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협

2009. 2. 24. 14:13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 차마고도 호도협
ⓒ 이형덕
 

 

1월 15일, 드디어 호도협으로 길을 떠났다. 평소보다 이르게 아침 7시에 일어났다. 고성 입구에 있는 작고 허름한 식당에서 달걀을 녹차잎과 소금을 우린 물에 삶은 ‘지단’과 우리네 만두에 해당하는 ‘샤오롱빠오(小籠包)’, '스판'이라는 쌀죽으로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해결했다.

 

갑자기 이른 시각에 밀려든 손님 탓인지 나중에는 죽이 모자라 그저 멀건 물만 나온다. 말로는 두유를 섞은 것이라 하는데, 수저로 몇 숟갈 떠먹다 보니 허무하기 그지없다. 죽 먹고 호도협 오를 일이 아득하다. 

 

리지앙의 나시자치현 스구(石鼓) 북동쪽에 위치한 호도협으로 가는 길은 이리저리 구부러진 산마루를 내려서, 청록의 진사강을 끼고 돌아간다. 멀리 눈에 덮인 설산의 모습이 내보이며 차 안에 탄 여행자들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온다.

 

 오전 10시경, 차창 밖으로 ‘샹그릴라’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말로만 듣던 ‘샹그릴라’라는 지명이 여느 마을 이름처럼 그렇게 도로 표지판에 적혀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샹그릴라’는 제임스 힐튼이라는 영국 소설가가 쓴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이상향이다.

 

쿤룬 산맥이나 히말라야의 어딘가에 숨어 있으리라 상상되는 이 신비로운 마을은 행복하고 늙지도 않는 불사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티베트 어로 ‘내 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의 ‘샹그릴라’는 티베트 불교에 전승되는 샹바라(香巴拉)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제임스 힐튼의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이상향을 찾는 이들이 몰려들자, 중국은 발 빠르게 2001년경에 윈난(雲南省)의 중띠엔(中甸)을 샹그릴라(香格里拉)라고 고쳐 본격적인 관광지로 내세우고 있다.

 

차는 무릉도원으로 향하는 길을 버리고,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매표원들이 기다리는 강을 건넌다. 다리 앞에서 일행을 내려준 차는 돌아가 반대편 따쮸 쪽에서 이튿날 다시 만나게 된다. 원래 이곳은 강을 사이에 두고 장족과 나시족이 각각 영역을 나누어 장사를 하고 있는데, 나시족의 객잔에 머물다가 되돌아올 때는 장족이 운영하는 ‘빵차’라는 걸 타고 오게 되어 있단다.

 

그러나 대절차량이 있는 관계로 우리 차가 장족 영업 구역에 들어가서 기다려야 했다. 대절차량의 한족 운전기사는 장족의 원망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다행히 우리가 머물 나시족 객잔 주인이 말을 잘해 줄 것이라는 말에 안심하고 돌아갔다.

 

 

 

이름도 모르는 말에게 생사를 맡기다

 

 

  
▲ 말과 마부들 호도협 트레킹
ⓒ 이형덕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서 잠시 걸으니 어느 학교 앞에서 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작은 말들이었다. 말이라기보다는 노새처럼 보였다. 주둥이에 허연 무늬가 있고, 눈이 큰 말들은 귀엽기만 했다. 이 말들에게 몸을 맡기고 험난한 호도협 산길을 오른다고 생각하니 애처롭기도 하고, 마음이 놓이지를 않았다.

 

작은 체구의 말이 혼자 걷기에도 힘든 산길을 무거운 사람을 싣고 갈 수 있을까. 마부들은 그런 우려의 눈빛에는 아랑곳도 않고 아무 말이나 골라 타라고 한다. 몸집에 따라 큰 말을 태우는 배려도 없었다. 몸집이 큰 편인 나는 이리저리 큰 말을 고르다가 뒤에 처져 있는 말을 겨우 얻어 타게 되었다.

 

스무 살 안팎으로 뵈는 마부는 자꾸 뒤로 몸을 빼는 말의 고삐를 잡고는 염려 말고 올라타라는 시늉을 한다. 몽골 말보다도 몸집이 작아 보이는 말들은 마부의 딸이라는 여학생의 손에도 고삐가 쥐어져 오르막을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이틀에 한 번씩 여행객을 실어 나른다는 말들은 서두름 없이 열을 지어 걷는다. 말들 사이에는 친소관계가 있어 마부들이 그 순서를 잘 헤아려 세웠다. 가까이 여기는 말이 뵈지 않으면 사방을 살피며 울어대기도 하고, 걸음을 서두르기도 했다. 목에 매단 워낭소리가 낭낭하게 울리고, 하늘은 화창하여 땀이 날 지경이었다. 이리저리 갈짓자로 구부러지며 오르는 길은 무수한 말발굽에 밟혀 폭신폭신한 먼지로 덮여 있었다. 

 

 

 

 

  
▲ 옥룡설산 호도협
ⓒ 이형덕

 

해발 1,800미터에서 시작한 길은 야크를 닮은 소가 풀을 뜯고 있는 마을에 이르러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말에서 내려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서니 언제 거기 와 있었는지 웅장한 설산이 눈앞을 성큼 가로막고 다가선다. 위롱쉐샨(玉龍雪山)이다. 아직 사람의 발길을 허용치 않는 5,600미터의 봉우리를 지닌 설산은 푸르스름한 빙설을 덮은 채 장엄한 바람 소리를 흘려보냈다. 오래 전, 차와 소금을 실은 마방들도 저 바람 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오르내렸을 것을 생각하자니 조금은 비장해졌다.

 

  
▲ 호도협 나시족 마을
ⓒ 이형

 

라싸를 지나 메이리쉐샨(梅里雪山)을 넘어 샹그릴라(香格里拉)를 지난 마방들은 리지앙에 이르러 차 상인들과 교역을 했다고 한다. 후타오샤(虎跳峽)는 위롱쉐샨(玉龍雪山)과 해발 5,396m의 중뎬쉐산(中甸雪山) 사이를 흐르는 진사지앙(金沙江)의 물결이 수 만 년을 두고 파여 만든 거친 협곡이다.

 

양쯔강의 상류인 진사지앙이 갑자기 북쪽으로 휘감아 돌며 거친 물살을 일으켜 만든 협곡이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 중의 하나인 후타오샤는 ‘호랑이가 건너 뛸 정도로 폭이 좁은 협곡’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협곡 가운데에는 호랑이가 딛고 건넌 뛴 ‘호도석’이라는 이름의 바위가 지금도 놓여 있다.

 

 

 

 

 

  
▲ 호도협 리지앙
ⓒ 이형덕

 본격적인 오름을 앞두고 잠시 쉬었던 말에 다시 오른다. 가파른 산허리를 끊고 일자로 이어지는 평탄한 산길을 걷는다. 실낱처럼 이어진 좁은 길 끝은 어김없이 급격히 구부러지는 오르막을 끼고 있다. 이곳에서는 그것을 ‘밴드’라고 한다. 해발 2,800미터의 ‘28밴드’의 정점까지 길은 차츰 가파른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내려다보기도 아찔한 벼랑 끝에 손톱으로 그어놓은 듯 아슬아슬하게 매어달린 길은 내려다보기도 아찔하다. 이리저리 휘적거리며 흔들리는 말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더욱 아찔하다. 그저 말 등의 손잡이만 움켜잡은 채 앞만 보고 실려 갈 뿐이다.

 

 

 

 

  
▲ 호도협 트레킹
ⓒ 이형덕

 

구름을 걷어낸 볕은 따갑기만 하다. 비탈길을 오르며 말은 한 번씩 걸음을 멈추었다가 마부의 재촉을 받은 뒤에야 힘을 모아 서너 발자국을 뛰어오른다. 여기저기 돌들이 깔려 있는 비탈길을 말들은 다리를 엇바꿔가며 위태롭게 오른다.

 

나를 태운 말은 유난히 자주 걸음을 멈춘다. 가파른 길을 오르며 똥까지 싼다. 뒤따르던 일행이 '말이 힘들어 죽을 똥 싼다‘는 말에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되었다. 저것을 어찌 오를까 싶게 가파른 길을 오르는 말에게 미안하고, 여태껏 무덤덤하니 지니고 다니던 내 몸의 무게가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말을 타고 가는 값이 원래는 120~150위안인데 그걸 깎아서 100위안(80위안에 20위안 웃돈)으로 했다는 말에 좋아하기만 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슬며시 말에서 내려 걷는다. 마부는 미안한 얼굴로 자꾸 타라고 권하지만 차라리 걷는 게 마음이 편했다.

 

폐렴 앓은 뒤끝인지 목에서 색색 소리가 나며 숨이 벅차온다. 얼마를 걷자니 다시 가파른 길이 나온다. 걷다가 지치면 나중에 말도 못 탈 정도로 가파른 길에서는 정작 낙오한다는 안내자의 말에 다시 말을 타기로 했다. 풀을 뜯고 있던 말이 나를 보더니 황급히 달아난다. 말에 대한 말 못할 죄스러움이 몰려온다.

 

 

 

 

 

  
▲ 말 호도협
ⓒ 이형덕

 

 다시 나를 태운 말이 60도 가까이 경사진 산길을 숨 가쁘게 오르고 쉬기를 반복한다. ‘취, 취’ 하는 마부의 재촉에도 말은 움직이려 하지를 않는다. 마부는 아예 고삐를 내게 맡기고 앞을 비켜준다. 말은 가파른 길을 힘을 모아 한 걸음에 뛰어오른다. 이제 내 몸은 오로지 말 등에 얹히고 생과 사도 말에게 온전히 맡긴 셈이다.

 

이렇게 제 목숨을 남에게, 그것도 말도 통하지 않는 짐승에게 맡기는 기분은 묘했다. 어찌했든 생사일체의 마음으로, 힘 겨워하는 말을 도와야 했다. 말의 힘을 덜어 주기 위해 오를 때는 앞으로, 내리막에서는 뒤로 몸을 젖히느라 바로 곁의 천길 벼랑은 미처 신경 쓸 겨를도 없다.

 

 내 말은 일곱 번이나 똥을 싸고, 세 걸음마다 멈추었다. 무거운 몸을 지닌 또 다른 일행의 말은 온몸에 땀을 흘리며 앞다리마저 꿇었다 한다. 그이는 더 이상 말을 타고 갈 엄두를 내지 못하여 땀을 흘리며 걷기 시작했다. 바위를 쪼아 만든 길 가운데는 말 한 마리가 제대로 지나기 어려울 정도로 폭이 좁은 곳도 있었다. 그런 길을 지날 때는 말이 발을 일자로 모으며 걷는데 말 위에서 내려다보는 벼랑길은 더욱 위태롭다.

 

고등학교 시절, 암벽 등반까지 했던 내게도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이른바 ‘3고’(고혈압, 고산증, 고소공포증)의 핸디캡을 지닌 몸으로 이런 길을 지나자니 거의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분이었다. 벼랑 아래서는 호랑이 같은 물소리가 으르렁거리고, 설산에서는 바람 소리가 서늘하니 울어댔다. 이곳에선 한해에 한 두 명씩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는데, 대개는 우기의 낙석 사고나 실족 사고라 한다.

 

 실제로 이번 여행에서도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앞서 걷던 여행자가 구부러진 길 모퉁이 끝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구비를 오르던 말이 몸을 돌리는 순간 벼랑 끝에 서 있던 여행자가 말의 엉덩이에 부딪쳤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한 걸음만 물러서도 천길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 상황이었다.

 

이곳의 벼랑은 붙잡을 나무도 없고, 가다가 멈출 만한 구릉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칼에 굴러떨어지는 수직에 가까운 벼랑이었다. 그런데 말에 부딪친 여행자는 놀랍게도 제자리에서 팽이처럼 몸이 한바퀴 도는 것이었다. 경이로운 일이었다. 말과 여행자가 그 구부러진 벼랑 끝에서 주고받은 그 스침에 담긴 기연을 생각하자니 천길 벼랑이 더욱 아득하기만 했다. 혹 나중에라도 걸을 때는 반드시 안쪽으로 걷기를 바란다.

 

 

 

 

 

  
▲ 나시족 마을 호도협
ⓒ 이형덕

 

 ‘나시(納西) 게스트하우스’라고 하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쉬었다. ‘환영 한국분’이라는 한글 문구가 화단 벽에 적혀 있었다. 모 방송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로 인해 근래 이곳은 한국 여행자들이 많이 찾아 온다고 했다.

 

다시 길을 나선다. 볕은 뜨거워지고, 숨이 턱에 차게 가파른 길을 오르니 좌판을 놓은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있다. 생수통 몇 개와 과자가 놓여 있다. 호도협 트레킹의 정점인 해발 2,800지점의 28밴드다. 정점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눈이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2위안을 내야 했다. 말을 쉬게 하려고 앞서 걸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일행들이 오지 않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에서 마부들이 돌아갔다는 것이다. 나를 싣고 오느라 ‘죽을 똥을 싼’ 말과 마부에게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것이 마음에 못처럼 걸렸다.

 

 

 

설산에 걸린 별은 바람에 날아가고

 

 

 

  
▲ 차마객잔 호도협
ⓒ 이형덕

 

 28밴드를 지나서는 내리막길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길은 나무들이 서 있고, 그늘이 져서 걷기에 편했다. 일행 중 여성 분이 신발 창이 떨어져 혼자서 말을 타고 갔다. 부득이한 경우라면 말을 타고 종주도 할 수 있는 길이었다. 잠깐의 깔딱 고개를 넘어서니 ‘차마고도 객잔’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묵어갈 객잔이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경이었다.

 

 서구의 여행객들은 여기서 더 내려가 있는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를 즐겨 찾고, ‘차마고도 객잔'은 주로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묵는다고 했다. 숙소는 깨끗했고 양변기가 있으며 따뜻한 목욕물도 잘 나왔다. 2인 1실을 기준으로 하루 숙박비는 100위안 정도인데, 이곳에서는 한국인이 가르쳤다는 닭백숙 요리가 별미였다.

 

흡사 오골계를 닮은 닭은 거의 칠면조만큼 컸다. 값은 역시 100위안이었다. 10명이 두 마리 정도면 충분했다. 백숙 요리를 먹고 나면 저녁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식사로 대신할 수 있는 닭죽이 나왔다.

 

닭백숙을 안주 삼아 장족의 전통주인 칭커주를 마시니 하루의 노정이 꿈같이 눈앞을 흘러갔다. 칭커주는 보리로 만든 52도 정도의 독한 술인데, 향료가 많이 섞인 한족의 술에 비해 맛이 깨끗하고 숙취가 없어 좋았다.

 

 '차마객잔'은 산이 높은 탓인지 밤이 일렀다. 저녁을 먹고 나니 설산 위로 순도 높은 별들이 떠올랐다. 두 설산 사이를 가로지르던 협곡은 이내 어둠에 묻히고, 한 발만 내디디면 바로 건너갈 듯 위롱쉐샨(玉龍雪山)의 숨소리가 지척에 느껴진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별들이 설산 위에서 빛나고, 검은 주단이 깔린 밤 길을 걸으면 바로 설산에 오를 듯하다. 지나온 길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말 등에 얹혀 호도협을 지나오며 두 가지 다짐을 했다. 무엇보다 내 무게에 대한 죄책감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지구의 중력 탓으로만 돌리던 몸의 무게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벼이 덜어내겠다고 먹다 남은 닭고기를 뜯으며 결심하고 다짐했다.

 

또 다른 다짐은 ‘착하게 살자’는 것이었다. 혹 윤회라는 것이 있어 만약에 내가 다음 세상에 말로, 그것도 호도협의 말로 태어난다면 그것은 생각하기도 끔찍한 일이었다. 내려다보기도 아찔한 절벽 끝으로 바위를 파내어 만든 길을 지나오며, 혹 나를 태운 말이 자신의 고달픔을 견디지 못하여 저 호도협 골짜기로 몸을 내던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해 하면서 남은 삶이나마 착하게 살자고 다짐하고 결심했다.

마방들이 차와 소금을 싣고 지나던 길을 나는 여전히 욕심과 집착을 얹고 지나왔던 것이다. 그걸 뒤늦게나마 깨닫게 한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길도 의미가 있겠지만, 말 등에 얹혀 아득한 길을 지나는 것도 부질없는 일만은 아니리라.

 

 

 

 

 

  
▲ 트레킹 호도협
ⓒ 이형덕
 

 

 설산의 밤은 깊어가고 별은 바람에 날아갔다. 거대한 야크처럼 웅크린 설산 사이를 협곡의 물들은 무망하니 흐르고, 지나온 길들은 아득하기만 했다. 이런저런 생각과 부끄러움에 차마 잠이 들지 못한 여행자는 주인의 부엌에 들어가 신나통에 담긴 칭커주를 얻어 마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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