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붓다를 죽인 부처》

2011. 10. 22. 14:09책 · 펌글 · 자료/종교

 

 

 

한겨레 신문 서평

 

 

 

» 붓다를 죽인 부처

붓다를 죽인 부처
박노자 지음/인물과사상사·1만4000원

 

 

한국인만의 시선에서 벗어나 한국 역사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해온 오슬로대 박노자 교수가

새 책 <붓다를 죽인 부처>를 펴내 한국 불교에 작심하고 쓴소리를 던졌다.

책 제목의 ‘붓다’는 불교 창시자인 석가모니, 또는 초기 불교를 뜻하고 ‘부처’는 한국화한 불교를 상징한다.

한국 불교의 병폐에 대해 조목조목 짚으며 초기 불교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하는 책이다.

신자이기도 한 그의 불교에 대한 관심은 무척 오래됐는데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황우석 사건과 오태양씨 사건이다.

지은이는 황우석 사건을 통해서 불교계의 토론 부재와 패거리주의를 통박한다.

황씨가 생명의 일종인 배아 줄기세포에 손을 댔으며 여성 연구원들에게 돈을 주면서 난자 기증을 강요함으로써

불살생, 비폭력의 계율을 어겼음에도 불교계에서는 이를 옹호했다.

그의 사기 행각이 밝혀진 뒤에도 불교계에서는 불자들이 그를 위해 100억원 모금 운동을 펴고

스님들까지 가세해 그를 지지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지은이는 황씨가 불자인 탓에 같은 패거리 의식이 작동했으며,

일단 교계 어른이 한마디 거들고 나면 그에 도전할 수 없는 도제 문화에도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그는 조선시대 말기까지 존재했던 ‘산중공의’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산중공의란 중요한 사안들을 위아래 구분 않고 1인 1표로 결정했던 의사결정 제도다.

 

 

 

 

 

 

오태양씨 사건은 지은이에게 한국 불교의 뿌리깊은 ‘권력유착’ 문제를 주목하게 되는 계기였다.

오씨 사건은 2004년 재가불자인 그가 불살생의 계율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불러일으킨 파장이다.

사람들은 국가권력이 듣기 싫어할 만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아온 제도권 불교가

불교의 윤리를 제대로 지키겠다는 ‘진성불자’한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했다.

공식 반응은 없고 비공식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들이 나왔다.

“불교의 불살생계는 무조건적으로 살생을 금하고 있지 않다. 호국불교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신라 원광법사의

세속오계가 보여주듯 불교는 원칙적으로 살생을 금하지만 가려서 살생하는 살생유택 또한 가르치고 있다.

나의 보시와 희생이 더 많은 이웃들을 살리고 평화롭게 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불교를 실천하는 것이며

하화중생의 길이다.”

- 이른바 ‘호국불교’ 논리다.  

태평양 전쟁 때 친일 승려들이 한국의 젊은 스님들을 전쟁터에 보내자고 주장하는 데 써먹었던 논리라고 지적한다.

대표적 사례로 해방 이후 동국대 초대 총장,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원장을 지낸 불교계의 원로 권상로는

“대동아의 공존공영을 도모하는 것은 (일본) 제국이 아니고는 다시 감행할 자 없으니 이것이 곧 여래의 사명이다.

… 이번 대동아 성전은 틀림없는 여래의 사명인 것이 분명하다.”

 

지은이는 불교가 이렇게 ‘호국불교’란 논리로 ‘국가’에 순치된 연원을 일제 강점기에서 찾는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사찰령을 통해 본사 주지는 총독, 말사는 지방행정관에게 임명권을 주기로 한다.

그 뒤부터 ‘닭벼슬보다도 못한 벼슬’이 치열한 다툼의 대상이 되면서 체제에 순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호국불교 논리의 머리로 삼는 세속오계의 배경 또한 무척 허술하다고 지은이는 비판한다.

왕명을 받은 원광법사는 전장으로 나가는 화랑들을 위해 ‘살생유택’ 즉 ‘살인도 가려서 할 수 있다’는 계율을 만드는 데,

“왕의 물과 풀을 먹으니 어찌 명령을 어기겠느냐”며 자신의 파계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을 뿐이란 것이다.

 

불교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간섭을 자초한 측면도 존재한다.

아시아 각 나라에서 불교는 정권이 국교로 삼으면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붓다는 국가로부터의 완전한 독립과 국가 사이의 중립 원칙을 지켰다.

초기 불교도 마찬가지. 계율 지침서인 <사분율>은 국가의 폭력을 멀리하는 것은 물론,

대궐에 들어가는 것도 비구로서 죄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지은이는 제도권 불교가 1950년대 한국전쟁, 70년대 군사독재 때에 비해 과연 나아졌는가 반문한다.

“비구니 스님이 신문기자 앞에서 카빈소총을 즐겁게 잡고 사격훈련을 받았던 광란의 시대가 갔음에도

불교의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을 분명히 위반하는 남자 승려의 입대에 대해

아직도 파계라 부르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입시철이면 벌어지는 사찰들의 합격기원 장사도 도마에 올려

“자본주의적 약육강식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기복신앙의 모습”이라고 비판한다.

“내 아들, 네 아들 구분 없이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모든 이들에 대한 무한한 자비심으로

물심양면 학벌 타파 운동을 벌여야 할 것” 이라고 지은이는 제안한다.

 

임종업 선임기자 

 

 

 

 

 

 

 

 

 

 

경향신문 서평

 

 

‘붓다를 죽인 부처’ 저자 박노자 교수


 

 


“지금 전쟁과 경쟁의 나락으로 이끌려가는 사회에 필요한 것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와 같은 법어가 아니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38)가 최근 출간한 <붓다를 죽인 부처>에서 말하는 불교는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다.

시대를 대표하는 큰 스승으로 꼽히는 성철 스님의 법어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살인마 같은 이가 통치하는 국가에서 ‘산은 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기보다

‘당신은 아프지 않다’는 주술을 거는 것입니다.

당시 상황에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상황 자체를 호도하는 측면이 있어요.”

 

비판은 성철 스님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제목부터가 암시하듯 박 교수는 현시대 불교 전반에 회의를 한다.

“한국 불교가 국가나 지배계급과 관계를 맺어 오면서 덧입힌 껍질이 ‘부처’”라고 말했다.

‘붓다를 죽인 부처’라는 제목은 “껍질을 벗기고 불교의 근본 가르침 자체를 노출시켜보자는 취지”였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나와 남의 구분이 없다’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보면

고통이 “개인의 악업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든 집단적 악업의 결과”라고 말한다.

“제대로 된 종교인이라면 부처님에게 만 배를 드려도 내 아들딸을 서울대에 입학시킬 수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 기도는 석가모니의 마음과 다르다고 말하면서 더 전체의 공익을 위해서,

예컨대 학벌 차별을 철폐하도록 기도하게 해야 합니다.”

개인적 해탈과 더불어 ‘집단적 선업’을 쌓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화두를 잡고 내면적인 탐구에 집중하는 수행방식인 ‘간화선’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도그마화한 것은 아닌가”라고 묻는다.

“그 어떤 깨달음도 나만의 행복과 해탈에 머문다면 이기적인 정신적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만의 수행이라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스님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수행한 공덕을 희사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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