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이것은 가로 1미터가 넘는 50호로, 비교적 大作 축에 든다네.
술탄 메흐메드 4세에게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코사크인들,
1880~1891 (11년간), / 203x358㎝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관
(펌글)
첫 번째 그림인 < ‘술탄 메흐메드 4세에게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코사크인들’ > 을 살펴보겠습니다.
너무 사실적이라 마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번성하던 자포르지아 코사크는 17세기 러시아 남부를 위협했던 오스만 튀르크와 한창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1676년 코사크인들이 튀르크의 술탄 메흐메드 4세가 보낸 최후통첩을 거절하는 내용의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코사크인들은 자신감에 가득한 메흐메드 4세의 편지 내용을 본떠 조롱과 욕설이 가득 담긴 답신을 보냈습니다. 차마 글로 옮기기 민망한 편지를 쓰면서 코사크인들은 너무나 유쾌해 했다고 하죠. 이들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올 때마다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지 연신 배를 부여잡고 웃고 있는데요.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사이에서 도대체 누가 상급자인지 알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분명 군인들임에도 이들은 다양한 연령대와 복장을 하고 규율은커녕 격식조차 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코사크가 모든 지도자를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상급자가 아니라 그저 함께 싸우고 살아가는 전우이자 이웃일 뿐이었죠.
코사크인들을 그리기 위해 우크라이나 일대를 답사했던 레핀은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이들만큼 자유와 평등, 연대의 가치를 깊이 향유한 집단은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레핀은 작품을 통해 코사크인들을 어떤 통치권에도 종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국민의 상징으로 표현했죠. 달리 말하면 당시의 전제정치를 비판한 셈이기도 합니다.
.
.
일리아 레핀(1844~1930) 作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84~1888, / 160.5 x 167.5㎝ /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두번 째,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한 혁명가가 먼 유배지에서 돌아와 가족들을 만나는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아마 ‘'대중 속으로'’라는 기치를 내건 브나르도 운동과 연관된 혁명가인 것 같아요. 방에 걸린 초상화 두 점이 그 근거인데요. 초상화 속 주인공은 차르 체제 아래서 고통받는 농민들을 위해 계몽운동에 헌신한 시인 '셰브첸코'와 '네크라소프'입니다.
고단한 유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남자를 맞는 가족들의 모습은 생생합니다. 늙은 어머니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집으로 들어오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고 있네요. 피아노를 치던 누이는 곁눈질로 오빠를 맞이합니다. 책을 읽고 있던 딸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아빠를 살피고, 교복을 입은 아들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 역시 놀란 나머지 문에서 손도 떼지 못하고 있죠.
아무 예고 없이 돌아온 가장을 맞이한 가족들의 생생한 표정 속에서 놀람과 경계, 반가움과 두려움의 교차를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
일리아 레핀
레핀은 혁명적 민주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고국인 러시아의 모순된 현실을 굉장히 사실적인 화풍으로 그려낸 작가입니다. 레핀은 러시아 남쪽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에서 하급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죠. 유년기 레핀은 궁핍한 생활 때문에 그림을 배우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덕이 컸습니다. 레핀의 어머니는 아들의 열정을 알아차리고 어려운 살림을 쪼개 미술 공부를 지원했죠.
레핀은 15살이란 어린 나이에 직업 이콘(聖像) 화가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 성공하겠다’는 야망을 품게 되죠. 그는 성상을 그리며 모은 돈을 들고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갑니다. 1년 뒤인 1864년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해 평생의 스승이자 이동파(移動派·)의 지도자인 이반 크람스코이를 만나죠. 크람스코이 밑에서 실력을 쌓은 레핀은 1874년부터는 이동파의 전시에 동참하면서 예술의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서 잠시 이동파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동파는 1863년 가을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아카데미 학생 14명이 집단 탈퇴를 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보수적인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며 창작의 자유를 외쳤죠. ‘삶의 진실’을 추구한다는 모토 아래 이동파 화가들은 캔버스와 화구를 들고 민중의 삶 속으로 들어갔죠. 이동파는 모든 이들에게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전국을 돌며 전시를 개최했습니다. 이동파의 목표는 ‘예술을 통한 민중의 교화’였기 때문에 작가들은 미의 본질적인 탐구보다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실주의 화풍을 택했습니다. 레핀은 그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사실주의 화가로 발돋움했죠.
레핀이 활동하던 당시 러시아는 황제, 즉 차르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자유로워야 할 예술가들이 날개를 빼앗겼던 시절이었죠. 레핀과 이동파의 사실주의는 예술가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모든 러시아 국민을 위해 시작됐죠. 혁명적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던졌던 레핀의 사실주의가 위대해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내 그림 > 작업중인 그림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투 外 (0) | 2019.09.17 |
---|---|
마무리 다 못하고 떠나네~ (0) | 2019.08.05 |
내가 찍어달랜 게 아니고, 학교서 찍어가더라? (0) | 2019.04.24 |
이거 빨리 마무리 지어야만 전시회 준비를 할 터인데, (0) | 2019.04.17 |
드뎌 끝이 보이넹~ ‥ '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여인' (0) | 2019.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