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8. 18:11ㆍ음악/음악 이야기
1915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슬럼가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일리노어 페이건
그러나 아이는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외가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병색이 짙은 외할머니는 잠든 일리노어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일리노어를 감싸 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일리노어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할머니의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울부짖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일리노어는 외가에서 쫓기듯 나오게 된다.
그때 나이 불과 10살이었다.
1925년 당시 미국사회는 흑인을 노예의 후손으로 여길 만큼
인종차별이 심한 때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속에서 일리노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느 흑인들처럼 백인의 심부름과 허드렛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일리노어는 당시 일하고 있던 그 집에 만족했다.
이유는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계의 황제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측음기가 사치품이었던 시절, 일리노어가 그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는데...
당시 일하는 그 집에는 측음기가 있었고 늘 노래를 틀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일리노어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어린 나이에 백인 범죄자가 저지른 불미스러운 성범죄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심지어 일리노어가 분명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일리노어를 불량소녀라고 몰아세웠고,
그 이유로 감화원에 보내 버렸다.
범인이 백인이었고, 일리노어가 흑인이였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다.
그리고 2년 뒤, 풀려난 일리노어가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중 15살이 된 일리노어는
절박한 심정에 무작정 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댄서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본 뒤,
살기 위해 반드시 그 곳에서 돈을 벌어야 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 광경을 측은하게 지켜보던 클럽의 피아니스트는, 일리노어에게 노래해 볼 것을 제안했고...
일리노어는 생애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흐르자 순식간에 클럽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지더니
노래가 끝났을 때
그녀의 노래에 감동한 사람들이 뜨겁게 환호했던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일리노어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기 시작했고
그녀의 노래 실력은 서서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예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일리노어는 어머니의 성을 딴 일리노어 페이건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좋아했던 여배우 빌리 도브의 이름에서 따 온
'빌리'와 아버지의 성 '홀리데이'를 합쳐 빌리 홀리데이란 이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또한 그녀는 어려웠던 자신의 과거를 딛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 바람에
무대에 오를 땐 언제나 머리에 새하얀 치자꽃을 달고 노래를 불렀는데...
사람들은 기품있는 요조숙녀 + 홀리데이란 뜻으로 그녀를 '레이디 데이'란 별명으로 불렀다.
그리고 1933년 11월 27일, 빌리 홀리데이는 뉴욕에서 생애 첫 음반을 녹음하게 된다.
그녀가 드디어 정식 가수로 데뷔해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데뷔곡 'Day In Day Out'을 부르게 된 그녀는 이후 'Love man'을 히트시키며 주목받았고,
유명작곡가 조지 거쉰이 1935년에 만든 오페라곡에 가사를 붙여
그녀가 부른 'Summertime'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면서
빌리 홀리데이는 명실공히 재즈계의 보컬리스트로 인정받는다.
가슴 저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감정을 섬세하고 애절한 창법으로 부르는 그녀의 노래는
단번에 재즈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등단은 그녀가
'보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인 마이크에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흘러 넣어야 하는지,
마이크를 통해 숨소리도 음악으로 느끼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가수다' 라고 평가했다.
그러자 많은 가수들은 그녀의 보컬 기법을 따라 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사회전반에 뿌리깊은 인종차별은 결국 그녀를 또다시 좌절하게 만들었다.
할램가 뒷골목에서 노래하는 동안은, 아무도 그녀의 피부색깔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백인들과 함께 공연을 시작하며 도심에 나타나자
백인들은 그녀를 한 마리 검은 짐승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또한 백인 악단은 정문으로,
빌리 홀리데이는 정문이 아닌 부엌문으로 출입할 것을 강요했고
식당조차 마음놓고 드나들 수 없는 그녀는,
단원들과 함께 식사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공연이 끝난 뒤 단원들이 호텔 침대에서 잠을 청할 때
그녀는 잠잘 곳을 찾아 거리를 헤매고 다녀야 했다.
이 모든 수모는
그녀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때문에 받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다.
그녀가 가수로서 이름을 내기 시작하면서 연락이 닿았던, 그녀의 아버지마저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결국 사망하고 만 것이다.
그러자 얼마 후, 비극적인 아버지의 죽음에
빌리 홀리데이는 세상에 노래 한 곡을 내놓게 된다.
간신히 이 노래를 마친 빌리 홀리데이는 무대에서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 노래는 인종폭력의 광기를 고발한 빌리 홀리데이의 피울음과 다름없었다.
그녀가 부른 노랫말이 실제 사건을 묘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1930년대 말, 당시 미국 남부지방에서는 실제로 흑인구타사건이 자주 발생했는데,
당시 백인우월주의자들은
흑인을 무차별 고문하고, 흑인의 주검을 나무에 매달아 놓는 등 끔찍한 짓을 자행했다.
그러자 이때 그 현장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시인이자 교육자인 애벌 미로폴이라는 남자는
희생된 흑인들을 애도하며, 그들의 주검을,
나무에 열린 이상한 열매로 비유해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게 되는데 .....
빌리 홀리데이가 바로 그 메시지에 곡을 붙여 무대 위에서 불렀던 것이다.
당시 미국의 모든 방송은 그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했지만,
빌리 홀리데이는 자신의 공연 마지막에 꼭 이 노래를 불렀고
이는 사회적 논쟁이 되었다.
하지만 인종차별의 참상을 고발한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울림이 되었고 .....
그녀는 팝 음악 사상 최초로 인종문제를 전면으로 다루어 백인들을 각성하게 만들었다.
그 후, 미국사회의 반향을 일으키며 음악활동을 멈추지 않은 빌리 홀리데이는
카네기 홀에서의 연주, 재즈 비평가상 수상, 최다 음반 판매상 수상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빌리 홀리데이는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1941년 캘리포니아의 한 나이트클럽 매니저인 제임스 먼로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는 바람둥이에 폭력을 서슴지 않는 아편중독자였다.
빌리 홀리데이는 남편을 따라,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마약은 빌리 홀리데이의 건강과 영혼을 잠식해 들어갔다.
그리고 그 후,
빌리 홀리데이는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을 거듭하며
남편에게 이용당한 뒤 버려지기를 반복했고,
평범한 결혼생활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빌리 홀리데이는
고통의 탈출구로 선택한 마약에 취해 몸도 마음도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그러던 1959년 결국 만신창이가 된 빌리 홀리데이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병원에 입원한다.
당시 그녀는 일리노어 페이건이라는 본명으로 입원했는데 .....
건강을 잃고 수척해진 모습의 빌리 홀리데이를 알아보지 못한 의료진은
그녀가 거리의 흑인여성이라고 보고
아예 치료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그녀의 진료기록에
'병명: 마약중독 말기, 치료방법 : 없음'이라고 기록했다.
그렇게 빌리 홀리데이는 차가운 병원 침상에서 4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빌리 홀리데이는 평생을, 미국이라는
거대한 인종차별의 감옥에 갇혀 생을 마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숨을 거두기 전 세상에 하나의 메시지를 남겼고,
'당신이 나를 검둥개라 부르며 비웃어도 나는 다만 노래할 뿐입니다'
또 한 곡의 노래를 남겼다.
그 노래는 병으로 목소리를 잃어가던 중에 차 안에서 녹음했다고 한다.
그녀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고통과 맞바꾼 그 노래는
지금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곡으로 남아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다.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빌리 홀리데이_준형,시현이네 퀴즈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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