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는 1790년 월 27일 건륭제의 팔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부사 서호수의 종사관으로
유득공과 함께 두 번째 연행길에 올랐다. 7월 15일 열하에 도착한 사행단은 다시 연경으로
들어가서 9월 4일 연경을 떠날 때까지 머무는데, 이때 나빙(羅聘) 옹방강(翁方綱), 장문도,
장도약, 오조, 옹방수, 철보, 팽원서, 기윤 등 많은 청조 문사와 교유했다.
박제가의 초상은 이때 나빙이 그렸다.
삼천 리 밖에서 오신 손님 마주하고
좋은 선비 만남 기뻐 초상화를 그리노라.
사랑스런 그대 자태 무엇에 비교할까
매화꽃 변한 몸이 그대인 줄 알겠구나.
무슨 일로 그대 만나 곧바로 친해져선
갑자기 이별한단 괴로운 말 들었던가.
이제부텀 좋은 선비 담담하게 보내야지
이별의 정 마음을 슬프게 만들 뿐이니.
나빙, '묵매도를 그려준 후, 또 다시 초상화를 그리고 절구 두 수를 지어 이별을 기록하다.
- 호저집(縞紵集) -
나빙이 그림으로 정을 담아냈다면, 박제가는 시와 글씨로 그 정에 화답했다. 당시 박제가의 글씨는
「유리창」에 가짜 글씨가 나돌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시 또한 많은 청조 문사들 사이에서 회자되어
결국에는 문집인「'정유고락」이 이조원과 진전의 서문이 더해져 북경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되기에
이른다.
한 자루 붓을 적셔 고상한 풍채 그리니
꽃이 아름답다지만 어찌 뼈에 사무치는 가난을 방해하랴!
얇은 얼음과 스러지는 눈 속 날씨에 생각이 이르니
숲 속 물가에 사는 사람을 그리워하네.
청나라 화가 나빙(羅聘)이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梅花墨竹圖)의 화제시. 나빙은 박제가에게 매화묵죽도와 박제가의 초상화를 선물했다.
두 사람이 만난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그 만남의 깊이와 너비는 비할 데가 없었다. 조선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인 9월 3일 저녁, 박제가는 나빙을 다시 찾았다. 언제 다시 보게 될지 알 길 없는 삼천리 먼 길을
떠나야했던지라, 간절한 마음 안고 급하게 길을 재촉했을 터이다. 이날 저녁 박제가는 부채를 꺼내 나빙
에게 이별의 그림을 구했고, 나빙으 그림을 그린 뒤에 시 한 수를 함께 지어 다시 만날 기약을 남겼다.
넋 나간 듯 꿈결인 듯 눈물만 흐르네
허공 속 얽힌 정을 그림 놓고 읊조리네.
어인 일로 하늘 서편 고개를 돌려보나
남은 사람 이별 근심 또 가을 그늘일세.
- 박제가,「이별 뒤에 나양봉에게 부치다」
꿈결 속에 갑자기 그대 보고서
서두르며 그대와 얘기 나눴지.
모르겠네 그대도 꿈을 꾸면서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가요.
- 나빙,「생각이 나서 가르침을 구하다」
1801년 박제가가 네 번째 북경에 갔을 때 나빙은 죽고 없었다.
출처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중에서, 이홍식이 쓴 <박제가와 나빙의 예술교유> 부분 발췌.
글쓴이 이홍식 : 한국한문학 전공. 한양대 동아시아문화 연구소 연구교수.
저서 '홍길주의 꿈, 상상, 그리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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