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성베드로 광장

2016. 8. 4. 17:11여행/이태리

 

 

 

 

 

 

 

 

 

 

 

 

 

 

  

 

 

 

 

 

 

 

 

 

 

 

 

 

 

 

 

 

 

 

 

 

 

 

Piazza San Pie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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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의 가장 큰 자랑거리 중의 하나는 성 베드로 성당 앞의 광장이다. 이 광장은 알렉산드로 7세 재위 시(1665~1667)에 베르니니가 1667년까지 12년의 공사 기간 동안 완성한 것이다. 이 광장은 우선 완만하게 경사가 지도록 했는데 그 이유는 성당 앞에서 거행되는 여러 종교 의식을 잘 보이게 함과 미켈란젤로의 돔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전체적으로 팔을 벌려 모든 신도를 감싸 안는 모양을 지니고 있다.

가장 넓은 곳의 크기는 240×340m이고 양 좌우에 15m 높이의 기둥이 총 284개가 들어서 있다. 그 위에는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만든 높이 3.2m 크기의 성인상이 140개가 있다. 또한 가운데에는 오벨리스크가 있는데 이 오벨리스크는 원래 네로 전차 경기장에 있던 것으로 1585년에 도메니코 폰타나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 오벨리스크는 전형적인 해시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직도 광장 바닥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표시가 있다. 분수가 두 개 있는데 광장 입구에서 성당을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에 있는 분수는 마데르노에 의해 1613년에 제작되었고 왼쪽의 분수는 베르니니에 의해 1675년에 제작되었다. 이 광장을 만든 베르니니는 미켈란젤로가 만든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모형을 가져왔다.

바티칸 대성당에서 천사의 성으로 바로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은 1950년에 만들어졌다. 바로 화해의 길(Via della Conciliazione)이다. 그리고 광장을 돔에서 바라보면 광장 바닥에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줄이 나 있는데 이유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계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매우 치밀하게 만들었다.

 

 

 

원주 위에 있는 140인의 성인들의 모습

광장 중앙의 오벨리스크

해시계 역할을 한다.

마데르노의 분수(1613년)

1934년 교황의 강복 모습

일요일 정오 12시에 스피커를 통해 교황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성당 입구

바티칸 성당의 평면도

바티칸 성당의 평면도

 

 

ㆍ1번 : 청동으로 만든 바티칸 대성당의 중앙 현관문이다.

실제 열리지 않는다. 대성당의 현관문이며 5개의 문 가운데 중앙에 위치한다. 이 청동문은 1445년에 만든 문인데, 대성당을 짓기 전부터 있었다. 이 문을 가까이 가서 보면 성 베드로의 순교 장면이 있는데 성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순교 장면이다.

 

성 베드로의 순교 장면

 

2번 :

 5개의 문중에서 제일 왼쪽 끝에 있는 문으로 ‘만추의 문’이라고 한다. 흔히들 ‘죽음의 문’이라고 하는데, 대성당 내에서 장례식을 치른 시신이 나가는 문이다. 그런데, 이 문이 가장 축복스러운 문이다. 대성당 내에서 장례를 치를 정도의 인물은 가톨릭 문파 내에서 성인(聖人)이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문을 통하여 나오면 복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만추의 문

 

 

ㆍ3번 :

중앙 현관문 바로 앞. 바티칸 대성당이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지물이다. 앞으로 쭉 나가면 전 세계에 있는 성당의 크기들이 차례로 표시되어 있다.

 

바티칸 대성당이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지물

 

 

ㆍ4번 :

오른쪽 끝문으로, 25년을 주기로 열리는 성스러운 문이다. 원래 50년 만에 문을 여는 것이 교리상 원칙이지만 현재는 25년마다 문이 열린다.

 

성스러운 문

1번과 4번 문들 사이에 있는 문을 통하여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들어가는 문에 있는 조개의 모습. 조개는 종종 성당 안의 주요한 모자이크의 주제로 사용이 되는데 바로 이 조개가 순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조개는 새조개이다. 이 조개를 밟고 들어가면 정식으로 순례자가 된다.

 

 

들어가는 문에 있는 조개의 모습

 

 

바티칸 성당의 내부는 현관문까지 포함하면 길이가 총 230m(성당 내부만의 길이는 187m이다), 직경이 42m(외부건축물까지 포함하면 58미터), 돔은 지상에서 136.5m이다. 이 정도의 높이는 15층 건물의 높이다. 따라서, 내부에는 상당히 볼 것이 많지만 많은 부분을 개방하지 않는 곳이 많아서 다 보지는 못한다. 바티칸 내부는 입석시 총 6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바티칸 성당의 내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ㆍ6번 :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이 피에타 상이 있는 곳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제단, 작은 예배처이다. 이 조각은 1499년에 만든 것으로 미켈란젤로가 만 24세 때 만든 작품이다. 성모마리아의 왼쪽 어깨로 흘러내리는 띠에는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있는데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 유일하게 친필 서명이 조각된 작품이다. 당시 아무도 이 작품을 어린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는 것을 믿지 않자 그가 새겨 넣었다는 일화가 있다.
‘피에타’라는 말은 ‘자비, 온정’이라는 뜻이며 보통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한 조각이나 그림을 피에타라고 한다. 당시 모든 화가나 조각가들이 일생의 작업으로 남겨야 하는 숙제와 같은 주제이다. 이 작품은 현재 방탄 유리로 보관 중이며 일반인이 접근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1972년에 어떤 미친 사람이 머리, 코, 눈 언저리, 왼팔을 부수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습은 복원 후의 모습이다. 이 피에타 상 위를 자세히 보면 바티칸 대성당 내에서 유일한 프레스코 벽화 〈십자가의 승리〉라는 1600년대의 작품이 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ㆍ7번 :

레오네 12세 기념 조각물. 이 조각물 뒤로 교황이 타고 내리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레오네 12세 기념 조각물

 

 

ㆍ8번 :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기념비.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기념비

 

 

ㆍ9번 : 피오 11세의 기념비

 

피오 11세의 기념비

 

 

ㆍ10번 :

성 세바스티아노 제단.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 장면이다. 그림처럼 보이지만 모자이크화다. 모자이크가 훨씬 보존이 용이하다. 성 세바스티아노 제단 그림 바로 아래에 있는 인노센치오 11세의 실제 시신이다. 얼굴과 손이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은으로 덮혀 있다.

 

성 세바스티아노 제단                         

 

성 세바스티아노 제단                         

 

* 여기서 잠깐

이탈리아 성당의 실제 용도는 예배를 드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많은 성인의 무덤으로도 사용된다. 엄밀히 말해, 바티칸 대성당도 성 베드로의 무덤이 아닌가? 이런 모습은 이탈리아 전역을 가도 마찬가지다. 가톨릭에서 시신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는 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ㆍ11번 : 피오 12세 기념비

 

피오 12세 기념비

 

 

ㆍ12번 : 인노센치오 12세 기념비

 

인노센치오 12세 기념비

 

13번 : 기독교를 옹호한 마틸데 공작부인 기념비

 

기독교를 옹호한 마틸데 공작부인 기념비

 

 

ㆍ14번 :

성체의 제단, 예배당이 나온다. 혹 가톨릭 신자라면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자. 이곳의 중앙에는 황금색으로 도금된 성체를 담는 곳이 있다. 성 피에트로 광장을 만든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제단 뒤에는 바티칸 대성당 내의 유일한 유화인 〈삼위일체〉가 걸려 있다.

 

성체의 제단

 

 

ㆍ15번 :

그레고리우스 13세 기념비. 1582년 그레고리우스력을 개량하여 만들었다.

 

그레고리우스 13세 기념비

 

 

ㆍ16번 :

원래 그레고리우스 14세의 기념비가 있어야 할 자리인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현재는 작품이 없다.

 

 

 

ㆍ17번 : 그레고리우스 16세 기념비

 

그레고리우스 16세 기념비

 

 

ㆍ18번 : 그레고리우스 예배당의 모습이다.

 

그레고리우스 예배당

 

 

ㆍ19번 : 그레고리우스 예배당 위에 있는 구원의 성모 제단

 

그레고리우스 예배당 위에 있는 구원의 성모 제단

 

 

ㆍ20번 : 성 지롤라모 제단. 성 지롤라모 제단 위에 있는 모자이크화

 

성 지롤라모 제단 위에 있는 모자이크화

 

 

* 그림 위의 아기 천사들
그림을 보다 보면 항상 하늘에 아기 천사들이 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습을 본떠 실제 1900년 초기의 남부 지방에서는 어린아이들을 끈으로 연결하여 하늘에 떠 있게 하는 축제를 많이 했다.



ㆍ21번 : 성 바실리오 제단

 

성 바실리오 제단

 

 

ㆍ22번 : 베네딕토 14세 기념비

 

베네딕토 14세 기념비

 

 

ㆍ28번 : 클레멘스 13세 기념비

 

클레멘스 13세 기념비

ㆍ51번 :

베드로 상. 지금은 사람들이 손을 대고 지나가지만 원칙은 발에다 입맞춤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작품은 13세기의 작품이며 피렌체 출신의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작품이다.

 

 

베드로 상

ㆍ52번 : 천개, 대성당의 중심이다.
천개 즉, 발다키노라고 불리는 성 베드로 무덤의 덮개이다. 1624년 우르바노 8세의 명으로 베르니니가 아주 화려하게 만든 바로크 양식의 걸작이다. 성 베드로 성당은 주로 바로크 양식의 건축 형태를 지니고 있어서 화려하다.

 

 

천개, 대성당의 중심                         

 

천개, 대성당의 중심

천개 아래에 있는 성 베드로의 무덤. 들어가지 못한다.


1624년에서 1632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이 작품은 돔 아래에 있는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이 작품을 만들면서 베르니니와 베르니니를 지원했던 바르베리니 가문은 욕을 엄청 먹어야 했다. 왜냐하면, 판테온의 입구와 천장의 동판을 뜯어냈기 때문이다. 이 천개를 제작하는 방식은 갖다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바로 거푸집을 만들고 주물을 부어 넣어 만들었다.

 

 

천개 아래에 있는 성 베드로의 무덤

* 바르베리니 가문의 상징, 꿀벌


천개의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둥을 보면 꿀벌의 모양이 있는데 바로 바르베리니 가문의 대표 상징이었다. 이 꿀벌의 문양은 이탈리아 내에서도 친숙하다. 〈로마의 휴일〉에서 즐겁게 작은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나오는데 바로 스쿠터의 이름이 vespa의 ape(벌) 모델이다. 로마 국립 회화관 건물이 바르베리니 가문의 건물이며 이 건물 역시 군데 군데 꿀벌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이 보인다. 이 돔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하고 그의 제자인 델라 포르타와 마데르노가 완성시킨 돔으로 높이가 136.5m이며 총 537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상당히 거대하지만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금박의 글자는 라틴어로 ‘너는 반석이며 이 반석 위에 나의 성당을 세우며 너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노라’라는 뜻이다. 바로 베드로에게 하는 말이다. 따라서 베드로는 항상 열쇠를 들고 있다. 현존하는 돔의 양식 중에서 채광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바티칸 대성당 내에는 전기로 된 채광 장치가 없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

 

돔 아래에는 총 4명의 성인이 있다. 바로 성경의 복음서 저자들이다. 그래서 펜을 들고 있다. 마가복음, 누가복음, 마태복음, 요한복음이라고 알고 있는 성경 속 각 부분의 저자들이다. 바로 성 마르코, 성 루카, 성 마테오, 성 요한의 모습이다. 성 마르코가 들고 있는 펜이 참 작아 보이는데, 천만에, 그 펜의 길이만 해도 1.65m이다. 그러니 돔의 규모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외부에서 본 돔의 모습

ㆍ48번 :

성 베로니카의 상이다. 베로니카가 들고 있는 천이 예수의 시신을 덮은 것이라고도 하는데 공식 문건에 의하면, 이 장면은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예수의 얼굴을 닦아 주는 모습이라고 한다.

 

 

성 베로니카의 상

ㆍ49번 : 성 헬레나의 상
여인이 들고 있는 십자가는 예수가 못박혀 죽음을 당한 그 십자가이다. 성 헬레나가 이를 찾아냈다. 성 헬레나는 기독교를 313년에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이다.

 

 

성 헬레나의 상

 

 

ㆍ50번 : 성 론지노의 상


이 사람이 들고 있는 창이 바로 예수님을 찌른 창이다. 론지노는 바로 예수를 찌른 로마 병정이다. 후에 개종하여 지금은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사람은 비록 잘못을 했더라도 회개하면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강력한 종교적 메시지이다. 혹,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는 사람이면 성 론지노 상을 보면서 반성하고 다시금 새로운 희망을 바티칸에서 얻어 가자.
이 작품만이 유일한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48, 49, 53은 베르니니 공방에서 만들었다.

 

성 론지노의 상

 

 

 

ㆍ53번 : 성 안드레아 상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 성인이다. 네 부분이 같은 길이인 그리스 십자가 형태의 나무 십자가에서 순교했다. 현재 안드레아의 두개골이 보존되고 있으며 부활절에는 바로 안드레아의 두개골, 성 헬레나의 십자가, 성 베로니카의 베일, 성 론지노의 창 파편 등이 공개된다.

 

성 안드레아 상

 

 

 

ㆍ35번 : 대성당의 주 설교단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들어가지 못한다. 빛이 들어오는 타원형 창 아래의 의자는 베르니니가 나무로 된 의자 위에 청동을 입힌 것이다. 이 의자는 항간에 성 베드로가 앉았던 의자로 알려졌는데 역사적 고증에 의하면 875년 카롤 2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을 기념하여 교황 조반니 7세에게 증정한 것이다.

카롤 2세의 아버지는 800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임명된 샤를마뉴 대제이다. 또한 샤를마뉴 대제의 아버지는 프랑코 왕국의 피핀 대제로서 그 피핀 대제는 현재 이탈리아 북부의 땅을 찾아서 교황에게 바쳤다. 또 피핀 대제의 아버지는 카를 황제로서 711년 이슬람이 유럽을 침공했을 때 프랑스 뚜르 지역에서 이를 막아낸 영웅이다. 바로 그런 집안의 후손이 바티칸 교황을 위해 증정한 의자이니 바티칸 측에서는 상당히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당연히 보존을 하고 널리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의자 아래로는 총 4명의 성인이 있다. 왼쪽에서부터 로마 가톨릭 교회의 대표인 성 암브로시오와 성 아우구스티노, 그 다음 그리스 정교회의 성 아나스타시오와 성 조반니 크리소스토이다. 베르니니가 만들었는데 이 작품을 만들 당시 그리스 정교회 역시 교부학, 즉 신학 안에서도 그들을 인정함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설교단 양쪽으로 34번과 36번의 조각상이 있다.

 

 

ㆍ34번 : 우르바노 8세


베르니니에게 천개 및 기타 여러 조각품을 만들기를 원했던 교황이다. 이 교황은 바르베리니 가문 출신인데, 판테온의 천장과 동판을 뜯는 것을 묵과했기 때문에 후대에 욕을 많이 얻어 먹었다.

ㆍ36번 : 미켈란젤로를 존경하고 후견했던 바오로 3세의 조각.

 


ㆍ40번 : 레오네 마뇨의 제단

 

레오네 마뇨의 제단                         

 

 

ㆍ41번 : 지주 성모의 제단

 

지주 성모의 제단

 

 

ㆍ42번 :

베르니니가 80세가 되었을 때 그를 아끼던 교황 알렉산더 7세는 베르니니가 죽기 전에 자신의 상을 만들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이에 베르니니가 노구를 이끌고 힘겹게 손수 만든 마지막 걸작이다. 해골이 들고 있는 것은 모래시계인데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는 베르니니가 스스로 죽음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작품의 오른쪽에 보면 지구본을 밟고 있는데, 이는 영국 성공회를 비난한다는 뜻이다.

 

교황 알렉산더 7세의 상                         

 

 

ㆍ43번 : 성심 제단

 

성심 제단                         

 

 

ㆍ44번 : 작은 예배당
ㆍ45번 : 토마스 제단(왼쪽)
ㆍ46번 : 성 요셉 제단(정면)

 


ㆍ47번 : 성 베드로 십자가 제단(오른쪽)

 

작은 예배당

 

 

ㆍ54번 : 거짓의 제단
이곳에서 거짓말을 하면 큰 일이 난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곳에서 중요한 일을 약속하기도 했다고 한다.

 

거짓의 제단

 

 

ㆍ55번 : 피오 8세 기념비
이 밑의 문을 통해 들어가면 제의실과 보물실의 모습이 있다. 테조로 박물관이 바로 이곳이다.

 

역대 교황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맨 마지막에 2005년도에 서거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식스투스 4세 테조로 박물관(1471~1484)의 무덤

미켈란젤로의 스승이었던 안토니오 델 폴라이오로의 작품이다.

 

 

         

 

      
         

 

      
         

 

      
         

 

 

      

ㆍ57번 : 성 그레고리우스 제단

 

성 그레고리우스 제단

 

 

                         

ㆍ58번 : 피오 7세의 기념비
유명한 비가톨릭 신자였던 덴마크 출신의 조각가, 토르발드센의 작품이다.

 

피오 7세의 기념비

 

 

 

ㆍ59번 : 예수 승천의 제단
바티칸 박물관의 피나코테카(회화관)의 8번 방에 있는 라파엘로의 작품이다. 그가 이 그림을 미완성인 채로 남겨둔 것을 그의 제자, 줄리오 로마노가 완성시켰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 모자이크이며 복제품이다. 원본은 피나코테카 8번 방에 있다.

 

예수 승천의 제단

 

 

 

ㆍ60번 : 레오네 11세의 기념비

 

레오네 11세의 기념비

 

 

 

ㆍ61번 : 인노센스 11세의 기념비

 

인노센스 11세의 기념비

 

 

 

ㆍ62번 : 성가대의 예배당

 

성가대의 예배당

 

 

ㆍ63번 : 무염시태의 제단

 

무염시태의 제단

 

 

* 도대체 바티칸 설명은 너무 어려워서 못 듣겠다?
개랑, 천개, 무염시태, 지주성모··· 다 한자어의 번역, 주로 일본어의 번역이다 보니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한다.

 

 

* 마리아의 무염시태(無染始胎)란,
단순히 처녀로 잉태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이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구원 사업에 참여하도록 선택된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일체의 죄의 세력에서 구원받고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만일 예수를 잉태한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 자식에게도 원죄가 물려지는데 이는 가톨릭 교리에서 아주 미묘한 문제였다. 이 교리는 1830년 7월 18일에 프랑스 파리의 까리따스 수녀원에서 성모가 발현하여 원죄 없이 잉태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1854년 피오 9세 교황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서 잉태되시는 첫 순간,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미리 내다보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 특은을 베푸시어 원죄에 물들지 않게 하셨다”고 선포하고 이를 교리로 선포했다. 마리아는 다른 이들이 세례 때 받는 은총을 출생 이전에 미리 입음으로써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도록 불림 받았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리에서는 성(性)을 아주 귀하게 본다. 그림이나 조각 내에서도 성적인 신체 부분은 절대 가려져야 한다. 따라서, 가톨릭에서는 성적 행위로 인한 비도덕적인 일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하다. 예를 들어, 낙태와 같은 일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이를 인정할 경우 가톨릭의 2000년 교리가 무너진다. 실제 가톨릭에서는 교리를 지키기 위해 사람의 목숨은 바칠 수 있는 것으로 보지만 숭고한 교리는 함부로 손 댈 수가 없다. 몸 가죽이 벗겨지는 고통 속에서도 지키는 것이 바로 가톨릭 교리이다. 따라서, 가톨릭이 취하는 입장은 단순히 당대의 가치관이나 관습이 아닌 2000년이 넘게 지켜온 교리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가톨릭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다고 한다.

 

 

 

ㆍ65번 : 인노센치오 8세 기념비

 

인노센치오 8세 기념비

 

 

ㆍ64번 : 피오 10세의 기념비

 

피오 10세의 기념비

 

 

ㆍ67번 : 동정녀 마리아에게 봉헌한 예배당

 

동정녀 마리아에게 봉헌한 예배당

 

 

ㆍ66번 : 요한 23세의 기념비

 

요한 23세의 기념비

 

 

ㆍ68번 : 베네딕토 15세 기념비

 

베네딕토 15세 기념비

 

 

ㆍ70번 : 스튜어트 왕조의 기념비.
세 사람은 가톨릭을 위해 왕좌를 거부했다.

 

스튜어트 왕조의 기념비

 

 

ㆍ69번 : 소비에스키 기념비

소비에스키 기념비

 

 

ㆍ71번 : 세례당

세례당

 

 

*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
주로 여름철에 배낭여행을 가는데 불편한 잠자리, 불편한 음식을 먹으면서 엄청난 행렬 틈에 끼여 움직이려면 웬만한 체력으로는 되지 않는다. 특히, 로마의 한여름 바깥 온도는 40도에 육박한다. 그러니 너무 달콤한 여행의 환상이 보내는 밀어에 자신의 판단을 내맡기지는 말고 냉정하게 준비하고 판단해야 한다. 여행의 주체는 자신이며 이 세상에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여행에서 편안한 요령은 정확하게 그만큼의 성과만 얻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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