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9. 08:23ㆍ미술/일본화·중국화·기타
조선 후기 한양에서는 중국의《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그림이 크게 유행했다.
'청명상하도'는 상공업의 발달로 한껏 생기 있고 발랄해진 한양의 도시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이를테면 21세기 서울에서는 뉴욕에서 건너온 앤디 워홀의 '팝 아트'가 도시문화를 대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북송 때 장택단이라는 사람이 그린 이 그림은 송대의 격물치지에 따라 사실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만물이 소생하는 청명절 날, 송대 변경(卞京)을 배경으로 서민들의 일상을 파노라마처럼 꼼꼼히 그렸다.
강가에서 화물을 싣고 내리는 큰 배, 나그네에게 술과 음식을 파는 주점, 바삐 돌아가는 온갖 장사꾼 행렬,
마을 밖의 초가집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며 기와집으로 바뀌는 등,
도시화를 실감나게 그린 두루마리 그림이다.
명대의 구영은 또 이 그림을 당시의 풍경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여 그렸다.
'청명하상도'는 마치 '윌리를 찾아라'라는 숨은 그림 찾기 그림책처럼, 볼때마다 새로운 광경을 발견한다.
연암 박지원도 이 그림을 보면서 이런 즐거움을 누렸음을 고백한다.
'관재 소장 청명하상도발'에서
"이 그림은 상고당 김씨(김광수)가 소장했던 것이다. 그는 구십주(구영)의 진품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죽고 난 뒤 같이 묻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뒷날 김씨가 병이들자 다시 관재 서씨(서상수) 차지가 되었다.
응당 묘품에 속하니 비록 세심한 사람이 열 번이나 꼼꼼히 감상하더라도 번번이 그림을 펼칠 때마다
새로 빠트린 것을 찾아내곤 한다. 그래서 절대로 오래 보지 못하게하니, 눈을 버릴까 염려해서였다."
'청명하상도'는 오늘날 15억 중국인들로부터 사랑받는 '국민서화'가 되었다.
이 그림이 중국의 박물관에서 공개됐을 때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람객들 때문에
네댓 시간의 줄을 서 있어야 할 정도였다.
- 손영옥,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
http://blog.sina.com.cn/s/blog_58ea68e30100cz9e.html
위를 꾹 누르면 <청명상하도>그림이 나옵니다. 청 건륭때의 그림을 복사한 거겠지요. 요즘 나도는 그림은 거의 건륭때 새로 그린 것입니다.
《청명상하도》
송대宋代의 회화는 제재와 내용면에서 상당히 광범위했다. 인물화․ 산수화․ 화조화 이외에도 이전에는 묘사하지 않던 도시와 시골 생활을 그린 사회풍속화들이 출현하였다. 그중에서도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상하도》가 가장 우수하고 또한 유명하다.
장택단은 동무東武(지금의 산동성 제성諸城)사람으로 일찍이 수도인 변경汴京에서 회화를 공부하였고, 후에는 한림원화원에서 관직을 지냈다. 그는 배와 마차․ 도시․ 성곽․ 교량을 그리는데 뛰어났으며, 송대 사회풍속화를 대표하는 일파를 이루었다. 장택단의 그림은 대부분 모두 산실되었으며 겨우 《청명상하도》만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지금 북경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폭이 25.5cm이고, 길이는 525cm나 된다. 웅대하고 장엄한 화면은 북송 宣和 연간의 汴河와 그 양쪽 강가의 청명절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긴 두루말이 그림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첫째 부분은 새벽빛에 아침이슬이 빛나는 장면을 시작으로, 교외 강가의 길에는 무거운 짐을 실은 나귀 떼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성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적막한 농촌 마을 어귀에서는 약간의 한기가 감돌며, 집들은 듬성듬성 있고, 부드러운 버들가지는 봄바람에 늘어져 있으며, 가마와 기마 행렬이 도성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 점점 보인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변하강 위로 바삐 왕래하고 있는 번화한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당시 변하汴河는 중국교통의 중심지로서, 각지의 형형색색의 배들이 모두 이곳에 와서 정박하였다. 변하의 양쪽 육지를 연결해 주는 거대한 아치형 다리는 교각이 없으며, 나무로 만들어 길게 걸쳐 있는 이 다리는 견고하고 아름다워 마치 무지개가 걸려있는 것 같아 그래서 무지개 다리란 뜻으로 ‘홍교虹橋’라고 부른다. 홍교 위아래로 배와 마차들이 지나 다녀 교통의 요충지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북적대며 희희낙락하며, 수레와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왕래하는, 갖가지 모습과 표정들이 생동감있고 멋들어지게 지극히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바로 이 바쁘게 움직이는 긴장된 장면이 《청명상하도》의 절정 부분이다.
마지막 부분은 시가지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성문으로 들어서면 거리는 가로 세로로 도로가 나있으며, 기루나 주점, 찻집과 점포, 여인숙과 약방들이 즐비하다. 사농공상․ 승려․도사․ 의원․ 마차꾼․ 뱃사공․ 노동자․ 부녀자와 어린이 등이 북적대며 각종 업종들 역시 없는 것이 없다. 거리의 행인들은 아주 바쁘게 빽빽히 어깨를 부딪히며 내왕이 끊이질 않는 모습이 ‘조태승가趙太丞家’까지 이어지다가 끝이 난다.
전체 그림에는 모두 5백여 명의 인물과 가축 50여 마리, 각종 수레와 배 20여 척 및 수많은 가옥과 무수한 도구들이 있다. 또 그림 속의 장면은 거대하고, 단락은 분명하며, 구성이 엄밀하고 질서정연하다. 기법은 숙련되고 붓놀림이 섬세하며, 선은 힘이 넘치고 노련하여 고도의 정제된 회화 솜씨와 출중한 예술적 재능을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당시의 사회 실상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후대에 송대의 도시 사회생활을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사적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중국역사박물관> 제6권 56~57쪽에서 발췌 , 범우사, 강영매 번역
齊藤謙의《拙堂文話•卷八》의 통계에 의하면 《청명상하도》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643명이고
동물은 208마리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의 고전소설인 《삼국연의》(1191명), 《홍루몽》(975명), 《수호전》(787명)보다도
많은 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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