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23. 18:02ㆍ미술/서양화
캔버스에 그려져 있는 것은 단순한 직선과 색뿐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게 무슨 예술이냐"라며 반박하고 싶어질 수도 있는데,
그 단순한 색과 모양의 배치에 절묘한 감각이 있습니다.
직접 해보면 그의 절묘한 감각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네모난 하얀 종이에 가로 선을 하나 그었다고 칩시다.
그 다음에는 세로 선을 어디에 그을까,
나름 균형을 생각하게 되죠.
그리고 다시 가로 선을 그으면 어디가 좋을까.....
선을 긋는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바둑판처럼 선을 균등하게 그으면 재미없으니까,
그다음 한 줄을 그으라고 하면 차츰 선문답의 세계로 돌입합니다.
또 세로선과 세로선 사이에 가로선을 그어 우연히 사각형이 생겼을 때
그 사각형 안에 색을 넣는다면 어떤 색이 좋을까.
빨강이 좋을까, 파랑이 좋을까.
거기에 빨강을 칠하면 노랑은 어디쯤에 칠하는 것이 좋을까.
균형감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빨강과 노랑은 어느 쪽이 큰게 좋을까 등등,
몬드리안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정교한 기술까지는 아니어도
날카로운 감각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몬드리안의 작품을 볼 때,
누구나 처음에는 '이런 그림이라면 나도 그릴 수 있겠다'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감각을 세밀히 평가받게 된다고 하면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은 금세 사라질 겁니다.
독특하고 날카로운 감각을 철저히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태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예술가로서 몬드리안의 탁월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직선과 원색만으로 구성된 그림을 보면 몬드리안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만일 그것이 몬드리안이 그린 작품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 되었든 그저 '몬드리안의 표절'일 뿐입니다.
만일 몬드리안이 다양한 유형의 디자인이 가능했다면
'이것이 몬드리안이다'하는 공식적인 평가나 기록은 남아 있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몬드리안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누구나 그의 그림을 보면 '아, 이거!'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가 오로지 한 가지 스타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그 한결같음이 지금의 몬드리안의 지명도와 뚜렷한 존재감을 만들어낸 겁니다.
몬드리안은 다양한 <컴포지션>을 그렸습니다.
그것도 연작이라는, 비교적 손쉬운 방식의 작품이 아니라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오로지 그 한 가지에만 몰입해서 그렸습니다.
몬드리안은 왜 고집스러울 정도로 그런 그림만 그린 걸까요?
내 생각에는, 그 작품들에 그만의 세계를 해석해놓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몬드리안은 뉴욕적인 질서를 나타내는 것,
즉 도로가 반듯하게 나 있고 ,평면 속에 딱 들어맞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계를 응축해서 그 원리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컴포지션>이었던 겁니다.
몬드리안은 일부러 많은 색을 쓰지 않고
원색과 회색 등의 단순한 색만으로 세계를 표현하는 일에 도전했는데,
그것은 마치 그림을 보는 이에게 그 사이는 스스로 메워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색은 원색, 모양은 가로와 세로의 직선, 이것을 세계의 가장 단순한 표현이라고 하면,
실제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독일의 수학자 리하르트 데데킨트의 『연속과 무리수』라는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된 것인데,
수직선이란 매우 신기하고 오묘한 것입니다.
수직선은 가운데의 0을 기준으로 왼쪽은 마이너스, 오른쪽은 플러스로 나타낸 선입니다.
수직선에는 눈금이 있어서 마이너스 2는 여기, 플러스 1.5는 여기, 3분의 2는 이 근처,
하는 식으로 사용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수학자 데데킨트는 당연하게 보이는 수직선이 얼마나 심오한 것인지를 증명해 보입니다.
선은 점의 집합이죠. 따라서 선 위에는 무한한 점이 있는 것인데,
그 무한한 점은 정수만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소수를 더해도 안 되죠. 그래서 무리수라는 것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점의 0.001밀리미터 옆의 점은 뭐라고 읽을까요?
선 위의 점은 무한합니다.
그 선 위에 존재하는 수가 전부 각자의 대응점을 찾기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선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수 역시 연속해서 대응해야 하죠.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수직선은 기하학과 수의 세계의 융합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는 좌표축을 발명했습니다.
X축, Y축, Z축, 세 가지 축을 만드는 것으로 공간을 좌표축으로 나타냈죠.
몬드리안의 그림도 이러한 수직선과 좌표축처럼, 정갈하다 할 만큼
단순한 방식으로 세계를 나타내려 한 것 같습니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라는 세계가 몬드리안의 그림에는 살아 있습니다.
출처. 사이토 다카시,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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