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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미술 이야기 (책)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  2017. 4. 5

 

 

원로 조각가 최종태가 들려주는 장욱진의 삶과 작품 세계 장욱진의 대표작 41점 올컬러 수록,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도서『장욱진, 나는 심플하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어린아이와 같은 그림을 그리며 기이한 인생을 살다 간 장욱진.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장욱진과 오랜 시간 사제 간의 사귐을 가져온 조각가 최종태가 스승과 함께했던 이야기, 장욱진의 예술에 대한 적확한 평가를 풀어놓는다. 86세의 원로 미술가가 회상하는 스승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장욱진이 창조한 세계로 들어가려는 이들을 위한 탁월한 안내서!

 

저자 : 최종태
저자 최종태崔鐘泰는 1932년 대전에서 태어났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다. 추상미술이 주를 이루던 시기에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조형 세계를 천착했고, 교회 미술의 토착화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봉직하다가 1998년에 은퇴해 현재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있다. 국민훈장동백장, 서울시문화상, 충청남도문화상 등을 받았다. 조각전, 소묘전, 파스텔화전, 목판화전, 유리화전 등 국내외에서 수십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2005년 대전시립미술관 초대전,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을 열었다. 지은 책으로 《예술가와 역사의식》 《형태를 찾아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 《나의 미술, 아름다움을 향한 사색》 《최종태 교회조각》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 등이 있다.

 

 

 

 

 

 

서문_ 장욱진 선생을 기억하며

1장 이 사람을 보라


여기 한 화가가 있다
장욱진을 말함
그 정신적인 것 깨달음에로의 길
화가 장욱진, 그 삶의 뒷면
장욱진 이야기 토막생각

2장 동시대의 예술가들


張旭鎭 선생의 경우
수난의 역사 속에서 피어난 세 송이 꽃
희대의 천재, 장욱진과 김종영 사이에서
한국적이라고 하는 것에 관하여
민화를 생각하며

3장 스승을 기리며


스승의 노래
장욱진 선생의 추억
세상으로부터의 자유
까치가 있는 모뉴망


 

 

 

 

 

 

 

그는 무소유자고 자유인입니다. 서울이 시끄럽다고 그는 늘 시골로만 다녔습니다. 덕소도 그렇고 수안보도 그렇고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신갈로 간 것입니다. 더 고요한 시간을 찾아 그림은 새벽에만 그렸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외유의 시간입니다. 그것은 술의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장 선생의 전 생활이 그랬다고 할 만큼 그의 삶은 간단하고 일목요연했습니다.

 

나이 60세에 그의 그림은 돈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고 가는 그림값이 된 것입니다. 운명이 다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돈은 생겼지만 몸은 늙어서 술도 못 마시게 되었고 아이들은 장성해서 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늦게나마 인도로 유럽으로 세상 구경을 다녔는데 마치 어린애처럼 즐거워하고 자랑했습니다.

 

장욱진 선생의 그림은 우리가 사는 평범한 모습 그것입니다. 해가 있고 달이 있고, 아이들과 강아지가 놀고, 산이 있고 하늘에는 새가 날고 하는 것들입니다. 이른바 진취적이라는 친구들이 모두 추상화 쪽으로 가고, 그것이 세상 물결이었지만, 그는 완강히 고집하여 애초에 먹은 마음 그대로 전 생애를 관철하였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동경 유학으로 그림공부를 하고 돌아와 서울대 교수로 몇 해 봉직하다가 교수직을 내던지고 그야말로 무위도식의 일생을 사셨습니다. 장욱진 선생이 한 일이란 술 먹고 그림 그린 일 외에는 한 일이 없었습니다. 장국진 선생은 분명 기인이며 도인이며 위대한 화가입니다. 선생이 세상 뜨시고 5주기 기념하여 호암미술관에서「장욱진 大回顧展」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전시회에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同書 p67~76 발췌)

 

 

 

 

 

 

장욱진 선생의그림에서 사람들은 묘한 친화력을 느끼는데, 그 힘든 길의 아픔과 진실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칼날 같은 예리함, 비범함, 준엄함이 있지마는 겉으로는 아이들도 그릴 수 있다 할 만큼 평이한 체(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었다. 장욱진 선생은 가히 천재였다. 그의 정신은 계승될 수 있을지언정 그의 양식은 계승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다. 佛家에서 화두 하나를 놓고 일생을 동요 없이 추적해서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형국 같다고나 할까.

 

그의 정신은 그림 속에 살아 있다. 장욱진 선생의 그림은 인간 장욱진 자체라고 보아도 틀림이 없을 터이고 그래서 거기에는 그의 고독과 오뇌와 꿈과 사랑과 초월에의 의지와 그리고 마침내 자유, 그런 모든 이야기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同書 p50 전후)

 

 

 

 

근대 미술의 역사를 보면 선대가 한 일을 부정하는 행위의 연속입니다. 부정하고 그 부정에서 생겨난 것을 또 부정합니다. 인간이 하는 일이란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림이란 아무리 그려도 끝이 안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림 그리는 일이란 결국 나를 찾는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잃어버린 나, 빼앗긴 나를 원래대로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나의 정신은 강대한 세력의 그림들 곧으로 함몰되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부재를 초래했습니다. 저 바깥의 아름다움에 끌려서 진정한 나는 산산히 분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술가는 분산된 나를 다 불러 모아놓고 "이것이 나였구나"하고 스스로 감격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법은 있어도 안되고 또한 없어서도 안된다." (추사)

"예술은 종교 및 철학과 함께 사람들의 가장 깊은 문제와 정신의 가장 높은 진리를 의식하게 하고, 또한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헤겔 )

 

 

 

 

 

 

 

 

 

 

 

 

 

 

 

 

 

 

 

 

 

 

 

 

 

 

 

아래 게시물 출처. CAFE '장계인 그림이야기'

 

소박한 화폭과 단순한 주제...장욱진 화백의 그림읽기(1918-1990)

  

 

    I'm simple...

"이 말은 내가 되풀이 내세우고 있는 나의 단골말 가운데 한마디지만

또 한번 이 말을 큰소리로 외쳐보고 싶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다."

 

장욱진은 그림과 주도(酒道) 사이를 오가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신명 하나로 그림을 그리는 장인으로 살기를 고집하는 그를

세상의 눈은 기인으로 여겼다. 

또는 세속도시에서 신선으로 살다간 화가라 말한다,

 

그는 늘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한 사람이었고

화가는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뱉어내는 것이라 말하며

스스로를 일곱 살이라 하였다. 

그런 화가였기에 그의 그림은 작고 소박한 화폭에 

단순한 주제로 이루어진 것이 많다. "작은 그림은 친절하고 치밀하다." .....

 

  

 

 

 

 

 

 

 

 

 

공기놀이 / 캔버스에 유채,   1938

  

 

 

 

독 /  캔버스에 유채,   1949

  

 

 

 

붉은 소 / 캔버스에 유채,   1950 

  

 

 

 

자화상 / 종이에 유채,  1951

 

일명「보리밭」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이 그림은 나의 자상自像이다.
1950년대 피난중의 무질서와 혼란은 바로 나 자신의 혼란과 무질서의 생활로 반영되었다.

나의 일생에서 붓을 못들은 때가 두 번 있었는데 바로 이때가 그중의 한 번이었다.

초조와 불안은 나를 괴롭혔고 자신을 자학으로 몰아가게끔 되었으니

소주병(한되들이)을 들고 용두산을 새벽부터 헤매던 때가 그때이기도 하다.

 

 

 

  

樹下  / 캔버스에 유채,   1954

 

 

 그는 늘 잎이 풍성한 나무를 그렸고, 이는 가난하지만 늘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그의 삶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여름 한낮, 나무 아래에서 속옷만 입고, 누워있는 어린 아이의 편안하기만 할 마음 또한 그렇다..

  

 

 

자동차가 있는 풍경 / 캔버스에 유채,  1953

  

 

 

 

자전거가 있는 풍경 / 캔버스에 유채,  1955 

 

 

 

 

나룻배 / 목판에 유채,  1951

  

 

 

 

마을 / 종이에 유채,  1951 

  

 

 

 

소 / 캔버스에 유채,  1954

 

 

  

집 / 캔버스에 유채,  1955

 

 

 

 

얼굴 / 캔버스에 유채,  1957

 

 

 아이의 눈, 코, 귀 목이 가장 단순한 기호로 그려져 있다.

그 뒤로는 집 세 채가 바로 또는 거꾸로 서 있다.

천진한 어린이가 두 다리사이로 세상을 바라보면 집이 거꾸로 보일 것이다.

 

 

 

 

 

달밤 / 캔버스에 유채,  1957

  

 

 

 

나무와 새 / 캔버스에 유채,  1957

 

 

 

  화면에 그린 소재들이 마치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한결 같이 간결하다.

작가가 늘 말하는 [나는 심플하다]는 말 그대로

소재가 지니고 있는 핵심적인 구성 요소만 그려서 가장 단순한 그림을 창작한다.

 

 

 

 

배와 고기 / 캔버스에 유채,  1960

  

 

 

 

까치 / 캔버스에 유채,  1958

 

 

 

 

해,달,산,집 / 캔버스에 유채,  1961 

 

 

 

 

모기장 / 캔버스에 유채,  1956

 

 입체주의 시점에서 그린 그림이다.

즉, 모기장 안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위에서 바라보는 시점(視占)에서 그리고

 등잔, 요강과 그릇은 옆에서 바라다 보는 시점에서 그렸다.

 

 

 

 

                

무제 / 캔버스에 유채,  1962

 

 

 

 

어부 / 캔버스에 유채,  1963

  

 

 

 

 

춤 / 캔버스에 유채,  1964

  

 

 

 

산수 / 캔버스에 유채,  1968

  

 

 

 

얼굴 / 캔버스에 유채,  1969

 

 

 

 

풍경 / 캔버스에 유채,  1970

  

 

 

 

가족도 / 캔버스에 유채,  1972

 

 

 

 

나무와 아이 / 캔버스에 유채,  1969

 

 

 

 

어미소 / 캔버스에 유채,  1973

 

 

 

 

고향 생각이 나면

  

 

 

 

그리움 

 

 

 

 

가족 / 캔버스에 유채,  1973

 

 

 

 

하얀 집 / 캔버스에 유채,  1969

 

 

 

 

부엌 / 캔버스에 유채,  1973

 

 

 

  

툇마루 / 캔버스에 유채,  1974

  

 

 

 

멍석 / 캔버스에 유채,  1973

  

 

 

 

평상 / 캔버스에 유채,  1974

  

 

 

 

초당 / 캔버스에 유채,  1975

 

 

 

 

길에서 / 캔버스에 유채,  1975

  

 

 

 

나무와 까치 / 캔버스에 유화,  1977

  

 

 

 

원두막과 정자 / 캔버스에 유화,  1977

  

 

 

 

가족 / 캔버스에 유화,  1977

  

 

 

 

돼지 / 캔버스에 유화,  1977

  

 

 

 

소와 나무 / 캔버스에 유화,  1978

 

 

 

 

길이 있는 마을 / 캔버스에 유화,  1979

  

 

 

 

가로수 / 캔버스에 유화,  1978

  

 

 

 

가족 / 캔버스에 유화,  1979

 

 

 

 

나무 / 캔버스에 유화,  1986

 

 

 

 

집과 나무 /  캔버스에 유화,  1986

  

 

 

 

나무 / 캔버스에 유화,  1989

 

 

 

 

밤과 노인 /캔버스에 유화,   1990

 

 

이 작품은 그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신선의 모습을 한 노인은 바로 작가 자신...

이제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그는 세상을 등지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발 아래 있는 세상은 늘상 그의 바람처럼 어린 아이와 새 그리고 나무로 차 있다.

 

 

 

 

 

무제 / 캔버스에 유화,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