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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수도승> 1809년 다비드 프리드리히, 1809년 캔버스에 유채 110 * 172cm 베를린 국립미술관
절대 고독이라는 흔한 용어를 이처럼 잘 표현한 화가가 미술사전체를 통틀어 있나 싶을 만큼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비드 프리드리히>는 한 인간이 자연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고독, 허무함을 강렬한 독창성으로 표현했다. 화면의 대 부분을 하늘이 차지하고 있고 풀 한포기 없는 육지의 절벽위에 왜소한 모습의 수도승이 바라를 바라보고 섰다. 화편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검은 바다를 왜소한 크기의 한 수도승이 마주하고 있다. 바다 안개에 덮여버린 대기는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몰아칠 것 만 같아 수도승이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는 대 자연의 숭고함 앞에서 무력한 자신과 인간이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랜 역사속에서 화가들은 바다를 다양한 의미로 해석했다. 바다는 신화와 성서의 무대로 출발하여 모험의 장소이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의 대상으로 발전했다. 때론 바다는 단순한 풍경 그 자체로써 아름다움을 발산하기도 했다. 이러한 회화의 흐름속에서 바다를 유독 주목한 화가들의 반열엔 프리드리히가 우뚝 서 있다. 그의 바다는 대자연의 웅장함과 그 웅장함에 가려버린 왜소한 인간이 서 있다. 동시에 인간의 무력함과 한계에 대한 숙명, 그리고 죽음과 고독이라는 명제에 결부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바다는 짙푸르다 못해 검은 바다이며 그 검은 바다는 수도승의 이미지마저 보이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형태와 색채로 화면을 덮고 있는 것이다.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기 중 윗부분과 수평선이 만나는 아랫부분은 짙은 청색으로 표현되었고 두 짙은 청색대기 사이로 옅은 햇빛이 가려져 있다. 화가는 인간의 고독과 죽음, 한계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의 빛을 숨겨 두었다.
작품은 그의 고향 가까이 있는 여름휴가를 자주 보냈던 뤼겐(RUGEN) 섬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엄격한 루터파 신자였던 부친의 가르침아래 열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일곱 살 때 천연두로 어머니를 잃었고, 이후 차례로 두 누이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열세 살 무렵 남동생 요한과 발트해의 얼음이 언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갑자기 얼음이 깨지면서 남동생이 죽는 사고를 목격하게 된다. 일설에는 자신이 빠지고 동생은 그를 구하려다 죽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지만 여하튼 동생 요한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는 지독한 우울증과 절대적 고독, 대인기피증과 자살충동 같은 망령이 되어 평생 그의 그림자가 되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세계는 자연스레 고독, 우울함, 경건함으로 점철되어 있고 주로 대자연의 신비와 숭고함을 종교성으로 승화시킨 흔적들이 역력하다. 예술사에서 유년의 아픈 기억들로 인해 평생을 고통스런 예술작품을 양산한 에드바르 뭉크나 슈베르트 같은 대가들처럼 그 역시 한 인간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최대치를 온몸으로 체험한 후 명상과 사색속에서 작품들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예술은 그래서 잔인한가 보다. 더불어 당대 독일 문화, 예술 전반을 지배했던 낭만주의적 감수성은 자연스레 인간 내면의 근원적 성찰을 추구하는 예술경향으로 표현되었는데 하지만 그의 이러한 예술성은 강렬한 주제와 색채로 표현된 프랑스와 스페인 낭만주의 회화와는 결이 다른 그만의 방식이었다.
한편, 작품 속에서 그가 그린 인간들은 거의 예외 없이 등을 보이고 자연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신이 영원한 자연의 일부일 뿐이며 잠시 머무르다 사라질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자신의 힘만으론 어찌 해볼 수 없는 한계에 대한 인식, 그것은 필연적으로 종교적 숭고함과 대자연의 신비에 대한 표현으로 이어졌다. 언젠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발견하지 못하는 화가는 그림을 포기해야 된다.” 라고 했을 만큼 그는 인간내면의 근원적 문제를 종교적 분위기와 함께 담아내려 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제재는 주로 교회나, 수도사, 묘지, 십자가 등 종교적 제재와 광활한 대지, 깊고 드 넓은 바다, 울창한 숲, 협곡 등 대자연의 다양한 모티브들이다. 이런 특질로 인해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미술사에서 독창성이라는 면을 두고 보자면 가장 앞줄에 서 있을 만큼 당대와 후대의 어떤 화가들보다 특별하다. 일찍이 풍경을 이처럼 ‘비극적’ 으로 그린 화가는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그는 작품 <해변의 수도사>에서 흐릿한 하늘 아래 바닷가에서 파도의 출렁임,공기의 흐름,구름의 이동을 통해 삶의 소리를 듣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원하는 요구와 반대로 자연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제한적인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소리인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풍경화에 감정을 담을 수 있는 비범한 재능을 지닌 당대 독일지역의 유일한 예술가였다.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회화적으로 표현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양한 작품속에서 화가는 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며 동시에 절대고독의 중심점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면의 성찰은 그가 지닌 고도의 지적 능력의 부산물이었다. 당시 전시장을 찾았던 관람객들이 바라던 작품은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고 잔 물결이 찰랑이며 신선한 바람이 바다에 떠 있는 돛단배 한척을 밀어주는 그런 풍경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작품 완성 전 한 귀부인이 화가의 화실을 방문해서 작업중인 작품을 보고 남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바람도 달도 폭풍우도 없이 고요한 하늘에 차라리 폭풍우라도 있다면 움직임과 생명을 느낄 수 있을테니 오히려 위로와 기쁨이 되었을 것 입니다.” 그러니 그런 장면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은 악몽과 같았을 터이다. 그러나 화가는 그림에서 감정을 진실되게 전달하는 방법으로 당대보다 오히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무한하고 균일한 공간 앞에서 마치 눈꺼풀이 잘려나간 것 같은 느낌” 1810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아카데미 전시회에서 이 작품을 마주 대한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비평이다. 화가는 20대에 코펜하겐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웠고 이후 이십대 후반부터 드레스덴이 정착하며 평생을 그만의 화풍을 고집하며 67세의 생을 그곳에서 조용히 마감했다.
윤 운 중 아트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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