진 비엔날레에 참여하며,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스위스 바젤에서 10번째 개인전을 연다.
권근영 기자
◆데비한=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11세 때 미국으로 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UCLA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프렛 인스티튜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34세 때 국내 미술관의 해외 작가 창작 스튜디오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돌아온 것을 계기로 한국에 눌러앉았다.
스페인 발렌시아 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생마늘과 진주를 엮어 목걸이와 귀걸이를 만든 '고귀한 향기'(2005)
데비한의 작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005년의 ‘식(食)과 색(色)’ 연작들이다.
이 연작사진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한 가지씩 비밀을 감추고 있다.
예컨대 우아한 상아 목걸이를 걸친 듯한 여인의 목에는, 반으로 쪼갠 마늘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붉은 펄 립스틱을 칠한 듯한 여인의 입술에 고춧가루가 곱게 발라져 있는가 하면,
초록빛으로 염색된 삐쭉빼쭉한 가발은 쪽파를 철사로 엮어 만든 것이다.
모두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자극적인 양념 재료라는 점이 독특하다.
지난 13일 열린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는 작가가 직접 마늘과 진주를 이어 목걸이를 만드는 모습을 비롯해,
각각의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을 슬라이드로 보여주었다.
가느다란 쪽파를 얼기설기 이어붙여 록 가수의 가발 같은 머리 모양을 연출했다.
사진 속의 여성들은 전문모델이 아닌 평범한 여성들이며, 독특한 화장과 장신구를 걸치며 또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다.
립스틱 대신 고춧가루를 바른 '에로틱 레드'.
에로틱한 장면을 이야기할 때 흔히 사용하는 '화끈하다'는 표현과 결부되어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참깨를 이용해 원시 부족 여성의 문신을 연상시키는 장식을 만들어낸다.
평범한 여성의 모습에서, 팜므파탈과 같이 마력을 지닌 여인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데비한은 사람들이 미인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먼저 반응하는지, 혹은 재료의 본질을 파악하고 경악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한다.
작가는 이런 재료 실험을 1999년 개최한 개인전에서 이미 선보인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슬라이드로 보여준 예전 작업 중 '개똥으로 빚은 초콜릿'은,
겉으로 보이는 예쁘고 먹음직한 모습과, 그 실체가 확연히 다른 풍자적인 작업의 사례다.
“길가에 버려진 개똥을 반죽해서 먹음직스러운 초콜릿을 만들고,
미용실에 버려진 다양한 인종의 머리카락들을 주워 달콤해 보이는 막대사탕을 만들었죠.
이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사람들이 무엇에 먼저 주목할까’ 궁금했어요.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먼저 반응하다가도, 재료가 무엇인지 알면 놀라워했어요.
그러면서도 다시 외면적인 부분에 집착했죠.”
그는 가치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대상물이 아름답게, 혹은 먹음직스러운 것으로 보이거나, 혐오스러운 것으로 비칠 수도 있음에 주목한다.
비너스 조각상을 변형한 일련의 미인 조각과 그림 역시 이러한 ‘미의 기준’에 따라 대상이 달리 보이는 현상을 다뤘다.
재미교포 1.5세대인 데비한은 서구적 미의 기준이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현실에 대해 가벼운 비틀기를 시도한다.
2004년 발표한 ‘미의 조건’ 연작은 그 대표적인 예다.
고대 그리스 조각 중에서도 이상화된 미인의 전형인 비너스 상을 이용해, 획일적인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현실을 풍자한 것.
비너스 조각상을 본떠 청자토를 빚어 만든 '미의 조건' 제작 과정.
다양한 인종의 특성을 담은 비너스의 얼굴을 통해, 미의 기준이 하나일 수 없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언뜻 보기엔 똑같은 비너스처럼 보이지만, 데비한이 청자로 다시 빚어낸 이 조각들은 교묘히 변조된 ‘짝퉁 비너스’들이다.
매부리코, 두툼한 입술, 가느다란 눈, 납작한 이마 등 다인종 여성의 특성을 지닌 이 ‘짝퉁’들은
원본을 모방하는 대신, 고유의 개성을 빛내며 당당히 서 있다.
미에 대한 고정관념을 살짝 비틀되, 무겁지 않게 접근하는 신세대 작가 특유의 발랄함이 담겨 있다.

“서양에서는 신비한 매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청자가 귀한 대접을 받지만,
정작 고려청자를 탄생시킨 한국에서는 고리타분한 골동품 정도로 취급되죠.
청자의 매력을 전하고 싶은 생각에 이천 도예지를 직접 방문해, 청자토로 비너스의 얼굴을 일일이 다시 빚어 가며 만든 작품들입니다.”
아줌마들이 목욕탕에 모여 수다를 떠는 듯한 분위기로 구성해 본 '일상의 비너스'(2006).
완벽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비너스와, 중년 여성의 풍만한 몸을 합성했다.
이밖에도 서구적인 미를 대표하는 비너스의 조각상 얼굴에 펑퍼짐한 한국 여성의 몸을 결합한 사진 연작 ‘일상의 비너스’(2006)나,
자신의 아름다움에 만족하지 못해 성형수술을 감행한 비너스로 성형중독 여성들을 풍자한 ‘적자생존’(2006) 연작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노인정에 모인 평범한 할머니를 촬영한 ‘미인’ 연작에서는,
연륜이 담긴 주름진 노파의 얼굴을 새로운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적자생존 No. 10(2006).
그리스 조각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유행하는 미의 기준에 맞춰 성형수술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풍자했다.

적자생존 No. 4(2006).
가면과 같은 얼굴 위의 선은 성형수술을 할 때 얼굴에 긋는 안내선이다.
큰 쌍꺼풀, 도톰한 입술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욕망이 담겨 있다.
“예술이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물이 쓸모를 위해서만 만들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예술 역시 그런 질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데비한의 이색 작품들 |작성자 2da
정연두
-카메라를 든 옛날 사람, 남루한 현실을 판타지로 물들이다
김주현
-예술가는 사회에 트집 잡고 제안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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