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5. 20:19ㆍ책 · 펌글 · 자료/역사
시오노 나나미든가? 『로마인 이야기』그 책이 나온 이후로 로마역사와 관련된 책이 꽤 많이 나온 것 같습디다.
예상 못한 히트가 부럽기도 했을테고, 시오노 나나미의 깊지 않은 지식이 만만해 보이기도 했을테고. ㅋㅋㅎㅎ
그런데 로마에 대한 책들은 나왔다 하면 대여섯 권씩 되는 것 같아 읽기에 부담됩디다.
어제 도서관엘 갔더니 신간 코너에 딱 읽기 맞춤한 게 꽂혀 있더군요. 얄팍해서 금방 읽겠습디다.
로마 역사에 대해서야 중·고딩 때부터 교과서 참고서로 질리게 읽었고, 영화로도 많이 봤고,
이 나라 저 나라 관광 갔을 적에 직접 내 눈으로 로마 유적들을 확인도 했고, 암튼 이리 저리 줘 들은 게 많긴 한데,
하지만 누가 세세히 물어오면‥ 글쎄‥ 이걸 안다고 해야 하나, 모른다고 해야 하나‥‥,
2015.07.10
저자 : 크리스토퍼 켈리 (Christopher Kelly)는 1964년생으로, 전공은 로마 제국사(고대 말기)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의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 『후기 로마 제국의 통치Ruling the Later Roman Empires』(Harvard Univ. Press, 2004), 『제국의 종말The End of Empire』(W. W. Norton & Company, 2015) 등이 있다.
제1장 정복
제2장 황제의 권력
제3장 공모
제4장 역사 전쟁
제5장 사자에게 던져진 기독교도들
제6장 로마인의 삶과 죽음
제7장 다시 찾은 로마
책이 얇지만 야물딱지네요. 만만한 책이 아닙니다.
1
기원전 2세기에 로마는 약 13만 명의 군대를 배치하기 위해서 이탈리아 반도의 동맹자들에게 깊이 의존했을 뿐만 아니라, 성인 남자 시민들 중에서 약 13퍼센트를 입대시켰다. 이 정도의 군대를 유지하려면 17세 청년 인구의 60퍼센트를 정기적으로 징집해 7년 동안 복무시켜야 했다. 만일 로마가 투입한 병력과 같은 규모를 현대에 실현하고자 한다면, 미국은 약 1,300만 명에 달하는 상비군을 유지해야 한다.
2
출생한 영유아 가운데 절반만이 5세까지 생존한다. 신생아 가운데 약 3분의 1이 생후 1년이 되기 전에 사망한다. 5세까지 생존한 아이들은 평균 40년을 살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높은 사망률로 인해 청년층을 중심으로 인구 구성이 나타난다. 평균 연령은 여성이 27.3세, 남성이 26.2세이다. 바꿔 말하면 인구의 40퍼센트 이상이 20세 미만이며, 65세 이상은 인구의 4퍼센트에 불과하다.
제정기 로마 원로원은 정원이 600명 정도로 결원 보충은 평균 25세 안퓨ㅏㄲ의 재무관 경험자가 매년 20명씩 추가됨으로써 이루어졌다.(재무관은 최하위 공직.) 1세기부터 7세기까지 자연사한 로마 황제 30명의 향년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의 평균수명은 26.3세였다.
주된 사망원인은 산업혁명 이전 유럽의 그것과 유사했다. 이질과 설사, 고열을 동반하는 콜레라와 장티푸스, 말라리아, 그리고 폐렴이나 결핵 같은 폐질환이었다. 전반적으로 빈약한 영양상태나 열악한 위생환경도 사망률을 높였다.
3
검투경기를 보러가는 것은 로마인들에게 일상적인 소일거리의 하나였다. 원형경기장에서는 어두운 통로와 경사로, 가파른 계단을 복잡하게 지나야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신분이 높은 사람은 자신들만의 전용좌석에 앉을 수 있었으며 나이, 지위, 재산, 직업을 고려한 좌석 배치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로마 콜로세움의 5만席 가운데 60퍼센트는 부유한 시민들이 차지했다. 관중석 뒤편의 20퍼센트만이 도시 빈민, 시민권 없는 사람들, 노예들에게 배정되었다. 맨 위층의 좌석은 여성에게 할당되었다. 원형경기장의 엄밀한 기하학적 건축양식에 의해 관중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구분되었다.
펌)) 로마 역사 개관
로마가 건국된 것은 언급했듯 BCE 753년 4월 21일, 로물루스에 의해서였다. 이 날짜는 기원전 1세기 말에 로마의 역사가였던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가 설정한 것인데, 고대 로마에 관한 신화나 전설들을 규합해서 만든 날짜이다. 기원전 7세기 말이 되면 당대 로마에 살던 민족인 에트루리아 인들이 왕족과 귀족을 이루고 피지배층을 정치적으로 다스린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 로마에 왕정이 유지되고 있던 셈. 하지만 시간이 더 흘러 기원전 6세기 말이 되면 지배권을 잃게 되며, 팽팽한 권력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라티움 부족과 사비니 부족이 공화정 체제를 이룬 이후 로마는 점차 이탈리아 반도 전역으로 그 세력을 넓히게 된다.
이탈리아 반도에 안정적인 지배권을 확립한 로마는 기원전 3세기 후반으로 가면 저 유명한 카르타고와의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을 치르게 된다. 처음에는 카르타고에 밀렸지만 결국 로마는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후에도 시칠리아, 에스파냐 등을 포함한 유럽과 아프리카의 다양한 나라들을 정복하게 된 로마는 포에니 전쟁 이후 지중해 전역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해외로의 급속한 팽창은 내분을 불러일으켰다. 이탈리아 본토에서 소농으로 살아가던 병사들은 오랜 기간의 전쟁으로 자신의 영토를 지켜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해외에서 들어온 부를 거머쥔 소수의 부족들만이 노예를 부려 대농장을 경영하는 형태로 로마의 농업 형태가 변하게 된다.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지다보면 내분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격차를 줄여보려고 노력하는 정치가도 나오기 마련이고. 그리고 로마에서 등장한 정치가는 그라쿠스 형제였다. 여러 가지의 입법을 시도하며 정치적 개혁을 꿈꾸지만 형제가 암살되며 끝을 맺는다. 귀족이 아닌 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그라쿠스 형제가 암살당하자 로마 사회는 완전한 혼란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 혼란을 정리한 인물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3명이었다. 이들은 원로원을 기반으로 한 공화정의 과두 정치를 무시하고 권력을 삼분해 삼두 정치를 꾸린다. 하지만 삼두 정치는 이내 무너진다.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크라수스가 전사했고, 이후 원로원을 등에 업은 마그누스와 독재정을 꿈꾸던 카이사르 사이의 전쟁이 일어난 것. 당시 프랑스 지방과 전쟁을 하고 있던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너 원로원과 내전을 일으키고, 그는 로마의 종신 독재관이 된다. 하지만 그는 얼마 되지 않아 브루투스 등의 공화정 복원파에게 암살당하고, 이후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두 번째 삼두 정치를 꾸린다. 물론 이 내전 역시 레피두스가 추방된 뒤, 클레오파트라의 이집트를 등에 업은 안토니우스를 옥타비아누스가 격파하며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유일한 지배자 자리를 공고히 한다.
옥타비아누스는 스스로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는다. 그는 스스로를 프린켑스, 번역하면 ‘제1의 시민’ 정도로 칭했지만 이는 사실상 제정에 가까웠다. 이후 옥타비아누스의 양자인 티베리우스가 왕위를 이어받았고, 그의 사후 칼리굴라와 클라우디우스의 치세를 거쳐 로마의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수립된다. 이 왕조는 기원후 68년 네로 황제의 죽음까지 이어지고, 1년의 내전 뒤에는 플라비우스 왕조가 그 뒤를 이었다.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거친 뒤에 플라비우스 왕조는 다시 몰락하고 그 뒤를 이은 왕조는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이어지는 ‘네르바-안토니우스 왕조’가 세워진다. 네르바-안토니우스 왕조 이후 코모두스 왕까지 해서 5명의 시대를 5현제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기의 로마는 영토 면에서도, 경제ㆍ문화 면에서도 정점을 이루게 된다. 80년 정도 이어진 이 시기는 ‘팍스 로마나’라고 불리는, 로마가 번영을 유지하던 시기였다.
▲ 로마 제국의 최대 영토
하지만 5현제 시대가 지나간 뒤에는 50여 년간 20여 명의 황제가 암살과 사망을 반복하며 교체되는 혼란스러운 ‘군인 황제 시기’가 지나가게 된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위에 오르며 일단락되는데, 그는 제국을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고, 동쪽과 서쪽에 각각 황제와 부황제를 두는 방식의 사두 체제를 도입한다. 이렇게 벌어진 동서의 관계는 330년 5월 11일,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수도를 동쪽의 비잔티움으로 옮기며 절정에 다다랐다. 서쪽 귀족은 반발했고, 결국 이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죽는 395년에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뉘게 된다. 서로마는 얼마 가지 않아 476년 9월 4일에 멸망하고, 동로마는 1000년 가까이 치세를 유지하다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멸망한다.
▲ <비더슈탄트, 세상을 읽다>의 최첨단 기술력. 로마의 영토 변천을 보여준다.
붉은 색은 공화정 시기, 보라색은 제정 시기, 청색은 동서분열 이후의 서로마, 녹색은 동서분열 이후의 동로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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